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21편에서 ‘9번’이 ‘로켓’에게 여우구슬 부적을 선물했으나,

22편에서 등장인물 전부가 ‘나인(9번)’이 ‘로켓’을 모른다는 것을 가정하고 토론을 하는 오류가 발생했었습니다.

해당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오타나 설정오류 지적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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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우스가 정박한 다음 문이 열렸고, 테디베어의 일행은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씩을 마주했다. 일행이 가진 정보에 따르면 남자는 농장주의 남편일 것이었고, 여자는 농장주가 아닐 것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은빛 쉼터에 찾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 이름은 실버 샤프슈터입니다. 성은 아내로부터 받은 거라서 이름과 관계없이 제 사격실력은 별로고요.

원래는 더 긴 환영인사와 선물을 드려야 하지만, 상황이 급하니 먼저 입항 절차부터 진행해주세요. 여기 계신 저희 직원분이 절차를 도와줄 겁니다.

진행 절차를 마친 분은 이쪽의 차량에 장비나 기타 필요한 물건과 함께 탑승하시면 됩니다. 대형 장비를 위한 짐칸도 달려 있으니까요.”

 

“테디베어 하트워밍입니다. 알겠습니다.”

 

두 남자는 악수를 하고 실버는 큰 차량의 운전석으로, 테디베어는 ‘저희 직원’ 에게로 향했다.

루미의 ‘급한 상황이라지만 태도가 좀 무례한 거 아닌가요?’ 라는 말이나,

나인의 ‘표정을 읽어보면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 같네요. 도와주러 온 입장인데 그런 건 따지지 않기로 해요.’ 같은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일행 앞의 은빛 쉼터 직원 이름표를 달고 있는 홀스타우루스 여성은 개의치 않은 듯 웃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말랑이라고 해요! 저한테 신분증하고 가져온 물건 목록을 보여주시면 끝나요.”

 

테디베어부터 신분증을 제시하고 화물 목록을 보여주고, 그 뒤로 물방울, 그리스, 나인, 플러피, 아로마가 순서대로 따랐다. 플러피와 아로마는 이전에 옷을 구매하러 갔을 때 시민 등록을 마쳤기에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고, 물방울과 테디베어의 교육에 따라 신분증이 요구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어라? 한 분은 아직 신분증을 안 보여주신 것 같은데요?”

 

“아, 루미는 신규 생산된 오토마톤이라서요.”

 

“아하! 실례를 했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름은 적었고, 내부에 수납하신 게 뭔지 알려주시면 돼요!”

 

“네, 먼저.......”

 

루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신에게 설치된 장비들에 대해 직원에게 설명하기 시작하며 생각했다.

 

‘주인님께서 대신 설명을 해 주셨네. 그럼 앞으로 힘내서 신분증을 얻어야지! 이런 어색한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말이야!’

 

그렇다. 인간과 몬무스들의 만남 이후에 ‘생산 및 제조’ 된 오토마톤들은 ‘신규 생산’ 이라는 도장이 찍힌다. 기존의 정체불명의 고대 종족이 만들어낸 원래의 오토마톤들은 인간과 몬무스들의 긴 토의와 협력 활동을 통해 다른 인격체들과 똑같이 대우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구와 몬무스 차원의 재료, 인간의 인공지능, 오토마톤들의 자체 분석을 통한 기체가 합쳐져 탄생한 신규 오토마톤들을 인격체이자 시민으로 대우해줄 경우 인간들이 자체적으로 금지한 복제인간 생산 규칙에 어긋나기에 아주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1기가 생산되는 신규 오토마톤들은 아직 신분증을 지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과 가정을 꾸렸거나, 기존 오토마톤과 인간이 결혼하여 아이를 만들기로 했을 때, 아내의 지식을 기반으로 새 오토마톤 아이를 ‘조립’ 하는 경우에는 오토마톤 아이도 인격체이자 시민으로 인정받아 신분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루미의 생각은 곧 ‘주인님과 결혼해야지!’ 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다시 소지품 점검을 하는 직원에게로 돌아오도록 하자.

