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https://arca.live/b/arknights/57377983

1-2화 - https://arca.live/b/arknights/57492726

1-3화 - https://arca.live/b/arknights/57711735

1화 외전 - https://arca.live/b/arknights/57896660

2-1화 - https://arca.live/b/arknights/58580951
2-2화 - https://arca.live/b/arknights/58870871 

2화 외전 - https://arca.live/b/arknights/59395760

3-1화 - https://arca.live/b/arknights/60388786

3-2화 - https://arca.live/b/arknights/61796656

3-3화 - https://arca.live/b/arknights/63457721

3-4화 - https://arca.live/b/arknights/67510334


BGM - Deja Vu


한동안 엄청난 속도로 용문 외곽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오토바이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고속도로에서 벗어나더니 용문 시내를 향해 속도를 줄여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정도면 괜찮겠지. 꽤나 재밌는 작전이구만!"


이미 반쯤 넋이 나가서 토하기 일보 직전인 박사와 대조적으로 상쾌한 미소를 짓던 호시구마는 그제서야 박사가 신경쓰였는지 신호에 걸려 멈춰선 틈에 헬멧의 유리를 올린 채, 박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기, 박사. 괜찮아? 아, 헬멧은 벗으면 안돼. 교통법 위반이거든."

"...너라면 괜찮겠냐..."


대혼란을 겪어서 정신이 나간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맥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박사를 보며 빙긋 웃은 호시구마는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내가 오늘은 운전이 좀 거칠었지. 미안해. 하지만 급하게 세운 작전이라...부디 너그러운 아량으로 용서해줬으면 해."

"작전?"


넋이 나간 와중에도 작전이란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박사를 보며 말할 수 없다는 표시로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에 세운 채, 신호에 따라 오토바이를 다시 출발시킨 호시구마는 시종일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박사의 속이 뒤집어지지 않도록 달린 끝에, 자그마한 옷가게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봐. 나는 지금부터 다른 임무가 있어서, 이만."


이제 막 정신을 차린 박사를 사이드 카에서 안다시피 꺼내서 내려놓은 호시구마는 경례를 장난스럽지만 절도 있게 붙이더니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임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박사를 뒤로 한 채 오토바이는 멀어져갔고 한숨을 내쉰 박사는 가볍게 몸을 푼 다음 조용한 옷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박사를 향해 다가왔다. 


"박사, 예정보다 15분 빨랐군. 호시구마가 잘 해줬나봐?"


그 목소리의 주인공, 첸 훼이지에는 여상스럽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박사에게 손짓했다.


"첸? 그러고보니 지금 무슨 상황..."


첸을 보며 잠시 당황한 박사는 질문을 던지려고 했지만, 이내 우악스러운 첸의 손아귀에 손목을 붙잡힌 채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걸음을 옮겨야만했다.

엇차, 실례. 그렇게 끌고가던 도중에 순식간에 박사의 주머니에서 그의 단말기를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첸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켜며 박사가 기대하진 않은 대답을 꺼냈다.


"자세한 건 좀 있다가 설명해줄테니 여튼 빨리 움직이지. 일정이 당겨진 만큼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보자...어떤게 어울리려나..."

「저 옷은 어때?」

"클릭...너 보기보다 보는 눈이 없구나. 박사의 체형엔 이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그리고 파트너랑 좀 어울릴만한 스타일이 필요하겠지?"

「첸...! 에잉...결국 답정너잖아!」


안쪽에는 작은 문이 두 개가 있는 수많은 옷이 걸려있는 방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진 박사의 뒤에서 계속 따라붙었던 드론이 앞으로 날아가더니 클릭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른쪽 문이 탈의실이다. 그렇게 말하며 옷을 건넨 첸을 보던 박사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생각을 그만두고 오른쪽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사도 생각보다 옷걸이가 괜찮군...몸매도 나름 좋아진 것 같고."

「농사의...힘이야!」

"별...농사? 그래...여튼 따라붙었나?"

「현재까지는 이상한 곳만 뒤지는 걸 보면 눈치채진 못했나봐...그라니가 시간을 많이 끌어줬어.」

"...그녀의 희생이 값진 미래를 만들었군."


그렇게 한동안 그녀들의 옷 갈아입히는 인형이 된 신세가 된 박사는 마침내 와이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검은 색 재킷이라는 캐주얼 한 옷을 입은채로 자신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첸과 드론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슬슬 설명해주면 안될까?"

"아아...그래, 슬슬 말할 시간이군. 사실 그냥 별 건 아니고..."


