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인지 일반인지 굴라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영 동양 철학과 동떨어진 얘기는 아닌듯해 글머리는 기타로 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다가 얄팍하게 동양철학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보면,여러 네티즌들의 의견을 보게 됩니다.

꽤 적지 않게,동서양 사상을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태도로 한쪽 사상을 기피하는 성향이 보이더군요.

특히 종교 쪽으로 가면 "ㅇㅇ교를 믿었는데 ㅇㅇ교로 옮겼다"같은 글도 보고,그 댓글에 "저도 ㅇㅇ교가 '싫어서' ㅇㅇ교로 갔다"라고 있는 것도 봅니다.

참 안타깝죠.

왜냐면 저는 동양 철학이,서양 철학이,한쪽을 반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걸 원치 않거든요.


둘이 그럼 섞여야하느냐.그건 아닙니다.

그럼 대립해야하느냐.그것도 아닙니다.

철학이란 카테고리로 경계 없이 묶어야하냐.그러기에는 또 차이가 참 잘보이거든요.

다만 동서양 철학을 같이 배우면 확실히 재밌다,이거 하나는 확신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눈이 두개인 이유는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두 눈은 서로를 싫어하지도 않고,전혀 다른 신체 기관인 것도 아니지요.두개의 눈일 뿐입니다.

동서양 철학은 이런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오른쪽에 있어 오른쪽 것을 보고,하나는 왼쪽에 있어 왼쪽 것을 보죠.

한쪽 눈이 감기면,반대쪽 눈은 감긴 눈이 못보는걸 볼 수 있죠.같은 걸 보지만 보는 각도는 늘 다르기도 하고요.

한쪽이 못 보는걸 보고,다른 각도로 봄으로써 시야를 더 넓고 정확하게 만들어줍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 재밌게도 "적당히"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동철챈이니까 동붕이분들껜 유교의 중용,석가모니의 적당한 수행,도가의 도에 맞춰 살기 등이 익숙하겠지요.

서양에도 중용이 존재합니다.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죠.

니코마코스에서 그는 적당히,적절히 사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하였습니다.어떤 일이든 그 일에 맞게 유도리있고 적절하게 중심을 맞춰 처리하는 것.놀라울 정도로 중용과 유사합니다.

좀 더 예를 넓힌다면,공자와 소크라테스 둘 다 신과 종교를 넘는 이성적 진리를 추구했다는 점(둘 다 용모가 빼어나지 않은 머리 벗겨진 노인인데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다는 점도 재밌죠)도 있죠.

지금은 무너진 기독교 이단이긴 하지만...과거의 영지주의가 육신의 욕망을 악으로 삼고 순수한 영혼만을 추구했으며,뭣보다 영지(그노시스) 즉 깨달음을 얻어야함을 강조했던 점은 "불교의 영향이라도 받았나..??"싶을 만큼 은근한 유사성을 보이죠.


두 문화간의 교류도 꽤나 재밌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상에는 늘 불상이 놓여있었다고 하지요.

꽤 마이너한 철학자로 미국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이 분의 수필집 <월든>이 공자의 논어를 자주 인용하죠.

손자병법이 서양의 여러 군인들에게도 읽혔다는 얘기도 꽤 유명합니다.

영 떨어져보이는 두 사상이 사실은 이런 교류점도 있었다는 걸 볼때면 놀랍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며,사상가의 견해를 다른 시각으로 연구할 여지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 철학은 같이 배울수록

한쪽 사상에 극도로 심취하는 현상도 막을 수 있고,

사상간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해주며,

때로는 사상간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재밌어지고는 합니다.

사상간의 서로 다른 시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도 있지요.

어쩌면 고등학교 윤리 문제는 꽤 적절한 교육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막 여러 사상을 융합해 사이비 종교 만드는건 무섭습니다.

그것만은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