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되게 많네. 바깥에 있는 걸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을 정도야."
"스마트 구조체도 있어요..."
"올해 스마트 구조체 격투 대회 종목도 정식 채택되었다고 해요. 작년에는 시범 운영이었는데 꽤나 잘 됐다고 하더라고요."
와이즈와 오피, 유즈하가 신기하다는 듯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근데 뭔가, 좀 험상궂은 사람이 많은 게 살짝 무섭기도 하고."
"아무래도 제전이니, 우승하면 그만한 상금도 있을 거다. 좀 치는 놈들이 그걸 노리고 몰려드는 거겠지."
도깨비불이 와이즈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특히 사람이 더 많이 몰리는 곳이다. 게다가 애초에 싸우려고 온 놈들이니 순식간에 무슨 폭력사태가 벌어져도 이상할 건 없어."
"수상하지 않을 곳은 없지만, 이곳도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거 아닐까요? 휴식이라면서요."
오피가 속삭이며 말했다.
"휴식이라고 하긴 했지만, 경계를 늦춰야 하는 건 아니야."
"무엇보다도...설명할 순 없지만, 내 감이 있다."
"...감이라고요?"
오피가 살짝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흰 모르겠지만, 한 번 뒈져가면서까지 썪을 군대에 몸 담고 있는 늙은이의 육감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한다."
"그 감각이 지금...아주 더러워. 더럽고 찝찝하고 답답해 죽을 것만 같다고."
"..."
"알겠어요."
"생각해보면...이제껏 대장 말 들어서 안 좋았던 적은 없으니까요."
"이제껏 민폐만 끼쳤는데도?"
"대장은 민폐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대장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거잖아요."
"...고맙군."
고민을 거듭하며 내놓은 듯한 와이즈의 친절한 대답에, 도깨비불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단숨소리와 함께 감사를 표했다.
'...뭐지, 이 감각은.'
'별 거 아닐거야. 별 거 아닐거야...그냥 단지, 조금 전까지 심란하던 것 때문에 그런 거겠지.'
'경계는 나도 늦추지 않으면 되니까...음. 그럴 거야.'
도깨비불이 오피를 살짝 올려다보며 생각하던 순간.
"그..대장,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왜."
"...진짜 여기서도 계속 그러고 계실 생각이에요?"
그리고 여전히 가방 위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도깨비불에게 와이즈가 다시 물었다.
"뭐, 안 될 건 없잖아. 솔직히 입만 다물고 지금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 아무도 모를걸."
"...입을 안 다물고,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니까 그렇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오피가 핀잔주듯이 말했다.
"다~신경 안 쓴다니까. 전부 대기줄일텐데 ㅁ..."
"...잠깐."
"왜 그러세요, 대장님?"
어느새 천연덕해진 유즈하가 고개를 삭 숙이고 도깨비불에게 물었다.
"...오피."
"11시 방향,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 쓰고 오른쪽 전완부에 하얀 붕대, 키는 183 정도에 군화로 보이는 무거운 신발을 신은 남자."
"확인했어요."
오피가 눈빛을 달리하며, 도깨비불에게 속삭이듯이 답했다.
"...조용히 앞으로 돌아가 얼굴을 확인한다."
"무, 무슨 일인가요...?"
겁먹은 앨리스가 뒤에 서서 도깨비불에게 물었다.
"답은 확인하고 나서 알려주지. 일단 지금은 너희도, 최대한 들키지 않는 선에서 따라붙어."
'...내 착각이겠지.'
'아닐 거야. 저 붕대...아닐 거야. 음. 아닐 거야...'
방금 전에 그리도 천연스레 말했던, '직감'이라는 근거가, 특이한 매듭으로 팔에 붕대를 감은 남자를 본 도깨비불의 사고회로에서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반신반의의 판단이었지만, 직감에 근거한 판단은 대장의 권한이자 책임.
둘 모두를 지는 무거운 심정과 제발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으면 하는 심정으로, 도깨비불은 숨을 죽이고서 천천히 다가가는 오피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 착각일거야. 이건 그저...확실히 하려는 것일 뿐이야.'
'절대, 절대...아닐 거야.'
'우연일거야. 우연일거야...그냥 확실히 하려는 것 뿐이야.'
'제발...'
오피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굉장히 가벼운 듯 했다.
원래였으면 까칠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도깨비불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자신이 생각한대로라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을 받아들일 시간조차 주지 않는 혹독한 또다른 자신이,
아주 완벽하게, 기척을 죽이고서 타겟의 앞으로 다가간 것을 본 도깨비불은 마지막으로 호흡을 들이쉬고서 고개를 올렸다.
퍽-
"..아, 앗!"
"죄, 죄송합니다...다치진 않으셨나요..?"
일부러 앞으로 튀어나가 넘어져 그의 진로를 막은 오피는, 자신과 부딪혀 넘어진 남자를 일으키기 위해 앞으로 다가서는 척하며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도깨비불도 마침내, 그 얼굴을 보았다.
