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허균의 동복 형 허봉의 아들 허친이 집에 서재를 짓고 서재 건물의 이름을 "소리를 높여 슬프게 우는 집," 즉 "통곡헌(慟哭軒)"이라고 지었음.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어이가 없는지 크게 웃으면서, 

“세상에 즐거울 일이 무척 많은데 어째서 통곡을 서재의 이름으로 짓는 것이오? 통곡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여읜 자식이거나 아니면 곧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인일 것이며,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데, 혼자 사람들이 꺼리는 글을 서재의 이름으로 짓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러자 허친은 이렇게 대답함.

“나는 (당대 조선의) 풍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당대 사람들이 기쁨을 즐길 때 나는 슬픔을 좋아하고, 세속 사람들이 기쁘고 유쾌할 때 나는 속을 태우거나 우울하다. 세상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누릴 때 기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몸을 더럽힌다고 생각하고 거부한다. 가난하고 천하게 살면서 절약하고자 하며,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과 어긋날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항상 가장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는 나를 보면 통곡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내 집 서재의 이름으로 짓는 것이다."


허친의 말을 들은 여러 사람들이 비웃자 허균이 조카 허친의 말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말함. 

"...슬픔이 일면 반드시 곡을 하는 것인데, 슬픔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단서가 여러 가지이지요... 모두 품은 생각이 있어서 운 것이지, 이별에 상심하고 억울한 마음을 품으며 하찮은 일로 해서 어린이와 여인의 통곡을 흉내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더욱 말세요, 나랏일은 날로 그릇되고, 선비들의 행실도 날로 야박해져서 친구들 사이에 배치되는 것도 갈림길이 나뉜 것보다 더하며, 어진 선비가 고생을 겪는 것도 비단 길이 막힌 것뿐만 아니어서, 모두 인간 세상 밖으로 도망해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만약... 군자로 하여금 이 시대를 목격하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는지 모르겠소. 아마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 돌을 끌어안거나 모래를 품고 투신 자살하고자 할 것이오."


그러자 비웃는 사람들은 허균의 말을 듣고 물러갔음.




출처: 《성소부부고》 제7권 통곡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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