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몇 시간이나 잤을까, 와이즈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어났냐."
"네, 흐아아아암...저 몇 시간이나 잤어요?"
"걱정마라. 아침 8시에 체크인해서 2시간 잤으니까. 아직 점심 먹기도 전이야."
도깨비불이 웃으며 말했다.
"...하긴, 안 그랬으면 대장이 오피가 자고 있는 걸 그냥 뒀을 리가 없죠."
눈을 비비고 나서야, 쌕쌕 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아 잠이 든 오피를 확인한 와이즈.
"그, 내가 말을 이렇게 한다고 날 너무 악마같이 몰아가지는 말아주겠니?"
"나도 최소한의 수면 시간은 보장한다고. 병신같이 아무때서나 픽픽 쓰러져 자는 걸 용서하지 못하는 거지."
"아무데 아무때서나 잘 자는 게 내 생전 자랑 중 하나긴 했는데, 그것까지 닮았구만."
도깨비불이 오피를 보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하셨으면 그게 자랑이 되는 거에요."
"안 알려고 하는 편이 나을걸. 그때는 최전방 전투 부대들한테도 캐럿은 개뿔 공동 특화 무기도 모자라게 보급될 때였으니까."
도깨비불이 한숨을 푹 내쉬며, 회상에 잠기어갔다.
"지금이야 이 끔찍하게 생긴 아가리에서 초고온의 불을 뿜어내며 에테리얼을 원없이 썰어버릴 수 있지만, 그때는 언제 에테르에 잠겨 못 쓰게 될지도 모르는 총알을 퍼붓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지."
"하루종일 총을 쏘고 공동을 누비고 하다가 겨우겨우 안식처를 찾으면, 곧바로 잠들어 체력을 비축해야 했어."
"...뭐, 그것 덕분에 의미없는 명성이라도 쌓아봤으니 이런 걸 탓하는 건 아냐."
"확실히...그때의 사람들은 정말 처절하게 살아남았을 것 같긴 해요."
"지금도 이렇게 신음하고 있는데, 기술도 없었던 과거에는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원..."
와이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도깨비불에게 대답했다.
"...훗,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 없어."
"다들 살려고 발버둥치는 건 지금도, 11년 전도, 공동이 생기기 전도, 아주 먼 옛날에도 다 똑같았을 거다."
"사는 와중에 이렇게 쉬는 시간도 중간중간 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갔던 거지."
"확실히,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떠나간 녀석 한 생각도 나는구만. 몸은 변하지 않는 기계여도, 정신은 늙어가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이야."
"늙어가는 정신도 기계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면...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에 관한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만큼 추하게 빌붙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떠올리면 또 먼저 떠나간 사람들 생각이 나고...또 누구 생각이 나고..."
도깨비불은 거침없이,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느끼는 점에 대해서 말을 쏟아내었다.
"...나만 신나게 떠들었군."
"아니에요, 나름 재밌었는데요 뭘."
"뭐가 재밌냐, 늙은이 기분 맞춰주려 안 해도 된다."
"곧 기분 맞춰줄 녀석 일어나려 하네."
도깨비불이 뒤척이며 일어나려 하는 오피를 보며 말했다.
"흐...흐아아아아아암..."
"일어났어, 오피?"
"ㄴ,네? 아, 극그그그...ㄴ, 네..."
"...아무 생각 없이 하품을 너무 늘어지게 해버렸네요."
별 걸 다 부끄러워 하며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오피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오는 와이즈.
"배고프지 않아? 슬 점심시간인데."
"...그러고 보니, 조금...배가 고프긴 하네요. 헤헤."
언제 부끄러워했냐는 듯, 오피가 와이즈의 상냥한 질문에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그럼 뭐...겸사겸사 나가서 점심도 먹는 김에, 탐문조사도 한 번 다녀봐라."
"로프꾼한테 녹녹으로 테르모 구역의 지도랑 피해자 주소를 표시한 것, 그리고 위장용 수사관 증명증도 보내놨으니, 밥부터 먹고 한 번 다녀봐."
"중간중간에 골목길 들어가서 나도 한번씩 꺼내주면, 조사 자체는 수월하게 진행될거다."
도깨비불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어 말했다.
"잘 들어. 뭐가 안 그렇겠냐마는...안전이 제일이다."
"혹시라도 유족들이나 주변인들이 조금이라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면, 곧바로 빠져나와라. 알겠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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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엄청 맛있었어요. 제철 생선이랑 농산물로 만들었다 보니까 신선함도 최고였구요."
"그러게...이게 수확철의 힘이라는 건가."
"내년엔 벨도 한 번 데리고 와봐야겠다."
