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커헉.. 허억..."

공기는 이글거리고, 바닥은 온통 모래만이 가득한 이 사막에서, 나는 도망친다.


겨우 꼭대기까지 오른 어느 사구를 헤엄치듯 미끄러져 내려가자, 곱기만하던 모래 언덕은 비단옷 주름지듯 물결쳐 무너지면서 온사방에 희뿌연 먼지바람을 흩뿌려놓는다. 


"콜록!! 콜록!!"

미친 사람처럼 팔을 허우적거리며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고운 모래가 옷 속 가득히 스며들면서, 움직이는 순간마다 따갑게 피부를 스쳐지나간다. 신발 안에도 가득 쌓여, 내딛는 걸음마다 바삭거린다. 


넘어온 언덕의 뒤로는, 추격자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내뱉는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일렁이는 공기를 타고 하늘 가득 울려퍼진다. 그리고 그 포위망이 갈수록 좁혀지고 있음은, 점점 더 선명해져만가는 그들의 목소리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뒤를 흘끗 돌아보자, 그들이 어느새 사구를 넘어 썰매타듯 내려오는 모습이 똑똑히 바라보인다. 검은천으로 윤곽이 드러나도록 감싼 몸에, 햇빛 비쳐 반짝이는 구리 가면이 그들의 복장이었다. 그리고 한명도 빠짐없이, 두 갈래로 넓게 갈라진 창을 손에 쥐고 있다. 


"허억... 허억..."

빌어먹을. 지금 그딴 세세한 부분에 신경쓸 여유는 없어. 꼴에 학자라고, 순간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해버렸다. 애초에 이딴 쓰잘데기없는 호기심만 없었어도, 최소한 이렇게 사막에서 쫓기다 개죽음 당할 일은 안 겪었을 탠데. 


다시 앞을 바라보며,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향을 향해 계속 달려나간...


"허.. 어윽..!!"

-철퍼덕


잠깐이라도 뒤를 돌아봤던 것은, 최악의 실수였다. 발을 삼키듯 빨아들이던 모래 위에서 균형을 잃고 앞으로 꼴사납게 엎어진다. 뜨거운 모래에 손을 딛고 일어나려 했지만, 어느샌가 다가온 추격자들의 행동이 훨씬 더 빨랐다. 


"컥..! 커억..!! 컥..."

두 갈래로 갈라진 창끝 사이에 목이 끼워져, 그들중 한 명이 힘주는 그대로, 바닥에 짓눌린다. 이제 보니 창이라기보다는, 목을 붙잡는 집게에 더 가까운 모양새다. 


"...! ...!!"

날 바닥에 눕힌 추격자는 뒤를 돌아보며 동료들을 향해 무언가를 소리친다. 대충 "사냥감을 잡았다" 같은 내용이겠지. 


이젠 전부 끝났다. 그나마 곱게라도 죽여주면 다행일...


그리고 순간 강렬한 충격에 눈앞이 하얘지면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천장은 그림자가 져서 어둡다. 초의 불빛이 일렁인다. 


푹신한 침대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처음으로 본 광경이었다. 나쁜 꿈이라도 꾼게 아닌가 싶은 몽롱한 현실 감각 속에서, 기억의 매듭은 칼로 끊어버린듯 날카롭고 급격하게, 풀려나간다. 


나는, 잊혀진 고대의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다. 모래 아래 묻힌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냈다는 친구의 편지에 부라나케 달려왔지만, 목적지에 가장 가까웠던 정착지를 떠나 사막 더 깊은 곳으로 향하던 중에, 어떤 야만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타고 왔던 낙타는 날아온 화살에 목이 꿰뚫려 즉사했고, 쓰러지는 낙타에서 낙마해 허겁지겁 도망가는 와중에 짐은 전부 버려지고 말았다. 젠장, 안에 비싼 측정 도구들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슥

"..."

물론 이런 배부른 감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직 내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몸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모래에 긁혀서 생긴 약간의 찰과상 말고는 큰 상처 없이 말짱했다. 옷차림도 어느새 보드랍고 촘촘한, 고급스러운 가운 같은 복장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나를 잡아먹으려 붙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노예로 쓰거나, 나중에 잡아먹기 위해 가두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아직은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한 위안이다. 


-또각 또각

어떻게 탈출해야하나 방 안을 둘러보면서 고민하는 것도 잠시, 문 바깥으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온신경이 집중된다. 


-끼익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여자는 속이 훤히 비쳐보이는 얇은 천을 몸에 길게 두르고, 자그마한 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살짝 구릿빛이 도는 피부에 검은 생머리, 드러난 허벅지 한쪽이 도자기처럼 반짝거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 머리 위에 곧장 솟아나있는, 고양이의 것만 같은 털투성이 귀가, 그녀와 내가 조금 다른 종임을 알리듯 힘차게 쫑긋거렸다. 


그녀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딱딱한 표정으로,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를 향해 다가온다. 


-움찔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을 뒤로 피할 때 쯤에서야,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공손히 손을 모은 뒤, 입을 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다.. 여보..?"


그 진지한 표정에서 나온다고는 상상도 못할만큼 어눌한 발음. 외국인이 처음 우리 말을 배워 말하는 것만 같은 말투다. 


"뭣.. 뭐.?"

"여보, 안녕히.. 주무셨습니다..? 아... 이게... 아닌가요..?"


내 당황한 표정을 보고 자신이 뭔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무표정하게 펴져있던 그녀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지고, 입에서는 무언가를 고민하듯 웅얼거린다. 


"..안녕 잤나요..? 안녕히.. 잤어요? 잘 주무셨어요, 여보..?"


뭐가 틀리고 뭐가 맞는지 내게 확인받으려는 듯 반복하는 그녀의 행동은, 뭔가 지금까지의 긴장감이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온순해 보인다. 


"저기..."

"네, 여보?"


지금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상대가 내 언어까지 사용해 오면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신호다. 잘만 된다면, 대화를 통해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우선은, 상대에 대한 정보부터. 


"그.. 네 이름은 뭐야?"

"나는 오 다하린 입니다.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는 순간적으로 발음이 메끄러워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지만, 일일이 따져서는 끝이 없을테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어.. 그러면 편하게 다하린이라고 불러도 될까?"

"네, 여보."

"여긴 어디야? 지하 같은데, 날 왜 이곳으로 끌고 온거야?"

"여긴 여보의 방입니다. 여보는 우리의 여보이기 때문에 여보의 방으로 데려왔습니다."


망할. 이 부분을 먼저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도저히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 


"저기.. 다하린."

"네, 여보?"

"지금까지 그.. '여보'라던가 '아내' 같은 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러니까 나는 너랑 지금 만났고, 살면서 누구랑 결혼한 적도 없..."


"우리는, 당신만의 '암컷'입니다."

말을 끊어내는 다하린의 목소리는, 죄 지은 아이를 다그치듯 당연하고, 엄격하다. 


"당신과 저는, 서로 사랑합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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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와서 폰으로 쓴 거라 오타 많을 수도 있으니 이해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