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나요?

불나방


화려한 궁정 안.

온갖 사치품들이 나의 방안을 장식하고, 차는 좋은 향기를 내며 손님을 기다린다.


나는 내 드레스에 무언가 이상은 없는지 거울을 보며 몇 차례나 확인을 하며,

메이드에게 창가에 있는 내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가져다달라고 손짓을 했다.


메이드가 건낸 종이를 획 낚아채면서 종이에 적힌 목록들을 쭉 흝어보았다.


나는 에일 왕국의 제 3 왕녀.

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손님은 상인 길드 이카리아의 수장인 이카로스라는 사람이였다.


나의 하인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한 왕국의 왕녀가 겨우 상인계급한테 잘 보일려고 신경을 쓰고있다니...?

아니지... 그들은 그냥 '상인'이 아니야.


이들은 참 특이하게도 세계 곳곳에 발을 놓으며,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취급해.

세상을 모험하는 모험자들에게서 좋은 이웃, 좋은 상인이 되어주면서 정보를 이끌어면서,

그 곳에 교역로를 만들거나 가치를 만들어내지.


그리고 각 지역에 대해서 사람들의 취향을 노리고 구매욕구를 올릴 수 있는지 조사를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파는 지역의 문화나 상황에 따라 품목을 이리저리 문제가 없는 선에서 보여줘. 

그들의 그런 점 때문인지 모험가들이 넓혀가는 세상의 지도와 함께 그들 또한 급속도로 성장한 조직이야.


그들은 무기면 무기, 사람이면 사람, 보석이면 보석...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팔아.


그리고 여기서 더 재미난 점은 아주 극소수만이 아는 사실인데.

그들은 의뢰나 브로커, 암시장 등 사회의 뒷면에도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해달라거나, 저것을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을 때

최대한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 움직여준다.


나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느 유적의 유물을 가져와달라고 의뢰를 했다.

분명 그 것을 나의 수집품 방에 장식하면 정말 멋지겠지.


근데 이게 왜 극소수만 아는 사실이냐고?

그들은 앞에서는 사람들의 구호와 배푸는 모습을 보여주거든. 사람들은 그런 뒷면을 눈치채지 못하지.

그리고 이런 뒷세계의 일을 전부 연줄로만 통해서 거래를 하거든... 게다가 그냥 연줄만 닿으면 되는 게 아니야.

그들은 과연 다리를 놓아도 될 사람인지 몇번이고 확인을 하지. 그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지 말이야.

나도 그 연줄을 얻을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어.


그리고 오늘... 그 조직의 수장과 만나게 된다.

어차피 난 이 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얻어낼 수 없어.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나라에 가서 사는 것도 싫지.


그러면, 그들을 통해서 내가 얻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똑똑*

방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카리아가 벌써 왔나?


"들어오도록 해라."


집사가 문을 조용히 열며 나에게 말했다.


"이카리아의 상단이 막 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이카로스라는 상인분도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 그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제 연습은 완벽해. 긴장할 것 없어.


"그분을 모셔오도록 하거라."


... 내가 이카리아의 일부가 되어 이 왕국의 경제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




철컹. 철컹. 철컹.

나의 방문으로 가까워진 쇠가 부딫히는 소리.

대체 이카리아 상단의 장은 어떤 사람이지?

이카리아의 본진은 멀고 먼데에 있는지라 그의 외형에 대한 이야기는 뜬 소문만이 가득했다.

사실 기계라는 이야기.

사실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라는 이야기.

사람의 모습을 한 악마라는 이야기.

그 어떤 소문이 사실인지 몰라도 나는 놀라지 않기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똑똑똑... 자그맣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지요."


이 말이 끝나자 방 밖에서 기다리던 나의 집사가 방문을 열어,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가볍지만 허릿춤에 무기를 찬 상단의 병사 넷, 그리고 체구가 작은... 한쪽 발목은... 쇠로 만들어진 건가?

... 상단의 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는데... 나랑 키가 엇비슷하잖아?

그리고... 젠장... 후드를 뒤집어 써서 얼굴이 전혀 안보여.


아차.

나는 자리에 일어나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에일 왕국 제 3왕녀.  필스너 P. 에일리나 뤤 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왕녀폐하. 저는... 아..."


생각보다 여리여리한 목소리에 한번더 놀랐다.

그의... 아니 그녀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질 때,


그녀는 자신이 사막에서나 입을것 같은 외투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죄송합니다... 하도 4일 정도 사막에서 지내다 보니 이 차림에 너무 익숙해졌군요."


그녀가 외투를 벗자 바로 옆에 있던 병사가 그 옷을 받아냈다.


"후우..."


외투안에 있던 사람은... 왼쪽 발목을 제외하고 복장만 잘 차려입는다면 귀한 집의 영예라고 불릴 만한... 

그런 옛되보이는 외모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머리를 가볍게 털어내고는 손을 내밀었다.


...

하지만 행동 양식은 그렇지 못하는 군...


"반갑습니다. 제가 이카리아의 수장, 이카로스입니다. 이카로스 폰 드미센트리 라고 합니다.

저희 상단에 의뢰를 하면서 저와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정말이지 영광입니다. 왕가의 핏줄과 만나게 되다니 정말... 아... 이런 제가 그만 스스럼없이 귀한 분에게 악수를..."


...

나는 그녀가 손을 빼기전에 손을 낚아채 꽉 쥐었다.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이카로스 공... 아니면... 이카로스 양이라고 불러도 될련지..."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내 질문에 대답했다.

"부디 편히 불러주시지요."




*****




그 뒤에는 우리는 일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에 대한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쑥쑥 잘 넘어갔다.

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이카로스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나는 그녀를 다급히 잡았다.


