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아마 또 주저앉거나 나를 막 때리지 않을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윤아는 그저 싱긋 웃어 보인 다음 조용히 말했다.


"미안. 그건 못 들어주겠네."


그 말을 듣고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첫 번째는 아무런 짓을 하지 않는 윤아에 대한 놀람, 두 번째는 풀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것들이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윤아는 천천히 일어나서 내 앞에 선 다음 장난스러운 미소를 웃으면서 말했다.


"히히, 놀랐어? 내가 얌전히 있어서?"


이 말에는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입은 열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러자 윤아는 볼을 부풀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치, 말 안 해주네.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어쨌든, 내가 왜 화 안 내는지 말해줄게."


윤아는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느라 다리가 아팠는지 바닥에 앉아 다리를 쭉 뻗으며 계속 말했다. 나는 귀를 기울이며 경청했다.


"사실, 조금 화가 나긴 했어. 풀어주라는 건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거잖아?"


벗어나고 싶다. 당연한 사실을 말하면서 미간을 찌푸리는 얼굴을 보니 윤아의 정신 상태와 지금 상황이 정상이 아닌 것이 다시금 느껴졌다.


"근데 아까 오빠 쓰러졌을 때 묶으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오빠는 강한 사람이라 때리거나 굶겨도 날 사랑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머리를 좀 굴려봤지."


배시시 웃으면서 발을 까딱이는 윤아. 순진하게 보이는 그 행동이 어째선지 나에게는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나더라구. 오빠는 착하니까, 내가 죽는건 못 보지 않을까?"


...뭐?


"뭐라고 정윤아?"


아무리 말을 안 하려 마음을 먹어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였기에 결국 나는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러자 윤아는 기쁜 얼굴로 일어서며 말했다.


"와아, 드디어 말했네? 역시 오빠는 좋은 사람이라니까?"


"됐고, 방금 뭐라고 했냐고."


"성질 급하긴. 음, 한 30분만 기다려 봐? 할 게 있었는데, 오빠가 일어나서 못 했거든. 외로워도 조금만 참아?"


그 말을 끝으로 윤아는 문을 열고 나갔다. 쟤는 내가 나가면 어쩌려고 열어놓고 갔지, 하는 생각도 잠시 윤아가 한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죽는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설마 죽으러 가기라도 한 건가? 아니, 기다리라 했으니 그건 아니겠지. 그럼 나 두고 어디서 뭐 하는 거지? 뭘 하길래 30분이나 걸린다는 거지?


홀로 남겨진 나는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좋지 않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다란 뱀이 되어 내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왜 이리 안 오지? 왜? 뭐하러 갔길래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이미 3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따위의 생각. 그렇게 한참을 혼자 한참을 끙끙대다가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윤아를 많이 아끼고 있구나.


그때,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아까 몸부림을 치다가 넘어졌을 때는 두렵게 느껴지던 그 소리가, 지금은 마치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안정을 주는 소리로 들렸다. 


이내 윤아가 보였다.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딱히 눈에 띄는 상처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손에 커다란 비닐 봉투를 들고 있던 윤아는, 오자마자 눈을 크게 뜨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내가 문을 열고 갔었네? 근데 오빠는 안 나가고 가만히 있던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니 봉투를 내려놓고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꽉 안는 윤아. 손이 묶여있어서 나도 안아주진 못 했지만 굳이 마다하진 않았다. 윤아를 봐서 안심한 내가 주는 일종의 보답이랄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납치는 납치였다. 나는 일부러 삐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디 갔던 건데?"


"응, 사 올 게 있어서 좀 나갔다 왔어. 한번 볼래?"


그렇게 말하며 윤아는 문 앞에 있던 봉투를 들고 와서 그 내용물을 꺼냈다. 부엌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가위와 밧줄, 그리고 문틀에 다는 철봉.


종잡을 수 없는 물건들에 윤아를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녀는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웃어 보이고는 그 물건들을 챙긴 후 내 의자를 밀어서 문 앞에다 뒀다.


"...뭐하는 짓이야 이게? 나 바깥 구경이라도 시켜주게?"


"아니. 그건 아니고. 음... 바퀴 때문에 잘 되려나 모르겠네. 오빠, 다리 좀 빌릴게?"


"뭐?"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한 윤아는 내 허벅지를 밟고 올라서더니, 문틀에 철봉을 설치했다. 순간 지금까지 느꼈던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모두 장난으로 느껴질 만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서, 제멋대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ㅁ... 뭐해, 정윤아. 그러다 다치니까 빨리 내려와."


"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 조금 감동이네."


내가 자신을 걱정했다는 사실이 즐거운지, 윤아는 콧노래를 부르며 밧줄을 들었다. 그리고 그걸 철봉에 묶기 시작했다.


"야. 정윤아. 나 장난치는 거 아니야. 빨리 안 내려와?"


"나도 장난 아닌데."


어느새 완성된 매듭. 다급해진 나는 다리를 떨거나 하며 윤아를 방해했지만 용케도 균형을 잡은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밝게 웃었다.


"이렇게 하면, 오빠가 날 사랑해줄까?"


"야, 너, 내가 잘못했으니까 일단 내려와. 응? 야, 정윤아!"


내 간절한 외침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는지, 윤아는 매듭에 목을 걸고 발로 나를 힘껏 찼다. 


데구르르, 바퀴가 굴러가며 윤아와 내가 점점 멀어졌다. 


"아... 아아..."


윤아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얼굴색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 풀어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눈앞이 흐려져서 윤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순간, 윤아와 눈을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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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크루로 윤아를 만들었는데 입힐 옷이 애매해서 걍 벗김
빨리 야스씬 쓰고싶다

맞춤법이나 어색한 부분 지적은 언제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