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아세르 공국의 수도 파페르는 원래 작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륙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신성제국에서 독립하기 위한 각종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규합되어 일어난 천 년 전의 분리전쟁 당시에도, 그들의 수장노릇을 하던 케아세르족은 산골에 터를 잡은 화전민일가였다는 것이 각종 사서들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공국교육기록청에 따른 공국의 공식 역사공저에는 무수히 많은 미사여구와 각종 영웅담들로 그런 ‘일반적이고’ ‘평범한’ 공왕가의 출생을 덮어두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케아세르 공왕가의 태동지로서 현재 왕궁이 산기슭에 지어져 있다는 그 사실은, 빈정거리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 좋은 표적이 되고 있다. 이미 까마득한 세대가 지나가고, 신성제국과 공국의 전쟁은 그저 책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된 이 시점에서 사실 그런 역사적인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제리는 ‘현재’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약초쟁이들은 - 쿨럭 - 왜 그러니까 바로 앞에 좋은 산 냅두고 여기 와서 장사진인데? 사실 너희 대장장이들도 그래. 꼭 이렇게 몰아서 지어야 좀 뭐가 좋아보이고 그러냐?”


 지나다니는 통행인, 마구들이 내뱉는 먼지와 여기저기서 피워올리는 연기들로 나빠지는 공기. 으레 발전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발생하는 반갑지 않은 친구들이다. 하지만 이 곳 - 산비탈에 지어놓은 왕궁에서 내리뻗은 대로, 그 아래로 있는 귀족가 바깥쪽으로 새로이 지어진 서민들의 거리 - 에서는 특히나 그 정도 가 심했다. 여관 ‘넘치는 술잔’을 기점으로 쭉 뻗은 대로 왼쪽으로는 다양한 모험가들의 취향에 맞추어 나가는 여러가지 형태의 숙박시설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 제리의 표현에 따르면 - 그 모험가들을 등쳐먹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종다양한 도구상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무기와 방어구를 제련해 주는 대장장이들, 약초를 달여 모험에 필요한 약을 만들어 주는 약초상, 그리고 노점을 차려 어떻게 돈을 벌어보려는 잡화상들까지. 거리 하나에 이 모든것이 밀집해 있었다. 수도의 대로라는 것이 보통은 그렇게 좁은 것이 아니건만 , 제국이 키프리스의 기록과, 기타 각종 모험일지에 공식적으로 현상금을 내건 이후로는 이곳은 말 그대로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영혼산맥 남부로 가는 길목 중, 모험가들을 상대하는 가장 큰 시장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제리는 지금 그 발전의 부작용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앞 건물에서 잘못 달여 태워 버린 약초연기가, 바람의 방향 때문에 대장간 앞에서 물건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직격했기 때문이다. 대장간 ‘티모시’의 첫 번째 제자이자 그의 아들인 티모시(그래서 이 공방을 잘 알고 있는 단골들은 대부분 그를 2대째 라고 불렀다)는 그에게 물에 적신 수건을 갖다주면서 푸념조로 말을 받았다.


“모두 먹고 살려고 그러나 보죠, 뭐. 사실 저희집이야 저희 아버지때부터 쭉 이자리에서 망치질을 해왔잖아요. 근데 정말 요새같은 때는 없는 것 같아요. 모험가들 수가 늘은건 좋은데, 거리가 너무 복잡해요. 보세요, 저기도 대장간, 그 옆에도 대장간. 저기도 있네. 뭐 파페르가 좀 큰 도시인건 맞지만, 지금 눈으로 보이는 거리 하나에 대장간만 4개가 넘어요. 이게 꼭 이래야 되나 싶다니까요.”