이제 나와도 된다! 그렇게 말한 첸은 옆으로 비켜서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뒤, 왼쪽 문이 열리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사고가 멈췄던 박사는 다시 머리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ㅡ평소와 같지만 조금 더 윤기가 나는 주황색 생머리

ㅡ옅게 화장이라도 했는지 조금 더 선명해진 눈가와 붉은 입술, 그리고 하얀 얼굴

ㅡ입은 옷은 지금 현재 입은 옷과 거의 비슷한, 말하자면 커플룩인 하얀 와이셔츠, 청바지...그리고 검은 재킷.

ㅡ...근데 딱봐도 명품이라고 주장하는 저 핸드백은 누구의 물건인가...?

ㅡ어쨌든 오늘은 그렇다면...

ㅡ맞다...선물도 하나 사주기로 했었지.


"저, 저기...어떻나...? 내 좀 괜찮아 보이나?"

"자, 어서 말해라...박사!"

「역시! 넋이 나갔구만!」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눈 앞에서 수줍어하는 그녀를 본 박사는 자신 바로 앞까지 온 백파이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줍게 웃으면서도 손을 맞잡은 백파이프와 함께 박사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보며 김샜다는 듯 픽 웃은 첸은 드론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럼, 네 실력을 믿겠다."

「나에게 맡기라고!」


그렇게 자그마한 드론이 밖으로 나가서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마지막으로 옷가게 밖으로 나와서 문을 잠근 첸은 자신의 검 적소를 허리춤에 매달고 조용히 그들과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어디부터 갈지, 고민하던 박사의 옆에서 그의 손을 잡은 백파이프는 잠시만, 하고 손을 부드럽게 빼내더니 조금 더 박사와 밀착한 상태로 핸드백을 열어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바로 옆에서 바짝 붙은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백파이프와 함께 그녀가 꺼낸 첫 번째 종이를 보던 박사는 소리내서 제목을 읽었다.


"연인을 위한 가장 완벽한 데이트 코스, 대중교통을 이용한 용문 추천 10대 명소...그리고...이 봉투는..."

"첸 햇아가 잡지에서 떼왔다. 시간표도 이리 짜줬으니 그대로 가믄 된다더라. 아 거기는 티켓이 있다고 했다! 잘 챙기라."


그렇게 말한 백파이프는 뒷 종이를 꺼내서 내용을 보여줬고, 봉투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그것을 읽은 박사는 다 외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다 외웠나? 박사 똑똑하다!"

"이정도는...뭐...그럼, 우선 여기에 적힌 관광지부터 갈까?"


박사의 말에 종이를 집어넣은 백파이프가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은 채 둘은 처음에 적혀있던 관광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소원이 이뤄진다는 커다란 절에 가서 소원도 빌고, 용문 최대 크기라는 동물원에 가서 수족관도 관람하고, 백화점에서 인형을 서로 껴안아본다던가 하면서 오전의 일정을 마친 그들은 마찬가지로 추천하는 집이라고 적혀있던 식당에 들어가서 추천 메뉴를 시켰다.

이내 메뉴가 나왔고, 자신의 앞에 놓인 볶음밥을 보던 백파이프는 숟가락으로 크게 뜨더니, 자, 아앙♡ 그렇게 말하며 박사에게 내밀었다.

숟가락을 받아들려고 손을 내민 박사였지만, 그녀에게 손등을 몇 번 맞자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박사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벌렸고,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식사를 마친 그들은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2시인가...생각보다는 일정이 촉박하네. 그렇다고 해도 볼만한 건 제법 많았어."

"특히 절이 커다랗드만! 저런 건 언제 만들었나 궁금하다!"

"적힌 바에 따르면 되게 오래되었다고는 하던데...그때도 저런 기술력이 있었구나 싶어."

"근데...조금 시끄럽지 않드나."

"그랬지, 누군진 몰라도 몰상식하게 막 큰 소리도 나고...어디서 들은 목소리 같기도 한데..."


눈을 찡그린 박사는 어디서 들었는지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를 떠올리려다가 별 것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 백파이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물원도 꽤나 괜찮았어. 수족관도 커다랗고..."

"아, 그래! 근데 바다는 좀 걱정이 된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누구드라..."

"아마 어비셜 헌터즈들 아닐까. 스카디라던가, 글래디아라던가...스펙터라던가..."

"내랑 있으믄서 다른 여자 얘기하나? 못됐다."


흥, 하고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짐짓 삐졌다는 척을 하는 백파이프를 보며 박사는 손바닥을 뻗어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백파이프는 상체를 숙여 머리를 손바닥에 갖다댔고, 이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박사의 손길을 느끼며 빙긋 웃더니 말했다.


"이걸로 봐주겠사. 담에는 어림도 없다."

"네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하하, 전혀 반성하는 티도 안 난다!"