 

“무기가 많긴 하지만 보안관님을 도와주시려면 그 정도는 필요한 거겠죠~ 그럼, 마지막으로 살균 소독을 해 드릴게요. 양팔 벌리고 서 주세요. 어, 물방울 씨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제가 직접 할 수 있어서 따로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네에~”

 

하트워밍과 루미, 그리스는 평범한 소독 절차대로 말랑이 뿌려주는 소독약을 맞고 농장주의 남편이 모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플러피의 경우에는 배-꼬리 부분이 땅에 닿아 있으므로 미리 준비된 몸이 긴 종족들을 위한 침대에서 몸을 굴리며 소독해야 했다. 아로마는 뿌리이자 다리 부분이 화분 속에 묻혀 있으니 잠시 뿌리를 들고 소독약을 맞았다.

 

“모두 타셨죠?”

 

“네. 확인할 게 더 있습니까?”

 

“아, 혹시 우주선에 놓고 오신 장비가 나중에 필요해지면 다시 가지러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괜찮습니다. 필요하다면 우주선에 있는 드론들이 가져와 줄 테니까요.”

 

“좋네요. 그럼 제 사무실로 출발하겠습니다.”

 

큰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돌하우스의 선원들은 창 밖을 구경했다.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체험과 견학 시설, 다른 행성으로의 수확물 배달을 위한 포장과 운송 시설, 농부들이 쉴 수 있는 여가와 거주 시설, 그리고 아주 넓은 농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광경에 익숙한 인원은 아무도 없었기에 모두 바깥 구경에 열중했고, 실버도 그것을 방해하기 싫어서인지 사무실 밖에서 일 이야기를 하기 싫어해서인지 조용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도착했습니다. 물건들은 1층 창고에 보관하시면 되는데, 내리는 걸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저희끼리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또 사무실에 가면 회의를 해야 할 텐데 먼저 들어가서 회의 준비를 해 주시면 좋을 거 같거든요.”

 

“아아, 네. 그렇게 하죠. 1층 중앙에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찾아오시는 게 어렵진 않겠지만, 혹시 잘 모르시겠다면 곳곳에 있는 건물 지도에서 회의실이 위치한 곳으로 오세요.”

 

“네, 조금 이따가 다시 보도록 하죠.”

 

실버는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로 이동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 건물에는 따로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하트워밍과 일행은 각자의 짐을 들고 창고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휴우, 다시 고용된 기분이네. 말투가 너무 딱딱하지는 않았겠지?”

 

“실버 씨가 불편하셨다면 따로 이야기하셨을 거에요. 이제 오라버니께서는 연합의 얼굴이기도 하니까, 좀 딱딱한 느낌이라도 예의를 차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겠네. 계속 이렇게 해야지. 다들 감상은 어때?”

 

“농부 공동체라니 정말 신기해요! 저는 맛을 느끼는 거에 관해선 잘 모르겠지만, 신선한 재료로 요리해 보고 싶어지네요.”

 

“아직 행성 전부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크기라니, 나중엔 얼마나 커질지 궁금해지네요. 이 정도로 넓은 곳에서 동식물들을 키우고 있다면 아마 생물학 연구소도 있겠죠?”

 

“진짜 크네요! 저는 기계들이랑 친해서 농부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대단한 거 같아요. 음, 그리고 이렇게 넓으면 로봇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 창 밖에는 농사를 돕는 로봇은 없어 보였어요. 나중에 따로 이유가 있는지 물어봐야겠네요.”

 

“아까, 나처럼 하얗고 복슬거리는 사람들 봤어. 그런데 나처럼 꼬리는 없었어. 음....... 여기서, 여러 가지 커다란 동물도 키우고 있었어. 그럼 사냥 안 해도 고기 먹을 수 있는 거네.”

