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https://arca.live/b/yandere/9846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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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재밌었어."


내 말을 전부 들은 닉스의 평은 간단했다.

재밌었다.

딱히 그녀에게 감동서린 감탄을 기대한것은 아니었다.

지루한 얘기일테지.

평범한 기사의 시시콜콜한 넋두리에 감동을 먹을만큼 그녀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으니.

당연히 납득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천천히 꺼져가는 의식을 느끼며, 수마에 몸을 맡겼다.

닉스는 잠을 잘까?

어렴풋한 생각이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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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하얀 고목에서 벗어난지 만 하루가 지났다.

이제 왕국까지의 거리도 단 하루정도.

바삐 걸으면 오늘까지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다만.


[!!!!!!!!!!!!!!!!!!!]


뒤에서 들리는 흉악한 포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대며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일으키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리며, 이리저리 나무에 쓸려, 얼굴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구토감이 밀려온다.

아침에 먹은 것을 게워내면서도 멈출수 없었다.

이미 신체는 한계에 달한듯 삐걱인다.

하지만 다리를 멈출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멈추었다간 곧장 죽는다.

흘깃거리며 뒤를 보니, 괴기하게 생긴 생명체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헉...허억...닉스으으...!"


닉스.

그녀 때문이었다.

하얀 고목을 벗어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지금 달려오고 있는 이 마수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

마치 어떤 마법이라도 부린것마냥, 마수들은 쉴틈도 없이 내게 추악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흐억?!"


발에 무언가 채이는 느낌과 함께 몸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땅이 가까워져가고, 이미 중심을 잃은 몸은 그대로 곤두박질 친다.

넘어진다!

그 순간에도, 불길한 직감이 들어 머리를 최대한 앞으로 숙였다.


콰직!


넘어지면서 뒷통수를 훑고지나가는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달리는 속도 탓에 땅에 이리저리 구르면서도, 마수를 바라보니, 내가 넘어진 자리 바로 옆에있던 고목에 마수의 흉물스런 발톱이 박혀있었다.

위험했다.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뜯겨나갔으리라.

황급히 몸을 일으키는 사이 마수는, 빗나간 발톱을 뽑아내며, 촉수처럼 구불거리는 눈과 입을 괴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악하고, 징그럽다.

평범한 마수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마수를 벌써 다섯번이나 보고 있다.


"후욱..후욱..."


거친 숨을 억지로 다스리며, 겨우 검을 뽑았다.

다시 뛰기에는 몸이 너무 한계였다.

팔은 이미 부러졌는지, 움직일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이어졌다.

또 죽는다.

사실 승산은 없었다.

이미 다른 마수들에게 도망치면서 내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게 마지막이겠지.

어느새 사라진 닉스를 원망하며, 나는 검을 겨우 들고만 있었다.


[...!!]


마수가 기이한 음성을 내뱉으며, 으르렁 거렸다.

땀이 분수처럼 쏟아지고, 눈물이 절로 나왔다.

죽기 싫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딱히 내가 살아날 방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속으로 뇌까리면서 마수가 천천히 다가오는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으아아아아아!!!!!!!!!!!!!!!!!!!!!"


발악에 가까운 울부짖음과 동시에, 마수의 몸이 튀어올랐다.

날카로운 발톱이 쇄도한다.

...끝났다.



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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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좀 들어?"


의식이 돌아오자, 닉스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집어치워."


타악!


"읏!"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손을 쳐내고는, 고통스러운 육신을 일으켰다.

역겹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일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역시 이 녀석은 괴물.

상대의 고통을 그저 방관하면서 즐기는 미친 신에 불과했다.

이번이 세번쨰.

벌써 세번째 죽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죽었던 장소를 둘러보았다.

마수는 죽은 나를 게걸스럽게도 먹어치웠는지, 온 사방이 내가 흩뿌렸을 피로 가득했다.

토악질이 나온다.

점차 피폐해지는 정신을 겨우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 왔다.

곧 왕국 국경지다.

