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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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시 바삐 왕국에 돌아간다는 내 계획은 조금 틀어졌다.

전과 같은 마수의 기습을 들먹이며, 재차 휴식을 조언하는 닉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수와 싸우면서 또 한번 죽는다고 하여도, 닉스가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곱게 죽는것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일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고목 아래에 기대 차분히 숨을 골랐다.

약 이틀.

이틀 뒤면 왕국에 돌아갈 수 있다.

지금 있는 그로스 대삼림을 지나면, 곧장 왕국의 국경지가 보일 것이다.

다행히 길은 잃지 않았다.

대삼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숲은 정말 끝도 없이 울창했지만, 지금 기대 쉬는 이 하얀 고목이,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왔음을 알고있다.


"제법 이곳 지리를 잘 아는것 같네?"


"...하급 시절 부터 이곳에서 칼밥 먹고 살았으니까."


닉스의 물음에 답했다.

그로스 대삼림.

왕국의 백성들을 먹여살린 어머니의 젖이자, 꿀.

거대한 숲에 걸맞게 삼림의 안에는 수많은 생명이 자리했다.

그것은, 시기만 되면 한 바구니 가득 담기는 열매가 될 수 도 있고, 번식기가 다가와 몇걸음만 걸어도 튀어나오는 산짐승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수 때문에."


대삼림에는 마수도 산다.

연마다 마수에 의해 죽은 백성들도 적지만은 않았다.

누군가는 사냥하러 갔다가.

누군가는 열매를 따러 갔다가.

또 누군가는 어린 호기심에.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왕국은 하급 기사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대삼림의 마수퇴치를 시행한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는 겸.

하급 기사들의 경험을 쌓는 겸.

그렇게, 오 년 정도를 대삼림에서 살았다.


"흠, 뭐야? 꽤나 경험자임에도 그렇게 죽어버린거야?"


"이봐, 그 마수는 예외라고, 그리고 마수는 애초에 절대 '혼자서' 잡지 않아."


닉스의 짖궂은 말에 저도 모르게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고약한 놈.

굳이 내 첫번째 죽음을 상기시켜주는 그녀에게 아주 고맙다는듯이 쏘아보았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히지만.


"그러고보니, 식사는 안해? 여태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먹을게 있어야 먹지."


퉁명스럽게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까보다는 제법 줄어들었긴 하지만,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짐승들도 제 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다 할 도구도 없고.

굳이 사람만 되살릴수 있는 것은 아닌지, 마수와 같이 먹혔던 검은, 멀쩡히 허리춤에 달려있었지만, 날랜 동물들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젠장, 제럴드한테 활 쏘는 법이라도 배워놓을 걸 그랬나.

문득, 사냥꾼 출신이었던 중급 기사 제럴드가 생각났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음에도, 과녁에 정확히 맞추고는 돈을 쓸어담던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머리에 감도는 것 같아, 설핏 미소가 나왔다.

그 때가 좋았는데...


"정, 뭣하면 내가 잡아줄까?"


그녀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왜?"


"그놈의 '대가'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부탁했겠지."


그녀의 검은 속내를 들추어낸다.

내 말을 듣자, 닉스는 칫 하며 혀를 차고는 내 옆에 앉아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녀석.

닉스는 자신의 힘을 사용할때마다, 어떠한 형태로든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

그 대가는, 나한테서 일어날수도 있지만, 어쩌면 왕국이 될수도, 혹은 세계가 짊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하다.

그 예로, 나는 이미 닉스가 왕국을 '본' 행위에 의해 갑작스럽게 마수를 만나지 않았는가.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애시당초 아무리 그로스 대삼림이라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강한 마수는 일평생 듣도보도 못했다.

만약 그것이, 그 대가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닉스같은 거대한 존재에 대한 등장탓에 이 세계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추측이 들었다.


"후우."


그렇기에, 나는 닉스에게 함부로 어떤걸 바랄 수 없는 입장이다.

어떤 형태의 힘을 사용하든, 절대로 좋은 결과가 남지 않을 테니까.


꼬르륵.


다만 배가 고픈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칼카라스 평원에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걷기만 했다.

게다가, 마수와 전투까지 벌였으니, 속은 비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품을 뒤져보았지만 질척거리는 진흙만이 떨어질 뿐, 그 흔한 빵 한 조각도 나오지 않았다.

젠장.

주린 배를 애써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녹음이 우거진 숲에는 굳이 짐승들만이 아니더라도 먹을 만한 것들이 많다.

