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장난감, 이건....책?"
어느새 머리에 돋아난 작고 귀여운 여우귀를 쫑긋거리며, 여자아이는 그럭저럭의 유흿거리 삼아 집안의 창고를 뒤지고 있었다.
'멜론 책에, 갑자기 멜론 잉크...는 뭐지? 이건 또 멜론 인형이고, 멜론 씨앗...아, 여기서부터는 엄마 거구나.'
이제는 어린아이조차 질색을 할 정도로 차고 넘치게 깨달아버린 미야비의 멜론 사랑을 보여주는 잡동사니들이, 어린아이들의 것의 뒤를 이어 연달아 쏟아져나왔다.
"근데 이건...뭐지?"
그리고 또 그 뒤로는, 어린아이의 시선도 순식간에 잡아챌만한 옷 한 벌이, 잡동사니들이 들어찬 창고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고이 개어져있었다.
산뜻이 빨갛게, 꽃을 닮은 진홍색으로 물들인 치마와, 순백색의 상의. 동백의 붉은 꽃이 피어나고 겨울의 싸락눈이 다시 덮는, 엄동설한 속의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담은 옷이었다.
하얀 옷의 양쪽 가슴 부분에 수놓인 꽃 문양이, 옷주인이 입을 계절의 방점이 되어주고 있었다.
"유우가, 뭐 하고 있니?"
"...어머니였군요."
흠칫, 그 조그만 여우귀마저 쫑긋 들리고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놀란 게 틀림없었지만, 유우가는 누구를 닮았는지 태연한 척하며 느릿느릿 뒤돌아보았다.
"어, 그건..."
그리고 미야비도 그제서야, 유우가의 손에 들린 옷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심심풀이로 창고를 뒤져보고 있었는데,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뭔가 귀한 옷 같기는 한데...어머니의 멜론 잡동사니들 뒤에 묻혀져 있는게 이상해서 한 번 꺼내봤어요."
"혹시 무슨 옷인지 아시나요?"
"...알지. 모를 수가 없지."
"옷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니?"
미야비는 유우가에게서 옷을 받아들고선, 즐거운 기억이 떠오른 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느덧 차분한 숙녀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미야비였지만, 지금의 그 미소엔 오래 지나지도 않은 여우 시렌 소녀 때의 호시미 미야비가 서려있었다.
"...네."
"원래는 그냥 예쁜 옷인가보다 하고 별 생각 없었는데...어머니가 그런 미소를 짓는 걸, 처음 봐서 궁금해졌습니다."
과하게 솔직했단 걸 말을 다 하고서야 깨닫은 유우가였지만, 미야비는 오히려 더욱이 싱긋 웃고 있었다.
"당연하지."
"너희를 만나기 전...그때의 미소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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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 와이즈와 미야비가 아직은 단지 로프꾼과 에이전트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을 때-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방금 먹은 멜론 두 개가 제 발음을 망쳐놓은 게 아니라면요."
"평소에 멜론 두 개는 무슨 네다섯 개도 마파람 게 눈 감추듯 드시는데 그거 때문에 발음이 달라지면, 아마 과장님은 지금쯤 에리두 어학 다양성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어있었을 텐데요...?"
대공동 6과, 미야비와 야나기, 하루마사가 심각한 듯 고개를 파묻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죠...제가 잘못들은 걸 리가 없을 테니까요."
"과장님, 진짜...따악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실래요?"
야나기가 아예 안경을 벗어 내려놓으며 말했다.
"...와이즈가, 저한테 관심이 많이 식은 것 같습니다."
"엥? 어제도 둘이서 같이 와서 같이 가놓고 무슨 소리래요?"
야나기는 미야비에게서 시선을 절대로 떼지 않은 채로, 그 심각한 표정 그대로 소우카쿠의 간식 봉지를 사무실 바깥을 지나가던 이름 모를 직원에게 던졌다.
"저, 저기 이건...? 으, 우와아아아아악! ㅁ, 뭐야! 쫓아오지...아니아니, 네거 같으니까 쫓아오는 게 맞긴 한데 일단 그 철판떼기랑 투구는 내려놓고 쫓아와아ㅏㅏㅏㅏ...."
"...그래서, 대체 어쩌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신 건가요?"
"어쩐지...평소와는 정반대로 와이즈 씨가 외근 나가는 것만 기다리시는 것 같더라니..."
멀어져가는 이름 모를 직원의 비명과 먹이를 추적하는 소우카쿠를 뒤로 하고, 야나기는 다시 미야비에게 질문했다.
"소우카쿠 말대로 항상 시간을 함께 보냈던 건 맞아요. 거의 제가 조르다시피 했죠. 와이즈 씨도 기분이 나쁘지는...않아 보였어요."