 

“땅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어요. 그게 저, 농작물들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저는 아직 본 적 없는 마계의 식물들이 내뿜는 무언가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실버 씨의 말과 행동으로 분석해보면, 정신적으로 많이 고생하고 계신 것 같았어요. 이런 상황에선 가진 식재료를 보내 주신 걸 감사드리기도 어려우니, 얼른 일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런 거 같았어요. 이 정도 크기를 가진 곳에서 해충 손해를 입었다니 숫자도 어마어마할 거 같은데,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짐을 다 옮긴 뒤에, 회의실로 이동하려던 하트워밍은 두리번거리는 그리스를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찾고 계신 게 있나요?”

 

“아니요, 그게....... 여기 문이 저희가 들어올 때도 안 잠겨있었는데 이렇게 나가면 도둑맞는 거 아닌가 해서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물론 여기 농부분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잠그는 열쇠도 따로 안 주고 가셨으니까....... 방울아?”

 

“네, 오라버니!”

 

물방울은 둘로 쪼개져 코어가 없는 덩어리가 일행이 내려놓은 장비들 위로 이동했다.

 

“이러면 문제 없을 거에요. 농기구나 비료도 없는 걸 보면 공용 창고는 아닌 거 같지만, 그리스 씨가 불안하시면 가서 창고 열어놔도 문제없는지부터 물어보기로 하고 출발합시다.”

 

“엇, 네!”

 

“오라버니, 그럼 잠깐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물방울은 대답을 듣자마자 구체 형태로 변해 하트워밍의 품속에 안겼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인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만져주면 얼마나 좋길래? 아니, 그 전에. 인간 ? 슬라임 혼혈인가? 아들은 인간으로, 딸은 슬라임으로 태어났나? 어떻게 슬라임의 오라버니가 인간일 수 있지?’

 

물론 나머지 인원들도 자칭 여동생을 쓰다듬는 하트워밍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근처에 있었다면 나인과는 사뭇 다른 눈길과 생각들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회의실의 문 앞에 도착한 물방울은 꽁꽁 압축해둔 몸을 다시 풀고 소녀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초면인 사람 앞에서까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기도 했고, 상대에게 아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등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창고 문이 안 잠겨서 방울이, 그러니까 이 작은 슬라임 소녀의 절반을 창고를 감시하려고 두고 나와야만 했거든요. 따로 잠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회의실에 의자와 과일 접시를 준비해둔 농장주의 남편, 실버는 한숨을 살짝 쉬려다 예의가 아님을 알아차리고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크흠. 사실, 그게 지금 문제가 심각해진 가장 큰 이유죠.”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긴 이야기가 있고, 저도 아내와의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이 급한 상황이니 그림 자료와 함께 짧게 설명해 드릴게요.”

 

실버는 회의실 대형 탁자 중앙에 놓인 영사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실버를 2등신으로 작게 표현한 그림과 비슷한 키의 저격소총을 든 큐피드 마계총사의 2등신 그림이 나타났다.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던 곳 출신인 플러피와 게임을 좋아하는 아로마는 눈을 빛내며 영사기에 집중했다. 실버는 ‘이건 저랑 제 아내입니다.’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시점에는 눈을 빛내고 있는 둘 빼고는 이미 ‘당연히 그러시겠지.’ 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다양한 곳에서 활약한 덕분에 큰 상을 받을 수 있게 된 아내는, 남편인 실버와 함께 은퇴한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농장을 만들기로 하고 최근 거주 환경이 조성된 이 행성에 대한 권리를 구매했다.

 

이후 건축 설계사와 농부들에게 상담하고 부부의 의견을 집어넣은 마을의 모습대로 건설 작업이 시작되었고, 수십 명 정도의 입주 희망자들이 생기게 된다. 부부는 사랑은 ‘믿음’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기에 농장의 운영 방침에 ‘신뢰’를 집어넣었다.. 자신의 배우자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거주민 모두가 서로 믿으며 사랑하는 마을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조금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서로의 친절과 배려에 금방 적응했고, 특유의 분위기와 유기농 농산물로 유명해져 추가 입주 희망자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난 시점에 문제가 생겼다.

