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번건 복장에선 거의 힌트를 못 얻었었다. 점퍼와 이너의 배색 조합 자체는 맞지만 어레인지가 심한데다 점퍼에 그려진 드래곤은....근본을 전혀 모르겠다. 힌트의 '프랑스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좋아하는 제비꽃을 피우는게 꿈'에서 정체를 특정할 수 있었다. '프랑스'->개선문, 제비꽃(스미레)->팀 스미레. 

저 두가지 키워드가 겹치는 건 나카야마 페스타.


관리사를 물어죽일뻔 해 여생을 입에 마개를 달고 산 헤일로의 증손,

스탭이 단 한번 타보고 학을 떼며 때려치운 선데이 사일런스의 손자,

기수가 탈때마다 걷어차이거나 물릴까 걱정하던 스테이 골드의 아들 중에서도 유독 그 성격 탓에 조교사가 훈련하는데 죽을 고생을 한 경주마가 있었다. 그러나 능력을 개화한 순간 성격과 같이 혈통에서 물려받은 투지와 순발력으로 역대 일본 경주마중 가장 개선문상 우승에 가까웠던 말이 되었으니, 그 경주마의 이름은 바로 나카야마 페스타다.


일본 마주협회연합회 회장까지 역임했던 원로 마주 故 이즈미 신이치. 2007년 셀렉트 세일에서 딸인 노부코에게 줄 말을 찾다가 인연이 깊던 니노미야 요시타카 조교사의 추천을 받아 스테이 골드와 디어 윙크 사이에서 난 한살짜리 갈색 수망아지를 샀다. 낙찰 가격은 '달리지 않아도 납득할 만 하다'할 정도인 1000만엔.

말을 받은 이즈미 노부코는 평소 좋아하던 타카라즈카 가극단에서 착안, 축제(festa)의 의미를 갖는 페스타를 나카야마의 관명 뒤에 붙여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즈미 노부코 소유 시절의 나카야마 페스타. 승부복이 다르다.


아버지 스테이 골드를 닮아 450kg 전후의 작은 몸집으로 자라났으나 주목을 끄는 속도는 만성형이었던 아버지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2세 시즌인 2008년 11월, 신마전에서 데뷔전 승리를 거두더니 21일만에 바로 중상에 도전, 이후 주전 기수가 되는 에비나 마사요시를 태우고


단승 9번째라는 낮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인기 1위 브레이크 런아웃을 제압, 데뷔 2전째만에 도쿄 스포츠배 2세 스테이크스(GIII, 1800m)에서 우승했다. 2세 챔피언전인 아사히배(GI, 1600m)를 거르고 쉰 뒤 맞은 연초의 케이세이배(GIII, 2000m)는 간발의 차로 아쉽게 2착에 머물렀지만, 사츠키상이 열릴 나카야마 경마장의 적성을 확인했다.


'성격이 까탈스럽지만 분명한 재목이다. 더비까지 노릴만 하다' 

는 판단 아래 트라이얼 레이스를 거르고 직행, 사츠키상(GI, 2000m)에서석달만의 실전과 첫 클래식 레이스 우승에 정면으로 도전하지만...나카야마 페스타와 클래식 레이스는 지독하게도 연이 없었다.


사츠키상에서는 인코스로 승부를 노렸지만 코앞의 말들이 퍼져버리는 바람에 앞뒤 샌드위치로 갇혀버리며 자랑인 다리를 쓰지도 못하고 불완전 연소 8착. 그 다음 일본 더비(GI, 2400m)에서는 빗속에서 엉망이 된 주로를 달리다 막판에 써야 할 다리가 무뎌지면서 4착에 머물렀다.


봄의 클래식 2전을 모두 망치고 가을의 킷카상(GI, 3000m)로 목표를 세팅한 진영은 여름을 나고 킷카상 트라이얼인 세인트 라이트 기념(GII, 2200m)에 출전했다. 


결과는 선입 승부의 교과서적인 예시를 보여주며 낙승. 킷카상의 우선출전권을 따냈다. 마주인 노부코도 작년 도쿄 스포츠배 이후 근 10달만에 다시 시상대에 올랐지만


이 때가 시상대에 오른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식도암이 악화되어 55세를 일기로 타계. 그리고 노부코의 건강이 악화되던 그 때, 공교롭게 나카야마 페스타의 멘탈도 망가졌다.


킷카상은 4번째 인기를 배신하며 12착으로 완패. 거리가 좀 길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전혀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연말, 고마와 처음 마주치는 주니치 신문배(GIII, 2000m)는 적정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3F(600m) 기록이 37초 8. 선두권보다 2초 가까이 늦는 모습을 보이며 15마리중 13번째의 졸전이었다.


