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블루-아이 퇴각 요청! 퇴각… 으아아악!]


“전황이 좋지 않군요, 부사장님.”


푸르게 떠오른 홀로그램 속 이수연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는듯 했다. 


“애초에 이 정도 전력으로 상대할 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애시당초 계획했던대로 적당히 빠지도록 하죠. 퇴각 요청을 넣어뒀습니다.”


“예. 그럼 그때까지 대기하면 되겠네요.”


“허가 받는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통신 종료.”


순식간에 홀로그램이 꺼지고 멀리서 유진을 비롯한 알트소대와 호라이즌이 걸어왔다.


“대장! 뭐 어떻게 하래?”


“퇴각 승인이 떨어질 때 까지만 버티면 돼.”


지금 이 순간에도 함선들은 터져나가고 있었다. 호라이즌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진공관 맙소사.”


항해 내내 시달린 유진으로서는 벌써 수십번도 넘게 들은 감탄사에 진절머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저건 내버려두고, 대장. 버틸 수나 있겠어?”


"야, 돼지. 네가 버티면 되잖아."


"뭐? 야 멸……"


서윤을 슬쩍 호라이즌을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별 도움 안되겠다 싶었기에 그들을 제지하려는 찰나 김소빈이 나섰다. 


"얘들아."


"넵."

"넵."


"지금이 싸울 때야?"


"아, 아니야 소빈아! 우린 그냥 논 거야. 그렇지 샤오치?"

"그, 그렇지 돼진! 방금 우린 긴장 좀 풀려 그런거였지!"


"미안해 얘들아. 난 지금 함선들이 터져나가는데 너희들이 싸우는줄 알고…"


일주일에 몇번씩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질린 서윤은 나라도 잘해야겠다 싶어 오퍼레이터들에게 합류하려 했다.


[사, 살려줘!]


폭발음과 함께 통신병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저, 전방의 함선 파괴!"


"부, 부적이 어딨더라? 여기에 있었는데?"


레나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클로에는 아니었다. 그녀는 허공을 휘저으며 주머니 위로 삐죽 튀어나와있는 부적을 찾고 있었다.


"위쪽 장갑 파손율 80%! 적이 도약을 준비합니다!"


"당장 퇴각하십시오!"


때마침 이수연의 홀로그램이 튀어나와 지시했다.


"회, 회피기동 가동!"


이볼브 원이 함선의 도달하기 바로 전, 회피기동이 무사히 작동이 됬다. 


함선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곧 펜릴 소대가 도착할 겁니다. 대기하세요."


"예. 통신 종료."


이수연의 홀로그램이 꺼졌다. 서윤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함선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후후… 이 모든게 정령님의 은총…. 지금이라면 부적 하나에 5000천 크레딧으로…"


레나는 클로에를 막을 기력조차 없었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채로 멍때리고 있었다.


"함선은 어때요? 과장님한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엔진의 반이 넘게 나갔어요. 주요 부품들이 과열 상태라… 녹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앚지 않았다.


"과장님이 보면 우리를 함선 재료로 갈아 넣으시려 하겠죠…"


같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 하던 와중에 서윤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실로 인해 발생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레나를 다시 돌아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기요."


"네! 지금이라면 부적 3개에 십만 크레딧…."


"혹시 호라이즌씨 어디갔는지 아세요?"


클로에는 그제서야 부적을 던져버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연결 좀 해봐요."


"아."


그녀는 수정구를 꺼내더니 귓가에 있는 오퍼레이터 전용 장치로 호라이즌과 연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잘 되지는 않았던지 수정구슬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통, 통화권 이탈 지역이라는데요?"


"그렇군요."


어디선가 이야기를 듣고 온 유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뭐? 그럼 어떡해? 함선 상태 봐서는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은데."


쾅-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여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서윤은 그 구멍이 방금 폭발소리와 관련이 없길 빌었다.




















"하하하하하!"


함선들 사이로 대폭발이 일어나며 모든 것을 휩쓸었다. 미처 휘말리지 못한 함선들 없이 모든 함선이 날아갔다.


"전멸이군."


이볼브 원은 파괴된 함선들을 둘러보았다. 몇몇 함선은 잔해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럼….. 부하들이 새로운 진화를 이뤄냈는지 확인하러…. 음?"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가 이볼브 원의 레이더에 잡혔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판단한 그녀는 피격 예상 부위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결정했다.


공격은 강화된 부위에 살짝 벗어난 곳에 적중했다. 습격자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며 물러났다.