마수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을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왕국쪽으로만 내달렸다.

그 덕분에, 정말로 죽었지만 닉스가 되살려준다고 약속하였으니 어느정도 각오한 바였다.

닉스는 내 거친 행동에 짐짓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화가나서, 날 더이상 그만 되살려냈으면 좋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너무나도 힘들었다.

전부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던 적만 수십 번이었다.

다만 그것도 곧 끝이다.

죽는순간 느껴지는 기이하고 불쾌한 감각과, 되살려질때마다 느껴지는 습하고 어두운 수면에 부유하는 것도 끝이다.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점차 숲이 끝나간다.

푸른 초원이 가까워지고, 저 멀리서 어렴풋이 굳건히 지은 벽이 보인다.

이제 곧.


이 여정을


끝낼 때가.

...

.

.

.

.

.


"........................................"


"흐응~ 왜 그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닉스가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이...


"네가 그토록 바라던 풍경 아니야?"


기사들이 원정을 떠날때마다 항상 바라보던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성벽이.

언제나 위풍당당히 휘날리던 데우스 왕국의 국기가.

무사귀환을 기다리며, 손수건을 흔들던 백성들이.






없었다.





폐허.

몰락.

붕괴.

무언가의 거센 공격을 받은듯이 성문은 우그러진채 휑하니 뚫려있었다.

국기는, 데우스 왕국의 국기가 아니었다.

제국...

제국의 국기가 꺾인채 진창에 뒤덮혀 썩어가고 있었다.

난....이런 걸 보려고 온게 아니야.

힘이 빠진듯 몸이 무너져내린다.

마치, 저 성처럼.

몸에 힘이 나지 않았다.

이성이 떠나간다.


"크흐흑...큭..큭 카하학....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이유도 모를 웃음이 터져나왔다.

허무했다.

자그마한 희망이 빠져나가며, 이성의 가느다란 한 줄기가 끊어진다.

실성한 것처럼 한참을 웃었다.

목이 쉬어, 기침을 토해내면서도 그리 웃었다.

꿈일거야.

아무렴 꿈이겠지.

지독한 현실을 부정한다.

아니 현실이 아니다.

이런 게 현실일리가 없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성으로 들어갔다.

분명 그대로 일 것이다.

기사단도.

왕성도.

다 그대로일 것이다.

시야가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척거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도 그냥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중요한게 아니었다.

왕께 가자.

아직 계실거야.

아무렴.

분명 어딘가에서, 위태롭게 기다리고 계시겠지.

얼른 돌아가야 돼.

그렇게, 현실인지도 꿈인지도 모르면서, 알현실로 향했다.

예도에 따라 무릎을 꿇은채, 왕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늦으시는구나.

꽤나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왕께서는 아직 오지 않으셨다.


"이제 그만하지 그래?"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방해하지 마.

황실 기사단은 뭘 하는거야?


"이봐."


짜증나네.

이렇게 예의도 없는 놈을 누가 왕실에 들인거지?


"야."


갑자기 볼에 뭔가가 느껴진다.

흰 손이다.

두 손이 내 얼굴을 그러쥐고, 억지로 들어올렸다.

닉스?

난 이 여자를 알고 있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내뱉는다.

꿈이...아니다.

닉스는, 가열차면서도 비릿한 미소를 띠며 날 보고 있었다.

아, 빌어먹을 현실이구나.

그녀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깨닫는다.


"느낌이 어때? 멸망한 왕국의 마지막 사람이 된 기분은?"


"넌, 다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

이미 봤음에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거야.


"음, 맞아. 알고 있었지."


"왜..."


"왜 말하지 않았냐고? 내가 거기서 이 사실을 말한다고 넌 믿었을까?"


잔인한 미소를 띠면서도 비수를 찌르는 듯하다.

믿었을까?

아니, 믿지 않는다.

지금도 믿을 수 없다.


"그래도, 좋은 구경이었어. 모든 희망이 산산히 부서진 사람을 보는 것은, 꽤나..."