두 경주의 연속된 완패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조교 시간 부족. 스테이 골드에게서 물려받은 신경질적이고 난폭한 성미에 매번 애를 먹었기에 킷카상을 앞두고 버릇을 고치겠다고 엄하게 훈육하는 방침으로 갔는데, 특유의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에 역작용이었는지 나날이 반항이 더 심해진 것. 낙마시키기, 멈춰서기, 조교 장소로 가려고 하면 U턴하기. 심지어 언덕 코스를 달리는 중 제멋대로 멈춰 타임 계측 불능 등등..전심전력으로 저항하는 나카야마 페스타에게 충분한 훈련을 시키는건 불가능했다.


훈련을 시킬수 없으면 승리는커녕 경주에 출전시킬수조차 없다. 두손 두발 다 든 니노미야 조교사 이하 스탭들은 조교를 포기하고 방목을 시켰다. 다만 이 때를 기점으로 나카야마 페스타를 대하는 방침을 완전히 바꿨는데, 절대 나무라지 않고 살살 달래가면서 원하는 대로 따라올때마다 칭찬한것. 그리고 놀랍게도 이 방식은 대성공을 거뒀다. 여전히 예민하긴 했지만, 나카야마 페스타는 확실히 즐겁게 달리고 있었다.



(해당 이미지는 본 경주마와 연관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


2010년, 이즈미 신이치에게로 명의가 이전된 나카야마 페스타는 심기일전, 기수도 관동의 베테랑 시바타 요시토미로 바꾸고 복귀전을 치렀다. 4월 24일의 메트로폴리탄 스테이크스(오픈, 2400m)에 나서서 3~4번째의 포지션을 유지하면서도 라스트 3F 34초 3의 좋은 스퍼트를 보이며 2착마와 2마신차의 완승, 예전에 기대받던 모습에 가까워졌다. 

다음 목표는 상반기 그랑프리인 타카라즈카 기념(GI, 2200m). 생전 노부코가 좋아하던 타카라즈카 가극단의 타카라젠느-극단 여배우가 시상하는 레이스.


하지만 오픈전을 이긴 정도의 나카야마 페스타에게 기대는 높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암말 부에나 비스타. 전년도 춘추 그랑프리 연패의 드림 저니, 직전 천황상·春을 제패한 재규어 메일, 킨코상 우승으로 기세가 오른 어니스트리, 그리고 전년도 더비의 주역 로지 유니버스 등등 강력한 멤버들이 모인것. 그런 가운데 당일 출전멤버 17마리중 8번째 인기는 오히려 후한 편. 거기에 게이트 진입에 애를 먹으면서 '역시나'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3세 때와 달리 충분한 훈련을 할 수 있었던 이 때의 나카야마 페스타는 데뷔 초반에 기대하던 그 잠재력을 모조리 끌어낼 수 있는 상태였다. 예민한 성품에 당일 컨디션을 망칠까봐 미호에서 1주 전 미리 릿토로 옮겨와 훈련한 것은 덤. 그리고 그 완성된 힘은 마지막의 직선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아웃코스로 깨끗하게 돌아나오자마자 가속, 인코스에서 스퍼트하던 부에나 비스타를 일격에 추월했다. 나카야마 페스타의 우승. 조숙인듯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만성으로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시바타에게는 4년 3개월만의 GI 우승이었고, 니노미야 조교사는 무려 12년 만에, 엘 콘도르 파사의 재팬 컵 우승 이후 처음 맞는 GI 우승의 감격이었다.


타카라젠느가 시상을 하는 순간, 스탭 전원은 노부코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 후, 니노미야는 경주 전부터 염두하고 있던 계획을 발표했다. 다름아닌 개선문상 도전을 위한 프랑스 원정.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에도 팬들의 반응은 '무리 아닌가?'였다. 엘 콘도르 파사도, 딥 임팩트 같은 거물조차도 우승에 실패하고 맨하탄 카페, 메이쇼 삼손, 탭 댄스 시티 정도의 말도 두자리수 착순으로 완패한 무대. 이제 막 GI을 하나 이겼을 정도의 존재감 약한 말이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한것. 오히려 팬들이 기대하는 쪽은 3세마의 몸으로 원정을 떠나는 빅투아르 피사 쪽이었다.