 

밭의 농작물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 일부도 사라졌지만 주인 부부가 다른 곳에서 사다가 창고를 채워 거주민들의 불안을 막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신뢰’ 가 문제였다. 믿음이 가득한 곳이기에 옆집으로 넘어가는 벽이나 담장도 없고, 다들 문을 잠그지 않고 다니며, 창고를 포함한 시설을 감시하는 경비원들도 없는데다 당연히 감시카메라도 있을 리가 없으니 범죄를 추적하기 매우 어려워진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방금 여러분이 사용한 창고도 문에 따로 잠금이 없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그나마 창고 밖에서 사라진 농작물은 ‘해충’을 핑계로 이 ‘해충’만 제거하면 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해충 구제 업체를 부르겠다고 사람들을 안심시켰으나 농작물이 사라지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농장주인 부부에 대한 신뢰, 주민 서로를 향한 신뢰가 붕괴할 것이라고.

 

“....... 그러다 최근 아내가 신입 마계총사 교육 일로 출장을 가서 제가 진 짐이 좀 무거워졌죠. 그렇다고 아내가 미워진 건 절대 아니고요.”

 

“마음고생이 심하셨겠군요.”

 

“위로 감사합니다. 아무튼, 현재 상황은 이렇다 보니 거짓말 없는 곳을 만들겠다는 저희 부부가 거짓말을 하는 모순이 생기게 됐죠. 여러분도 주민분들에게는 해충 구제 전문가로 알려뒀으니 탐정이나 형사처럼 탐문을 했다가는 의심을 살 겁니다. 그러니 혹시 궁금하신 것이나 필요한 게 있다면 최대한 저한테만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네요.”

 

“신뢰를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라, 정말 어렵네요. 저희도 일단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습니다. 사건이 종료되면 그때는 이 사실을 밝히실 건가요?”

 

“아내와 상의를 해 봐야 하겠지만, 일단 저는 그렇게 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 번 거짓말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기도 쉬운 데다가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비밀 같은 건 없다고 믿거든요.”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비밀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요?”

 

아주 예리한 질문에 실버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고민에 잠겼다. 나인을 제외한 돌하우스 호의 선원들은 하트워밍의 이런 날카로운 태도를 본 적이 거의 없기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나인의 경우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던 이야기야!’ 하고 질문에 공감했다.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야죠. 방금과 똑같이 언젠가 드러나게 될 비밀을 숨긴 채로 문제도 해결 못 하고 지낼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니 이건 아내와 상의할 필요도 없이 대답할 수 있겠네요. 아내도 똑같이 생각할 거라고 믿어요.”

 

“좋습니다! 그럼 여기의 지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아 참, 실버 씨하고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물론이죠. 지도는 여기 있고, 제 전화번호도 지도에 적혀 있습니다. 여기 뒷면에요.”

 

“그리고 방울아?”

 

“네, 오라버니?”

 

“배송비는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해충 구제업자 장비를 주문해서 우리가 방금 창고에 넣은 장비랑 바꿔줘. 창고에 넣어뒀던 건 도로 돌하우스로 옮기고.”

 

실버는 그 말에 자기 머리를 탁 쳤다. 지금 의심하는 그대로 주민 중 도둑이 있고, 도둑이 창고 안에서 해충 구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장비를 발견한다면 하트워밍 보안관 팀이 행성을 떠날 때까지만 도둑질을 멈추면 잡기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화물 목록을 검사한 직원인 ‘말랑’ 이 있으니 그 사람이 도둑과 관계가 없기만을 빌어야 했다.

 

“아! 축제 같은 행사 기간에만 쓰는 창고라 미처 생각을 못 했었네요! 장비 옮기는 게 눈에 띄지 않게 차량으로 옮겨 드릴게요. 배송비도 제가 내죠!”

