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아일초의 졸업식이 대충 끝난후, 졸업장을 손에 든채 가족끼리 사진을 찍은 다음, 면식이 있던 동급생들과 그들의 가족들과도 대충 인사를 끝마쳤다.
다른건 다 괜찮았는데, 교장 선생의 자칭 훈화 말씀이 어찌나 지긋지긋하던지 졸려 죽는 줄 알았다. 사람 사는데는 엇비슷한 점이 많다고,
이런거 까지 똑같나보다.

이제 다 같이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가려 했는데, 평소에 나름 친하게 지내던 키키모라 가족들이 자기네들이 잘 아는 맛집에서 

다 같이 먹지 않겠냐는 제안을 보내왔다. 참고로, 키키모라족은 대체 또 어떤 종족이느냐?


이 세계에는 많은 종족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만, 내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키키모라는 이 종족들중에서도
열손가락안에 드는 참으로 정신나간 종족인것같았다. 인간 남성에게 여러가지 봉사하는 대가로 정기 비스무리한걸 받는다는건
그렇다 치자, 단순한 기브 앤 테이크라 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녀들은 일생의 목표가 자신들이 마음으로 정한 무려 '주인님' 을 섬기는것이 평생의 목표이자 기쁨 그 자체라 한다.
가히 무언가의 종족적인 세뇌를 당했다 할 수 있다. 이 나라는 당연히 공식적인 노예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게 적발시 처벌받았다.
전생의 내 조국도 눈가리고 아웅이긴 했지만, 일단은 기본이 민주 공화국인 만큼 유명무실한 법적뿐이라도 노예제 같은건 철저히 부정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키키모라 특유의 보들보들한 새 깃털 감촉만큼은 정신나갈정도로 좋다. 농담아니라 진짜 극상의 감촉이다.
꼬리부터 해서 귀와 팔뚝까지,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대부분 덮은것도 플러스다. 겨울에도 난방이 따로 필요없을 거 같아 부럽기까지 하다.

하여간에 여러모로 정신나간 종족이다 이 말이다. 평생을 자유와 인권을 위해 피 땀을 흘린 위인들이 키키모라족을 보면 절로 피눈물이 흐르지 않을까?

어쨌거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그 키키모라 한 명 한테 록온당한 주인님으로서 코가 단단히 꿰였다는 사실이다.
바로당장 내 팔짱을 낀채 멍청한 표정으로 흥흥 웃으며 같이 길을 걷고 있는 이 쪼만한 꼬맹이 키키모라로부터.

"주공(主公), 또 왜 자꾸 똥 씹은 표정이야. 무슨 일 있어?"

"아니..."

"뭐가 아니야! 맞잖아! 좀 더 나한테 의지해도 된다구!"

"됐고, 볼 좀 그만 부풀려...풍선처럼 터지겠다. 야"

"내 손 잡고 따라오면 그만할게."


"야 나도 이제 중학생이야. 무슨 길잡이 하나 하는데 손잡고가 자꾸! 부끄럽게."

"암튼 잡고가! 빼애앵!!"

"알았어 알았서 잡고 가. 자 손."

"진작에 그랬어야지. 빨리 가자! 거기 진짜 괜찮은데라니까."

"누가 잡아먹냐...천천히 좀 가라...기운도 좋아 참."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어떻게든 이녀석을 내 곁에서 떼어 놓으려 했다.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주위를 나돌아다니는 몬무스의 대다수를 싫어하고
무슨 코로나 바이러스 보듯이 항상 특유의 찡그린 표정으로 바라 보는 누나에게까지 도움을 청했지만.

'키키모라는 괜찮겠지...' 


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 만 듣고,  결국 다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겨우 '주인' 대신에 '주공' 으로 부르는걸로 

타협을 봤다. 아무리 그래도 '주인' 은 좀 아니지 않는가? 내가 무슨 신안 염전주도 아니고. 차라리 고대 인류
역사로 부터 내려져오는 이 유구한 명칭이 훨 낫지. 심지어, 주공이란 말은 듣기도 훨씬 좋다.

