2편

https://arca.live/b/yandere/9779961



주의.

꽤나 잔인한 묘사가 있으므로, 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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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빗줄기가 잎사귀에 부딪혀 아롱거린다.

자그마한 물방울은, 이내 위태하게 흔들거리더니, 또다른 빗줄기에 맞아 무거운 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또옥.


으드득. 으득.


제법 불쾌한 소리였다.

폭우에 가까운 비를 어느정도 막아주던 숲의 한 켠에서 퍼지는 기이한 소리에, 숲의 짐승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진창을 헤집는듯하면서도, 무언가를 씹어넘기는 소리.

근원지의 중심에는, 한눈에도 기이하고 역하게 생긴 마수가 땅에 머리를 쳐박은채 게걸스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드드득! 찌익!


수십개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사냥감의 팔을 뜯어냈다.

진작에 숨통이 끊어졌지만, 사냥감의 근육은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살아있는듯 펄떡였다.

머리는 진작에 없었다.

마수의 영악한 농간에 속았던 사냥감은, 들고있던 검 채로 머리부터 뜯겨져 나갔다.

멍청한 놈.

머리가 좋은 마수는, 사냥감이 자신에게 속은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게걸스럽게 입을 움직였다.


우드득 우득.


뼈가 산산히 부서지며, 따뜻한 내장이 드러났다.

언제나 춥고 배고프던 심연 속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에 눈 뜬 마수는 탐욕스레 눈을 빛내며, 입을 벌렸다.


[그만.]


열띤 식사를 방해하는 목소리에, 마수의 입이 멈추었다.

이 목소리.

성대에서 울리는 육성의 소리가 아닌, 마수의 정신 한 구석을 차지하는 공허한 울림이었다.

아, 이 소리는.


[.......이이이이이이이이, 소...리.]


마수는 그 울림에 따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서있는 존재는, 위대한 자.

심연속에서, 오로지 자신들의 섬김을 받는 분.

끝이없는 무저갱을 홀로 거니는 분.

마수로서는,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모독일 정도로 위대한 분이 자신 앞에 있었다.


[서서서서....섬김 받는 분이이이이이이...시여....무한한한한한...한......여여여여여여영 과아앙...]


마수의 입이 가열차게 움직인다.

마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매, 곧장 고개를 조아려 무궁한 경외를 토했다.


[먹은 이를 토해라.]


위대한 자의 말에, 마수는 곧장 이를 행헀다.

이미 반절정도를 먹은 뒤였지만, 위대한 자라면, 설령 자신의 심장을 원하더래도 기쁘게 행했을 것이었다.


투두둑...


마수의 입에서 육편의 조각들이 진창이 되어 떨어졌다.

한차례 배에 들어갔던 그것은 이미 원래의 형체를 잃은지 오래였다.

다만, 위대한 자.

닉스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참으로 허무한 결말이네, 그렇지 않아? 얀붕?"


발치에 떨어진 육편조각을 보며, 닉스는 아쉽게 탄식했다.

물론 이미 죽어버린 얀붕이 들을 수는 없었다.


"억울할까? 이렇게 죽는게 억울한가? 아니지, 아니야. 억울하지 않아. 얀붕. 그야 넌 '영웅'이나 '용사'가 아니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도 죽는거야."


그녀의 말대로 얀붕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얀붕처럼.

모두가 평범하다.

'영웅'이나 '용사'는 먼 옛날 얘기이자 허황되고 거짓말로 점쳐진 환상.

현실이 아니었다.

닉스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얀붕이었던 조각들 중 하나를 손에 쥐었다.


"고깃덩이. 그저 생각하는 고깃덩이들이지. 하지만, 넌 아니게 될거야."


닉스의 감긴 눈이 천천히 떠졌다.

수많은 별이 수놓인 밤처럼, 신비로우면서도 검은 동공이었다.

그 안의 무저갱.

그 안의 끔찍한 공허를 느끼며 마수는 개탄하여 떨었다.

그리고 자신의 발치에 있던 사냥감에게 경외하였다.


[너너너너너너너너,는.......추추추추추추추추추축보보보보보복.....받았다다다다다다다.]


위대한 자의 기적.

그 기적에 의해, 육편이었던 얀붕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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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자네 왜 그러나?"


닉스의 말에, 얼핏 정신이 들었다.

무슨...

언제부터...?

끔찍했던 기억의 일부가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마수.

프랭크.

함정.

여러가지 단어들이 자꾸만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우욱?!"


갑자기 너무 어지러웠다.

저도 모르게 구토감이 올라와, 그대로 쏟아냈다.


"우어억..."


"쯧쯧, 그렇게 경고했건만. 내 그래서 무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닉스의 핀잔을 뒤로 넘기며, 빈 속을 게워내니 아주 조금 괜찮아졌다.

그러면서도, 맑아지는 머리가 작금의 상황을 이해시킨다.

환상이었던 건가.

아니, 환상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 척, 미소를 짓고 있는 닉스를 보았다.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다.


"...무슨 짓을 한거야...!"


"허 참, 어이가 없군. 열병에 정신이라도 나간겐가?"


"시치미 떼지마! 그럼 내가 본 그것은...!"


편린같은 수준이었지만, 점점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수...

분명 마수와 싸웠다.

그리고, 마수에게 검을 내지르는 순간...

끔찍하게도 많은 이빨을 보았다.

내 기억은 정확히 그 부분부터 끊겨있었다.

그렇다면...

난...


"죽었던 거야?"


내 말에 닉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빙긋이.