그렇게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던 것도 잠시, 가게의 뒷편 골목에서 무언가가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놀란 가게 사람들을 진정시키던 사장이 종업원들을 불러서 밖에 나가라고 시키는 것을 본 백파이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늘따라 먼가가 소란스럽다. 수족관에서도 그랬구...모처럼인데 분위기를 다 망치는 것 같지 않나."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난 너랑 이렇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박사 자신이 놀랄 정도로 진심을 담아 말한 말에, 백파이프는 얼굴을 붉히더니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내도 그렇다. 같이 있으믄 충분하다...앞으로도 쭉."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했는지 얼굴이 아까보다 더 붉어진 그녀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한 박사는 짖궃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문득 본 백파이프도 앗차,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사의 뒤를 따랐고, 그렇게 둘은 서로 팔짱을 낀 채, 가게 밖으로 나가서 다음 코스로 향했다.

...아까의 커다란 소음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린채로.


첸이 실수한 것이 있으니, 제 아무리 운동을 하더라도 박사의 체력은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서진 못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도중에 묘하게 소란들이 자주 일어나서 피곤한 탓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것을 감안해서 짠 일정도 결국 한계를 넘어선 박사의 체력을 채워줄 순 없었다.

결국 오후의 일정 중 절반도 소화하지 못한 박사는 3시 30분부터는 거의 카페에 앉아서 백파이프와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도중에 묘하게 익숙한 오토바이가 밖을 지나가거나 하면서 박사의 신경을 분산시켰지만, 그럼에도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던 백파이프를 보며, 기력을 조금 회복한 박사는 그녀와 함께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화려한 폭죽들이 터지고 있는 야간 개장한 용문 최대 사이즈의 놀이공원이였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은 백파이프는 박사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기, 빨리 줄 서야한다! 벌써 8시다!"

"아, 잠시만 아까 봉투 안의 티켓을 보니까 이건 애초에 놀이기구용이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엥? 하고 백파이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박사는 봉투 안에서 티켓 두 장을 꺼내서 조명 밑에서 읽어주었다.


"그러니까...VIP 전용 관람차 이용권...줄을 안 서도 된다네."

"요즘 놀이공원은 다 이렇더나?"

"글쎄...나도 사실 와본 기억은 없어서, 그런데 이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 잘 모르겠네."


어쨌든 매표소로 가서 보여주자, 그렇게 말한 박사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백파이프는 조금 더 강하게 박사의 손을 움켜쥐었다.

속으로 이미 시뮬레이팅 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물론 앞서 가던 박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에게는 다행히 그 티켓은 기한이 지났다던가, 사용할 수 없는 가짜였다던가 그런 건 전혀 아니였고 매표소에서 받은 팜플렛에 따라 관람차에 도착한 박사와 백파이프는 바로 올라탈 수 있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렇게 하루 종일 고생한 듯한 직원의 힘없는 미소와 배웅을 뒤로 한 채 관람차는 조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라가는 관람차 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제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이라도 굉장하다고 생각할 만한 그야말로 절경에 가까운 경치였다.

누가 봐도 번영했다는 것이 보이는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멈춘 박사는 아까부터 자신의 팔에 바짝 붙은 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표정을 굳힌 백파이프를 향해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긴장했다던가...높은 곳이 싫어?"

"엥! 아, 아니다. 그..."


박사의 말에 깜짝 놀랐는지 관람차가 순간 흔들릴 정도로 동요한 백파이프는 그의 말에 크게 대답하더니 숨을 잠시 들이쉬다가 내쉬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동안 긴장을 풀려는 듯한 모습을 박사가 유쾌하게 지켜보던 끝에, 백파이프는 마침내 크게 한숨을 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생각..."


물론 그리 가까이 붙어있는데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탓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듣지 못한 박사는 뺨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응? 뭐라고? 잘 안 들려서..."

"...으...으으...그러니까..."

"어...그래서?"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했는지 백파이프는 큰 소리로 외쳤다.


"박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박사를 사랑한다! 나랑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


물론 그 뒤 아, 아차! 하면서 입을 가린 백파이프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고 라플란드에게 맞은 정도의 침묵에 빠졌다.

한편,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격을 맞은 박사는 순간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지만 곧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팔에서 백파이프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은 채, 그동안 함께한 추억들을 떠올리던 박사는 관람차가 꼭대기에 막 도착한 순간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렇지. 나는...그러니까...음...비록 말이지. 우리가 여태까지 사실상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면...사실상 연인이나 다름없는...그런 행동들이였지."

"그렇다고 해도...그걸 정식으로 선언하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그렇지. 음..."

"여튼...그, 내 대답은..."


그렇게 잠시 숨을 멈추고, 찰나지만 영원같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감각의 끝에 마침내 박사의 입이 열렸다.


"그래. 그리고 앞으로...서로를 좀 더 많이 알아가자. 결혼까지 하려면 필요하지 않겠어?"


박사의 대답에도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백파이프.

그런 그녀의 반응에 걱정된 탓에 상체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 박사는 리유니온을 처음 봤을때의 충격의 정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저기...왜 우는거야?"