 

“차량은 감사합니다만 배송비는 아직입니다. 아직 사건을 해결하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받을 수는 없죠.”

 

“그, 그런가요. 보안관 업무는 잘 몰라서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럼 장비 교체가 완료되면 이 지도를 바탕으로 작전을 세워보겠습니다. 혹시 저희끼리만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을까요?”

 

그러자 나인이 나섰다.

 

“누군가 엿듣는 게 걱정이라면 그 문제는 제 방음 결계로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 결계는 눈에 띄죠. 사람들이 저희가 몰래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건....... 그러네요. 생각이 짧았어요.”

 

“그 문제라면 관광객분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는데,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게 해 두겠습니다. 주민분들도 바깥에서 오신 분들이 머무는 공간을 여러분께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실버의 제안을 들은 하트워밍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다른 관광객분들과 마주칠 수도 있겠는데요.”

 

“그건 걱정 마세요. 사건 발생 이전부터 관광객 숙소 이전 작업과 직원 휴가 기간에 따라 관광 신청을 받지 않고 있으니까요.”

 

“걱정거리 하나 줄었네요. 그럼 방울아, 우린 먼저 숙소에 가 있을게!”

 

“네, 저도 금방 따라갈게요!”

 

그렇게 물방울과 실버는 창고의 장비를 교환하러 이동했다. 물방울의 분열체가 교환 도중에 누군가가 창고로 들어오는지 감시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하트워밍과 그 일행은 실버에게 미리 연락을 받은 숙소 직원으로부터 7명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큰 방과 각자의 개인실을 배정받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창고에 들어가기 전의 크기로 다시 돌아온 물방울이 숙소로 들어오며 일행 전부가 모였다. 바로 큰 방에 모여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회의를 하려던 그때, 나인이 방음처리를 실험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청력이 가장 뛰어난 인원이 방 밖에서 소리가 빠져나오는가 들어보는 것이었지만, 7명 중 가장 청력이 뛰어난 건 기계인 루미였기에 반대로 루미와 하트워밍만 방 안에 들어가 소리를 내고 나머지가 문 앞에서 소리를 듣는 식으로 큰 방의 방음 효과를 실험했다. 그 결과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면 밖에서 알 수 없음을 확인하고는 회의가 시작됐다.

 

물론, 방 안에서 나인의 방음 결계를 펼치는 것도 소리를 막는 것에 한해서는 좋은 방법이겠지만 나인의 마력이 무한한 것도 아닌데다 소리보다 마법 사용을 더 잘 탐지하는 종족 특성을 가진 농부-직원들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나쁜 방법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벌레 잡기랑은 거리가 아주 멀어졌네요. 나인 씨, 저희가 알던 것과는 업무 내용이 전혀 달라졌으니 학교로 돌아가고 싶으시다면 택시를 불러 드릴게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여전히 이 농장에 보답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다 학교에서 배운 표정을 읽는 능력으로 도둑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 그리고 아까 실버 씨에게 거짓말로 덮어버릴 거냐고 질문하신 건 훌륭했어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고마워요. 혹시 또 이번 일에서 빠지고 싶으신 분?”

 

하트워밍은 그리스, 플러피, 아로마 방향을 보며 이야기했다.

 

“어, 제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남고 싶어요.”

“도둑 잡는 거, 사냥이랑 비슷할 거 같아. 나도 선장님이랑 여기 남을래.”

“혼자 돌하우스에 남겨지는 건 싫은데다, 이런 상황이라면 제 능력을 꼭 활용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 저도 여러분과 함께할게요.”

 

말이 끝나자마자 하트워밍은 웃는 얼굴로 셋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로마의 경우에는 보는 눈이 있으므로 귀와 뺨 쪽으로 대신했다. 루미와 물방울의 경우는 ‘왜 저희한테는 안 물어보시나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기들이 신뢰받고 있음을 느끼고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럼, 여기서 전문적으로 탐정 작업이나 수사에 대해 배운 사람이 있나요?”