“내 말이 그말이다. 모험가들이 밥먹여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갑자기 그거 있잖아. 바람의 만가. 어떤 놈팽이가 여러분, 제가 드디어 발견했습니다요 하고 갑자기 펑 하고 터져버리면 여기있는 사람들 다 어쩔거야? 굶어 죽을거야?”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내심 제리도 그렇게 일이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고 있었다. 자신도 지금 모험가들을 상대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지금 그렇게 끝나버리면 먼저 굶어죽는 사람은 자신이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런 제리의 불안감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대장간 안 공방에서 망치질을 마친 대장간 주인 티모시가 사람이 물을 채우면 간신히 들 수 있을 법한 거대한 양철통에 물을 붓는 주둥이와 손잡이가 달린 물건 - 다시 말해 거대한 주전자를 어깨에 지고 빈정거리며 나왔다.


 “굶어죽어도 네가 먼저 굶어죽겠지, 제리. 음유시인이랍시고 목소리만 좋아서는 다른 거 할 줄 아는 일도 없잖아 너.”


 제리는 문에서 나오는 티모시를 보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는 너스레를 떨듯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형님 왜 그러십니까. 왜 전에 잊어버리셨어요? 형님하고 전에 일손 필요하다고 저기 산위에 귀족구역 공사하러 갔을 때 목수양반들이 이렇게 망치질 잘하는 사람 처음봤다고 그것만 계속 시켰잖아요. 뭐 이 정도 손재주만 봐도 다른 일을 시켜놔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으리라는 게 딱 보이지 않습니까?”


티모시는 주전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그 쇳덩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건 하는 일도 없이 네가 하도 시끄럽게 떠들면서 돌아다니니까 그 친구들이 못이나 물고 한군데 처박혀 있으라고 ‘어쩔 수 없이’ 시킨거지. 너 내가 그때 얼마나 거기 작업반장한테 사과했는지 아냐? 뭣허러 저런거 데려왔냐고 하는데.”


 “에이, 지나간 일은 좀 넘어가고 그러십쇼. 뭐 부끄럽게 그런 것까지 얘기하고 계십니까. 2대째가 듣고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절 얼마나 존경하는 앤데.”


 그와 동시에 제리는 2대째에게 동조의 의미를 담은 눈길을 보내었고, 티모시는 아무 의미도 담기지 않은 듯 한 건조한 미소를 띄웠고, 2대째는 길 건너 저 편에 있는 경쟁 대장간의 주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그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제리는 2대째의 납작한 뒤통수만을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지금 진심으로 말한 건 아니지?”


 “아, 부탁한 물건이나 주십쇼, 형님.”


 “그런데 이렇게 큰 주전자는 어디다 쓰는거냐? 이걸로 차를 끓이면 적어도 우리 동네 사람들 한 잔씩은 다 먹겠는데?”


“거기서 내일부터 단체손님을 받는다네요. 그래서 방에 온수를 날라야 되는데 끓일 도구도, 물을 나를 통도 부족하다고 이런게 필요하다고 그러데요. 말씀하신 김에 물어보는 건데, 이거 너무 크게 만드신 거 아닙니까? 원래 주문이 이랬어요? 이거 제가 들고 나를 물건인데, 이 정도로 들고 나르면 저 골병들겠는데요.”


 “니가 들 거였으면 더 크게 만들걸 그랬다.”


 “형님...”


 “농담이다. 이거 아까 들고 나오는 거 대충 봤겠지만, 양철로 만들놔서 생각보다는 가벼워. 물을 담아도 너 정도면 너끈히 들 수 있을 만큼 용량도 조절해 놨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근데 뜨거운 물 직접 담아서 나르는 용도라면 꽉 채우지 않는 편이 네 신상에는 좋을거다. 몸 어디 익고 싶지 않으면.”


 “어쨌든 감사합니다. 형님. 다음에 술 한잔 하셔야죠.”


 “그놈의 술 한잔 얘기하기 전에 전에 개싸움할때 빌린거부터 갚아야 되지 않겠냐?”


 “아, 도박으로 잃은 돈을 어떻게 그냥 드립니까. 따서 드려야죠. 제가 꼭 드릴테니 걱정말고 기다리십쇼. 제가 뭐 약속 안 지킨 적 있습니까?”


 티모시는 말없이 피식 웃고서는 손인사로 제리를 배웅했다.