그 말에 마침내 고개를 든 백파이프의 얼굴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눈물 방울들로 화장들이 번져서 엉망이 되어있었다.

놀란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박사를 옆에 두고 한동안 조용히 흐느끼던 백파이프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꿈이...아니제...? 꿈이라믄 깨워도..."


저도 모르게 백파이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 박사와, 그런 박사를 보며 눈을 감는 백파이프.

마침내 둘의 실루엣이 겹쳐졌다.


...첫 키스는 약간의 짠 맛과 부드럽고도 따스한 맛이 났다.

나중에 박사는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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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이 번진 탓에 이대로는 못 내리겠다는 것을 깨달은 백파이프는 재빨리 얼굴을 핸드백에서 꺼낸 물티슈와 손수건으로 닦았다.

늘 보던 얼굴로 돌아온 것을 깨달은 박사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백파이프의 뺨을 장난스럽게 잡아당겼다. 


"아야야, 히잉...아프다!"

"사실 안 아프잖아."

"...잡아댕긴 뒤엔 뽀뽀 잊지 말그라. 알겠제?"


이러면 되냐, 그렇게 아까 잡아당긴 그녀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 박사와 행복한 미소를 짓는 백파이프.

마침내 관람차가 땅에 닿고 열린 문 밖으로 먼저 나간 백파이프는 손을 뻗어 내리는 박사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팔짱을 낀 채로 놀이공원 밖으로 나온 그들의 뒤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박사를 뒤로 숨긴 채 경계 하던 백파이프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황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클릭 햇아가?"

「물론이지...난 계속 함께하고 있었다구...?」

"클릭?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야 둘이서 꽁냥꽁냥 하느라 바빠서 그랬겠지...아님 이 드론의 스텔스가 빛을 발했다던가...」


드론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묘하게 지친듯한 클릭의 목소리에 박사가 무어라 더 말하려던 찰나, 드론은 앞장서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쪽에 차를 갖다놨거든...원래는...호시구마씨가 너희를 데리러 갈 예정이였는데...하암...나도 여기까지만 할거야...키는 경비원에게 맡겼구...첸첸의 이름을 말하면 돼...」


그렇게 흐느적거리며 날아가던 드론은 곧 누가 봐도 나 유료주차장이요, 그렇게 말하는 곳에 도착하더니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세단 위에 올라간채 작동을 멈췄다.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던 것도 잠시, 백파이프가 드론을 챙기는 동안 박사는 경비원에게 첸의 이름을 말하고 키를 받아와서 차 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 위에 이건 뭐지?"

"아. 그거 내가 안다! 그거는 뭔가 올릴 때 쓰는거다. 루프랙이라고 하는건데 오토바이나 자전거, 그런거!"

"그래...? 음...그렇구나."


차 위에 무언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박사가 중얼거린 말에 대답한 백파이프는 뒷좌석을 열어 드론을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운전석에 앉은 박사는 조수석에 백파이프가 앉자 안전벨트를 직접 매주는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더니 시동을 걸고 페달에 발을 올렸다.

천장이 묘하게 휜 것 같지만, 이내 부르릉, 작게 소리를 내며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백파이프가 신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박사는 운전도 할 줄 아나?"

"예전에 배웠어...호시구마한테."

"아, 맞다 바이크도 탔댔나? 여튼 그럼..."


하암, 하고 하품을 한 백파이프는 빙긋 웃더니 눈을 감고 말했다.


"내는 조금 졸리니까...잔다...아 입맞춤 정도는 용서해주께. 얼마든지 괜찮다."

"...뭐?"


황당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본 박사지만, 오늘 유독 신경쓸 일이 많았던 백파이프는 눈을 감고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게 보며 픽, 하고 웃은 박사는 운전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전벨트로 인해 유독 강조되는 곳은 가능한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앞날에 대한 기대를 안은 커플을 실은 채 세단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와이번 소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뿌린 연애라는 씨가 마침내 결실을 맺어 수확한 계절, 가을.

일주일 전 회의에서 묘한 태도를 보이던 켈시와, 아미야, 그라벨, 플래티넘, 실버애쉬.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박사.

그러나 커플들에게 다가오는 겨울은 생각보다는 덜 혹독할 것이다. 누가 그랬는지, 어째서 그랬는지, 그것은 어쨌든 나중의 일.

마침내 이루어진 와이번 소녀의 꿈을 미소지으며 지켜보듯, 두 개의 초승달이 서쪽으로 움직이는 밤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감자 소녀와, 쫓아온 가을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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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돌아온 그 뇌절 시리즈

뇌절이라고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셈 내가 이만큼 길게 써본 적이 잘 없음...

다음 화는 나올지도 안 나올지도 모름


피드백 언제든지 환영

아니 꼭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