열매라도 찾으면 다행일텐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닉스가 곧장 뒤에 따라붙었다.

아직은 여름이지만, 해가 지고 있는지 제법 한기가 느껴잔다.

이미 비때문에 잔뜩 젖은 옷은 차츰 열을 빼앗아가고 있다.

바삐 먹을 것을 구하고, 조금이라도 온기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찾았다.

왕국의 백성들이 주로 먹는 식료원이면서도, 시큼 달달한 것이 꽤나 먹을만한 것이었다.


"호오, 이런걸 먹어?"


손에 잡히는대로 열매를 따던 사이에 닉스가 열매 하나를 집으며 물었다.


"꽤 먹을만 해, 잘 말려놓으면 겨울에도 걱정 없지."


닉스는 내 말에, 열매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는, 머지않아 주머니에 열매를 몇 줌 쑤셔넣었다.

먹을수...있나?

그녀의 존재를 알기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먹을 줄도 알아?"


"필요하지는 않지만 맛은 느끼니까. 제법 산뜻하네."


담담히 평가하면서도, 닉스의 입은 쉴새없이 오물거렸다.

그다지 식사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닉스가 먹는 것을 보자니 괜히 식욕이 올라, 나도 열매를 한 줌 입에 털어넣었다.

한껏 머금은 열매들을 이로 깨물자마자, 달큰하면서도 시큼한 과즙과 육질이 느껴진다.

원래 이런 맛이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것이 공복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닉스와 나는 한참을 정신없이 먹고나서야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얼마나 먹었을까.

한층 더 숲이 어두워지자, 쌀쌀하던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비는 이제 거의 그쳤지만, 그만큼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제는 추위가 문제다.

닉스와 나는, 하얀 고목을 기준으로 은신처로 쓸수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비나 바람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마수나 짐승의 야습에 대한 어느정도 방비를 할 수 있을 만한 곳.

깨나 빡빡한 기준이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 요소였다.


"이곳은 어때?"


한참을 둘러보던 내게 닉스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방향에 따라 시선을 옮기니, 쓰러져있는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다.

입구가 하나밖에 없기에, 경계하기에도 편하고, 비와 추위로부터 어느정도 몸을 지킬 수 있다.

천천히 다가가자 나무의 속은 이미 거처로 사용한 흔적처럼 어느정도 속이 파내져 있었다.

마수인가.

아니면 산적들의 은거지일수도 있지.

깊어지는 상념을 애써 지운다.

검을 빼들고 천천히 내부를 살폈다.

다만, 다행히도 마수나 도적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 천천히 자리에 주저 앉았다.

너무도 긴 하루였다.

배를 채운것과 과한 긴장의 반동으로 시체처럼 늘어져있는 내게, 닉스가 주머니에 넣어둔 열매를 먹으며 다가왔다.


"그런데, 왕국에 돌아가서 어떡할거야?"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았어. 지금 중요한건 왕국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가 중요하니까."


그녀의 말에 답했다.

칼카라스 평원의 이변.

분명 전장이었던 그 평원이 멀쩡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불안했다.

심연에서 돌아오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아니면, 비슷하기만 할 뿐 이 세계가 정말 내가 살던 그 곳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대삼림을 지나면서도, 사람 한명 마주하지 못한 것도 그런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설마, 제국에 패배한 건가. 하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털어낸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가지 말라고 했어."


"이미 봤으면, 그냥 얘기해주지 그래. 도대체 왕국이 어떻게 된거야?"


닉스의 말에,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혔다.

그녀는 이미 왕국이 어떻게 됬는지 알고 있었다.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이니 안될것도 없겠지.

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닉스는 그 점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했다.

그저 지금처럼.


"그때 내가 '본'것 때문에 이미 대가를 치르지 않았어? 그럼 한번 더 '보기'를 바라는 걸까?"


"젠장, 미치겠군."


아파오는 골을 부여잡고는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간섭.

그 간섭 때문에 찾아오게 되는 불행한 대가로, 나는 이미 한번 죽었었다.

물론 그녀가 날 되살리기는 했지만, 그 또한 대가로서 찾아올것이 분명했다.

죽음에서 부활하지만, 그만큼 더욱 힘들어질 여정.

한번 죽은 이상, 앞으로도 죽을 것이고 죽을때마다 더욱 더 죽을것이 분명했다.

정말 완벽한 외통수다.

문득, 그녀의 뒤에 거미줄이 환각처럼 보였다.