미야비는 잠시 흠칫하는 듯 했지만, 결국엔 와이즈가 느꼈을 기분을 멋대로 말해버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계속 그냥...집에도 데려다만 주고, 어디에 같이 있지도 않고, 일도 이제 덜 바빠졌는데 괜히 무리하지 말라는 소리만 하고...뭔가..."
"...전 또 뭐라고. 괜히 놀랐잖아요."
"놀랄 만한 일입니다. 어제까지 냉장고에 들어있던 멜론이 갑자기 수박으로 바뀐다면 누군들 놀라지 않겠어요?"
안심한 듯 한숨을 턱 내쉬며 말하는 하루마사에게, 미야비는 득달같이 달려들며 말했다.
와중에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얼어붙을 듯한 차분함과 미야비다운 단어선택이 돋보이는 것에, 야나기 또한 안심한 듯 많은 의미를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과장님...얼마 전에 과장님이 뭐라고 하셨죠?"
"얼마 전이라면...언제 말이죠?"
"과장님 집안...그러니까, 호시미 가문 일로 뭐라고뭐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무오의 부작용인가...다시 그 악몽이 시작되는 건 아니겠죠...?"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야나기가 하루마사의 퇴근을 위한 호들갑을 예리하게 알아채고선, 하루마사의 책상에 서류더미를 올려놓으며 미야비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저...부과장님? 이거 제가 다 해야 되는 거 아니죠? 제발 아니라고 해주실래요? 이걸 제가 다 하는 거보다 소우카쿠한테 글자랑 행정을 가르쳐서 둘이서 하는게 더 빠를 텐데요?"
"뭐, 알아서 잘 해보세요."
서류더미 위에 '공무원 근무태도에 관한 상벌위원회 계획' 이라고 적힌 종이를 팔랑이며 올려놓은 야나기는, 그 길로 미야비와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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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말을 했던 거죠?"
"...진짜 다 까먹으셨나 보네요. 혹시나 해서 단 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야나기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자꾸 어디서 꺼내오는지 궁금해지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호시미 가문...전통절? 이게 뭐죠?"
"과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최근에 공동 위기도 해결되고,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를 위해 호시미의 가주인 소이치로 씨께서 제로 공동 사건 이후로 한동안 거행되지 않던 '전통절'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저희들도 초대하고 싶다고요."
"그중에서도 특히나...호시미의 '장녀'가, 잊혀져가는 호시미의 '전통 예복'을 입고, 예와 정성을 갖추어 치르는 '전통 의식'에 대해 말씀하셨죠."
"아, 잠깐...."
야나기가 구석구석 힘주어 말하는 부분에서, 무언가 인위적으로 묻어버렸던 기억이 떠오른 듯한 미야비가 귀를 저러다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며 야나기의 입을 막으려는 듯 달려들었다.
"어때요? 이제 좀 정신이 드시나요?"
"...처음 아버지한테 말씀를 들었을 때도, 그때 여러분의 앞에서 말 할 때도, 너무 충격적이라서 믿어지지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저멀리 날려버렸나 보군요. 그 기억을 말이에요."
미야비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익어있었다.
"와이즈 씨도 아마 그 성격에, 미야비 과장님의 말이 걸려서 그랬던 걸 거애요."
"그렇게 부끄러운 표정으로 걱정된다는 듯 말하시니...마음을 안 쓸 수가 없었겠죠."
"과장 좀 더 보태서, 미야비 과장님을 세상에서 가장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분일 걸요. 만난 지 몇달만에 혼담까지 오가는
사이면 말 다했죠 뭐."
미야비는 다시 한 번, 늘 똑같았던 퇴근길에서 어딘가 달라졌다고 생각한 남자를 떠올렸다.
말은 일찍 들어가라고 하며 차를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돌리는 그였지만, 미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자신의 얼굴에도 번져와 있던 미칠듯한 사랑을 입가에서부터 몸 위아래로 퍼트린 그 미소를 이제서야 다시 보았다는 것에, 미야비는 잠시라도 와이즈를 의심했다는 미안함과 흘러넘치는 감사함에 미친듯이 귀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뭐 때문에 그렇게 부끄러워 하셨던 거에요? 전통 예복? 의식?"
"...솔직히, 그것 두 개는 별 게 없습니다."
야나기의 물음에, 미야비는 꽤나 깊은 각오를 한 듯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예복은 저번에 처음 본 건데, 보자마자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더군요. 흰색과 붉은색의 적절한 조화, 곳곳에 자수로 놓아진 예쁜 문양까지...제가 이런 걸 입어도 될까 싶었습니다."
"전통 의식도 솔직히 그 옷을 입고 몇 가지 동작을 취하며는 춤에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게 다입니다. 다만..."
"...그걸, 와이즈 씨의 앞에서 해야 한다는 건, 수행. 무척이나 어려운 수행, 그 자체입니다."