존경하는 제갈량 승상님께 직접 주공이란 존칭을 들은 유비의 뿌듯한 마음이 이러했을까? 그렇다고 이 녀석이 절대로 

제갈량과 동급이란건 아니다. 그냥, 좀 만 더 크면 술을 밥먹듯이 먹을것 같은 기센 슬라브계 꼬맹이 키키모라지.

라미아족에서도 세세하게 여러갈래로 나뉘듯이, 라미아 만큼은 아니지만 키키모라도 어느정도 계통이 나뉜다. 같은 비교 선상에

두긴 좀 그렇지만 대충 일본계 한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런 느낌이랄까? 슬리브계는 보통 이 세계의 추운 북방 출신들을 통칭하는
단어로 보통 기름진 음식들을 가장 좋아하고, 술을 대접에 부어서 밥먹듯이 마시며, 화법이 대체로 키키모라 치고는 직설적이고 

저돌적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아니, 내 옆에서 딱 붙으며 걷고 있는 이 녀석을 보면 선입견이 확실히 맞는것 같다. 여튼간에 잡생각을 하면서 손 잡고 걷다보니 작은 레스토랑이 하나 

나왔다. 확실히 북적이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있어서 그런지 조금 외진데다 처음인 곳이다. 우리 가족과 키키모라 가족은 살포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하며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나며, 장신의 키키모라 웨이터가 미소지은채 맞이해주었다.

"어서오세요, 총 여섯분 이시군요 그럼, 저 쪽 자리로 안내해드릴게요."


"주문할 걸 다 정하셨으면 여기 작은 벨을 살짝 쳐 주세요~"

우리는 창가쪽에 있는 대형 식탁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문득 바깥을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작은 서리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풍경과 대비해서 가게 안은 따듯한 벽난로를 필두로 절로 마음이 안정되는 나무 인테리어들로 꾸며져 있었다.

'가게안은 내 취향인데 음식은 과연 어떨지.'

원래 오늘은 엄마와 누나에게 좀 떼를 쓰더라도 뭔가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로 호의호식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부터 많이 신세진 꼬맹이네 아줌마나 아저씨가 마 밥먹자 하는데
그까짓걸로 거절하기엔 좀 거시기 하지 않는가? 나는 아줌씨네 안목을 믿으며 메뉴 판을 대충 훑어봤다.

'음...쌀 부류는 오늘은 좀 뭔가 그래. 일단, 이 만드라고라풍 화이트 수프랑 촉촉한 파슬리를 뿌린 마늘 빵하고...
이둘로만은 뭔가 아쉬우니까, 달콤한 바비큐소스를 뿌렸다는 숯불 도마뱀 구이 小 짜리도 시키자...또...음...'

내가 고심하면서 고르느라 장르가 고독한 미식가로 바뀌려는걸 키키모라 꼬맹이가 눈치챈건지, 빠르게 주문을 물어왔다.

"다 골랐어? 주공은 뭐 스프밥 같은거에다 도마뱀 구이 같은거 겠지."

"어허, 스프밥 같은거라니! 얼마나 극상의 조합인데!"

"그런 이상한거 먹지 말고 내가 시킨거나 같이 나눠 먹어!"

"이상한거라니, 선넘네...그리고 이번엔 밥 아니라 빵에 찍먹할라고 빵 시켰거든?? 그리 눈치가 없어가지고
어디가서 키키모라 노릇이나 하겠어??"


"뭐야! 말 다했어!!" 


갑자기 팟! 하고 일어서더니 특유의 강아지귀? 를 위아래로 붕붕 흔들면서 삿대질을 해왔다. 저 행동은 감정이 격해졌다는 확실한 증거.
이녀석은 다른건 몰라도 키키모라스러움 같은거에 많이 예민하다. 이렇게 살살 언급해서 자극해주면 바로 반응해서 귀를 붕붕 흔들어대는게 솔직히 귀엽다. 


뭔가 불판이 지필거라 보였는지 엄마가 세로동공을 부릅뜨며 중간에 난입했다. 싸우는게 아니라 매일매일의 단순한 일상일뿐인데 너무 호들갑이라니깐.

"네~네~ 둘 다 알았어요~ 빵이든 밥이든 다 같이 먹으면 되잖아? 어쩜 너희 둘은 하루도 질리지 않고 

사소한걸로 다투니?"

