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텐 친한 누나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짝사랑 하는 친한 누나가 있다.
대학생 시절부터 알아온 누나로 단체로 술자리를 가면 보통 옆이나 정면에서 같이 떠들 정도로 친한 사이다.
누나는 미녀가 많다고 소문난 우리 학과 중에서도 탑에 속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데다 대인관계도 좋은 편이다.
그에 비해 아싸는 아니지만 인싸의 축에 끼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내가 누나를 좋아해도 이뤄지기 힘들단 건 안다.
그래도 일단 내 나름의 대쉬를 해보고 거의 노골적인 고백에 가까운 멘트도 날려봤지만, 결과는
“후배야, 가서 커피 좀 사와.”
“또요? 아까 삼각김밥 사오라 시킬 때 한 번에 시키지 좀.”
“어허, 토 달지말고. 지금 마시고 싶어졌는 걸 어떡해.”
“예이, 예이, 그래서 아메리카노? 아니면 모카라떼?”
“음, 오늘은 씁쓸한 아메리카노가 땡기네.”
“예, 어련하시겠어요~아, 누나, 시킬 거 있으면 지금 다 말하세요, 사람 여러 번 고생시키지 말고.”
“음~ 어쩔까~”
이건 연인이라기 보단, 빵셔틀? 좋게 말해도 애완동물과 주인이다.
어영부영한 대답만 주고, 귀여워해줄테니 시키는 대로 살란다.
덕분에 거의 매일 같이 누나의 시종으로써 누나에게 온갖 봉사를 도맡아 하고 있는 심정이다.
물론 내 돈을 쓰게 하는 건 아니고 종종 맛있는 거나 비싼 곳도 데려가 준다.
뭐, 누나는 지금 대기업에서도 잘 나가는 사원이라니까 돈이 크게 부족하진 않겠지.
원래부터 누나가 나름대로 날 귀여워하는 건 안다. 아마 후배 중에서 내가 제일 친했던 탓이겠지.
그래서 누나가 졸업한 이후에도 이렇게 만나는 거고.
그런데 왜 나만 취급이 다른 걸까.
다른 사람들에게 누나란 솔선수범에 천사라는 이미지.
헌데 아무리 봐도 나한텐 개를 부리는 악마로 밖에 안 보인다.
솔직히 말해 고백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은 몰랐는데, 이 양반이 이렇게 짖궂고 장난 좋아하는 성격일 줄이야.
“하아, 슬슬 포기할까.”
내가 인기가 없는 건 아니다.
아니 많은 것도 아니지만.
과대평가할 마음은 없지만 과소평가하는 것도 아니라 정말로 사귀려면 여친은 만들 수 있을 거다.
실제로 내가 모쏠은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높은 거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좋아해버렸는 걸, 될 때까지 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것도 몇 달이 되가니 슬슬 지쳐간다.
“오빠~! 여기서 뭐 하세요?”
봐, 나 이래보여도 먼저 말 걸어주는 여자후배도 있다고.
“여기서 만나네, 난 커피심부름 중인데 넌?”
“전 쇼핑이요, 그런데 커피심부름이라뇨? 누구의?”
“아, 그, 친한 누나라고 해야할까, 암튼 날 셔틀로 부려먹는 마님계셔.”
후배는 뭐, 아무튼 친한 여자후배다.
가끔 내가 밥 사주기도 해서 지갑으로 보는 걸 수도 있지만 은근히 나한테 마음이 있어하는 것 같다.
나도 아마 누나한테 꽂히지 않았으면 얘랑 지금쯤 썸싱 타고있지 않았을까.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영화나 보러 가요!”
“얘가 남일이라도 후폭풍 생각 안 하네.”
“오빠, 부려먹기만 한다면서요, 오빠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래요~ 가요~”
인정하긴 싫지만 어쩌면 나도 슬슬 현실을 자각하고 누나한테서 떨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은 안 되고, 주말은 어…”
“커피가 늦네?”
“엄머, 썅!”
뭐야, 왜 누나가 거기서 나와.
나한테 커피 심부름을 시켜놓고 편히 쉬고 있을 줄 알았던 누나는 뭔 일이 있던 건지 매우 불쾌해 보이는 표정으로 다가와 나랑 후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누나가 왜 여기에 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 말을 가위로 찢듯 차갑게 끊고 마치 화살이라도 튀어나올 듯 날카롭게 후배를 노려보더니 이윽고 나에게 고개를 돌려 내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우, 솔직히 따귀 때릴 줄 알고 살짝 쫄았네.
