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ttps://arca.live/b/yandere/9775922



모바일에 최적화된 글이야.

그리고 지난번에 필력 칭찬해주길래 기분좋았음 ㅎ

혹여나 오탈자가 있으면 지적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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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 너머,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부드러운 미소가 잘 어울리고, 호수처럼 하늘을 담고 있는 듯 맑고 큰 눈동자가 예쁜 저의 선배입니다.



선배는 동아리 시간에 저를 잘 챙겨줍니다. 다른 학생, 다른 '여자'에게는 말도 잘 섞지 않으면서 유독 저와는 곧잘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선배에게 그 이유를 묻자 선배는 웃으며 '너가 다른 애들보다 말이 잘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너가 제일 귀여우니까.' 라고 답해 어쩔 줄 몰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에게 고백했습니다. 선배도 저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으니 받아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혹여나 선배가 저의 고백을 받지 않을까 무서웠습니다. 결국 불안한 마음은 '선배가 고백을 받지 않았을 때 해야할 행동'을 찾고 있었습니다.



-똑똑.



"선배, 들어갈게요."



하루동안 의자에 결박시킨 채로 방치했던 선배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쥐죽은 듯 조용히 앉아있었습니다.



스읍, 하아. 선배를 마주보며 허벅지 위에 앉아 가슴팍에 코를 묻고 선배의 체취를 저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루동안 잘 생각해보셨나요?"



선배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눈을 꿈뻑였습니다.



"미안한데 물좀 줄래?"



선배의 눈동자에는 증오도, 원망도 담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화장실도 못 가실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선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매번 저에게 귀엽다, 귀엽다, 귀엽다는 말을 아끼지 않던 선배는 저보다 훨씬 귀여웠습니다.



그런 귀여운 선배에게, 장난이 치고 싶었습니다.



"자, 잠깐."



물을 머금고 선배와 입을 맞췄습니다. 물을 전달해주려는 목적은 거의 대부분 상실한 채로, 난폭하게 선배의 입을 탐했습니다.



"푸하..."



입을 떼자 선배는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미처 선배에게 다 건네주지 못해 바닥에 흘린 물을 쳐다봤습니다.



"...고마워."



"네, 선배."



다시 한 번 꼬옥 껴안은 채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



선배가 묻자, 저는 고개만 들어올려 선배를 바라봤습니다.



"엄청 사랑해요."




"왜?"



"관심사가 같아서 좋아해요."



"그것 뿐?"



선배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건 저를 도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줘서 좋아요. 저보다 키가 커서 좋아요. 무언가에 몰두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멋있어요. 책을 빌려주고, 빌려가서 좋아요. 의외로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귀여워요. 저보고 예쁘다고 말할때는 날아갈 것만 같아요. 낮은 목소리는 귀가 녹을 것 같아요. 납치해도 화내지 않아서 좋아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는 것도 멋져요.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화를 내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과하지 않는 태도도 반할 것 같아요. 그리고...눈이 예뻐서 좋아요."



저는 '이제 됐나요?' 라는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봤습니다.



"고마워."



선배는 또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사랑하니까 무엇이든 한다. 멋지다고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법은 가볍게 무시하고 납치. 정말 멋져."



선배는 크게 심호흡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아야 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게 아니라, 상대에게서도 받아야만 성립하는 거야."



이번에는 선배가 '이제 알겠니?' 라는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그게 아니에요, 선배. 상대가 저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면, 주도록 만들면 돼요. 제가 없으면 죽을만큼 힘들게 해서 저를 의존하게 만들고, 사랑한다고 말할 때까지 고문하고, 귓가에 계속 사랑을 속삭여서 미치게 만들면 되는거에요. 자, 보세요. 이러면 사랑이 성립하죠? 그렇죠?"



선배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에게 실망했다는 것처럼, 선배의 말보다 고개를 젓는 그 행동이 더욱 더 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된거야. '나는 마음을 줬으니까 당연히 너도 마음을 줘야 해.'라는 생각부터 고쳐야 해. 사랑은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게 아니야."



선배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잠깐 감았습니다.



"만약 너를 좋아하는 금발 태닝 양아치가 널 세뇌해서 금발 태닝 양아치를 좋아하게 만들고, 결혼으로 골인. 그건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역겹네요."



저는 인상을 찌푸리자 선배가 웃었습니다. 이젠 납치되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 같습니다.



"그래, 역겹지. 이래서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야 해.'이론은 틀린거야. 하지만 뭐,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틀리지 않았어."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좋아하게 만든다, 에서 '만든다'는 상대를 바꾸는게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거야.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마음을 예쁘게 하고, 행동거지를 바꾸는거야."



말을 너무 많이했던 탓인지, 선배는 헛기침을 한 번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너의 고백에 대해 내가 미뤘던 답을 들려줄게."



"거절할거죠?"



"응. 전 여자친구를 아직도 못 잊겠거든."



전 여자친구, 그 말에 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습니다.



"여기서 제안 하나 할게. 내가 좋은 찻집 하나를 알고 있는데, 다음주 주말에 가지 않을래?"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네?"



"내가 너를 좋아하게 만들어 봐."



저는 이마에 손을 짚었습니다.



"선배. 저는 선배를 납치했어요. 저는 선배를 강제로 겁탈할 생각이었고요, 제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려 했어요. 지금 당장도 목덜미에 제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풀어줄거지?"



"그러니까 왜 제가..."



"애초에 이 납치도 책에 나온 내용을 따라한 모방범죄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책, 내가 빌려준거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고백을 받지 않자, 전기충격기로 쓰러뜨리고 납치. 첫날은 방치시켜놓고, 다음 날은 겁탈. 계속 그런 날이 반복되다가 방치하는 날이 점점 길어지고..."



"그만해요, 제발."



저는 붉어진 얼굴을 선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양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습니다.



"처음엔 이럴 생각도 없었지?"



"...네."



"일단 고백하기 전부터 계속 납치하는 망상만 하다가 내가 고백을 미루자 홧김에 납치를 해버렸고, 막상 납치를 하고 났더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때 책 내용이 떠올라서 그대로 실행. 지금은 범죄를 저질러버렸다는 생각에 후환이 두렵다."



맞지? 라고 말하는 대신 선배는 눈썹을 으쓱했습니다.



"...풀어드릴게요."



"아니, 안 풀어도 돼."



아까는 풀어달라면서 갑자기 또 왜 그러시냐는 말이 목구멍 위까지 올라왔지만, 자기 손으로 발에 묶인 밧줄을 푸는 모습을 보고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제가 손을 풀어드린 적은 없었잖아요. 선배."



"어제 내가 풀었지. 막상 일은 벌려놓고 매듭은 잘 못 묶는 모습도 귀여워."



한쪽 눈을 감으며 저에게 윙크를 날린 선배는 저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설마 어제 풀어놓고 안 나간 거에요오오?"



"뭘 그렇게 놀라냐. 너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그랬구나...그랬는데 나는...



"자, 잠깐. 울어?"



"흑...흐극... 미안해요, 선배. 나, 선배가 이런 사람인지도 모르고..."



선배는 저를 아무런 말도 없이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있지, 나는 적극적인 여자가 좋아. 그리고 귀여우면 더 좋고."



선배는 한 손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노력하자?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얻고 싶잖아?"



제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선배는 이번에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선배는 역시,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사랑해요.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