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JRA 사츠키상 CM 아그네스 타키온 편




팔 부분의 빨간색이 유독 저채도라 한참 헷갈렸는데

진정한 실력을 보여준 적 없는 슈퍼 천재에, 과학자 컨셉의 승부복 디자인...

가운에는 시험관을 끼고 있고, 귀걸이는 화학 구조식.

역산한 결과는 초광속입자 타키온에서 이름을 따온 환상의 삼관마 아그네스 타키온이다.




2000년 더비, 에어 샤커를 꺾고 우승한 아그네스 플라이트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생산자인 샤다이 팜의 총수 요시다 테루야가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플라이트의 동생도 선데이 사일런스 자식인데, 플라이트보다 마체도 스케일도 크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2년 연속으로 생산자로서 더비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일본 최대의 생산자로 산전수전 다 겪어보고,

말이라는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알 사람이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말을 가지고 저렇게 1년후를 장담하며 대포를 쏘니

참석한 사람들은 당혹을 넘어 어이없어했다..

한편 대체 어느 정도길래 저 양반이 저렇게 자신만만한가 하는 호기심도 따랐다.


98년 4월 13일, 아그네스 타키온은 샤다이 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선데이 사일런스, 어머니는 90년에 5연승으로 오카상을 차지했던 아그네스 플로라.

바로 한살 위에 전형(부모가 같은 형) 아그네스 플라이트.

요시다 테루야가 플로라에 반해서 마주인 와타나베에게 매각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다만 위탁만 받아 샤다이 팜에서 번식생활중이었으며

플라이트와 타키온 모두 테루야가 직접 배합한 혈통 조합이었다.

발굽이 무른 플로라의 약점을 선데이 사일런스로 보강하는 조합.


갓 나온 타키온을 봤을때 테루야는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없이 받아본 선데이 사일런스의 자식들 중에서 이만한 박력은 없었다고.

순치를 시작하고 성장하면서 거물의 느낌은 점점 강해졌다.

형처럼 신경질도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멍해 보일때가 많은데

달리게만 하면 완전히 돌변해 주변을 완전히 압도.

목장의 스탭들조차도 '뭘 시켜도 100점 이상'이라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형하고 차원이 다른데, 그 형이 더비를 잡았다면...이 녀석은?


데뷔전은 2000년 12월 2일, 한신 경마장 3세 신마전.

조교사와 기수 모두 어머니 아그네스 플로라와 같은 나가하마 히로유키와 카와치 히로시였다.

경주 거리는 신마에게는 제법 긴 편인 2000미터. 클래식을 의식해 일부러 이때 데뷔시킨 강적들.

그 모든 것은 타키온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후방에서 시작해 3코너에서 중단, 4코너에서 전방, 직선에서 풀로 가속.

신마전에서 라스트 3F(600m)를 33초 8로 끊는 충격적인 승리였다.

플라이트를 타고 27년만에 더비를 잡았던 카와치조차 이미 이 시점에서

형보다 위라는걸 확신하고 있었다고.


2차전은 12월 23일, 라디오 단파 3세 스테이크스(GIII, 2000m).

격은 아사히배에 비해 떨어지지만 거리면으로 봤을때 내년 클래식과 더 연관이 높은 경주.

그런 중요성답게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 모이는 경주고, 이 해는 더욱 그랬다.

거물다운 레이스를 과시하며 2연승을 거두고 온 쿠로후네.

그리고 전설의 신마전으로 불리는 경주를 승리하고 삿포로 3세 S를 제패한 정글 포켓.

3세(현 2세) 챔피언을 가리는 아사히배와 비교해서도 유독 튀어보이는 3강의 대결로 주목받았다.

경주는 쿠로후네와 정글 포켓이 나란히 5번째 위치에서,

3~4마신 뒤에서 아그네스 타키온이 둘을 노리는 구도로 진행됐다.




그리고 직선에서 나머지 둘을 갖고 놀듯이 혼자 뛰쳐나간 것은 아그네스 타키온이었다.


이때의 임팩트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2000 JRA 최우수 3세마를 뽑을 때

GI과 GIII의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사히배 우승마 메지로 베일리가 147표,

아그네스 타키온이 119표를 얻을 정도였다. 시상과는 상관없이 

아그네스 타키온의 레이팅은 동년배 중 최고인 113이 매겨졌다.


2001년, 일본 경마의 나이 표기가 종전의 당세(출생년도)->2세->3세 방식에서

당세->1세->2세로 국제 표준에 맞춰 바뀌었고, 

이때부터 클래식 시즌이 3세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졸지에 두번째 3세 시즌을 맞게 된 아그네스 타키온.


나이 변경의 해프닝과는 상관없이 테루야는 이미 이 시점에서 

와타나베를 설득해 더비 후엔 외국 원정을 보내겠다는 야망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가하마 조교사도 이미 이때 공개적으로 클래식 삼관 달성을 암시.

슈퍼스타들이 은퇴하고 고마 전선은 TM 오페라 오의 독재에

클래식 주자들의 대거 부진으로 매출이 뚝 떨어졌던 2000년을 기억하던 관계자들은

이들의 자신감에 부응해 붐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봄철의 로테이션은 클래식 주자의 왕도 그 자체인 야요이상->사츠키상->일본 더비로 확정.


3월 4일. 야요이상(GII, 2000m) 당일의 나카야마 경마장은 비로 엉망진창인 불량 마장.

