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태워버리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번엔 괜찮지 않았어? 최대한 배운대로 해 본건데"


 그 말에 로제는 화롯가로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더니,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이게 정말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작성하신 거라고요?"


 "조금 이상하긴 했나?"


 상대의 반응에 한발짝 물러서는 카를


 "하아, 조금 정도가 아니라 완전 엉망입니다. 이런게 다른 귀족들의 손에 들어가게 둘 순 없지요."


 "잠깐..."


 할 말을 마치고 돌아선 그녀는 바로 뒤돌아서 손에 들고있던 종이를 화로에 넣었다.


 구혼장 답게 방 안에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며 타들어가는 편지지.


 그를 보며 카를은 애원했다.


 "그냥 보내면 안될까? 애초에 계속 배운다고만 하지 실제로 보내본 적도 없잖아."


 "저대로면 어차피 거절 당할게 뻔했습니다. 왕자님 가신으로서 망신만 당할게 뻔한데 두고볼 순 없지요."


 또 저 소리였다. 


 슬슬 혼기가 차 타국 여식들에게 구혼장을 보내려던 그 날부터 계속 들었던 말에 그가 진저리쳤다.


 "왜인지는 몰라도 아바마마가 내 혼사에 관심 없는거 알잖아."


 "그랬던가요."


 "우리 형제 중 혼례도 못치른건 나 하나인데 딱히 짝을 지어주실 생각도 안하시잖아."


 의자에 완전 몸을 기댄채 신세한탄을 시작하는 그


 "그래서 나라도 뭔가 해보려고 했던 건데..."

 "그런 마음가짐이니까 문제인 겁니다. 최근엔 정략혼이라도 마음을 따지는데 왕자님의 편지엔 그런게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마음이야 뭐 결혼하고 보면 생기지 않겠어? 어마마마도 완전히 동맹 때문에 시집오신거지만 금슬 좋으시잖아."


 "그런 생각이 퍽이나 요즘 여자들에게 먹히겠습니다. 심지어 계승권도 낮으신 분이"


 "아픈 곳을 찌르네"


 정곡이 찔리자 카를은 이젠 완전히 의자에 눕다시피 한채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뵈도 왕자라고 동질혼이니 뭐니 해서 결혼 가능한 여식도 얼마 없는데"


 "..."


 잡무를 처리하던 손을 멈춘 채 조용히 그를 응시하는 로제.


 그러나 그는 눈치 채지 못하고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왜인지 구혼을 보내려고 계획했던 여식이 인연을 찾은게 벌써 4번째야, 그래서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고..."


 "왕자님께선 제가 어느 가문 출신인지 잊으셨나 봅니다."


 "응? 그럴리가 없잖아. 공작가 여식이 어마마마도 아닌 내 시녀로 들어온다 할 때 얼마나 놀랐..."


 고개를 들어 로제를 바라보자마자 몸이 굳은 그.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위기감을 느낀 탓이었다.


 당황해서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그의 눈에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일 안하고 땡땡이 치고 있는게 그리 맘에 안들었나'


 확실히 주군이 사랑타령을 하면서 업무에 손도 안댄다면 기분이 나쁠만도 하다고 생각하며


 조금 기분 전환이라도 시켜주는게 좋겠다고 여긴 카를이 그녀를 달래려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건 어때? 로제가 내 대신 써주는거야"


 "예?"


 "지금껏 내가 직접 써야 의미있다고는 했지만 상황이 이렇잖아?"


 "제가 어째서 그걸 해드려야 하죠?"


 "잘 생각해봐. 만약 그걸로 성공만 한다면 이렇게 하소연 하는 시간도 없어지고, 네 업무도 줄어들거야."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한 대응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잇는 카를.


 "애초에 이 나이 먹고 집안 총괄을 시녀한테 맡기는건 나 정도잖아. 그러니 형수님들 처럼..."


 "왕자님께선 제 업무 능력이 마음에 안드셨나봅니다?"


 '음, 아무래도 좋은 대응이었단건 내 착각이었던거 같군'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끊는 그녀를 보며 카를은 빠르게 단념했다.


 더는 변명도 없이 가만히 있는 그와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는 그녀


 두 남녀의 무언의 대치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로제가 한숨을 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조퇴하겠습니다."


 "그 그래, 푹 쉬어"


 여전히 냉기를 풍기며 약식으로 인사한 뒤 그녀가 나가려던 때,


 "왕자님, 잭입니다. 들어가봐도 좋겠습니까?"


 카를의 호위를 위해 배정된 기사인 잭이 문을 두드렸다.


 "아! 그래, 어서 들어와"


 탈출구를 찾은 듯 밝은 표정으로 재촉하는 카를.


 그 모습에 나가려던 그녀가 의문을 품기를 잠시,


 방에 들어온 잭이 두 사람에게 경례를 하곤 카를에게 다가가 말했다.


 "바덴 백작과 합의는 끝났습니다. 국왕 폐하도 윤허해 주셨고요."


 "이게 무슨 소립니까?"


 자신이 모르는 사안이 생긴 것 같아 물어보는 그녀에게 그가 대답했다.


 "그게, 어릴 때 같이 바덴 백작령에 놀러갔을 때, 네가 그랬잖아. 거기 성당이 참 아름다워서 어른이 되면 다시 오고 싶다고"


 카를의 말에 눈이 커지며 놀라는 그녀.


 "요즘 왠지 네 기분이 별로인거 같길래 여행이라도 가는게 어떨까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무표정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그저 고맙단 말을 하고 방을 나섰다.


 "왠지 좀 급하게 나가려는 거 같지 않아?"


 "...하아"


 "넌 또, 왜 그런 표정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세부사항에 대해 보고 하겠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왕자의 집무실을 뒤로한채 나오는 로제.


 궁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다만, 한 가지


 "왜 그 뒤에 한 이야기는 기억 못하는 겁니까. 바보 같은 사람..."


 어째선지 귀가 매우 빨개져 있었던 것만 제외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