"입어보니 옷도 생각보다...그...좀 많이 개방적이고...아직 수행도 조금 부족한지 절을 할 때마다 와이즈 씨가 그 모습을 볼 거라는 걸 떠올리니 한 번씩 삐끗하게 되더군요."
"...대체 얼마나 숭하길래, 할 거 다 한 와이즈 씨 앞에서 입기가 부끄럽다는 거에요?"
"아, 아니...그...그건..."
대체 무슨 근거로 다른 사람들이 몰랐을 거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야비는 정말 부끄럽고 숨기고 싶었던 사실을 들켰다는 듯이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이제 당연히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저나 아사바 씨 눈에도 뻔히 보이는 사실인데, 아직 모르고 계신 건가요?"
"와이즈 씨는, 과장님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늘 똑같은 다정한 표정으로 과장님을 봐라봐 줄 사람이잖아요."
야나기가 옆에 있던 자판기에서 멜론주스 한 캔을 뽑아 미야비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 사실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공동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도, 낯부끄러운 오해를 했을 때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해도...늘, 곁에는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와이즈 씨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그럴 걸 알고 있는데도, 오히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와이즈 씨만 생각하면 마음이, 몸이, 손끝이 떨려옵니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함 따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미야비가 멜론 주스 캔을 까려다가 잠시 멈추고서 말했다.
"와이즈는 언제나 제게 따스하게 웃을 겁니다. 제가 무슨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말이에요."
"그 값지고 헤픈 자비는, 입꼬리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제게 너무도 큰 행복을 줌과 동시에, 제가 웃음을 받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씁쓸한 뒷맛을 선사합니다."
"마치...이 캔 안에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멜론주스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파인애플이나 사과로 바꿔치기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캔을 까면서 조금이라도 쏟아버리며 이 맛있는 주스와, 이걸 만든 사람과, 이걸 사준 야나기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이번 의식에 더욱이 공을 들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호시미의 전통 의식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데서 신께 올리었던 제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적어도 이 의식을 완벽하게 마쳐서, 비록 영적인 것일지라도 와이즈 씨에게 안녕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말했듯이 와이즈 씨만 떠올리면 오히려 잘 안 되기도 하던 차에, 와이즈가 평소와는 다르게 집에 데려다만 주고 일찍 가버리니까 조금...부끄럽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시는 거 맞네요."
사랑에 빠진 이들의 시야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 하나로도 좁은 눈동자에 남을 담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타인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이 겹친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상대와 자신이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도 서로가 아깝게 보지 못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안타까움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특히 어린 사람들, 이를테면 소녀와 소년의 첫사랑이나, 숙녀와 청년의 풋풋한 사랑같은 경우에는 더욱이 그렇다.
이전에는 없던 박자로 뛰어대는 심장이, 눈동자를 제대로 받치지 못하니까.
하지만 이것도, 흔들리기에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멈춘 세상보다는 격렬히 움직이는 세상이 아름다우니까.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던 야나기의 눈에, 지금의 미야비는 대공동 6과의 과장이니, 뉴에리두의 평화를 파수하는 공허 사냥꾼 같은 거창한 영웅이 아닌, 그저 사랑에 빠져 고뇌하는 귀엽고 어린 여우 시렌 소녀로만 보였다.
혹시라도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에 자신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소녀가 말이다.
"네..? 뭘 모른다는 거죠?"
"...글쎄요. 저는 절대 알 수 없는 거여서, 잘 모르겠네요."
"그게...무슨 소린가요. 야나기가 이렇게 과육 없는 멜론 같은 소릴 하는 건 처음 보는데요."
"알았어요. 제 말대로 해보시면 아마 해결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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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느려지는 차가, 호시미의 고풍스러운 저택의 문 앞에 멈추어섰다.
"미야비 씨, 오늘도 조심히 들어가요. 항상 힘내시고요."
"...미야비 씨?"
오늘의 미야비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하고 있는 듯 했다.
"미야비 씨? 음...또 그건가."
와이즈는 천천히, 아무런 움직임도 하고 있지 않는 뒷좌석의 미야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살랑이는 귀에, 왜인지 모를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괜찮습니다. 생각하시는 수행을 하는 중은 아니에요."
"다른 수행을 해야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수행이요."
미야비는 기다렸다는 듯, 와이즈의 양 볼을 가볍게 잡고서 말했다.
"수행...? 제가 필요하다고요?"
"네. 따라와주세요."
"미야비 씨...?"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미야비의 목소리는 긴장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 깊은 붉은빛의 눈만큼은, 한 치도 떨리고 있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고자하는 각오가 서려있는 어여쁜 눈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그런데...소이치로 씨는 어떡하죠?"
"괜찮습니다. 오늘 아버지는 집을 비우시니까요. 마침 잘 된거죠."
