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 데........"
그런데도 기적을 바랐던 것은 어리석은 짓 이었겠지. 되돌아보자면,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유난히 시린 눈을 바라보며, 가브리엘은 씁쓸하게 웃었다. 부는 바람이 차가웠다.
아마도 화이트 크리스마스일, 그 날의 하루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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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마셔, 그러다 취하겠다."
책상 위에 늘어진 라파엘을 보며, 가브리엘은 건너편에 놓인 술병을 옆으로 치웠다. 축 늘어진 것이 꼭 물먹은 솜 같았다.
"...남이사. 님이나 그만 마시셈."
늘어져 있던 라파엘이 옆에 놓인 병을 끌어 가까이에 놓았다. 하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했다.
가브리엘은 책상에 올려진 술병들을 바라보았다. 줄지어 세우면 꽤 길게 나올 것이, 둘이 마셨다고 하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그럼에도 가브리엘은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제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할 것만 같은 날이다. 몽롱해지려 하는 머리에 술을 부어넣었다.
"...고백도 못해봤는 데 차였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이 나왔다.
"야, 웃기지 않냐? 맨날 싸워댔는 데 지금은 같이 술이나 마시고."
우리엘의 곁에 조금이라도 붙어있으면, 서로를 떼어내려 싸우곤 했었다. 그때에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괜스레 불안해했던 것 때문이다.
"됐음, 그냥 술이나 마시셈."
그래, 지금은 다 헛일이 되어버린 옛날이다. 술에 흘려보내기라도 하는 듯이, 가브리엘은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창 밖의 화려한 불빛들이 하얀 눈을 배경삼았다. 본디 밤은 어둡다곤 하지만, 채도가 낮은 빛들이 낮보다 더 화려하게 수를 놓는 시간이다.
술에 취해서인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화려한 빛을 바라보았다. 술을 따른 잔에 빛이 담겼다. 빛이 떠나간 자리에는 빛바랜 것들이 남는다.
빛바랜 감정을 흘려 보내듯이 빈 잔을 채웠다 비워냈다.
하나 둘 씩 꺼져가는 빛에 빈 병은 늘어나기만 한다.
흐르는 술에 보내고자 하는 색바랜 붉은 것을 흘려보내고 빈자리를 붉은 술로 채운다.
이상할 정도로 잘맞는 말상대를 앞에 두고서, 한탄인지 아닌지를 모를 말을 흐르는 술에 얹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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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냥 우리 사귈래?"
이성이 마비된 몽롱한 머리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내뱉는다. 비단 그녀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무슨 말임?"
"그냥, 꽤 잘맞는 것 같아서."
붉은 것이 떠나간 빈 자리에 채워넣은 술이 흘러내리기 전에, 빈자리를 채우자.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뭐, 지금 신경 쓸만한 건 아니니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함."
떠나간 것이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도록.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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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을 잊기 위해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친 짓의 결과도 항상 엉망진창인 것은 아니여서, 서투른 연애가 이어져가는 것또한 친숙함과 정 때문은 아니었다. 일생일대에서 한 가장 미친 짓이었지만, 이따끔씩 떠올려보자면, 물렸으면 후회할 선택이었다.
일생에서 가장 미친 짓을 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고당하기 딱 좋은 커플링. 아청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