"...? 왜 그러시는 지...."


"... 아... 그게..."

후... 긴장하지 말자.

더 대담하게 나가야 돼.

"혹시... 차 한잔 더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안그래도 멀리서 오신 분인데 잠깐만 모시고 바로 보내는 건

왕족으로써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녀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빙긋 웃으며 긍정의 대답을 내놨다.

"... ...그건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왕녀폐하께서 절 부르셨다는 걸 잠시 잊고있었나 봅니다. 하하하하!

제가 좀 무례했군요."


"아닙니다. 호호호..."


이카로스가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마디 더 올렸다.

"게다가 당신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고요.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의?"


"하하하하! 그렇다면 저야말로 영광이죠!"




*****




이카로스와의 대화가 무르익을 때 나는 그녀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서로에게 궁금한 점 물어보기였다.


그녀는 나에게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나같은 경우에는 그녀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건낼 질문을 생각하면서 나에 대해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것이다.


우선, 나부터 물어봤다.

이 먼 곳까지 사막으로 왔다고 했는데, 산맥을 타면서 오는게 더 좋지 않았나?


그녀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 음... 하하하... 이거 부끄러운데요. 음..."

그녀는 한참을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허어... 그러니까... 제가 성년이 되기 전에... 저희 부모님과 저는... 마차를 타고 본가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런 산사태에

휩쓸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오직 저만이 살아남았지요.... 이 발목도 그때 얻은... 하나의 흉터죠."


"아... 그런 일이..."

젠장... 질문을 잘 못 골랐다.


그녀는 더이상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닥 어렵게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였다.


나는 처음 한 질문에 대해 만회할만한 질문을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오래 고민한 탓일까?

그녀는 나에게 첫번째 문답에 그렇게 신경쓰지 말라고 대답했다.

"... 저에게 끔찍한 일들만 벌어졌었지만, 동시에 소중한 추억을 쌓았었으니까요."


... 그녀는 수줍어 하며 얼굴을 붉혔다.

왜지?

아까 그 부분에서 얼굴을 붉힐 부분이 있나?

아니면...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나?


이 질문을 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대상인, 이카리아의 수장이라고 하기 힘든 소녀스러운 반응이다.


그녀는 대답하기 힘들다며 대답을 피했다.

좋은 추세다.


나는 이번 질문에 대답을 안 했으니, 다시 한번 내 질문에 대답해야된다고 했다.

그녀는 마지 못해 수긍했고, 그녀가 좋아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대 상인이 되었나는 알고있지만, 왜 상인을 하게 되었나?


누구든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 칭찬하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기 마련이다.

왜 하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알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찾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 네?"

당황스러운 대답에 나는 반문했다.

찾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상인을 했고, 그런 조직을 꾸렸다고?

말이 안되는 소리다.

만약 진짜로 그랬을 것 같으면 어느 누가 단순한 평민으로 살겠나.


"그 사람을 따라가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됐어요.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한거구요.

하지만... 그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더군요. 저의 상단도 그 사람을 제데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뭔가 침울한 감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 죄송합니다. 이 질문에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것 같네요."


나는 잠시 굳었다.

하지만 머리속에서는 빠른 속도로 계산했다.


"혹시 그 찾는 사람이....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 저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제 제 차례군요. 당신은...."

나는 소리쳤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

나의 방 안에서 고요한 정적이 남았다.


"...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이야기시죠?"


"...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


"확실합니다. 저를 믿어보세요."


"... 들어올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녀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자신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사람을 보듯 노기가 뿜어져 나왔다. 

"... 뭘 원합니까? 뭘 원하시길래 이런..."


"그 사람의 흔적이 담긴 물건이라던지 있습니까?"


"..."


"제가 그런 방향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압니다. 예를 들어 직접 무언가를 적었거나, 손이 많이 탄 물건이라면..."


그녀는 흔적이 담긴 물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침묵하기 시작했고, 나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품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냈다.

누가봐도 손 때가 많이 탔으며, 너덜너덜 한 것이 소중히 하면서도 수십 수백번은 읽은 티가 났다.


"... 뭘 원합니까?"


"..."

그녀의 솔직한 태도에 나도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카리아의 한 자리를 주세요. 이 왕국의 돈줄 모두를 달라는 건 아니에요. 이 공작령의... 이카리아의 뤤 공작령 지부의 대표 자리를 달라는 거에요."


"... 왕족이 상인의 일을 한다라..."


"... 그건 걱정 마세요. 제 나름데로 계획이 있으니."


"... 두가지 약속하세요.

첫 번째, 내가 정한 기한내로 찾을 것. 만약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거나, 기한내로 못찾을시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물론 당신과의 교류를 일체 끊겠습니다."


"... ... ....좋습니다."

꽤나 강하게 나온다.


"두번째는 무엇이죠?"


"두번쨰는...

이 편지를 손상시키지 말것."


...

어째 두번째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녀가 쥐고있는 편지는 얼마나 많이 손이 탔는지 이미 너덜너덜해서

조금만 잘못하면 그대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약속하죠. 그 편지가 조금도 상하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 ... ..."

그녀는 잠시 표정을 구기더니 편지를 나에게 건냈다.

마치 자신의 일부라도 때어주는 것 마냥.


"... 참 그리고 당신이 찾는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역시 그 사람의 이름을 아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 그 사람이 지금도 그 이름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하고 있는... 그 썩을 자식은 아직도 그를 전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거에요."


썩을자식...?


"...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맹글.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머리에 뿔이 이리저리 나있는....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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쓋 짧게만 쓸려고 했는데...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이카로스가 누구인지 아시겠죠?

이 이야기는 '불나방' 의 8년 후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