"...!"
"오피, 물러나라!"
"ㄷ, 대장?"
도깨비불이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쫙 뻗으며 외쳤다.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녀답지 않게 약간 휘청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
로브 속의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건지, 혹은 할 말이 없다는 건지.
공허한 눈을 한 채로 넘어진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보통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랄법한, 실제로도 근처의 모두가 그러고 있는 도깨비불의 모습을 보고도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조준하는 도깨비불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도깨비불을 응시하고 있던 것처럼.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와이즈와 오피도 그 남자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도깨비불이 설명했던 것처럼, 직감이 외치는 어색한 점을.
자신의 경력을 천연스레 늘어놓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그저 경고를 심어주려는 의도인 줄 알았던 도깨비불의 말을, 이리도 빨리 이해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단지, 와이즈와 오피는 도깨비불이 아니었기에, 둘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같은 직감.
'생명체로서의 본능'에 더 가까운 둘 모두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감각이.
눈앞의 남자가 너무나도 어색하고 이질적이라고 거세게 외치고 있었다.
"..."
"...물러나!!!"
남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보이자, 도깨비불은 장전마저 끝냈다는 걸 알리는 철커덕 소리와 함께 몸을 데우기 시작했다.
"....."
"돌아가고 있는데...요?"
앨리스의 말대로, 남자는 도깨비불의 외침이 자신에게 하는 것인줄 알았다는 듯이 손을 내리고선 뒤돌아 천천히 걸어갔다.
마치 소기의 목적이라도 달성한 듯, 아무런 미련없이 떠나는 이의 뒷모습 그대로 천막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체 뭐지, 저건."
불을 뿜지 않아도 되었다는 안도감과, 순간 밀려오는 당혹감.
"봐, 봤어...? 총 아니야, 저거...?"
"저런 게 왜 가방 안에서 튀어나와...? 심지어 말도 해...!"
그리고, 끝끝내 발사되지 않은 총의 반동으로 웅성거리는 실내.
"...!"
"아, 아하하...그, 아직 개발중인 신형 전투용 스마트 구조체인데...착오가 있었나 봐요."
"저분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저희가 실험 과정에서 쓴 레이더 모델랑 체형이 비슷해서...이상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주위의 변화를 알아챈 와이즈가 재빨리 튀어나가 수습을 시작했다.
"신형 스마트 구조체...? 하긴 뭐. 스마트 구조체 격투 대회도 열리니까."
"총 모양인데...테스트 용도로 참전하는 건가."
놀랍게도, 웅성거리던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치 도깨비불이 이제껏 해왔던 말처럼, 모두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슬쩍 돌아갈 뿐이었다.
"...이틈에 빨리 나가자."
그리고 빈틈을 포착한 와이즈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방금 전 오피가 그랬던 것처럼 신속하게 움직여 제전 참가 신청 천막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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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와이즈."
"또 민폐를 끼쳤군."
천막을 나와 달려, 인적이 드문 해안가의 바위틈까지 다다른 일행.
도깨비불은 면목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가방 속으로 들어간 채, 열린 가방 틈새로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대장은 민폐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대장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거잖아요.'
'젠장, 젠장...'
'그런 말을 들은지 몇 분도 안 되서 나도 모르게 이런 실수를...'
도움조차 안되는, 변명의 여지도 없는 명백한 실수.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행동이 가져온 결과는, 와이즈가 자진하여 일임하는 뒷수습과 쫓겨나듯 천막에서 도망치는 것.
대장으로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시간이었지만,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은 그를 훨씬 앞선 듯.
당당히 고개를 들고 다니던 도깨비불조차 가방 안에서 튀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도깨비불 씨...괜찮으세요?"
"...미안하다."
앨리스의 물음에도, 도깨비불은 여전히 미안하다는 답뿐을 내놓았다.
"...언니."
"오피, 미안하다..."
"미..."
푸확-!
"오, 오피...?"
오피는 기습적으로 도깨비불을 끄집어내고서, 가방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가방을 주운 유즈하와 앨리스, 옆에 있던 와이즈, 그리고 당사자인 도깨비불까지.
모두가, 낯선 모습의 오피를 눈 땡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왜 계속 미안하다는 거에요, 불안하게!"
"언니도 나름 잘해보려 한 걸거 아니에요! 이제껏 언니가 내렸던 명령 중 불합리한 건 없었으니까!"
"근데 왜! 이 작전에서는 계속 자기 자신을 낮추는 거냐고요!"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요..."
"미안하다고만 말하지 말고 말해봐요. 뭐가 문제였는데요?"
"뭐가 문제였길래, 언니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런 행동을 한 거냐고요."
"답답하게 그러고만 있지 말라고요. 평소의 언니로 있으라고요!"
"민폐니 뭐니 하지 말고...!"
"...오피."
오피에게 한 말도 지키고 있는 것인지 헷갈려 하고 있는 와중에,
오피의 '자기 자신대로 있으라'는 일침.