'...뭔가 하나의 거대한 짜여진 판 같은 느낌인데.'
순간 불경한 생각을 했던 와이즈였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 미야비를 따라 조심스레 자신의 차에서 내렸다.
"저, 미야비 씨..."
"...와이즈 씨."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미야비는 어안이 벙벙해보이는 와이즈를 거실의 소파에 앉힌 뒤, 자신의 방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진정해, 호시미 미야비.'
'할 수 있어, 할 수...있다고. 야나기가 말했던 것처럼 해보는 거야.'
'실수해도 상관없어...상관없어...'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임에도 느려지지 않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미야비는 그 위로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는 한 전통 예복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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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야비...씨...?"
발소리를 듣고 뒤돌아 본 와이즈의 눈에 비친 건, 틀림없는 미야비였다.
눈과 같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여 나풀거리는 의상은, 싸락눈이 나리는 모습을 닮아있었다.
그러면서도 날렵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맵시있게 드러내며, 옷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한 데 엮어내고 있었다.
동백의 붉은빛, 눈의 하얀빛. 겨울을 입은 여우 시렌 소녀의 눈은, 내리는 싸락눈을 본 여우의 호기심이 아닌 각인에 대한 열의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미야비 씨...그 옷은..."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곧 열릴 저희 가문의 전통 의식에 대해서요."
"물론 그때에도 제가 이런 복장으로 의식을 진행하긴 할 것이지만, 그때에는 제 동료들에게도 시연해보일 것이죠."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저의 의식...안녕과 행복을 비는 호시미의 의식을, 지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눈을 빼앗겨 아무 말도 못하는 와이즈를 앞에 두고, 미야비는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매가 날고, 붉은빛 치맛자락이 뒤따라 달린다.
하늘은 흰빛으로 물들고, 땅은 붉은빛이 휩쓴다.
극명히 다른 색깔의 광명이 물들이는 천하가 만나는 곳, 그곳에서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가 춤을 춘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늘과 땅의 이름으로 그의 안녕을 비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소녀가.
다만, 조금은 부족한 듯 하다.
삐끗, 또 삐끗.
자신의 입으로 별 게 아니라고 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실수들이 이어짐에도, 미야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동작을 이어갔다.
"...어떠신가요."
결국엔 모든 걸 끝낸 미야비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마음를 애써 억누르며 와이즈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전히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긴 듯한 청년이 앉아있었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걱정이 많아보이셨던 거군요."
드디어, 와이즈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엔, 틀림없이 미소가 번져있었다.
"당신께는...더, 더 깔끔하고 예쁜 모습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당신만 생각하면 잘...안 됩니다."
"그래서, 차라리...오로지 당신만에게라도 이 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러고 싶었는데..."
"...."
자기 자신한테 실망했다는 듯,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 미야비였으나, 그때였다.
별안간 겨울이, 녹아버릴 만큼 따스한 청년의 품에 안겼다.
"와이즈 씨...?"
"그래서였군요. 그래서...그 일 때문만이 아니었군요."
"제 딴에는 미야비 씨가 편하게 준비할 수 있게 배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였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또, 또다시 미안하게도 조금만 당신의 귓가를 훔치고 싶어요."
"제게 행복을 주는 건 가문의 전통에 따라 옷을 입고 의식을 올리는 호시미 미야비가 아니에요. 공허 사냥꾼이자 6과의 과장인 호시미 미야비도 아니죠."
"앞의 모든 걸 떼고, '호시미 미야비' 그 자체가, 아름답고도 과분한 제 품속의 여자만이, 제게 안녕과 행복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려 하지 마요. 오히려, 그런 당신을 보고 있으면 제 가슴이 너무나도 시려와요."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제 옆에서 평화로이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에 대한 사랑은, 저의 유일한 사랑이니까요."
와이즈의 품속에서는,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겨울은 그의 따스함 속에서 모두 녹아내려, 오로지 호시미 미야비만이 남아있었다.
와이즈가 그리도 바라던 소녀가, 울음짓고 있었다.
울음만은 바라지 않았던 와이즈는 눈물을 닦고, 얼굴만은 방긋이 웃고 있는 미야비는 계속 그 품으로 파고들면서, 둘은 호시미 저택의 밤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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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옷을 입고 의식도 하신 거에요?"
"응. 때마침 딱 이맘때 쯤이네."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안될까요? 저랑 제 동생을 위해서라도요."
"...안 돼."
미야비는 조용히,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아직은 작은 귀를 쫑긋거리는 아이들과 놀고 있는 와이즈가 보였다.
"아직도...너무 많이 떨리거든."
To be continued...?
질문, 피드백 대환영.
오타는 '봐줘'
+ 오랜만에 제 와이프 이벤트에 얼굴 비췄길래 못 참고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나게 쓰다보니 오랜만에 9000자도 넘겨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