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방충망에 달라붙은 매미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눈을 떠보니 흰색 천장이 보이고 매미는 어디로 날라갔는지 매미 소리는 없고 그저 저멀리 들리는 차 지나가는 소리와 선풍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여름 오후. 누워있는 몸으로 일어나기 귀찮아 머리만 들어 쳐다보니 고등학생 된 아들이 멍때리며 열린 현관을 쳐다보고 있다.


서울에서 5층짜리 아파트를 요즘은 보기가 힘들다. 최근엔 다 고층, 그것도 10층 이상씩 짓다보니 더더욱. 이곳 아파트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나즈막한 산 아래에 지어졌다. 아들이 어린이집 들어갈 즈음 직장에서 이곳 인근 물류창고로 발령받아서 집을 새로 짓자니 계속살지는 나도 몰라(지금은 승진 되서 아예 여기 눌러앉았다) 아파트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파트 30X호, 우리 옆집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시었다. 서울 사시었다면 공원에서 장기 두고 계셨을법도 한 인상이었다. 어느날 아들을 할아버지께서 데리고 오셨다. 아들이 중간에 길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할아버지께서 보시고 데리고 오신거다. 아마 그날 감사하다고 와이프랑 고개를 여러번 숙인것 같다. 그뒤로 아들이 그 할아버지 댁에 자주 놀러갔다. 시골이고 이 아파트는 읍내나 마을이랑 조금 떨어져서 친구들이랑 만날려면 멀리 걸어가야하다보니 내가 쉬는 날이면 차로 데려다주었지만 평일에는 그렇지 못해 혼자 놀더니 요즘은 어찌 할아버지랑 마음이 통했나보다. 그래서 집에와서 내가 TV 보면 중간에 할아버지랑 본거라고 좋아라 나에게 설명한다.


난 아빠이면서 아들이랑 주말에 시간보내고 평일에는 집안일 도와주고 바로 잠을 청하다 보니 아들하고 있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와이프도 어린이집에 애 맡기고 일하다보니 집안일은 집에 와서 애 돌보며 병행하는것 같다. 최근에 아내가 저녁 식사 정리할때 나한테 살짝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요즘 내가 집안일하고 있을때 ○○이가 안보이는 거야. 그래서 아파트 놀이터에 있나 했더니 없어. 집에 오니 옆집에서 목소리가 들리길에 힐끔 봤더니 할아버지께서 봐주고 계셨어. 막 좋아서 ○○이가 웃던지 마치 친정아버지같애."


"우리 애를 맡아주시는것 같아 너무 죄송한데.. 워낙에 선하신 분이긴하지만 무슨 사례라도 하고 싶네. 다음에 떡이라도 가져다 드려."


그렇게 시간을 보낸지 반년 정도 지났다. 출근길에 복도에서 창밖을 보니 이웃 할아버지께서 그 자녀분들로 보이는 분들께 손인사를 하며 배웅하는거 같았다. 여기와서 처음 자녀분을 보는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뵌 이웃 할아버지 얼굴에는 쓸쓸함만이 가득한거만 같았다.


그 주 주말, 읍내에서 장 보고 아파트 앞 노인정 앞 정자에 앉았다. 아이스팩 열어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려는데 옆에 할머니분 두분이 쳐다보시길래  아이스크림을 드리었다. 문득 옆집 할아버지의 자녀분을 본게 떠올라 말을 붙여보았다.


"그 30X호에 계시는 할아버지 자녀분이 자주 오시나요?"


"음.. 글쎄 자주 오던가? 1년에 두번 올때도 있고 서너번 정도는 오는 거 같다."


이어 그 옆에 계신 모자쓴 아주머니도 말을 붙이며


"아이구. 그 자식들이 꽤나 매정한거 같더라. 할머니 돌아가시고 집이 오래되었던가 마침 장남집이 새로 짓은 집에 모신다고 할아버지 사시던 집 허물고 여 아파트에 잠시 계시라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서울은 싫다고 안간다고 하나 어찌됬는지 잘 모르겠네."


"언제 전 만든거 드리려 갔는데 곧 이사갈수도 있다고 하신거 같기도.."


몇마디 이거저것 듣다가 길어져서 아이스크림 녹을까봐 집에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이사가신다는 말이 은근히 걸린다.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이사를 가시었다. 그날 인사를 드리고 선풍기를 사드리었다.


"아유, 늙은 사람이 이사가는건데 이런걸 주나. 이돈으로 빨리 ○○ 간식이라도 사줘."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실랑이를 벌이다 포기하시고 받으시었다. 그날밤 우리 애는 울구불구 별 짓을 다하다 지쳐 잠들었다. 그때부터였나 아들은 할아버지 언제 만날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해서 처음엔 전화로 하더니만 초등학교 들어가니 연락을 안하는듯하였다. 그대신 버릇같이 멍때리며 문열린 현관문을 본다. 뭘보나 싶으면 평소보는 풍경인데. 아내 말로는 할아버지께서 수술 받고 나으면 온다는 약속을 한듯하다. 그래서 문을 쳐다본다고.

부고 소식 들은건 ○○이 초등학교 졸업때였을거다. 한 몇달 지났다고 하시었다. 그전까지 이곳을 다시 오시는 일은 없었다. 아들도 잊어버렸겠지 싶어 말은 안하였다. 그렇게 내 아들은 벌써 내키를 뛰어 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근데 오늘 문밖을 쳐다본다. 혹시 기억이 떠올랐나. 너를 가족처럼 아껴주신 멋진 할아버지가 계셨단걸.


아들에게 어디 바람 쇠러갈래 라고 권하였다.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멋진분 뵈러간다고 받아치었다. 멀리서 숲속 매미의 우렁찬 소리가 들리고 선선한 바람은 산에서 불어와 집안을 돌다 남쪽 평야로 나가고 파아란 하늘의 구름은 천천히 바람타고 흘러가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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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간만에 올립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