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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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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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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52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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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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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다룹니다.









중력이
노무 쎄서 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돌아버렸지만 이해하십시오


겁 없는
참여 정부
參與 政府 | Participatory Government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
출범 이전
이후
대통령
노무현 (16대)
국무총리
고건 (2003.02.27 - 2004.05.24)
이해찬 (2004.06.30 - 2006.03.15)
한명숙 (2006.04.20 - 2007.03.07)
한덕수 (2007.04.03 - 2008.02.29)
여당
새천년민주당 (2003.02 - 2003.09)
열린우리당 (2004.05 - 2007.02)

1. 개요2. 상세

1. 개요 [편집]

"주는 것만 받아먹고, 대충대충 살았는데 그런 사람이 감히 대통령까지 됐어.
하아.. 이거 정말 죽이는 기적?

왜냐면 딸랑 고등학교 나와서 국회의원 뱃지 달고 10년 뒤엔 대통령 당선.
어때요, 노무현 인생 정말 죽이지?"

參與 政府

참여정부 혹은 노무현 정부란, 2002년 12월 19일 김대중에 이어 회창옹을 꺾고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이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5일까지 이끌었던 정부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노무현이며, 집권 여당은 열린우리당.

국민들의 참여를 중요시했던 정부로, 탈권위주의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놓았던 정부였으나, 노무현 탄핵 소추와 대연동 파동 등의 사건사고들로 보수 진보 모두에게서 버림받았다고 할 수 있는 정부이다. 또한 정부 말기에는 박연차 게이트로 대표되는 도덕성 문제까지 제기되어 끝내 노무현의 자살로 끝이 났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극적인 최후와 민주당계 정당의 "시체팔이"로 인해 성역화가 이루어졌다.

2. 상세 [편집]

취임하는 노무현
불법 대북 송금 특검을 통해 구속된 박지원
시가를 문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1]
방사능 폐기 문제를 앞두고 가스통에 불을 붙히며 저항하는 부안군 주민들
사스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 의료진들을 찾은 고건[2]
구치소 내에서 자살한 안상영 전 부산시장[3]
노무현 탄핵 소추에 격렬히 저항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시민들
노무현 탄핵 재판에 출석한 문재인 변호사[4]
국민들에게 반성하며 삼보일배하는 추미애 최고위원[5]
이라크 근본주의자들에게 피랍당한 김선일 씨
박근혜 대표에게 열린우리당-한나라당 연립 정부를 제안하는 노무현[6]
대추리 행정대집행 직후 시위 진압을 준비하는 군인들
한미 FTA를 체결하는 노무현과 조지 부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노무현과 김정일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노무현과 정부 주요 인사들[7]
불타는 숭례문
퇴임하는 노무현과 취임하는 이명박 당선인
봉하마을로 귀향한 노무현
[1] 이라크 전쟁 시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결정하고, 훗날 사담 후세인은 미군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 받고 6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2] 사스 대유행 당시 참여정부의 사스 대응은 의심 환자 4명, 사망자 0명이란 휼륭한 성적표를 가져왔고, 우한 코로나 대유행이 진행 중인 2021년 현재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3] 안상영 당시 시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부산구치소로 입건되어 구속된 와중 자살했고, 이 외에도 남상국과 박태영 등의 고위 인사가 자살한 채 발견되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4] 이 탄핵 재판은 끝내 기각되었으며, 즉시 고건 권한대행 체제에서 노무현의 직무 복귀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훗날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되지만...[5] 하지만 추미애를 중심으로 노무현 탄핵을 추진했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은 17대 총선에서 참패를 맞이했고, 이 여파로 조순형, 김종필 등의 정치 원로들이 줄줄이 정계은퇴하게 된다.[6] 당시 노무현은 지역 주의 타파를 위해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선거 제도 변경에 한나라당이 동의해줄 경우, 열우당-한나라당 연립 정부를 구성하겠다 약속했으며, 특히 이에 한나라당이 동의만 해준다면 노무현 본인이 대통령에서 내려올 것도 고려해봤을 정도로 본인에게는 정치적 사명과도 다름없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웠고, 특히 이 대연정 파동으로 인해 열우당마저도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7] 뒤에서 또 자고 있는 재앙이가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