미소만 띤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부정도, 긍정도 없는 그 미소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고.

지독하고 아픈 현실이었다고.

마수에 먹히는 그 끔찍한 기억이, 현실이었다는 것에 몸이 떨렸다.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전부 떠올린 것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마수에게 얻어맞아 진창을 구를때 들은 말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죽었지만 그녀에 의해 되살아 난것이 분명했다.

다만 어째서.

왜 그녀가 날 다시 살렸는지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닉스의 힘이.

그녀의 의도가.

너무나 무서웠다.


"한낮 꿈, 환상으로 치부하면 편한 것을...자네는 어찌 그런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는가? 무엇이 널 앞으로 이끌지?"


닉스가 떨고있는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저 나쁜 꿈.

혹은 환상으로 치부했어도 됬을 일이었다.

그게 현실이라면.

사람답게 죽지도 못하고, 어느 마수에게 온 몸을 뜯어 먹히는 것이 나의 끝이라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지금도, 이가 떨리고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무서웠다.

이토록 나약하다.

사람은, 그저 죽음의 공포만으로도 쉽게 망가진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떠는 몸을 억지로 멈추며 내뱉었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남아있기에.

그래서 무너질 수 없었다.

마수에게 먹히는 순간.

그것이 내 여정의 끝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닉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다시 살아있다는 것.

닉스와 함께한다는 그 순간에서, 나는 앞으로 남은 길이 절대로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떨칠수도, 멀어질수도 없다.

그렇기에, 감내하기로 했다.


"...재밌군."


내 표정을 본 닉스의 말이었다.

조금 의외의 대답이었다는 듯, 갸웃하다가도 곧 고개를 주억거리며 은은한 미소를 흘린다.

그것은 일종의 관심.

흥미롭게만 쳐다보던 그녀가 약간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는 듯한 느낌에 불길함이 감돌았다.


"얀붕, 우선 자네를 좀 다시 볼까 하네."


"그동안 어떻게 봤는데."


내 말에 닉스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약간의 흥미, 미물의 발악. 개미를 보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감상이었다면 됬나?"


"참으로 영광이군."


"후후, 그대에겐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네."


그렇게 말하며 닉스는 돌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실타래.

심연속에서 보았던 그 것이었다.


"이 수많은 실 중에 자네가 있네."


"엉키고 꼬여있지. 이것을 풀어내 자르는 것은, 내가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 부터 이어져 온 일."


"이 중에, 그대의 실은 바로 이것."


그녀가 보여주는 실은, 중간이 잘려있었지만 매듭이 다시 지어져 있었다.

그 실은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듯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자세히 보니 어딘가 빛바랜듯한 칙칙함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 죽는 것은 그대의 필연. 잘리는 순간,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는 시간. 하지만 조금 짖궂은 장난을 쳤네."


"그대는 앞으로의 여정에서 수없이 스러질테고, 그때마다 다시 몸을 일으킬걸세. 이것은 내가 그대를 주시하는 동안 이어져 올테지."


그렇게 말하며, 닉스는 그 실을 손으로 감아 실타래에서 뽑아냈다.

실타래에서 벗어난 실이 하늘거렸고, 그녀는 그 실을 자신의 머리에 감아, 한쪽 머리의 일부에 감아 묶었다.


"다만, 그럴때마다 대가가 있을걸세. 내가 어떤식으로 개입할때마다, 자네의 여정은 더욱 힘들어지겠지. 그러니, 모쪼록 주의하게."


대부분 이해할수 없는 말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지는 않았지만, 닉스가 일부러라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했다간, 내 정신에 무언가 문제가 생길테니까.

이미 충분히 형언할수 없는 괴현상들이 몇번이나 일어났기에, 이제는 어느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 적어도 내가 죽을 일은 없다는 건가?"


"엄연히 말하면, 죽은 자네를 내가 되살리는게지. 결과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하네."


"좋아, 받아주지. 어차피 멋대로 동료가 됬으니, 그 정도는 감사히 받겠어."


그녀는 내 '동료'라는 말에, 푸훗거리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동.료.로서 말할게 있어."


"아아, 말해보게. 동.료."


"그 말투 좀 고쳐. 짜증나니까."


항상 들으면서 은근히 거슬렸던 점을 내뱉어버렸다.

그녀의 정체를 생각하면 굉장히 오만하고 멍청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죽었던 몸인데, 죽는 것 밖에 더 하나 싶었다.


"말투가 어때서 그런가?"


"묘하게 짜증난다고, 목소리에 비해 내뱉는 그 늙은이 말투. 생긴대로 굴란말이야."


이제는 머리도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뱉는다.

은연중에 혹시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치솟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충격을 받은 듯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게, 빗소리만이 우리의 침묵을 가려주고 있던 끝에.


"좋네. 아니, 좋아. 그렇게 할게."


"한결 낫네."


그녀가 받아들여 줬다.

닉스가 날 되살려줬을 때보다 더욱 감사함을 느껴버리는 오묘함 속에서, 나는 다시 왕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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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 : 흥미->관심

얀붕을 먹었던 마수 : 기존 세계관의 마수가 아닌, 닉스가 얀붕한테 가면서 같이 넘어온 수많은 닉스의 시종들 중 하나.

결론 : 얀붕은 닉스한테 죽었던거임.


빌드업 과정 어렵다.

그와중에 플룻의 절반도 못썼다.

장편 연재는 하는게 아니다.

하루 쉬어서 미안하다.

졸려서 눈좀 감았더니 새벽이더라.

아무튼 댓남겨주신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