'스프 밥은 사소한게 아니라 중대문제인데...'

그와중, 키키모라 어머님과 아버님도 옆에서 한 손 거들었다.

"후후...애들은 저러면서 크는거죠...남편이랑 저도 어렸을 때 저리 티격태격 하고...참 좋았는데..후후..."

"여보, 우린 솔직히 저정도까진 아니였어. 하하!! 얘들아 우리 땐 어땠냐면..."

어쩌구저쩌구


대충 이런식으로 별거없이 왁자지껄 떠드는 사이에, 주문했던 음식들이 속속히 찾아오고 있었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대로 이 음식점은 '당첨' 인것 뿐만 아니라 '극호' 인거 같다.

'만드라고라풍의 잡내와 쓴 맛을 이렇게 잡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빵도 적당한 마늘향에 달짝지근한게
이 쌉사름한 스프와 아주 잘 어울려. 도마뱀 구이의 바삭하면서도 질근 씹히는 맛은 말할것도 없고.'

아, 진심으로 시원한 맥주 한 잔만 더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엄마를 비롯해 어른들이 벌컥벌컥 마셔대는걸 보고 그런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
참고로, 이 세계의 음주 연령은 만 16세부터 풀린다. 솔직히 마시는거 자체는 나는 지금 당장 마셔도 상관없지만 지구에서의 기억 때문인가.
내가 처음 술을 접한게 중3 때 부터여서, 그 때 까지는 아득바득 참기로 결심했다.


'저 녀석 또 꼴에 슬리브계 키키모라라고 무알콜 맥주 마시네.'

옆에서 맥주를 들이부어 마시는 자기 엄마나 아빠를 부럽다는듯이 힐끔힐끔 곁눈질 하면서, '무알콜' 맥주를 홀짝홀짝 해대는데 

저런것만 보면 나랑 별로 다를 바 없다 싶었다. 저렇게 쥐죽은듯이만 있으면 마냥 천사같은데 참.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자마자

갑자기 '흥! 키키모라 삐졌어!' 를 대놓고 어필하듯이 고개를 옆으로 훽 돌렸다. 


"야 또 삐졌냐. 자 이거 도마뱀 구이 줄테니까 화 풀어."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이녀석이 잠깐 힐끔 보더니 내 도마뱀 구이들을 휙휙 자기 접시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주공이니까 봐주는거야.."


그러면서 입을 우물우물 대며 내 구이를 씹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먹고싶었으면 말 좀 하지...' 


턱 밑 까지 그 소리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어느덧 점심은 완전히 끝나갔고, 우리들은 가게 바깥으로 나와서 또 다음을 기약하기로 약속했다.

"아주머님, 아주버님 안녕히 계세요.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그래, 그래 자주 놀러오고 우리 집 꼬맹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애가...겉으론 저래도 속은 다 널 좋아해서 그런거니까...이해해주렴..." 


"예, 아무렴요. 금방 다시 뵈러갈태니까. 가는 길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다들 대충 작별인사를 마치고, 나는 엄마와 누나에게 언질을 주고, 역 근처 마트에 잠깐 들린다음 따로 집으로 

들어가겠다 했는데, 키키모라 꼬맹이가 뾰투룽한 얼굴로 안간채 내 옆을 버젓이 지키고있었다.


"너 안가냐 근데?"

"..그 때 내기 했던거 오늘 받을래!"

"내기..? 아!"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런것도 있었지 참.' 


격투 게임을 하면서 내가 평소에 이녀석을 너무 이겨대서 그런가, 방심한채로 

너무 설렁설렁하느라 한 판 진적이 있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이 녀석과의
내기가 걸렸던 판이었다.

참고로, 이 세계는 지구의 현대문명과 엇비슷해보여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대충 설명하자면 

20세기 말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을 마치 박물관이 살아있다 처럼 재현한거 같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많이 놀랐다. 당연히 스마트폰 같은것도 없고, 피쳐폰 비스무리한걸 쓰며
지구에선 완전히 사장된 오락실 문화도 꽤 활발하고, 지구 였다면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콘솔 게임기도 현역으로 쓴다.

