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이십니까?"

점원이 웃음을 띄며 물어왔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평소의 대화하는 음량보다 조금 더 커서 왠지 모를 위압감을 풍겨왔다. 그 모습은 손님 접대를 위한 고도로 훈련받은 미소 같았다.

꿀꺽 

남자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주먹을 쥔 손에는 땀이 살짝 베어나왔다. 

"몇 분이신가요?"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점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물어본다. 눈에 띄게 낮아진 목소리톤이 썰렁한 분위기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남자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이미 뒤쪽에는 자리가 나오길 기다리는 그룹들이 줄지어 서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를 포함해서 30분 가까이 기다린 그들의 공복은 살기등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며, 짧은 점심시간은 그것을 허용치 않으리라. 그들에게 있어서 식사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긴자는 당당히 일행들과 식당에 둘러 앉아 따뜻한 밥을, 패배한 자는 홀로 인간미 없는 편의점 음식을. 차이는 극명하다.

그리고 남자는 더 이상 맛없는 편의점 음식들로 참을 수가 없었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진한게 우려낸 고기 육수에 말아먹고 싶다. 숟가락 가득히 고기를 퍼담아서 입에 넣고싶다. 그것이 남자의 열망이었다. 편의점 음식으로 돌아갈 바에 차라리 사람들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치욕을 참는 것이 나을 것만 같았다.

"한명이요"

대답을 듣자 점원은 놀라운 것을 보는 것처럼 남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놀라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은채 다시 웃음을 띄며 주문을 확인한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혼자요."

"죄송한데 다시 한번 더..."

점원은 손으로 귀 주변을 둘러싸며, 도발적인 제스처로 재차 되물어온다. 그 행동에 남자는 짜증이 나서 냅다 소리쳤다.

"혼자라니까요!"

아차 싶어서 남자는 엉거주춤 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거지? 하지만 이제와서 상황을 깨달아도 이미 늦어버렸다. 일행들과의 잡담소리로 가득찼던 가게는 한순간에 정적에 휩쌓였고, 모든 시선이 가게 입구에 있는 남자에게 향했다. 

그에 맞춰서 점원은 노골적으로 비웃으면서 주방을 향해서 외쳤다.

"여기, 국밥 일 인분이요! 단 한 그릇!" 

그러고는 얼어붙은 남자의 팔을 억지로 잡아 끌며 자리를 안내했다. 너무 당황해서 빠져나갈 생각도 못한채 어느새 점원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혀져 버렸다.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한참동안의 침묵을 깨고, 누군가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지는 알수 없었지만, 간신히 들릴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저 얼빠진 얼굴 좀 봐. 저게 혼자서 밥을 사먹는 인간의 몰골이구나."

"젊은 청년이 같이 다니는 친구도 없나보구만. 여태까지 뭐했누. 쯔쯧."

"너는 커서 저 형처럼 혼자서 밥먹고 다니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서는 안된단다."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에 찌르는 듯한 말들이었다.

남자는 너무나 분해서 소리 칠 기세로 고개를 치켜 들었지만, 주변의 풍경에 그만 말문이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남자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다른 테이블은 원을 그리면서 주욱 둘러싸고 있었고, 그곳은 명백히 다른 공간이라는 것을 주장하듯 남자의 테이블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폭언을 내뱉은 사람들을 특정해서 반박을 할수조차 없다. 이미 모든 손님들이 남자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밥! 한그릇! 나왔습니다!"

생기 넘치는 점원이 겹겹이 둘러싼 테이블들을 뚫고 나왔다. 갖가지 치욕을 받으며, 결국 눈 앞에는 국밥이 놓여있었다. 남자는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편의점에 가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국물을 한 숟가락 후루룩 마셨다. 

오랬동안 우려낸 육수는 고소했지만, 간이 전혀 되지않은 것처럼 많이 싱거웠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새우젓이니 소금이니 후추니 조미료가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테이블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찝찝한 기분으로 점원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국밥이 싱거워서 그런데 새우젓이랑 소금 좀 갖다주세요."

"실례지만, 손님. 거기에는 더 이상 조미료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점원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손님은 어제까지 화장실 변기칸에서 삼각깁밥이나 씹으시던 분이시죠? 그런 사람이라도 수치심은 남아있으니 눈물을 질질짜면서 드셨겠지요?" 

"그게... 무슨..."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외국 속담이 있습니다. 손님도 혼자 국밥이나 드시면서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인생을 되돌아 보시고, 비참하게 눈물 콧물 질질짜면서 드신다면 그게 최고의 조미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남자의 말을 끊은 점원은 뒤도 안돌아보고 걸어나갔다. 희미하지만 유쾌한 콧노래가 남자의 귀에 깊숙히 박혀 들어왔다. 남자는 망연자실 하면 싱거운 국밥을 목으로 넘겼다. 국밥은 딱 먹기좋게 식어있었다. 

"야야, 밥을 겨우 열네번 씹고 넘겼어."

"그러게나 말이야. 저렇게 눈치없이 빨리 먹으니까, 같이 밥먹을 사람이 떨어져 나간걸거야."

"손 좀 떨지말고, 잘 좀 잡아서 찍어봐. 초점이 안맞잖아."

"혼자 밥먹는 찐따 영상은 귀하니까 좋아요 많이 박히겠지? 킥킥."

"엄마, 저 사람은 왜 밥을 혼자 먹어?"

"얘! 손가락질 하지마. 지지야 지지."

"점원이 화장실에서 삼각김밥 혼자 먹느냐고 물었을때 찔려서 쭈뼛 거리는거 봤지? 혹시 진짜로 질질 짜면서 먹은건 아니겠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혼자 먹는게 무슨 잘못이라고 이렇게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왜 그러냐고!"

가게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아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적의에 가득찬 침묵이라는 것이었다. 

"혼자 먹는 찐따주제에 큰소리까지 치네?"

이제는 감추려는 시늉조차 없이 모멸감과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저렇게 성격이 더러우니까 친구가 없는거지?"

"고얀놈이, 어디서 사람들 밥먹는데서 소리를 지르는게야!"

노인이 먹던 숟가락을 바닥에 던지며, 역정을 냈다. 그러자 점원이 와서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어르신, 고정하세요. 그리고 손님들 수저를 던지면 위험합니다."

점원은 남자의 앞을 가로 막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에 보인 접대를 위한 미소와는 사뭇 달랐다.

"정그러시다면 휴지를 물로 뭉쳐서 던져주세요. 저희 가게에서는 혼자 드시러 오시는 손님을 위해서 항상 휴지를 넉넉하게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철퍽 철퍽 철퍽

물에 젖은 휴지가 테이블 구석에 맞았다. 

"한심하긴."

같이 온 일행이 비아냥 거리며 휴지를 던졌다. 이번에는 휴지가 팔에 맞는다. 팔을 맞춘 사람이 으스대며,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엄마, 혼자 밥먹는 사람은 나쁜사람이야?"

"그래 그래. 그러니까 어서 너도 던지렴."

아이가 던진 휴지는 등짝을 때렸다. 과도하게 물을 머금은 종이는 흐물흐물한 상태로 웃옷에 퍼져 붙었다. 

"엄마! 내가 못된사람 혼내줬어!"   
   
엄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 듬으면서 연거푸 칭찬을 했다. 장난감을 사준다는 약속을 받은 아이는 기쁜듯이 휴지를 다시 집어들었다.

'국밥이 맛있다... 이젠 싱겁지 않아...'

남자는 이제 정신이 나가버린 것처럼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였다.

국밥은 더 이상 싱겁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목이 메여왔다.



WBN  상금은 추후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