“나는 말이야, 우리 개가 다른 사람한테 꼬리흔드는 것까진 괜찮은데, 가서 막 비벼대고 애교부리는 건 싫더라?”
“누나 개도 키웠어요?”
나도 안다, 이게 무슨 의민지.
그냥 받아들이기 싫은 거라 못 알아듣는 척하는 내 나름의 투정이다.
당연히 머리 좋은 누나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좀 어벙한 개도 역시 귀엽다니까.”
정말로 개를 다루듯 내 턱밑을 간지럽히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후배는 충격적이었던 건지 그대로 말도 없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음, 영화는 못 보겠네.
“근데 진짜 왜 온 거에요?”
“궁금해?”
솔직히 조금, 여기까지 올 거였으면 왜 나한테 시키는데.
“그보다, 커피는 됐으니까 영화나 예약해놔.”
“영화요? 뭐 보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아무거나, 아, 가능하면 당장 볼 수 있고 긴 영화로 부탁해.”
후배 녀석의 말을 듣고 갑자기 영화라도 보고 싶은 것일까, 어쨌건 영화자첼 싫어하는 건 아니었기에 순순히 누나의 말을 따라 영화를 찾아봤다.
“감히 나만의 개의 목줄을 뺐으려해…?”
“누나 뭐라 했어요?”
“아니, 그보다 영화는 정했어?”
“네, 좀 옛날 영화긴 한데 재개봉한다니까 그거 보죠.”
“자리 좀 보여줘봐.”
“여기, 어때요? 가운데 자리라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안 움직일 테고.”
“싫어, 저기 끝자리로 해.”
“화장실 많이 가시는 편이에요? 알았어요.”
“어, 누나 아니에요?”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는 나보다 체격이 좋고 얼굴도 여러모로 꾸민 티가 나는 잘생긴 놈이 나타났다.
이 녀석은 뭐랄까, 일단 친하진 않지만 대학동기다.
흔히 말하는 인싸로 여자애들한테도 선배, 후배, 동기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다.
아마 내가 아는 여친 만 해도 지금까지 6번은 있었지?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지만 여자 문제에 꽤나 질척이는 놈으로 예전부터 은근히 누나에게 작업을 걸던 녀석이다.
그때마다 누나의 우회적인 거절에 침몰되어 딴 여친을 사귀고, 걔랑 해어지면 다시 작업걸고, 또 실패하면 딴 여자랑 만나고를 반복하는 재밌는 놈이다.
차라리 나도 이렇게 거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확실하게 마음 접고 다른 여자 만났을 텐데.
반대로 이놈한텐 내가 그렇게 부러운지 누나의 시중을 든 이후 나를 보는 눈빛이 좀 나쁘다.
“누나, 혹시 오늘 시간 있으세요?”
“아니, 아쉽게도 선약이 있네? 조금만 일찍 말해주지.”
다시 말하지만 누난 나 이외의 사람에겐 천사같은 사람이라 이미 끈질기게 작업거는 놈한테도 친절하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방금 이야기 들었는데 영화 볼 거 아직 예약도 다 안 하셨잖아요. 안 그래?”
갑자기 나한테 바톤이 넘어오네?
“아직 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
“봐요, 잘 됐네요! 저희 같이 노래방이라도 가요!”
“난 노래 잘 못 하는 편이아…”
“그럼 같이 롯데월드라도 가실래요? 제가 VIP거든요, 돈도 제가 다 낼게요.”
평소라면 슬슬 물러났을 녀석이 오늘은 끈질기다.
아마 나쁜 뜻 없겠지만 그래도 멋대로 누나의 팔을 잡아당기려 하는 건 선이 넘지.
아까 누나가 한 것처럼 둘 사이에 비집고 나는 녀석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결제완료 버튼을 눌렀다.
“이거 어쩌냐, 선약 생겨버렸네? 좀 일찍 말하지.”
실제로도 이거 누르려던 찰나에 너가 말 걸어서 늦어진 거고.
“풉.”
누나도 그 상황이 여간 웃겼는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고 그게 그리 쪽팔렸는지 녀석은 멱살잡을 기세로 나에게 다가왔다.
