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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교 맨 꼭대기 층 복도 끝에는 자물쇠로 단단히 잠긴 공간이 하나 있다. 건물마다 하나쯤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그런 공간 말이다. 존재 자체를 모를 정도로 무신경했던 그 흐릿한 공간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은 어느 오후였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교무실로 향하던 도중, 한 학생이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그 굳게 닫힌 공간에 볼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학생이 머무른 자리에는 녹슨 자물쇠와 휘어진 클립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불현듯 호기심이 일어, 창문에 제대로 붙지 않은 창호지의 틈으로 그 속을 살펴봤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 안은 컴컴했고, 죽 늘어선 회의실 탁자와 의자엔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 정도로 방치해둘 정도면 창고로 쓸 법도 했지만, 그 안에는 잡동사니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 나는 문 앞에 달린 자물쇠를 건드려 보았다. 빛 한 점 새어 들어가지 못하는 이 공간에 무슨 볼일이 있어 그 학생은 억지로 자물쇠를 열려고 했던 걸까?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다 문득, 이름 모를 당신이 떠올랐다. 빈 공간에 우주 같은 공허만 가득한 당신. 누구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다 쓸쓸한 먼지만 마음의 밑바닥에 남아버린. 어쩌면 아까 그 학생은 굳게 닫힌 이 공간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자물쇠를 어루만졌다. 억지로 자물쇠를 풀려고 해서 그런지 열쇠구멍은 파인 흠과 생채기로 가득했다. 서늘한 냉기가 스며드는 손가락 끝으로, 나는 잠긴 문을 툭툭 두들겼다.

 

 나는 맞지 않는 열쇠로 억지로 상처 입히지 않을게. 언젠간, 그 결에 맞는 열쇠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이곳으로 찾아올게. 먼지를 쓸어내고 자리에 앉아 몇 마디 단어만 허공에 풀어놓고 돌아갈게. 내가 이곳에 햇살 한 줌 가지고 들어와도 될까?

 

 멍하니 문을 바라보다 선생님의 부탁이 떠올라 다시 교무실로 향했다. 나는 자물쇠 구멍으로 그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오래전 보았던 작은 불씨가 어둠 속을 가득 채운 것처럼, 언젠간 다시 그 안에서 이야기 나눌 이름 모를 그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