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에 젖은 옷이 세탁기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비가 온 뒤의 맑은 햇살이, 오렌지 색으로 변하며 창 틈 사이로 들어온다.


탁자 위의 흰 색 그릇 위, 노란색 오믈렛


"우와, 맛있어요. 엄마! 더 먹어도 괜찮나요?"


그 위에 뿌려진 고양이 모양의 붉은 케쳡


"아하하, 물론이야, 근데. 그냥 간단한 오므라이스인데. 맛있게 먹어주니까 고맙네"


그리고 속에 숨겨진 볶음밥.


"그야. 엄마가, 만들어줬으니까!"


누구에게나 맛있을게 분명한 음식을 만들었다.


"아하하하, 엄마..라"


눈 앞에는 나와 닮은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크기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소녀는 나를 '엄마' 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음, 역시 못 믿는 거에요?"

 

"아냐, 그게 아니야. 그냥. 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니까...아하하하..."


분명, 언젠가 저런. 귀여운 딸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 한 적이 있었지만.


역시, 뭔가 이상해.


"뭔가 믿을 수가 없어서...."


"...엄마?"


수상한 병에 걸려, 여자가 되어버린 나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냐, 금방 해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네, 네!"


그 아이는, 조금 미래에서 온 딸이었다.










*












"여기서 뭐하냐"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야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 


".....학교 가야지"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거, 오늘 나온 숙제인데 말야...좀 도와주라..!...부탁할게!"


그래서 아무도 없는 집에 틀어 박혔다.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도록


"야, 이거 같이 해볼래?그게, 혼자서는 무서워서...아니, 웃지마라.."


그러다 어는 순간부터


아니 처음부터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 진짜! 넌 집에 틀어 박혀있는 주제에 왜 이렇게 다, 잘 하는 거야"


그 사람이 소중하단 마음이 든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가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뭐야, 벌써 일어나 있었냐. 이거 우리 엄마가...."


"갈게"


적어도 이 사람과 함께하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응? 뭐라고"


"학교, 갈게"


그래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병에 걸려 여자의  몸으로 변했다.


그래서, 그리고 나서.


 그 후에. 


그 다음에는,


"야,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냐, 아무것도"


눈 앞의, 나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키가 큰, 그 사람의 말에 정신을 되찾았다.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내가 집에 틀어 박혔었던 일 말야. 아하하"


"..., 너에게는.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야"


그 사람이, 힐끗 눈을 피하며 말했다. 시간 말고도 다른게 필요 했지만, 본인은 정말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 그런 걸로 하자"


내가 필요했던 건, 그냥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아, 조심해. 비 온 뒤라서, 찻길 근처는 위험하잖아'


"그러네, 네 덕분에 쫄닥 젖는 일은 피했어. 고마워"


비가 그친 하늘은 맑았지만, 그 아래의 땅은 흙탕물이 잔뜩 있었다.


아스팔트 위의 먼지로 가득찬 물을 '흙탕물' 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지만, 뭐 내 맘이니까.


"...아무튼, 오늘도 고생했어. 수업은, 뭐 너라면 쉽겠네"


"음, 아직 까지는 적응 하는 과정이니까. 잘 모르겠네. 아하하, 뭔가 미안"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말했다.


"친구들은 어때?"


"솔직히, 잘 모르겠어. '여자'의 친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음, 역시 잘 모르겠어. '친구' 라는게 뭘 말하는건지. 옛날에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잘 모르겠어.


"아하하, 지금은 그냥, 같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같이 가는 정도. 려나?"


"..화장실?"


"음, 그렇게 보지 말아줄래. 이래 뵈도 난 지금 여고생이니까"


솔직히 그런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조금은, 상처 받는단 말이야. 진짜 조금, 말이야.


"아니, 니가. 여자 화장실을 가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닌데, 그냥.."


-화장실을 다같이 가는게 이해가 안돼.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그때 였다.


"차, 찾았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네...하아아..!...."


어딘가, 많이 익숙한 느낌의 소녀가 튀어 나왔다. 


기시감이 든다. 이런 걸 보통. '데자뷔' 라고 하던가?


"뭐야, 너. 꼬마야. 뭐하는 거야.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거야?아닌것 같은데!? 저리가!"


"아, 안 놓을 거에요. 제가 어떻게 찾았는데...!..."


소녀는, 그 사람의 팔을 잡았다.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놓지 않으려 있는 힘껏 끌어 안았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너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도 없는 아이였다. 누굴까? 얘는. 사촌이려나.


"이, 이목소린. 설마. 엄마...?"


"에,엑? 뭔 소리야. 얘가 왜 엄마야?"


소녀는 내게 몸을 던지듯 안겼다.


체중을 모두 실은 저 태클을 받지 않는다면, 분명 소녀는 넘어질 것 이 분명해서


나도 두 팔을 벌려. 소녀를 안았다.


"....엄마...."


뭐랄까, 굉장히 따듯한 느낌이었다. 


아이의 체온은 높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


살펴보니 소녀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진정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등을 두드려 줬다. 


소녀가 말한 것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녀가 진정해야, 뭘 듣든 말든 할게 아닌가.


"보고 싶었어요..엄마, 아빠"


사실, 듣지 않는 편이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 엄청나게 당황스러우니까.


아,아아아.아직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