 

서로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젓는 몬무스 6명.

 

“음, 그러면 브레인스토밍을 해야겠네요. 브레인스토밍은 좋은 생각이 나는 대로 손을 들고, 자기 차례를 받은 다음 이야기를 하면 돼요. 먼저 해충 구제업자처럼 보여야 할 텐데 이건 방울이 의견을 먼저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물방울은 다시 자신의 일부를 분리한 다음, 분리된 조각을 다시 7개의 작은 분열체로 나눴다. 그리고는 물방울의 본체가 지갑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분열체 중 하나에게 쥐여주었다.

 

분열체들은 곧 회의용 탁자에 앉은 인원들의 앞으로 이동하더니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남성 인간의 모습, 여성 인간의 모습, 동물 귀가 튀어나온 키가 작은 여성의 모습, 구슬을 몸속에 집어넣은 점액의 모습, 상반신은 여성 인간이나 다리 대신 뱀 꼬리를 가진 모습, 다리를 화분에 담그고 있는 여성의 모습, 동물 귀와 꼬리를 가진 여성의 모습으로 말이다. 탁자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그게 자신들을 나타낸다는 것을 그 즉시 알 수 있었다. 작은 분열체들을 신기해하거나 귀여워하는 반응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먼저 루미 씨에요. 생명체 탐지가 가능하신 만큼 벌레 둥지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어디든 돌아다니실 수 있겠죠. 벌레 둥지는 건물 내부에도, 외부에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물론 주변에 둥지를 틀 만한 공간이 없고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라면 둥지를 찾는다는 핑계로 돌아다니기는 어려울 거예요. 이미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확인했을 테니까요.”

 

물방울의 설명과 동시에 여성 인간의 모습을 한 분열체가 루미가 생명체 탐지를 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곁으로는 어느새 새로 생겨난 농부 복장의 분열체들이 루미를 한 번 슥 쳐다보고는 농장 일을 하는 듯한 동작을 수행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따로 보호복을 입지 않아도 되나요?”

 

“네, 지금 저희 목표는 구제업자처럼 보이는 것이지, 종족을 숨기는 게 아니니까요. 루미 씨가 관절 접합부를 가리고 점멸등을 전부 끄면 인간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그러면 보호복도 입어야 하고 단순히 둘러보는 동작만으로 의심을 피할 수는 없게 되겠죠.”

 

“좋은 생각이야.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니?”

“아, 다음은 그리스 씨 차례네요. 오라버니.”

 

이어지는 물방울의 분열체를 통한 인형극과도 같은 설명에 따르면, 의심을 피하는 동시에 해충 구제업자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경우 기계를 잘 다루므로 배관 설비에 알이나 둥지가 생기지는 않았나 확인하러 다니는 게 좋겠다고 했다.

물방울 본인은 그리스가 혼자 다니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함께 다니겠다고 했다. 보통 배관 등 내부 공사 인원은 여럿이서 다니므로 문제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플러피는 사냥을 했었으므로 흔적을 잘 찾을 수 있을테니 수확물이 사라진 줄기나 나무 근처에서 해충의 이동 경로를 분석하는 흉내를 내는 것이 잘 통할 거라고 설명했다. 플러피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아로마의 경우 플러피와 함께 이동해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면 될 것 같다고 하며 아로마에게 피해 복구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루미 때와 마찬가지로, 피해 복구 작업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벌레 퇴치를 위해 온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아로마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는데다 칭찬받을만한 일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 되어 조금 실망했지만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플러피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부분을 위안 삼기로 했다.

 

“그리고 나인 씨의 경우에는 제가 충분히 정보를 얻은 상황이 아니라서 뭐가 좋은 방법일지 잘 모르겠네요.”