“넌 뭔데 전부터 선배 곁에 알짱거리냐?”
“나? 누나 개.”
이게 사람한테 붙일 별명인가 싶긴 하지만 누나는 이게 뭐가 그리 마음에 드는지 날 그렇게 부른다.
악의는 없어 보이고 이젠 그러려니 하고 놔두지만.
“개면 개답게 꼬리나 흔들어, 사람들 일에 끼지말고.”
“개가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봤어? 너 개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다.”
내 농담은 그다지 재미가 없는지 진짜로 멱살이 잡혔다.
어우, 얘 힘 좋네.
“말장난 치지마, 선배가 니 여자라도 돼? 엉?”
“그야 아니…지…”
개새끼, 여기서 훅 들어오네.
혹여 몰라 누나를 쳐다보았지만,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참지도 못하고 계셨고 입을 열어서 한다는 말이
“내가 얘 여자?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마.”
아예 못을 박는다.
그래, 이런 대답을 내심 기다렸지만 그걸 이 자리 이상황에서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내심 큰 상처를 받으려는데 선배가 조용히 날 붙잡은 녀석의 팔을 빼서, 그대로 내 목을 끌어앉았다?
“내가, 얘 여자인게 아니라.”
“누나? 뭐 하는 읍?!”
그대로 말이 끝나지도 전에 누나의 얼굴이 시야를 가리더니 입 사이로 무언가 끈적한 게 침입하더니 내 이빨과 잇몸을 마구 훑기 시작했다.
간지럼에 약한 탓인가 손가락이 막 들어가고 발이 쭉 뻗어지더니 이젠 내 아들이 묘한 흥분과 열을 뽐내기 시작했다.
“후아~! 얘가 내 남잔거야.”
자신의 입술에 묻은 내 건지 본인 건지 모를 침을 요사스럽게 핥으며 누나는 다시 한 번 내 목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씨발…”
뭐라 막 쏟아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녀석은 욕 한 마디만 짧게 내뱉고 버려진 개처럼 터벅터벅 걸으며 사라졌다.
마지막은 남자다웠어. 그건 인정할게.
“어? 어~?”
그보다 나 지금 머리 회전이 잘 안 된다.
나 방금 누나랑 키스한 거야? 이런 백주대낮에서?
“어어?”
“우리, 영화 최소하고, 일찍 들어갈래? 물론, 니집으로.”
“예에~?”
“이것저것 얼빵한 짓 하는 게 귀여워서 풀어뒀더니 딴 년이 주인없는 줄 알고 자꾸 넘보고, 다른 잡놈들도 꼬리치고, 이제 충분할 것 같거든. 너가 고백했을 때도 말했잖아, 넌 내, 나만의, 나만을 위한 개라고.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개가 제 발로 왔는데 내가 넘겨줄 것 같아? 넌 나만 예뻐할 수 있고 나만 만질 수 있고 나만 혼낼 수 있는 그런 개, 하긴 이렇게 사랑스러운 개를 목줄 없이 내놓은 나도 문제야, 반성하도록 할게, 그러니까 앞으론 목줄을 이렇게 딱, 해놓고 가야 사람들이 갖잖은 오해를 안 하고 우리 개를 안 넘보겠지? 응?”
마치 노예한테 인두를 지지듯 내 목을 가볍게 깨무는 누나, 피는 안 나오지만 목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았다.
“누나…”
대체 이 사람은 뭔 모습이 진짤까, 사람이 이렇게 여러 번 성격을 갈아치워도 되는 걸까.
하긴, 뭐면 어때, 어떤 모습이건 내가 좋아한다는 건 변함 없는데.
“아, 나를 두고 딴 년이랑 약속하려고 한 벌은 받아야지?”
“벌?”
“음, 주말에 만나자고 했으니까, 이번 토요일부터 주말 끝날 때까지 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오는 건 어때?”
“너무하시네…”
“그래서 대답은?”
“… 차라리 1박2일 여행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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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갤 요즘 바빠서 눈팅도 못하다가 오랜만에 단편내보네.
지금까지 써본 소설 6개 중4개가 얀데레물ㄷㄷ
원래 출판 계약한 판타지 소설도 출판사가 사고쳐서 계약 해지한 상탠데 그냥 얀데레 장편 소설이나 연재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