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실험체 (10)

 

 

 

 

저택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엘프 병사들이 그를 반겨줬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의뢰는 완수됐고, 나타니엘의 병도 다 나았다.

 

“어서 오세요, 헤인킬 님.”


“어서 왔지. 공짜 밥을 준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그가 품속에서 약을 꺼내 나타니엘에게 건네줬다.

 

“그걸 먹고 당분간 요양하면 완치될 거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감사 인사는 됐다. 난 인사보다 돈을 더 좋아하거든.”


그가 엘프 시중들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향했다.

 

우아하게 꾸며진 방 안에 온갖 진수성찬이 있었는데, 전부 엘프들의 음식이었다.

 

“그나저나 그 아이는……?”

“안 온다고 했어. 널 싫어하는 모양이다.”


“절 싫어해요? 으음, 이상한 짓은 안 했을 텐데…….”


애초에 나타니엘에겐 죄가 없었다. 헤인킬은 그걸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건 엘프들의 음식인가? 그래도 고기가 제법 있군.”


“일부러 고기 요리를 준비하라고 했어요.”


“손님 접대하는 법을 아는군! 좋아, 먹어볼까.”


나타니엘이 손짓하자 함께 있던 엘프 시종들이 절을 올린 뒤 나갔다.

 

“응? 왜 내보내는 거지?”


“단 둘이 있고 싶어서요. 안 될까요?”


“안 될 이유야 없다만…….”


어쩌면 엘프들은 공주가 식사하는 걸 보아선 안 된다는 규칙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헤인킬로선 어쨌든 배에 밥이 들어가기만 하면 될 일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흐음, 음……제법 맛있군.”


“마음에 드시니 다행이네요. 아무튼, 할 이야기가 있는데요.”


“응?”


그가 고개를 들어 나타니엘의 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엘프의 왕국으로 가주시겠습니까?”


“…….”


이토록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할 순 없다.

 

무엇보다도, 나타니엘은 이런 주제로 농담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갑자기 왜?”


“당신의 재능이 아까워서, 그리고 당신을 구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는 쫓기는 몸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겪었고, 머지않아 죽을 몸이었다.

 

하지만 엘프 왕국으로 도망치면……아무리 대주교라도 거기까지 쫓아올 순 없었다.

 

“성모 교단의 힘은 어디까지나 인간 세상에서나 통하죠, 저희 엘프 왕국까지 쳐들어오는

 

건 종족 간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본래 인간은 엘프의 땅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만, 제가 당신의 신원을 보장하겠어요.”

 

일국의 공주, 그것도 종족 하나를 다스리는 공주의 보증이라면 인간인 헤인킬도

 

엘프 왕국에서 살 수 있었다. 그는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당신의 기술은 엘프들이 지금껏 쌓은 마법,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과대평가야.”

“혼자서 변변한 연구 시설도 없이 불로불사를 완성시킬 수 있는 인간은 없어요.”


수많은 천재들이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아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야 완성할 수 있을까.

 

그러나 헤인킬은 혼자서 그런 업적을 이룩했다.

 

“인간들은 당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아요. 오히려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배척하고 있죠. 하지만 저희 엘프는 다릅니다.”

 

“……아하, 드디어 이해가 되는군.”


그는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등을 의자에 받혔다.

 

“처음부터 날 영입하려고 부른 거였어.”


“그 말대로입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아무리 천재라고 이름이 났더라도 인간, 그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주치의로

 

고용하다니. 하물며 상대는 엘프의 공주였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냥 뛰어난 의사를 찾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저희 왕국에도 당신의 이름은 알려져 있습니다. 불로불사……그게 가능하다면 저희 

 

엘프의 비원인 영원의 이상향을 완성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영원의 이상향?”


“엘프어로는 ‘이스카리반’이라고 부르는 낙원이에요. 모든 엘프가 수명과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혼의 형태로서 살아가는 진정한 이상향이죠.”

 

그런 것도 있었나. 그가 입에 남은 음식을 삼켰다.

 

“당신 외에도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당신에게 그만한 능력과- 신뢰할 수 있는 인품이 있는지.”


“능력은 몰라도 인품 쪽은 결격 사항 아닌가?”


“아뇨, 오히려 인품 쪽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취향 참 독특하군! 그가 짧게 웃었다.

 

“당신은 위악자입니다.”


“…….”


“스스로를 사악한 마법사라 부르지만, 진정 사악했다면 릴리트를 보살펴주지 않았겠죠.”


“말을 잘 듣게 돌봐준 것뿐이다.”

“그리고 제게도 잘 해주셨죠. 당신의 본성은 선해요, 단지 상처받았을 뿐이죠.”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칭찬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저와 함께 가주세요. 당신은 수명을 극복하여,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돼요.

 

저희 엘프는 당신의 기술을 바탕으로 더없는 번영을 이룩하겠죠.”

 

“상부상조라……이건가?”


“당신에게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대주교 한스가 오고 있다. 그가 여기까지 오는데 앞으로 며칠이나 남아있을지, 어쩌면

 

오늘 당장 올지도 몰랐다. 그에겐 시간이 없었다.

 

“저희 엘프가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엘프 공주님한테 보호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군…….”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분명 좋은 제안이었다. 아니, 이게 바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릴리트는?”

“네?”


“그 녀석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죄송합니다.”

“그렇겠지.”


릴리트가 인간이었다면 함께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엘프들이 가장 혐오하는 종족 중 하나인 서큐버스였다.

 

아무리 나타니엘이 신원을 보장하더라도- 받아줄 리 없다.

 

“뭐, 나야 그 녀석을 버리더라도 아무 문제없다. 연구에 쓸 소재도 충분히 모았고.”

“그럼-”

“하지만 내 대답은 ‘안 돼’다.”