앞서의 전적으로 1.2배라는 압도적인 단승 인기를 보여준 아그네스 타키온이었지만

이렇게 무겁고 거친 마장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아그네스 타키온은 다시한번 예상을 깨고 3번째 위치에서 선행하는 정통파 경마로 전환,


http://www.nicovideo.jp/watch/sm1330105


4코너에서 선두에 따라붙고 직선에서 본 킹을 5마신 차이로 벌리며 완승했다.

처음 맞이하는 불량 마장도 아랑곳하지 않는 완승.

덤으로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던 맨하탄 카페는 4착.

카와치는 채찍 한번 대지 않고 말 나름의 힘만으로 이겼던 

88년 뉴질랜드 트로피의 오구리 캡을 이 때의 타키온에서 떠올렸다고.


4월 15일, 사츠키상(GI, 2000m). 이미 분위기는 예정된 대관식을 중계하는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후지 TV의 오프닝 멘트를 옮겨 본다.


"클래식 삼관이라는 호스맨의 엄청난 꿈을 싸움을 앞두고 '확신'하게 하는 힘이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빛을 넘는 소립자로 이름 붙여진 21세기의 괴물에게 

동안의 세 레이스는 전주곡. 드디어 여기서 지휘봉을 든 클래식 제1악장 제61회 사츠키 상입니다" 


그랬다. 4년 후 딥 임팩트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호들갑은 이미 이때 한번 타키온에 집중되고 있었다.

성장세가 꺾인 일본 경마판의 구세주를 기다린건 어쩌면 팬들보다도 관계자들이 더 절박했을지도 모른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보기좋게 1과 1/2마신차 승리. 골 순간의 후지 TV의 멘트는 "우선 1관!"이었다.

그러나 경주 후 카와치의 인터뷰는 개운찮은 맛이 다분했다.

"직선에서 평소처럼 호쾌하게 뻗지 못했다. 차이도 줄어 있고. 오늘 같은 느낌이면 더비는 더 어려울것"

안장 위에서 타키온의 주행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었을까. 그 불안은 현실이 된다.


경주 후 원래 지병이던 오른앞다리 부종이 심화, 이것이 원인인가 했더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뒤따랐다. 왼쪽앞다리의 천지 굴건염.

불편한 오른쪽을 아끼느라 왼쪽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화근은 엉망진창의 마장이었던 야요이상.

그 경주에서 전력으로 달렸던 본 킹, 미스캐스트, 맨하탄 카페가 나란히 장기 휴양을 했던 걸 생각하면

그때의 폭탄이 아그네스 타키온에겐 조금 늦게 터진 것이었다.

그러나 늦게 터진 폭탄은 더 가혹한 결과를 낳았고, 더비를 목전에 두고 은퇴가 발표되었다.

통산 전적 4전 4승, 총 주행거리 2000mx4=8000m. GI 1승, GII 1승. GIII 1승.

21세기의 첫 클래식에서 주목받던 괴물은 이름답게 초광속으로 빛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슈퍼 억제기였던 아그네스 타키온이 사라지자 

2001년 세대는 기다렸다는 듯 그제서야 기지개를 폈다.

2001년 NHK 마일 컵과 재팬 컵 더트를 승리, 사상 첫 중앙 터프/더트 GI 동시 제패의 쿠로후네.

2001년 더비와 재팬 컵을 동시에 제패하는 정글 포켓.

2001년 킷카상, 아리마 기념을 휩쓴 맨하탄 카페.

윗세대를 사정없이 물리치는 이들의 활약에 2001년 세대는 최강 세대로 불렸지만,

정작 이들 위에 클래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 급 위에서 군림하던 타키온이 있었다는건 아이러니.


뜻하지 않은 은퇴였지만 씨수말로 전업한 아그네스 타키온은

어찌 보면 현역 시절을 능가하는 대활약을 한다.

성골 중의 성골인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에서 교배를 시작,

첫해 자식들의 데뷔년도인 2005년부터 중상 우승마를 내기 시작하더니

2007년에 다이와 스칼렛이 암말 클래식에서 대활약하며 리딩 사이어 2위,

2008년엔 딥 스카이가 더비를 승리하는 등의 활약으로 

대망의 리딩 사이어 1위에 오르며 일본 씨수말의 정점에 오르기도 했다.

국산 씨수말이 리딩 사이어가 된 것은 51년만에 처음 있는 일.


그러나 씨수말로의 활약도 현역처럼 짧았다.

2009년 6월 22일, 교배 시즌이 끝마무리될 즈음 급성 심부전을 일으켜 사망했다. 향년 11세.

그가 사라진 자리를 이어받아 씨수말의 정점으로 군림한건 다름아닌 딥 임팩트였다.


삼관의 재목으로 기대받았으나 조기에 은퇴하게 된 것은 후지 키세키와 흡사하지만

실제로 클래식에서 1승을 챙긴데다 완전히 압도당했던 경쟁자들이 이후 대활약한걸 생각하면

수식어만이 아니라 정말로 삼관의 가능성이 높았던 경주마였다.

건강하기만 했다면 3차 경마 붐은 2005년이 아닌 2001년에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

2015년의 JRA가 기획한 "꿈의 제 11레이스" 편에서도

당당히 역대의 명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8마리 안에 선발되었으니

팬들이 느꼈던 임팩트를 알 만 하다.



 


다만 이때의 기대가 좌절되고 슈퍼스타에 더더욱 목마르게 된 관계자와 언론은

2005년 딥 임팩트의 등장 때 한술 더 떠 사츠키상 시점에서 동상을 건립하는 지경에 이른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53 - 아그네스 타키온(アグネスタキオン)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