 공국 수도에 집을 지어올린다는 일 자체가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번화한 도시라는 곳에서는 언제나 수요가 넘쳐난다. 집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큰 길가에서 가까운 집을 선호하지만, 길은 정해져 있고, 당연하게도 공국 토지법과 건축법은 공유지로 정해진 길가를 넘어선 건축물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주민들은 빠르고, 저렴하게 자신의 집을 갖기를 원했고, 미장이와 석공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나르기 힘들고 비싼 석재로 기초를 댄 튼튼한 구조를 배제하고, 지푸라기와 진흙, 자갈, 나뭇가지로 짜여진, 문자 그대로의 움집에 벽에 회칠만 해서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집들을 전후사정 모르고 갓 상경한 꿈이 넘치는 초짜 도시인들에게 팔아제꼈다. 여러가지 이유가 맞물려서 파페르 외곽 모험가들을 상대하기 위해 올라온 평민들이 거주하는 신시가지에는 길을 따라 난 칼로 자른듯한 건물들의 회색 행렬이 아무런 개성 없이 양 편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제리는 그 회색 평행선의 중간으로 자신의 몸을 날려대고 있었다. 사람 하나는 너끈히 들어갈 듯 한 양철통을 들고 자신의 물건을 사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장사치들과 구경꾼들, 손님들의 인파를 헤치며 돌아다니는 것은 사실상 관용구 그대로, ‘영혼산맥을 한 입에 삼키는 일’ 이나 진배 다를 바 없었다. 어떻게든 두 팔로 통을 머리 위로 받치고 뚫어보려고 해도, 말이 가벼운 통이지 양철통은 양철통이었다.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대며 사람들에게 사과를 연발하던 그때,


 “소매치기야!!!”


 시끄러운 시장통 한 가운데서도 바로 들릴만큼 날카로운 비명이 제리의 뒤에서 터져나왔다. 제리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의 벽을 넘어 다섯 발자욱쯤 뒤에는, 방금 비명을 지른 사람의 물건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주머니를 들고 인파의 벽을 거칠게 뚫어나가는 한 사나이의 모습이 있었다. 그 사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악다구니를 부렸다. 진행방향으로 보아할 때, 오른쪽에 있는 골목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군중들은 갑자기 일어난 범행과 폭언에 놀라 그에게서 떨어지기 위해서 양 옆으로 길을 틔워주었고(이것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작달막한 주머니칼 때문이기도 했다), 소매치기는 비교적 수월하게 그 사이로 난 길로 도망갈 수 있었다. 물론 운 없이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밀치고, 뒤로 자빠트리면서 길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잠깐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제리는 퍼뜩 그 소매치기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자신이 서있는 곳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미처 피하기도 전에, 소매치기는 그의 앞을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제리가 잠깐 멈칫하는 그 사이, 그는 소매치기와 눈이 마주쳤다. 소매치기는 불안한 눈으로 제리에게 소리쳤다.


 “뭐야! 안 꺼져?!”


 잠깐 그 눈을 바라보던 제리는 그 주변의 여느 사람들이 그러했듯 자신의 몸을 틀어 옆으로 비켜주었고, 소매치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으로 바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 자신의 지갑을 도둑맞은 운 없는 사나이가 그 뒤를 쫓아갔다. 제리는 아까 소매치기를 바라보던 그 눈길 그대로, 그들이 들어간 골목길을 잠시 주시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양철통을 앞에 들고 ‘넘치는 술잔’으로 향했다. 그 움직임을 신호로 삼은 마냥 시선으로 뒤를 쫓던 다른 군중들도 다시금 자신의 길을 재촉했다.


 가을의 해는 짧고, 어느새 석양은 회색빛이던 거리의 단조로운 풍경을 단풍들은 산처럼 붉게 물들여 갔다. 햇빛에 눈살을 찌뿌리는 상인, 방금 지나간 소매치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아이에게 도덕관을 심어주고 있는 엄마.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고래고래 선전하고 있는 행상인. 모두의 얼굴에는 무표정이란 가지 위에 바랜 석양이 드리워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언제나의 일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