 

물방울은 분열체를 전부 코어가 있는 본체에 다시 융합시키며 자신 역할을 하던 분열체가 가지고 있던 구슬을 지갑에 도로 집어넣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나인에게 집중됐다. 나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도 마찬가지로 나인이 어떤 능력이나 기술을 가졌는지 상세히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말문을 열었다.

 

“저희가 몇 명 왔는지 아는 건 처음에 만난 ‘말랑’이라는 직원분과 실버 씨 둘 뿐이죠?”

 

“그 직원분이 실버 씨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게 아니라면 그 둘 뿐이죠.”

 

“그렇다면 저는 여기 직원분들처럼 변장하고 싶어요.”

 

“왜죠?”

 

“여우 학교에서 단순히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뭔가 숨기는 게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게 배웠거든요. 이곳 분들이 신뢰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면 일부러 뭔가 숨기는 분들도 얼마 없을 거고, 그런 분들로 용의자를 줄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아하, 그럼 직원으로 변장하는 이유는 최대한 많은 주민과 직원들이 사용하는 시설에 쉽게 들어가기 위해서겠네요. 좋은 생각이에요. 루미, 이따가 나인 씨랑 같이 실버 씨한테 연락해서 사람들이 많이 쓰는 시설이 어딘지 물어보고 나인 씨한테 맞는 직원복 좀 빌려달라고 해 줘.”

 

“네, 주인님!”

 

“그럼 다음은 내 차례네.”

 

“오라버니께서는, 음....... 전에 광고로 얼굴이 알려진 적이 있어서 남들이 모르게 하려면 얼굴을 가리고 다니셔야 할 것 같아요.”

 

“어차피 방호복을 입어야 하니까 문제없지 않을까?”

 

분명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호복은 얼굴을 가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잘 모르니까 언니들 이야기부터 조용히 들어야지.’ 하고 있는 플러피와 아로마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그렇게 해충 구제업자가 아니라 보안관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었다. 특히 존경하는 선장님이라도 벌레 조사나 도둑 수사에서 크게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이나 기술 보여준 적이 없어 위험에 따르는 이득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해왔고, 그걸 선호하는 사람에게 그냥 빠지라고 말하기도 어려워 끙 앓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때, 나인이 손을 들고 발언권과 모두의 주목을 얻었다.

 

“아니요, 여기의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숙소에 남아서 저희가 가져온 정보들을 종합하고 앞으로의 행동을 지시하는 사령관 역할을 맡아 주시는 건 어떨까요?”

 

“흠, 괜찮네요. 루미도 움직여야 하니까, 저랑 돌하우스 인공지능이랑 같이 정보를 관리해두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겠죠.”

 

순순히 현장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그 선언에 루미, 그리스, 물방울 모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밖으로 내쉰다고 해도 셋 중에 폐가 있는 그리스만 소리를 냈겠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조용히 다닐지는 정해졌고, 각자 도둑의 흔적을 어떻게 찾아낼지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어떤 녀석일지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면 선입견이 생겨버려서 조사에 불리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루미가 손을 들고 차례를 가져갔다.

 

“저는 벌레 둥지를 살펴보면서 동시에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볼게요. 그리고 뭔가 찾아내면 바로 주인님과 모두에게 알려 드릴게요.”

 

하트워밍이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마치자, 다음은 그리스가 손을 들었다.

 

“어, 감시 장비를 써도 될까요?”

 

“아니요, 그리스 씨. 공지되지 않은 감시 장비로 얻은 증거는 무효인데다가, 농장주 부부의 서로 믿는다는 마을의 신뢰를 깰 수 있어요.”

 

“그러면 배관이나 전선관을 통해 이동한 흔적이 있는지 살펴볼게요. 음, 만약 진짜 하자가 발생했으면 수리도 하는 게 좋겠죠?”

 

“그건 이따 실버 씨와 먼저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어요. 여기에서 근무하시는 분 일거리를 뺏는 느낌이기도 해서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알겠어요.”