 

헤인킬이 상체를 웅크렸다.

 

“내가 도망치면 대주교는 릴리트를 쫓을 거다.”

“당신은 그 아이에게 충분히 많은 걸 해줬습니다.”


“그러니 나대신 죽으라고 해도 된다?”

 

나타니엘이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인간의 삶은 짧다고.”


“네.”


“짧으니 소중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짧은 삶보다도 중요한 건 있어. 

 

그 녀석은 나의 또 다른 업적이다. 내겐 실험체 그 이상의 존재가 됐다고.”

 

“그녀를 위해 희생하실 건가요?”


“표현이 거창하군. 희생까진 아냐, 단지…….”


그 녀석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헤인킬이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 사람을 데려갈 방법 따윈, 어디에도 없다는 걸.

 

“너의 친절에 감사하마.”

“전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 걸요.”

“그 제안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뇌가 담겨있는지 모를 정도로 둔하진 않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고향에선 행복하게 잘 살아라.”


“그래도.”

 

헤인킬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언젠가- 당신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할게요.”

 

“…….”


작별이다.

 

그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

 

 

 

 

 

 

 

 

헤인킬은 생각을 정리할 겸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타니엘은 아마 내일 동이 트면 마을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방법이 없다. 죽는 수밖에 없다.

 

“내가 무서워하고 있는 건가?”


생물의 본능이 외친다. 당장에라도 돌아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라고.

 

“웃기지 마라. 본성의 노예가 되느니 이성의 현자로서 죽겠다.”


긍지를 버려가며 부지할 목숨이 아니다.

 

이루고 싶은 건 이뤘다. 충분히 보람찬 삶이었고, 거기에 후회 따윈 없다.

 

다만- 나타니엘에게 너무 차갑게 말한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 빛은……?”


마을 쪽에서 검은 연기와 불꽃이 치솟아 오르는 게 보였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을 쪽을 보았다. 저택. 나타니엘의 저택이…….

 

“나타니엘!”


속보 인자! 그가 물약을 들이킨 후 전속력으로 달렸다.

 

순식간에 다리의 근육이 보강되었다. 헤인킬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나타니엘! 제기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저택이 불타오르고 있는데도, 엘프 병사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방화(防火) 인자!”


그가 주사기를 목에 꽂은 뒤 안쪽으로 달려갔다.

 

마당엔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마치 대포라도 맞은 듯 상반신이나 머리가 없었다.

 

“나타니엘! 아직 살아있으면 대답해라! 나타니엘!!”

그가 무너져가는 저택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화 인자 덕분에 열이나 연기에 면역이 생겼지만,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길은 외우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복도의 끝으로.

 

“스트렝스!”


그가 근력 강화 마법을 자신에게 건 후,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그녀가 누워있었다. 아직 불길이 거기까지 번지진 않았다.

 

“나타니엘! 무사-”


“오오, 이거 누구신가 했더니만.”


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인킬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와, 끝을 모르는 사악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성 성모 교단의 대주교, 한스 빌리버스 4세입니다.”


그는 대머리의 노인이었다. 얼굴은 인자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몸은 순수한 근육질이어서

 

옷 바깥으로 근육의 형태가 다 보일 정도였다.

 

이 남자가 대주교. 헤인킬은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몸이 얼어붙었다.

 

“네가 왜 벌써……아니, 그보다도 왜 나타니엘을 공격했지!?”

“서로 오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거처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 불경한

 

자들이 저를 공격하지 뭡니까? 그래서……전부 죽였습니다.”

 

그 많은 엘프를 죽이고도 저렇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헤인킬은 구역질을 참았다. 공포와 혐오감이 치솟았다.

 

“나타니엘은 엘프 왕국의 공주다. 그녀를 죽이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나?”


“뭔가 귀족처럼 보였는데 공주였습니까? 뭐……군대를 보내면 역으로 몰살시켜주죠.”


한스가 나타니엘의 시체를 들어 바닥에 던진 후, 발로 머리를 짓밟아 터뜨렸다.

 

뇌수가 바닥을 적신다. 한스는 더러운 걸 봤다는 듯 혀를 찼다.

 

“쯧……발바닥에 좀 묻었네요.”


“네가 원하는 건 나다! 이 자들을 해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을 텐데!”


“방금 말했잖습니까. 이것들이 먼저 덤벼들었다고……자기 분수를 모르니 죽는 겁니다.

 

뭐, 아무래도 좋은 문제 아니겠습니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가 사라졌다.

 

헤인킬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어느새 목을 붙잡혀 공중에 떠 있었다.

 

“커흐윽!?”


“불멸 인자는 어디 있습니까? 순순히 넘기면 즉사시켜드리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안 주면……?”


“우선 팔다리를 다 자를 겁니다. 그 다음, 눈과 코와 귀와 혀를 뽑겠습니다. 그래도

 

죽이진 않을 겁니다. 대신 살지도 못하게 만들 겁니다.”

 

한스가 헤인킬을 바닥에 던졌다.

 

가볍게 던진 것뿐인데도, 척추가 부러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끄아아아악……!”


“저는 종교인입니다. 성모께선 거짓을 미워하라 가르쳤고, 저 역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즉- 넘기지 않고 버티면 방금 그 말을 그대로 이행할 겁니다.”

 

“…….”


때가 왔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돌아갈 수 없는 길로 나아간다.

 

“불멸 인자를 가져오마. 그걸 넘기면……나 이외엔 아무도 해치지 마라.”


“성모의 이름으로 약속드리죠.”


이걸로 됐다.

 

헤인킬은,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드디어 엔딩 파트 돌입, 역시 엔딩 파트 쓸 때가 제일 설렌다

그리고 수박이 되어버린 나타니엘을 위해 묵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