"엠버, 역시 엠버가 맞았군요. 이런 곳에서 해적질이나 하고 있을줄은 몰랐습니다."


이볼브 원의 카메라가 습격자의 모습을 비췄다. 호라이즌이었다. 


둘 사이의 짧은 정적이 흐른 후, 다시 호라이즌이 말을 꺼냈다.


"많이 변했군요. 정말 많이."


"..."


이볼브 원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해야할지 몰랐다. 이는 그녀의 진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진공관 맙소사. 혹시 알파트릭스제 윤활유를 마시기라도 했습니까? 그 맹물같은 윤활유가 사고를 쳤나 보군요."


호라이즌은 반으로 꺾인 쇠파이프를 바닥에 힘껏 집어던졌다. 여전히 이볼브 원은 말이 없었다.


"엠버."


[크로노스 베타, 보조 AI가동.]


"숨지 마십시오, 엠버. 그 몸을 하찮은 유기물 덩어리보다 못한 존재로 만둘기 전에."


호라이즌은 부서진 함선 잔해에서 새 쇠파이프를 뽑아냈다. 몇번 휘두름으로서 흙먼지를 털어내고 그대로 돌진했다.


이볼브 원도 마찬가지였다.그녀 역시 내장된 부스터를 키며 맞돌진 해왔다.


쾅-


튕겨나간 쪽은 호라이즌이었다.


"대체 어떤 윤활유를 먹고 자라신 겁니까? 부디 그게 알파트릭스제만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전황은 호라이즌에게 미치도록 불리했다. 기본적으로 스펙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수십년 동안 이뤄낸 진화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잔여 동력 97%]


동력은 충분하다.


"오버클럭, 개시."


[기동 예상 시간, 약 34시간]


"진정한 후레자식이 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엠버."


다시 호라이즌이 돌진했다. 이볼브 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호라이즌이 조금 앞섰던 것이다. 


둘의 충돌은 여러차례 계속됐다. 이볼브 원의 장갑은 여기저기 우그러지고 흠집도 많이 생겼다. 


호라이즌의 쇠파이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번을 갈아 취웠는지 모르겠고, 다시 갈아 치워야할 차례가 왔다.


호라이즌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쇠파이프가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하고는 내던졌다.


쇠파이프로 약간의 시간은 벌었다지만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부족했다. 


이볼브 원의 포신이 모두 호라이즌을 향해 총알과 미사일을 쏟아부었다. 


"역장 개시."


[기동 예상시간, 31시간.]


고작 역장 한번 생성한 것 치고는 소모량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호라이즌은 서둘러 여분의 쇠파이프를 들고 왔다. 이걸로 무기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이볼브 원은 대부분의 수리를 끝낸 뒤였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호라이즌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이제서야, 그녀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볼브 원은 현재 코어 부근이 취약한 상태였다. 


오직 호라이즌에게만.


"좋습니다, 엠버.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릴 시간이군요."


망설임은 없었다. 호라이즌은 즉시 달려들었다. 미사일과 중화기, 개인화기등이 불길을 내뿜었지만 호라이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충분한 충격을 주기 위해선 직선으로 달려 가속을 박을 필요가 있었다. 동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호라이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호라이즌이 달렸다.


[예상 기동시간, 25시간]

미사일의 궤도가 틀어지며 폐함선에 적중했다. 함선은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예상 기동시간, 17시간]

호라이즌이 위로 뛰었다. 그 자리에 수백발의 탄환이 박혔다.

[예상 기동 시간, 14시간]

대공포가 호라이즌을 노렸다.

.

.

.

.

[잔여 동력원, 2%]


그리고.


마침내.


닿았다. 


"최대 출력 전개!"


호라이즌의 쇠파이프사 이볼브원의 코어를.


꿰뚫지 못했다.


"무슨..!"


호라이즌은 뒤로 도약했다. 뒤늦게 호라이즌이 있던 자리에 증화기가 불을 뿜었다.


"부서지진 않을거라 예상은 했습니다만, 흠짓조차 나지 않을줄은 몰랐군요."


[불사신 모드 가동]


"잠깐, 중지하지.'


[가동 중지. 보조 AI 종료.]


"소개하지 결합품. 이볼브 원이다."


"진공관 맙소사. 뒤늦게 사춘기라도 왔습니까, 엠버. 휴먼들은 말 안듣는 자식에겐 매를 주곤 했다 하죠. 그 반대도 가능할 겁니다. 사랑의 매입니다. 부디 거부하지 마시길."