 

이번엔 물방울의 차례.

 

“저는 그리스 씨와 함께 이동하다가 물 저장고가 보이면 수준으로 적은 밀도의 분열체를 만들어 저장고에 넣어둘게요. 물 뿌리는 작업 이후에는 농장 여러 군데를 살펴볼 수 있게 되겠죠.”

 

나인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건...... 아까 하트워밍 씨가 이야기했던 공지되지 않은 감시 아닌가요?”

 

“아니에요. 이건 수많은 제가 지켜보는 거잖아요. 감시 ‘장비’ 사용에 해당하지 않죠. 대신 제가 많이 먹고 몸을 키워도, 여기 전체를 둘러보기는 어렵고 땅에 뿌려지니 창고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감시할 수 없어요. 그리고 도둑질이 일어난다고 해도 분열체의 밀도나 모양을 조정하려면 정신 집중이 필요한데, 수많은 감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해서 정신 집중이 어려운 만큼 범인을 찾기만 할 수 있고 직접 잡을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죠.”

 

“슬라임에게 적용되는 법은....... 특이하네요.”

 

나인은 조금 찝찝한 것 같았지만, 규칙과 법은 보통 뭘 하지 말라고만 설정되기에 그 밖의 행위에 대해서 취약하다는 문제를 항상 안고 있었고 슬라임의 생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만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은 플러피가 손을 들었다.

 

“나, 벌레 흔적 말고 사람 흔적도 찾을 수 있어. 그런데 벌레 퇴치? 벌레 잡는 사람 흉내 내는 동안은 흔적 못 쫓아. 이것도 도움될까?”

 

조금 쭈뼛쭈뼛한 듯한 목소리와 행동. 하트워밍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플러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발자국 크기만 알아내도 누군지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충분히 도움돼요. 알아낸 건 모두에게 알려줘요.”

 

“응! 알겠어. 나 힘낼게.”

 

아로마가 다음 차례를 가져갔다.

 

“물방울 언니가 잡는 게 어렵다면, 제 덩굴로 잡으면 될 거에요.”

 

루미가 아로마에게 질문했다.

 

“도둑질이 발생한 곳에서 자라던 작물들에게 도둑이 누군지 물어볼 수는 없을까요?”

 

“물어볼 수야 있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식물들은 저랑 다르게 눈이 없잖아요? 귀나 코도 없고요. 그래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얼마 없을 걸요.”

 

“그렇겠네요.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나인의 차례.

 

“저는 루미 씨랑 비슷하게 숨기는 게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인상착의를 알려 드릴게요.”

 

“좋아요. 질문이나 새로운 아이디어 있는 사람?”

 

이어지는 아니요와 같은 부정의 연속.

 

“그럼 실버 씨에게 계획을 알리고, 아까 상담해야 했었던 직원 복장이라던가, 배관 수리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야겠네요. 그리고 모두 준비를 마치면 바로 일을 시작합시다.”

 

네, 좋아요 등의 긍정이 이어졌다. 이후 실버는 계획을 승인했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음료수 가게 직원 자리와 직원복을 나인에게 내 주었다. 그리스의 배관 수리에 대해서는 크레딧이 부족해서 일거리를 더 찾고 계시냐고 되물었고, 그리스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고장이 난 것을 보면 고치고 싶어지는 성향이라고 답하자 농장 직원들도 자기 일에 자부심과 만족감,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는데다 최근 수리 작업이 진행된 적이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답을 해 왔다.

 

이후 시작된 작전에서, 현장에서 뛰는 몬무스들과 정보 종합 처리를 담당한 하트워밍 그리고 돌하우스의 인공지능은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나인이 뭔가 불안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 인상착의를 알렸고,

루미가 그 사람을 지속해서 추적했으며

물방울과 아로마의 협동으로 용의자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항상 다른 문제들이 따라오듯이, 그리스와 플러피가 발견한 흔적과 용의자의 생김새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붙잡은 사람과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