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읽어보고 피드백 진행한다 선언해봄

나는 좋아.

교수님의 의중을 찍어보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억까를 해보겠습니다. 말 그대로 억까이고 전 처음 봤을 때 너무 좋았으니 상처 받지 말아주세요.


-제목에 대하여
육첩방이라는 건 '남의 나라'를 끌고 오기 위한 걸로 이해했습니다. 마유키는 혁수랑 만나면서 술담배도 안 하는 등 아예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에 사는 것 같은 둘을 마유키의 죽음과 이 때문에 맛이 가버린 혁수를 통해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유미는 언니가 죽어서 슬픈 것 보다도 혁수 꼴 사납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됩니다. 

좋아요. 좋은데요. 다른 세계를 남의 나라로, 나아가 육첩방으로 꼬아둘 필요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마유미 딴에는 육첩방이 오히려 자기 나라 꺼니까 '육첩방은 남의 나라' 문구가 오히려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요. 더해 마유미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안다는 것부터 좀 깼어요. 물론 일본에 윤동주 시인의 자료가 많다고 어디서 주워듣긴 했는데 마유미가 문학인도 아니고 이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뭐 혁수가 어쩌다가 말했을 수는 있는데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그럼 소설은 전부 설득력이 있어야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 문제는 '마유미가 육첩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추가해서 얻는 효과는 '첫 문단이 간지난다' 이거 하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론 저도 이거에 확 빠져든 만큼 효과는 확실했는데 일단 교수님께서는 창작자가 고민을 좀 해봐야지 1)이미 있는 표현이고 2)상징성이 강하지 않으며 3)사실성 또한 적은 문장을 4)고작 간지 하나에 태우는 건 좀... 이라고 생각하셨으리라 봅니다. 제목은 소설의 전부가 담겨야 하는데 조금 그랬어요. 차라리 '선물' 같은 게 작품이랑은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혁수의 개과천선에 대하여
마유미는 주인공인 만큼 좀 이해는 되는데 혁수 정신차리는 게 너무 갑작스러워요. 뭐 마유미 생일날이 되어서 정신차렸다고는 하는데 그럼 뭐 전날엔 몰랐습니까? 생일 전날 마유미의 대사에서 깨달음을 얻었나 싶어 여러 번 읽어봤는데 그것도 아니어 보였습니다. '그냥 죽고 싶다고 말해!'이러는데 마유미한테나 안 말한거지 본인 스스로는 엄청 잘 알고 있었던 거 같거든요. 몰랐던 점을 깨달진 않아보입니다. 

얘는 왜 이럴까요. 마유키가 설정해놓은 알림이 갑자기 울렸다던가 뭐 혁수가 '새삼'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정신을 차리니까 어질어질합니다. 이건 대사 몇 마디면 될 일 같아서 더 아쉬웠어요.

-마유미에 대하여
아까 마유미는 그나마 이해된다고 하긴 했는데,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는 갑자기? 싶었습니다. 왜냐면 생일 떡밥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생일 전날 쪽에 '원래라면 생일 전날이라 선물 뭐 받을지 두근두근 거려야 할 텐데 언니 남친은 폐인이고 이게 다 뭐냐'이런 문구를 넣었을 겁니다. 그럼 빡칠만 하네와 와 감동이 동시에 나오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제 딴에는 갑자기 나와서 '휴대폰에 무슨 중요한 기억이 있나'했습니다. 읽어보니 그냥 언니가 주려고 했던 것이라 언니가 남의 나라 사람이 아니라 내 나라 사람이었구나, 내 생각을 하긴 했구나가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근데 그만큼 휴대폰 선물이 많은 관심의 증거가 될려면 1)휴대폰 가지고 싶다고 찡얼되던 회상 장면이 나온다(휴대폰 자체가 절대적으로 중요함) 2)생일 전날 너무 기분이 잡쳐서 사소한 위로에도 눈물 질질 짜게 됨(상대적으로 휴대폰이 중요해지는 상황이 옴) 둘 중 하나로 노선울 정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게 아까 말한 혁수 갑자기 정신 차림이랑 이어져서 '갑자기 피폐 모드에서 급커브를 한다고? 아니 갑자기 스윗 혁수가 된다고? 아니 휴대폰 선물 하나로 뮤이미 기분이 이렇게 나아진다고'의 향연이었습니다.

분명 마유미의 내면 변화가 가장 중요한 소설인데 마유미는 폐인 혁수 빡침->스윗 혁수에 당황->기분이 좋아짐 정도로 보이기만 합니다. 여러번 읽으면서 아 이런 내용이구나 싶긴 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많이 당황했어요. 순간 사실 마유미도 혁수 좋아했어서 정신 차리는 거 보고 다시금 반했나 의심했습니다. 애도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총평
위에서 육첩방 너무 간지 원툴 아니냐고 했는데 그거 빼고도 읽기 좋았슴니다. 생일 전날 파트는 진짜 끝내주게 좋았어요. 엔딩 파트에 후련해진 두 사람의 대화도 극복됨이 느껴져서 좋았고요. 애도의 과정을 표현할 때 친절하지 못했다는 점을 빼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육첩방 뜻도 남의 나라(대한민국) 사람인 혁수 때문에 언니가 남의 나라(정신적으로 멀어짐) 사람이 되었고, 엔딩에서 내가 한국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나쁘지 않나 보이기도 하네요. 킹치만 하필 한국인 남자친구여야 할 필요도 없는데 제목과 주제로 연결할 정도로 '나라'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 걸... 어찌되었든 육첩방은 오리지날리티가 없는 걸...

스스로가 추해지는 군요. 잘 읽었습니다. 훈수가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