와이즈도 오피도 만족스러웠던 식사를 뒤로하고, 슬 조사를 준비했다.
"우선은...여기서 제일 가까운 건 저 빨간 지붕 집인것 같아. 아르니키스 씨네 집이라고 해."
"도깨비불 대장이 표시해놓은 것에 따르면...두 번째 실종 신고가 들어온 곳이네."
와이즈가 핸드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일단 한 번 가보죠."
"이제부터 저희는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이 되는 거에요. 그렇죠?"
"...그렇지?"
"...수사관, 수사관, 군인이 아니라 수사관..."
행여나 실수할 세라, 계속해서 내용을 되뇌이는 오피.
"걱정하지 마. 그렇게 신경쓰면 오히려 더 긴장해서 해야할 말도 안 나올걸."
"나한테 맡겨, 알았지?"
와이즈는 그런 오피에게 미소지으며, 등을 톡톡 두드리며 자신감을 채워주었다.
"흐, 흐갹...ㄴ,네..."
"잘 부탁드려요, 로프꾼님. 헤헤헤..."
또다시 깜짝 놀란 듯 보였지만, 오피는 금새 와이즈를 보고 배시시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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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 혹시 아르키니스 씨의 댁이 맞으십니까?"
와이즈가 문을 열고 나온 노파에게 말했다.
"...네, 제 아들이자 남편이 아르키니스인데, 지금은 둘 다 없습니다."
"...알고 찾아왔습니다."
"저희는 현재 테르모 구역에서 발생 중인 연쇄 실종 사건을 수사중입니다."
와이즈가 오피를 툭 건드리자, 오피는 허둥지둥하며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놓았던 수사관 신분이 띄워진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같이 들어있던 데니들도 떨어졌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오피는 동전에 둘러쌓인 채로 정자세를 유지했다.
"...얼마 전에도, 수사관 분들이 다녀가셨었죠."
"몇 번이고 오실 만큼 큰 사건인가 보군요..."
노파는 우울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태의 관심이라도 다행이라는 듯 안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해결할 겁니다."
"혹시, 실종한 날 아드님의 행적에 대해 기억나시는 게 있나요?"
와이즈와 오피도,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안쓰러움과 간절함에 마음아파지는 것을 겨우 숨기며 물었다.
"...저희 아들은 그냥, 앞바다에서 일하는 어부였어요."
"오후 늦게까지 조업을 마치고 돌아왔다가, 물때에 맞춰서 조개를 캐려고 밤 늦게 나갔죠."
"...수확철에만 나는 조개가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거든요."
노파는 슬픔에 잠겨, 가면 갈수록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때 이후로...지금까지...안 돌아오고 있어요."
"...이, 이주일이나 지났는데...흑, 흑흑흑..."
착잡한 기분을 느끼며, 오피는 앞으로 한발짝 다가가 노파를 꼬옥 안아주었다.
오피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우는 노파를 보며, 자신도 찾아 헤메는 선생님이 있으니, 남일이 아닌 듯한 기분을 느끼는 와이즈도 고개를 돌리고서 겨우 슬픔을 참아내었다.
"혹시 아드님이 자주 만나던 분이나, 자주 들르던 곳이 있나요?"
"...없어요. 우리 아들은 술도 안 먹으니 술집이나 그런 데 가는 곳도 없고, 친구들은 다 테르모 구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어요."
"유일하게 여기 남아서 고향이랑 늙은 어머니 지키던 착한 아인데, 왜...대체 왜..."
들을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대답들에, 와이즈와 오피는 아예 고개를 푹 숙이며 보는 것을 거부하였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여쭤보지 않을테니, 편히 들어가 쉬세요."
"이 사건은, 저희가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와이즈가 무거운 입술을 겨우겨우 떼어내며, 노파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해요."
노파가 들어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오피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어째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요..."
"아르니키스 씨의 집 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이라도...비극적이고 끔찍하다는 건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요."
"....맞아. 그럴 거야. 수많은 비극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되돌릴 수 없기 전에, 비극으로 시작된 일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키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여기 왔잖아."
"...맞아요."
"반드시 지킬거에요. 무슨 비극이 벌어졌던 간에."
"이번에는...반드시 지킬거에요."
오피가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떨어졌었던 동전을 응시하고선, 그 중 하나를 들고 꽉 쥐면서 와이즈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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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이제야 숨통 좀 트이네."
"진전은 좀 있었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골목길, 도깨비불이 드디어 깨어나 말했다.
"일단...네 군데를 돌아다녀봤어요. 남성 피해자 둘, 여성 피해자 둘이었죠."
"주목할만한 점으로는, 네 군데 뿐이긴 하지만 전부 다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세 개 있었다는 거죠."
와이즈가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말했다.
