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yandere/7622593?p=1




해냈다!

옆에 있는 숲으로 떨어졌으면

나무에 걸려 오도가도 못했겠지만

다행히 방향을 잘 바꿔서 갈대밭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노심초사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어서 준비해온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망가야겠다.

연락을 받고 여기 국경수비대가 찾아올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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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시겠다구요?"

상관의 긴급 출장 소식을 들은 부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절대 놓쳐선 안돼... 절대로... 절대로..."

이리나는 뭔가에 홀린듯 중얼중얼 거렸다.

"티, 팀장님...?"

"...음? 뭔가 말했었어?"

"그... 그냥 부하들을 보내시는게... 굳이 직접 가시는 이유가..."

"너희가 놓쳐서 내가 가보려는거 아니야."

"그래도 이제는 관리직이신데... 현장으로 나가시는건 좀..."

"그러니까 일을 똑바로 처리했어야지!"

"윽..."

"징계위원회에 회부 안한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

"예, 옙!"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네가 관리자니까... 이번엔 실수하지마."

"알겠습니다!"

"나가봐."

부하는 경례를 하고 문 밖으로 나섰다.

이리나는 집으로 돌아가 '출장'을 위해 트렁크에 짐을 꾸렸다.

위조 여권과 신분증, 입을 옷가지들, 호신을 위한 권총...

...물론 바실리의 사진도 잊지 않고 챙겼다.




"엄마?"

"이리나구나, 무슨 일이니 이 시간에?"

"어, 저 이번주 주말에는 집에 못 내려갈 것 같아요."

"왜? 어디 가니?"

"응. 출장이 잡혀서요."

"그렇구나... 몸 조심해야한다."

"알았어요. 혹시 바실리한텐 연락 안왔나요?"

"아니? 안왔단다. 벌써 2주째 연락이 없는데."

"그래. 그렇겠죠."

"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이리나 이바노브나 발라디나.

그녀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대에 재학 중

우수한 인재를 찾던 국가보안위원회에 선발되었다.

특히 상부에서 눈여겨본 그녀의 장점은

남성 못지않은 신체 능력과 목표를 놓치지 않는 집요함이였다.

이런 뛰어난 능력으로 국내외에서 각종 비밀 임무를

완수한 그녀가 20대 후반이라는 새파랗게 젋은 나이에,

그것도 여성이 관리직을 맡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관리직으로 승진한지 얼마나 됐다고."

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출장허가서에 도장을 찍었다.

"죄송합니다. 이 임무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임무라서.."

"개인이 아니라 당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넵!"

"뭐 그래도 동무는 당의 신임을 받는 몸이니까... 딱 한 번만이야."

"감사합니다!"

부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가보라는 손짓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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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가 떠나고 나서 나는 레닌그라드로 떠났다.

그토록 기대하던 대학 생활이였지만

바실리가 없으니까 별로 즐겁지만은 않았다.

대학에 재학중인 고위층의 자녀들은 다 개돼지들 밖에 없었다.

자기네 부모들 돈으로 산 금품들을 한껏 자랑해대며

밤에는 거리에 나가 술만 주구장창 마시는 놈들이였다.

그 년놈들과 같이 어울려 섞이는 것도 싫었고,

마음 한구석에서 나오는 고독함을 잊으려고

죽어라 공부하고 몸을 단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복을 입은 남자들이 대학교를 찾아왔다.


"교수님께서 추천하는 학생이 있습니까?"

"음... 발라디나 양을 만나보시는게 어떻소?"


국가보안위원회에서 나왔다는 남자는 나에게

국가를 위한 임무를 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왔다.

지금 당장 결정 안해도 좋으니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하였다.

처음엔 거절 할 생각이였다.

어렸을 때 거리에서 갑자기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혐오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 나라 인민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바실리도...

내 마음대로...




바실리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아프간에서 전해져왔다.

소식을 듣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최대한 빨리 그 곳에서 빼낼 생각이였는데...

빼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떡하지... 바실리가 죽어버리면 나는..."

상상만해도 눈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 그래! 군대가 문제야... 바실리가 너무 위험한 곳에 있어!"

"애초에 그때 완강하게 말렸었어야 했는데..! 하하..! 바보같이!"

빨리 바실리를 전역시킬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 지옥에 더 놔뒀다간 진짜 어떻게 될지 몰라.

"...."

...가짜로 혐의를 씌우는 건 어떨까?

적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덮어씌우고...

늘 그랬던 것처럼 중간에 서류를 좀 조작해주면...

흐지부지되서 금방 풀려나오겠지... 흐으음...


좋아! 이렇게 하면 되겠어!

"조금만 참아 바실리... 금방 구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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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스웨덴으로 넘어가기 위해

핀란드를 가로질러서 이동하고 있다.

핀란드는 아무래도 소련과 바로 붙어있는 나라라

오래 머무르기에는 뭔가 조금 심적으로 불안해서...

그래도 헬싱키에 나흘간 머물때는 참 좋았다.

경직된 소련의 사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였다.

늦은 밤에도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하였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행복해지는 기분이였다...

나도 언젠간 저런 행복을 누려볼 수 있을까...




스웨덴 인접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았다.

되도 않는 영어로 대충 우크라이나에서 망명했다고 말하니

주인이 측은하게 봤는지 잘 대접해주었다.

객실에 짐을 풀고 피곤해서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국경을 통과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피곤하네... 담배 하나 피우고 잘까."

몸을 일으켜서 담배 한 가치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



쿵 쿵 쿵-



"누구세요?"

"호텔 관리인인데요. 아래층에서 물이 샌다고 해서요."

"아, 그렇습니까?"

"잠깐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네, 잠시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