물론 지구보다 더 우월한 점도 있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자연에 무해하고 인체에 무해한 원자력 에너지라던가.

솔직히 그거 하나만 해도 웬만한거 다 압살하는거 같다. 몬무스 월드 무셔.


'뭐, 뭐든 장단점이 있다는 교훈이지.'

어쨌거나 내기로 걸었던건 대충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이 원하는 거 하나 

사주기 였다. 


"미리, 말해두는데 너무 비싼건 안된다?"


"정말...주공은 나를 뭘로 보는거야...역 앞에 거기가자 거기! 백화점 안에 쁘띠 악세서리 샵!"


"하아암~  빨리 가자 춥다. 피곤하다."


"흥, 오늘은. 언니한테도 허락 받았으니까 왕창 돌아다닐 각오하라고?" 


"허락...? 암튼 빨리 가자고. 바로 앞이 잖어."


'아니, 울 누나 한테 허락 맡을게 뭐가 있다고 자꾸 무슨 허락을 맡았다는거야 근데?'

생각해보면, 울 누나는 과보호라고 할까 자꾸 일거수일투족을 취조하기까지 하니, 날 걱정하는게 극심하긴하다.
나도 이제 애도 아니고 애초에 누나랑 얼마 차이도 안나는데 그만해줬으면 좋겠지만. 그걸 또 뭐라하기도 그렇다. 

이번에도 그런 부류일거라 생각을 마치면서.

나와 키키모라는 역 앞 백화점에서 한창 잘 나가는 

악세서리 샵에 들어갔다.

녀석이 신이난게 두 눈에 딱 보여서 보는 내가 다 흐뭇했다.

우리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인형뽑기도 

하고. 악세서리 샵에 와서는 참으로 오랫동안 구경했다.

녀석은 나뭇잎 문양이 들어가있는 초승달 모양의 귀걸이를 골랐는데. 진짜 잘 어울린다 해주니까 좋아 죽더라 아주.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저녁이 다 되고, 백화점내 푸드코너에서 대충 밥도 먹고, 우리는 어느센가 몬아일 백화점 최상층에 

있는 옥상 공원에서 반짝이는 시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방금 자판기에서 뽑은 따끈따끈한 캔커피를 녀석에게 던졌다. 얼마안가 서로 캔커피 뚜껑을 깐 채 한동한 말이 없었는데, 

녀석이 먼저 운을 띄웠다.

"주공...오늘 정말 즐거웠어...헤헤..."

녀석은 그리 말하며 귀를 살짝살짝 90도 각도로 뒤흔들었다. 저건 확실히 기쁘다는 표시다.

"잘 됐네...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볼까? 너희 어머님도 걱정하시겠고 우리 누나도

걱정하겠고..." 


"으응...그래야겠지..슬슬 가봐야겠지...그럼..."

"아, 맞다 잠깐만."


이놈의 전생에서부터의 유구한 건망증. 자꾸 할일을 까먹는다.

"자, 이거" 


"이건...?" 


나는 내가 고심하고 또 고심하고 고른 목도리를 녀석의 목에 찬찬히 둘러주었다.

"원래 나중에 주기로 했었는데...아무리 너가 키키모라 라지만 내가 볼 때마다 

얼마나 식겁하는지 아냐? 이거라도 목에 좀 두르고 다녀라."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주는거니까 그렇게 알고있으라고."


녀석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듯이 잠깐동안 눈 만 

멍하게 껌뻑이다. 정신이 확들었는지 곧장 말하기 시작했다. 


"주공...너어어는 정말..."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인채 손발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리 말했다. 


'뭐야, 또 왜 뭐 잘못했나 내가? 키키모라족에 대한 무슨 금기라도 알게모르게
건들었나? 몬데 또' 


쪽ㅡ 


녀석은 얼굴을 한 껏 붉힌채, 내 오른쪽 볼에 진한 키스마크를 남기고 난다음 고개를 

훽 돌리고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저 멍하니, 볼에 진하게 남은 녀석의 온기를 만지작 거리며

하늘로부터 한창 내려오는 서리눈을 뒤로하며 서있을 따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