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사람은 누구야?"


하루는 서아가 손에 사진을 쥔 채 내게 오도도 달려와 나를 당황케 하였다. 서아가 손에 쥔 사진 속에는 나와... 수영이가 웃고 있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표정 변화 없이 서아에게 설명해주려는 순간


"아빠 왜 울어 울지마..."


하고 덩달아 우는 서아를 보며,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울고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눈물을 훔치며, 서아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예쁜 사람은... 서아 네 엄마야. 서아도 엄마를 닮아서 나중에 이렇게 이뻐지겠다!"


나는 서아가 대답해주기 힘든 질문을 할까 겁이 나 어떻게든 이야기를 끝마치려 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호기심이란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았고,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도 서아는 내가 가장 꺼려했던 질문을 건네왔다.


"아빠는 항상 집에 있는데 엄마는 집에 안 오는 거야? 왜 서아는 엄마를 본 적이 없어?"


하하 이거 참...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가끔 읽어주는 동화책에도 엄마들은 항상 등장하며, 가끔 집에 찾아오는 할머니 역시 나의 엄마이다. 오며가며 만나는 성준이 수연이에게도 이설화가 있다.


주위의 많은 엄마들의 존재는 어린 서아에게 있어 늘 궁금한 존재였을 것이다. 왜 자신은 엄마를 본 적이 없는 것일까? 그런 상황에, 저런 사진을 보게 되었으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를 대비하여 생각해둔 멘트들 중 가장 무난한 것을 선택하여 서아에게 말해 주었다.


"으응... 엄마는, 서아를 낳고 몸이 조금 안 좋아져서 멀리 치료하러 갔어. 서아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말도 잘 들어야 엄마도 건강해져서 빨리 서아를 보러 올 수 있단다. 그러니까 우리 서아 건강해지려면 얼른 푹 자야지?"


엄마가 아프다는 클리셰. 이보다 무난한 변명이 뭐가 있을까. 변명을 하고 있자니 서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웅... 자기 싫은데..."


"서아가 말을 안 들으면 엄마가 아플지도 모르는데?"


서아가 헉 하고 놀라더니 이내 볼을 부풀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치사해 이런 말이 얼핏 들려오는 거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치사한 얘기였기에, 서아를 달래주기 위해 서아의 방에 따라 들어갔다. 서아는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그래도 제 엄마가 아픈 건 싫은가 보네. 우리 딸 기특하기도 해라.'


서아에게 미안함, 왠지 모를 죄스러움을 느끼며 이불을 폭 덮어주었다.


이내 새근새근 숨을 쉬는 걸 보니 잠이 든 것 같아 서아의 얼굴을 살포시 감싸 쥐고 이마에 쪽, 입을 맞추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서아가 조용히 "아빠.."하곤 뒤척이더니.


"오늘은 같이 자면 안 돼?"


칭얼거리는 게 수영이와 너무도 닮아서 조금쯤 서글퍼졌지만,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지라 침대에 몸을 뉘었다. 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에 들 때쯤 서글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이 들었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임에도, 그러지 못했으니 엄마가 보고 싶었던 걸까?


"우리 서아 왜.. 왜 울어.. 왜 울까? 뚝 해야지 뚝.."


"엄마는 많이 아픈 거야? 엄마가 나를 낳아서 아픈 거야? 엄마가 그럼 나 때문에 아픈 거야?"


생각지도 못한 서아의 말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이 작고 어린 아이의 호기심만을 채우기 위한 알량한 나의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준 것 같았다.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너무나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랑스러운 이 아이에겐 많이 부족한 아빠가 아닐까?


"많이 아픈 건 아닌데, 근처에서는 치료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우리 서아 울지말고 푹 자자! 아빠가 재밌는 얘기 들려줄까?"


서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고는 나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소곤소곤 옛날 얘기를 해주었더니, 서아가 금방 잠에 들었다. 서아를 재우다 보니 나도 잠이 몰려와 눈을 붙였다. 잠에 들 때쯤 어둠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멀스멀 어딘가로부터 기어올라왔다. 잠이 든 서아가 깨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심호흡을 뱉었다. 부정적 감정을 호흡으로 뱉어낼 때마다 상념이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서아에게 말했던 것들은 반쯤은 진실이다. 수영이가 서아를 낳고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것도, 현재 치료를 위해 병원에 누워있는 것도 전부 사실이다. 다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제 치료가 될지 치료가 되긴 하는 건지조차 불분명하다. 내 아내, 한수영, 그 바보같은 사람은 서아를 낳고, 혼수상태에 빠져 지금까지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수영이를 생각하다 어느순간부터 그녀에게 전할 말들을 고르고 있었다. 오늘 서아가 너에 대해서 묻더라, 내가 대답을 잘못해서 나도 모르게 서아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생각은 생각을 물고 새로운 생각들은 늘 나를 깊은 우울의 늪으로 끌고 내려갔다.


'오늘 잠은 다 잤네...'


감은 눈을 뜨고 곤히 자는 서아를 보니 괜스레 빛나 보여서, 어두운 바다 위에서 등대의 빛에 의존해 나아가는 배가 된 기분이었다. 서아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걸까.


참 우습고도 모순적인 것은. 나에게 서아는 희망이자 고문이었다. 서아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고, 서아가 있기에 항상 네 생각이 난다. 너를 똑 닮은 이 아이를 볼 때마다 네가 생각 나 버틸 수 있고, 네가 생각나 버티기 힘들었다. 이런 죄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잘하는 일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네가 마지막으로 써주었던 편지를 생각하며, 다시금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내일은 오랜만에 너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