살기위해 발악하면 발악할수록 더욱 옭매듯이.

거미줄이 달라붙는다.

힘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먹잇감을 느끼고, 그것이 날카로운 독니를 박아넣어, 천천히 숨을 끊는다.

먹잇감은 점차 독이 몸에 퍼져, 움직이지 못하고 축 늘어지고, 그것은 그 유열을 느끼며 먹잇감을 천천히 녹여먹는다.

거미.

그녀는 거미같았다.

난 그 거미줄에 붙잡힌 먹잇감이고.


"후우."


짧게 한숨쉬며, 천천히 옷을 벗었다.

어차피 이틀 뒤면 알 수 있다.

미련하게 달라붙을 바에, 이 젖은 옷부터 해결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었다.


"호오...?"


뭐랄까, 옷을 벗고 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속옷만 남기고, 전부 벗은 내가 옷을 늘어놓고 다시 눈을 감았던 즈음이었다.


"읏?!"


순간 가슴에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눈을 홉뜨자, 오른쪽 가슴의 흉터를 작은 손으로 만지고 있는 닉스가 보였다.


"뭐하는 거야?"


"네 몸에 흥미가 있어서."


조금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정말 흥미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적 호기심.

색욕.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 안심이 되었다.


"이 흉터는 어쩌다 생긴 거지?"


닉스가 아까까지 만지고 있던 흉터에 대해 물었다.


"도적을 토벌하던 중에 베인 상처다."


"이 할퀸듯한 흉터는?"


"마수 '나가'의 발톱이지. 독을 가지고 있던 마수라 고생 좀 했다."


닉스가 내 몸의 흉터들을 만지면서, 하나하나 물어보고 이에 답했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제법 얘기가 길어지자 동시에, 신경쓰지도 않았던 무언가를 깨달았다.

내 몸은 이렇게나 흉터가 많았구나.

이렇게나 싸워왔구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느덧, 하나만 남았네, 이 이마의 흉터는 어쩌다 생긴거야?"


그 말에, 이마를 훑었다.

이 흉터.

이것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그로스 대삼림에서 있었던 일이야."


"우리는, 그로스 대산림에 주둔한 붉은 두건 도적단을 추격하고 있었지."


"그렇게 한참을, 찾아낸 끝에 우리는 도적단의 본거지를 찾아 낼 수 있었어."


"다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것이 있었지. 도적단의 수가 예상보다 너무 많았던 거야."


"수없이 많은 화살이 빗발치고, 우리는 와해되어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어."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고, 그런 내 곁에는 단장님이 있었지."


단장님.

그로스 산림에 갓 배치된 신입기사들의 단장을 맡으면서도 싫은 내색 않던 단장이었다.


"단장님의 옆에서 난, 부끄럽게도 떨고만 있었다."


"그래도 또래 중에서는 제법 검을 잘 다룬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에 들어서 죽음을 목전에 두면, 으레 다들 겁을 먹지.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를 어떻게든 이끌어가면서 단장님은, 흩어진 기사단을 다시 뭉치고자 했다."


단장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흩어진 기사단을 찾기 위해, 떨고있던 내 뺨을 세차게 치며, 정신차리라며 일갈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겼다. 단장의 노력과 적절한 증원 덕분이었지. 도적단은 전부 죽었고, 기사단도 전부는 아니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만, 단장은 살지 못했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단장은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슴에 수없이 많은 화살이 꽂혀가면서도, 눈을 베여도, 허벅지에 창이 꽂혀가면서도 끝까지 앞으로 향했다.

그런 그가, 단 한번 뒤를 돌았다.

수없이 짓쳐드는 검에게서 지키기 위해.

사실 전부는 막을수 없어서 어깨를 빗낀 검이 이마에 스쳐 긴 혈선을 자아냈다.

시야가 붉어지고,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것을 쏟아내며, 내 앞에 스러져가는 단장을 부르짖었다.


"이것은, 그 단장이 날 지키면서 생긴 흉터."


"그 날 이후로, 난 평생을 데우스 왕국의 검으로서 싸워오기로 맹세했다."


단장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단장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끌어주며, 이정표가 되는 사람.

그것이 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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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써왔다.

그리고, 아직 한참 남았다.

다음 편은, 왕국에 도착한 편임

얀붕이 심연에서 돌아온 때까지 분명 시간이 지나긴 했는데, 과연 '얼마나' 지났을지 유추해보는 것도 좋을 듯

좌절하는 얀붕을 기다려주셈

댓 남겨주신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