닉스의 손이 쓸어내리듯 턱을 잡았다.

그 감은 눈이.

추악하게 떠지며, 무저갱을 쏟아낸다.


"내 취향이야."


".........이제 말해줘."


"으흠? 어디까지?"


"...네가 '본 것' 전부."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우스 왕국이 멸망한 때는 네가 심연에 떨어진 후 정확히 두 달뒤. 칼카라스 평원의 대전투에서 크게 패전한 왕국군은 빠르게 무너졌어."


"결국 왕성까지 함락당한 데우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은 그대로 참수. 데우스 왕국은 마나바 제국이 점령했지."


"하지만, 머지않아 원인모를 마수들의 대침공으로, 이렇다 할 이점이 없던 왕국은 그대로 버려졌어."


"군사가 없는 성이 마수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수 있었겠어? 곧장 마수들로 인해,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그대로 뱃속에 꿀꺽."


"그리고 정확히 백년 정도가 지나서, 네가 다시 칼카라스 평원에 돌아온 것이 마지막이야. 이제 됬을까?"


참으로 비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심연속에서의 시간이 백년이었다고?

믿기 힘들었다.

아니 믿을수가 없었다.

다시 고개가 떨어졌지만, 애써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알현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알현실은 이미 백골이 되어있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마치 어떤 것으로부터 싸우기라도 한것처럼 저마다 무언가를 굳게 꼬나쥐고 있었다.

그들이 쥔.

그 세월에 녹이 잔뜩 슬어있는 것들은, 검이 아니었다.

낫, 괭이같은...그것들은 농기구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기사들이 아니었다.

아아...

이들은 마지막까지 싸웠구나.

데우스 왕국의 국민들은 이곳까지 몰려서라도 물러서지 않았구나.

문을 부술듯이 두드리는 그 공포속에서도, 끝까지 맞섰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서야,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너져서는 안된다.

이들도 분명 나처럼 절망했을 것이다.

아니, 더했을 것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그들은 더러운 제국에 왕국을 찬탈당했다.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제국의 손에 왕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울부짖으며 쳐다봤다.

포악한 마수들의 침공에 모든것을 뺏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후의 최후까지 무기를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난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걸음을 옮겨 한 분 한 분께 내가 보일수있는 최대의 경의를 담아 추도했다.

감사합니다.

왕국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담아낸다.


"이 알현실은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 그 안에는 백성들과 함께 싸운 마지막 왕족도 있었어."


추도하고 있던 내게 닉스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데우스 왕국을 상징하는 작은 반지였다.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들며, 품에 안았다.


"그는, 알현실의 문이 부서지자 가장 먼저 검을 빼든 남자였어.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먹혀버렸지만."


의연하게 맞서싸운 자의 것이었다.

그도,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검을 빼들었다.

이것은 소중하다.

묵묵히, 반지를 보고 있는 나에게 닉스가 말했다.


"끼는게 어때? 마지막 데우스 왕국의 생존자로서."


왕족에게만 허락되는 반지를 내가 끼울수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허락한다면...

왕을 지킬 의무를 저버린 더러운 나라도, 용서해줄 수 있다면.

보이지 않을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지는 착각이 일었다.

그들은, 희미하지만 웃고있었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

나는 천천히 반지를 끼웠다.


"후후, 좋아. 이제 '자격'이 생겼네."


킥킥대며 알 수 없는 닉스의 말을 뒤로한채 난 알현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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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 : 관심->애정

마수 대침공 :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얀붕이 사라지고 나서 오년 뒤에 발생했다. 마수사냥꾼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마수들의 등장과 침공에, 변방의 소국가들은 형체도 남기지 않고 멸망. 이로 인해, 인간들의 행동 반경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연참은 힘들다.

쪼그리고 앉아서 글 쓰는것도 쉬운게 아니네.

아무튼 그 마수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다 알거라고 생각함.

애초에 유추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만큼 필력이 좋은것도 아니고.

여하튼 댓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