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돌아왔다. 보금자리로 왔다는 안도감에 온 몸이 이완되었다.

“테스. 말하고 싶은 거 있어?”

랜스 형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무거웠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아 보였을거다. 목소리가 가늘지만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떨렸으니까. 랜스 형의 표정이 마스크 너머에서도 다 보였다. 어딘가 걱정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널 부르실 때까지 잠시 여기서 쉬고 있어.”

걷다 보니 보건실에 도착했다. 랜스 형이 날 놓아주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여니 마리가 다친 상처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마리, 괜찮아?”

내가 붕대 감는 것을 도와주려고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가 갑자기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마리?”

“따뜻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마리.”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테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하였다. 그러나 딱딱한 무언가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오딘이었다. 푸르스름한 안광이 내 망막을 후벼 팠다. 금속이 구부러지는 소리가 내 고막에서 계속 맴돌아서 나는 그녀를 내게서 떼어 낼 수밖에 없었다.

“...”

말이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말간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는 그녀의 몸에 따라 그 검푸른 두 개의 연못에 물결이 잔잔하게 일었다.

"왜?"

그녀는 새끼 고라니처럼 웅크리곤 흐느끼기 시작했다. 안아 줘야 한다. 기대어 줘야 한다. 그렇지만 다가갈 순 없었다. 오딘이 아직도 푸르스름한 빛으로 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오른손에선 모노아이에서 뜯어낸 전선들이 엉켜 있었다. 나는 놈이, 이제는 나의 일부가 증오스러웠다.
어느새 그녀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이불을 그녀에게 덮어 주곤 조용히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내 옆에 서 있던 오딘은 없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하지만 내가 밀어냈을 때 그녀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테스.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신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랜스 형이 날 불렀다. 나는 도망치듯이 형의 뒤를 따랐다.



보건실에서 교장실까지의 거리는 꽤 길다. 그리고 둘 다 1층인데다가 밖에 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어서 창문에는 무성한 나뭇잎밖에 안 보였다. 덕분에 살짝 어둡지만 분위기는 끝내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쌓여있던 먼지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반짝거렸다. 가장 더러운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며 중간쯤 왔을 때, 헤임달과 마주쳤다. 그는 손에 입학 지원서를 들고 있었다. 인사를 해야 하나? 아직 어색한가?

“미안하다. 몸은 좀 괜찮나?”

헤임달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나는 당황해서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

결국 나는 침묵으로 대답했고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가던 길을 갔다.


“나는 힘 있는 자들이 엇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엇나간 자들이 만든 게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니까.”

교장 선생님은 무슨 이유로 넓디넓은 노바의 변두리인 천명시로 내려와서 학교를 세운 걸까? 수도 유토피아에 있었다면 크게 성공하셨을 분인데.

“우리의 겉은 ‘신’이라도 우리의 속은 사람이다. 우리도 보통 사람들처럼 상처받고, 비뚤어질 수 있다는거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리고 헤임달도.”

교장 선생님의 두 눈은 언제나 은은하게 빛났다. 사파이어의 푸른빛으로. 다이아몬드는 정열적이지만 사파이어는 서글프다. 또 교장선생님의 긴 머리는 실타래처럼 길게 자라 포니테일로 묶여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꼬일 듯 했지만 매일 볼때마다 단정하게 묶여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수염은 운동장의 잔디처럼 무성하면서도 단정했다.

“그러나 우리의 겉은 ‘신’이기에 우리가 비뚤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기고 말아. 그래서 우리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슨 말이지? 날 훈계하려고 하시나?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교장 선생님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미안하다.”

마치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어지러움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교장 선생님의 눈빛은 강렬하진 않았지만 그 서글픔은 오히려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한껏 주눅든 채로 기다렸던 말이 이토록 부드러운 한마디 였다니!

“단지 내가 원했기 때문에, 너희들의 상태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리하게 작전에 투입했어… 큰 죄를 지었구나.”

“아… 아닙니다.”

나는 하고 싶었고, 그래서 스스로 손을 들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이것에 사과를 하고 계신다. 무슨 상황일까?

“후… 그래.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네. 괜찮습니다.”

“혹시 나한테 말 못한 힘든 일 없니?”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 거지? 혹시 오늘 치안유지대와 있었을 때? 아냐. 말 못해.

“...없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가서 푹 쉬어.”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조용히 교장실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