"첫째, 가족을 제외하면 근방에 접점이 없는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고,"
"둘째, 가장 적은 나이가 30대 후반일 정도로 테르모 구역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들이며,"
"마지막 셋째, 전부 다 새벽 시간대에 실종되었다는 거에요."
와이즈가 말했다.
"세 번째는 몰라도, 첫 번째랑 두 번째는 확실히 의심이 되는군."
"주변인들과도 접점이 잘 없는 사람인 동시에, 오랫동안 이 구역에서 살아온 사람을 노렸다라."
"심지어 네 명 전부, 그런 특징을 갖고 있었다는 건 하나밖에 없지."
도깨비불이 와이즈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네."
"범행을 저지른 개인이나 단체는, 테르모 구역에 거주하고 있거나 이곳과 큰 접점이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최적의 타겟들만을 골라 노릴 수 있었겠죠."
"...야단났구만."
"테르모 구역은 자치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큰 마을이랑 다름없어."
"게다가 방위군 문제나 수확제같은 요인들로 인해, 이곳의 사람들은 애향심이 매우 강하고 지역 사회 커뮤니티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지."
"...즉, 범행을 저지른 단체나 개인을 이곳과 연관지어 수사하는 순간,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는 거다."
도깨비불이 머리아프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확실히, 저희가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눈치도 좀 보였던 것 같아요."
"수사관이라고 말하고 돌아다니니 그런 시선이 있는 거긴 하겠지만...도깨비불 대장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오피도 살짝 주눅 든 채로 대화에 끼었다.
"일단은...할 수 있는 걸 해봐야겠지."
"이봐, 와이즈. 혹시 너희가 조사한 피해자들의 신상을 전부 나열해줄 수 있겠나?"
"네, 아르니키스, 41세 남성. 카마니아, 38세 여성. 오르타비시아, 40세 여성. 트로포스, 48세 남성. 이렇게에요."
"...연쇄 실종 사건, 즉 납치 사건으로 봐도 무방한 상황인데, 피해자가 중년층이라..."
"이것도 확실히 이상하군. 보통 같았으면 더 어린 나잇대의 아이들을 노리기 마련인데."
도깨비불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언니. 혹시 옛날에 벌어졌던 사건과 비슷한 점은 없나요?"
"당시에 벌어졌던 연쇄 실종 사건은 기록이 딱히 남아있진 않아. 키메라 기관의 일이 워낙 크게 터져서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
"내 기억상으론 딱히 인상적으로 기록할만한 피해자들간의 공통점이나 연관성은 없었던 것 같다. 아쉽긴 하겠지만 이건 비밀 작전 파견이라 치안국의 도움도 못 받아."
"그럼...조금만 더 탐문수사를 진행해볼까요?"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야."
도깨비불이 와이즈와 오피의 걸음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네...? 왜요?"
오피가 당황하며 자신의 등 뒤에 달린 도깨비불에게 물었다.
"너희가 너희 입으로 말했잖냐. 너희가 돌아다니는 걸 꺼려하는 눈치라고."
"좀 있으면 소문 쫙 퍼질걸, 수사관이 왔느니마니, 뭘 묻니마니 하면서 말이야."
"심지어 곧 축제 기간인데, 지나가던 어린아이도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선 쉬쉬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도깨비불이 오피에게 아주 친절한 설명을 다소 불친절한 말투로 건네었다.
"그, 그렇겠네요..."
"그럼 이제...저희가 뭘 할 수 있는 거죠?"
오피가 되물었다.
"뭘 하긴.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을 직접 두 눈으로 보러갈 수 있지."
도깨비불이 몸을 쭉 뻗어, 마을에서 보이는 해안 절벽에 드러난 키메라 기관의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이, 로프꾼. 산 좀 타나?"
"...저 운동부족인데요."
와이즈가 까마득한 해안 절벽을 보고 벌써부터 김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피가 그렇게 훔쳐보던 근육은 대체 어떻게 된 건데?"
"아, 앞에 제 얘기를 왜 붙여요?!!"
오피가 새빨개진 얼굴을 하며 도깨비불에게 따졌다.
"네가 멋대로 훔쳐봐놓고 왜 나한테 큰 소리야?!"
"어...언니가 이상한 거라고요! 큰 소리로 말하지 마요!"
"...이래서, 도깨비불 대장은 나중에 꺼내려던 거였는데."
또다시 시작된 티격태격하는 싸움과 곧 키메라 기관이 있는 해안절벽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와이즈는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움켜쥐며 둘의 싸움이 끝나기까지 한참을 있을 뿐이었다.
To be continued...
질문, 피드백 대환영. 칭찬은 더더더 쌍수들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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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시간내어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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