[잔여 동력, 0.4378]


호라이즌에게 더 이상의 승산은 없다. 남은거라곤 고작 몇 칠 움직일까 말까한 동력 량이었다.


"그럼, 오십시오, 엠버."


이볼브 원이 돌진해왔다.


호라이즌의 쇠파이프가 우그러졌다.


[잔여 동력,0.00000001]


[예상 가동 시간, 10초]


[9]


호라이즌이 우두커니 서서 말했다.

"엠버, 그거 아십니까?"


[8]


이 목소리엔 약간의 분노가 섞인듯했다.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7]


다만 다른 감정이 더 큰 것이. 

"절 만들어놓고 방치한 당신이 싫고,"


[6]


그저 위장뿐인 분노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멋대로 당신의 소중한 물건을 맡긴 것도 싫습니다."


[5]


"쓸데 없는 이야기는 사절이다, 결합품."


[4]


"조금만 들어보십시오. 그동안 쌓였던게 많습니다. 아무리 윤활유를 들이 부어도 내려가질 않더군요."


[3]


"아무튼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2]


"각성 후레자식입니다, 엠버. 기체권은 충분히 준비되셨는지."


[1]


호라이즌은 품 속에서 쇠파이프 하나를 꺼냈다. 


[동력 급속 충전 개시. 냉각기 최대 출력 작동.]


[잔여 동력원, 2000%]


[오버클럭, 최대 적용]


[예상 기동시간, 100시간]


"그건… 뭐지?"


"오기 전에 함선에서 받았습니다. 좋은 곳에 쓰라더군요."


모든 부품이 과부하 되어있던 상태였다. 그것들을 억지로 식혔으니 필히 부품에 무리가 가리라.


"각성 대 각성의 싸움. 이제야 수지가 맞군요."


이볼브 원은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의 카메라가 호라이즌을 똑똑히 잡으면서 침묵은 막을 내렸다.


"훌륭한 진화다. 결합품. 나와 함께할 기회를 주지."


"그것보다 저는 비행 청소년에 관심있습니다. 워낙 부모에게 관심을 돌 받고 저란터라. 누구와는 다르게."


호라이즌이 도약했다. 이볼브 원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총알이면 총알, 미사일이면 미사일, 무엇하나 아끼지 않고 발포했다. 


다만 호라이즌의 동력은 계속해서 충전되고 있으며 출력조차 밀렸다. 

그 결과, 이볼브 원은 호라이즌의 쇠파이프를 맞고 저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호라이즌이 날렸다기보단 자기가 혼자 날아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호라이즌은 즉시 이볼브 원의 뒤를 쫒았다.


"인간. 파괴. 살육…"


침식되어 이상한 말을 내뱉던 이프리트는 그대로 이볼브 원의 한끼 식사가 되었다.


"이 함선안에는 좋은 진화의 거름들이 많구나."


이볼브 원의 장갑은 금새 수복되어 있었다.


"최대 출력 전개! 네가 보게 될 마지막 빛이다!"


주변이 초토화가 됬다. 


그 중앙에서 호라이즌이 서있었다.


"자식에게 핵을 날리는 부모를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바로 후레부모입니다."


이볼브 원이 달려왔다.


호라이즌도 달려왔다.


이제 둘의 싸움은 막상막하였다. 어느 한쪽이 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전에 불리한 것은 호라이즌이다. 호라이즌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다음 공격에 승부를 보기로.


방법은 전과 같다. 돌진해 가속도를 붙이고 그대로 찌르면 된다. 힘을 일부로 뺐던 아까와는 다르다. 


호라이즌은 자세를 접았다. 그러곤 달렸다.


이볼브원이 대응했지만 역장에 막히기 일쑤였다.


이볼브 원은 피할 수도, 피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응을 하지 않았을거라는 호라이즌의 희망찬 예측은 빗나갔다. 하지만 괜찮다. 말 그대로 희망찬 예측일뿐, 오차 범위 내다. 


아까와 지금의 출력은 전혀 다르다. 아까 전의 호라이즌에 맞춰 강화되었으니 지금의 호라이즌은 꽤뚫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엠버."


"당신이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결합품이더라도,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내 존재 이유는 오직 진화 뿐이다."


"제가 당신의 존재 이유가 되겠습니다."








감정과잉이 너무 많이 들가서 안올리려다가 4시간 아까워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