다만 노부코가 죽기 직전에도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좋아하던 파리에 원정을 간다는 것. 기수를 다시 에비나로 교체, 12년전의 엘 콘도르 파사때의 에비나-니노미야 콤비가 재결합,

팀명을 타카라즈카의 상징 제비꽃에서 따 '팀 스미레'로 한 것은 화제를 불렀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헬멧. 헬멧도 마주 오리지널인 유럽 경마였기에 고유 디자인을 추가해야 했는데 과거 노부코의 승부복 디자인에서 따온 별을 큼지막하게 박아넣었다. 고인이 사랑하던 타카라즈카의 이름을 걸고, 고인이 사랑하던 파리 롱샹으로 원정하는 스토리.



많은 것을 짊어진 각오, 그리고 능력이 절정기에 이른 덕인지 프랑스에 건너간 나카야마 페스타는 팬들의 예상을 깼다. 트라이얼로 개선문상과 장소, 거리가 같은 푸아상(GII, 2400m)에 출전해 던컨에 3/4마신차로 2착을 기록, 성공적인 현지적응을 보인 것. 니엘상(GII, 2400m)에 출전한 빅투아르 피사가 4착에 머문것과는 대조적.


그리고 본편인 10월 3일, 개선문상은 격투에 가까운 육탄전이었다. 일본과 달리 10m의 고저차를 자랑하는 험난한 롱샹의 코스. 거기에 더해 불량한 마장 상태. 마군 중단 위치에 갇힌 채 틈만나면 안팎의 말과 부대끼고, 4코너에서 막 추진하려는 찰나 앞쪽 말과 부딪힐 위험에 급히 에비나가 반쯤 일어설 정도로 제동이 걸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이 혈통에 타고난 투지를 불러일으켰는지 오히려 맹렬하게 달려갔다.


결과는 그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본 말 도전자중 가장 우승에 근접한 성과였다.

원조 잉글랜드 엡섬 더비의 기록을 갈아치운 3세마 워크포스와 머리 한개차이의 2착.(빅투아르 피사 7착) 

3세마에게 후하고 고마에게 가혹한 개선문상의 조건(3세 수말 56kg, 4세 이상 수말 59.5kg), 장거리 원정, 4코너에서의 불이익, 그리고 워크포스의 능력을 감안하면 대단한 건투였다. 귀국 후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역대 최대의 성과에 뒤늦은 찬사가 쏟아졌다. 노부코와 팀 스미레에 얽힌 사연이 재조명받은 것은 덤.


그러나 불량 마장속의 격렬한 육탄전은 다리가 붓고 컨디션이 무너지는 등 대가가 따랐다. 이대로 시즌을 마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진영은 어느정도 회복됐다고 판단, 11월 28일의 재팬 컵(GI, 2400m)에 출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것이 최악의 선택이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일본 말중 최하위인 14착에 머물렀고, 경주 후 왼어깨의 파행과 왼앞다리의 무릎 내출혈의 진단이 나온 것..

피로누적의 결과로 중증의 부상을 입은 순간, 나카야마 페스타의 전성기는 끝장났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장기 방목으로 휴양을 했지만 2011년 휴양에서 돌아온 나카야마 페스타는 이미 예전의 그 말이 아니었다. 한동안 차분했던 것이 무색하게 예전처럼 조교를 집요하게 거부한 것. 그 상태에서 행한 두번째의 프랑스 원정은 이미 사족이나 다름없었다. 푸아상 4착, 개선문상 11착의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그대로 은퇴했다.


은퇴후 브리더즈 스탤리온 스테이션으로 이동, 씨수말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3년에는 아버지 스테이 골드가 옆자리로 오면서 부자상봉을 했다. 2015년에 아버지가 급사한 이후로는 그 후계 씨수말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목장 스탭들이 스테이 골드의 아들이라 꽤나 겁을 먹고 맞이했던 것 같지만 아버지의 난폭함에 비해서는 진중하고 얌전한 편이며 대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 주장을(주로 거부) 강하게 하는 편이라고.


문제는 나카야마 페스타의 피를 이은 자식들. 4대 동안 이어온 격한 피가 한대를 더 내려가면서 더 농축이 되었는지 성적은 나지 않는 가운데 그 격한 성격만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심지어 2016년엔 데뷔를 준비하던 윈 라 페스타가 

'기승자의 안전을 보장할수 없다''사람의 생명에 관련된 결단' 

이라는 이유로 데뷔도 하기전에 은퇴당한 뉴스가 뜬 것이 결정적.

평판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교배두수가 전년 124두에서 35두로 격감해 향후 씨수말 생활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61 - 나카야마 페스타(ナカヤマフェスタ)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