늘 해오던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과 동시에 역으로 그런 말을 듣게 된 상황에, 도깨비불은 더욱 큰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역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가방 밖으로 나왔다.
늘 이끌어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어림쟁이가 이런 말을 역으로 하는 순간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이.
도깨비불의 두 눈은, 분명히 살짝씩 떨려오고 있었다.
이제껏 해왔던 자신의 고민과, 그 고민에서 발현된 것일지 모를 천막에서의 불안함이 모두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렇다는 건 그만큼 책임질 게 많아졌다는 뜻이었기에.
도깨비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넷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미안하군. 혼자 너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버렸어."
"그리고...그 전말도 모두 밝혀야겠지."
도깨비불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서 말을 시작했다.
"조금 전 천막에서, 아주 익숙한 남자를 한 명 보았다."
"분명한 근거가 하나 있었지. 오른팔에 특이한 매듭으로 붕대를 감고 다니던 것."
"분명...내가 아는 남자, 호플리테스였다."
"문제는...그 자가, 11년 전 공동 사태에 휘말려 죽었던 남자라는 거지."
"뭐, 뭐라고요?!!"
실로 충격적인 말 한마디에, 자리의 모두가 똑같이 놀라며 말했다.
"그럼...대장이 그렇게 행동했던 건..."
"내 착각이길 바랬지만, 얼굴을 본 순간 알았어."
"분명히...죽었던 그 호플리테스였다."
간신히 제정신을 붙들고 질문한 와이즈에게, 도깨비불은 너무나도 덤덤히 답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돌아온 거라고요?"
"대체 무슨...말도 안 되잖아요."
"새크리파이스도 에테리얼의 형태로 되살려놓은 것 뿐이었는데...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그 사람 그대로..."
"...그 사람 그대로는, 아닐 거에요."
당황한 듯 말하는 유즈하와 앨리스에게, 오피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방금 그 남자를 정면에서 마주봤을 때...확실히 느낀 게 있어요."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었지만...본질적으로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게...그 이유였을 줄은 몰랐는데."
"...내 예상이 빗나가길 바랬건만, 그저 우연이길 바랬건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버렸군."
도깨비불도 아직 안 믿긴다는 듯이 힘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죽은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경위는 모르겠지만...다시 돌아온 거고요."
그리고, 조용히 상황을 정리하던 와이즈.
"...뭔가 하나 떠오르는 거 없으세요?"
"..."
"J..."
도깨비불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잠깐의 침묵 끝에 답을 내놓았다.
"연관성이 없지 않아요. 죽은 사람이 되살아왔다...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도깨비불 대장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으니 지금의 정황상으로는 J는 살아 돌아온 대장의 동료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호플리테스도 대장과 멀지는 않은 사이였으니 바로 알아본 것일 거 아니에요."
"...그래. 호플리테스는 아가멤논 소대와 같은 부대에 속해있던 군 교관이었어."
"오며가며 몇번이고 마주쳤던 대다가, 작전도 몇 번 같이 했었으니 모를 수가 없지."
"그 이상한 붕대 매듭이 그 양반 트레이드마크였으니까."
도깨비불이 확실히 기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호플리테스라는 그 사람한테는 지능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최소한의 인지만을 가진 듯이...도깨비불 대장의 장전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물러났죠."
그때, 오피가 좀 전의 상황을 돌이켜보며 말했다.
"만약 J도 똑같이 살아난 것이라고 한다면...대체 J는 어떻게 그런 계획적인 납치 사건을 벌인 걸까요?"
"...그건 나중에 가서, 다 잡아족치면 알게 되겠지."
도깨비불이 오피에게, 원래의 자신감 넘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로 답했다.
"와이즈, 오피. 지금부터, 주위 순찰 및 휴식에서 호플리테스를 추적하는 것으로 우선 목표를 변경한다."
"알아들었나?"
"네!"
"유즈하랑 앨리스라고 했나? 너희 둘은 여기 남아서 주위를 순찰하고 호플리테스가 돌아온다면 바로 와이즈에게 알려라. 그래 줄 수 있겠나?"
"네 뭐. 그정도야 충분하죠. 맡겨주세요~."
유즈하가 앨리스의 눈빛을 확인하고서 말했다.
"좋아, 출발이다."
"...이미 뒤졌다 살아나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
"편히 쉬게 해주자."
도깨비불의 말과 함께, 와이즈와 오피가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To be continued...
질문, 피드백 대환영. 칭찬은 더더더 쌍수들고 환영.
재밌게 읽으셨다면 글쓴놈에게 큰 힘이 되 추천&댓글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묻히기 시러요...
긴 글 시간내어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 있어도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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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가 다가오니까 미친 건지, 아니면 그냥 오피가 좋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18금 묘사같은 부분에도 도전해보고 싶긴 합니다. 그, 다들 어색하더라도 베드씬 묘사 넣으면 좋아하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