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냐고?"

음...

메르시 - 닥터 앙겔라 치글러는 그 답에 선뜻 대답을 쉽게 할 수 없다.
그를 안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동료로 좋아하기에는 계속 마음에 걸리며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 또한...

오버워치의 재건된 기지들 중 의료 기지의 심장이라 하는 대한민국에 위치한 이곳에서 메르시는 의사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람의 감정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을 극도로 넓혀버리는 약과 피부 재생, 척추 보강 수술 의학 등, 여러 분야에 뛰어난 실력의 의사가 필요해 그녀가 지원되었다.


"에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거짓말 같아 보이네요. 치글러 박사님. 그가 이성으로 마음에 안든다는 여성들은 이 기지에 없어요."


자상하고 따뜻하고 옷맵시도 훌륭하고 그리고 항상 건네는 그 훌륭한 커피들.

송하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부인하는 메르시에게 웃음을 던졌다. 그 웃음의 의미는 어서 다른 여자들이 잡아가기 전에 그를 선수치란 뜻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의 손을 잡고 쥐어주는 물건에 메르시는 의문을 표했다.


"이건 뭐죠?"

"티켓이에요. 이번에 재밌는 오페라가 근처에서 한다는데 운 좋게 2장을 얻었지 뭐에요?"


그 능글맞은 웃음과 티켓의 의미를 눈치챈 메르시는 송하나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렇게 절 놀려도 소용없어요. 그리고 그보다도 요즘 게임을 밤새면서..."

"안녕히 계세요!! 전 급한 일이 있어서!"


송하나는 메르시의 잔소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곧바로 등 돌려 도망갔다. 가만히 그녀의 잔소리를 들으면 버티지 못하고 정신이 나가버릴테니.

그녀의 재빠른 도망에 메르시는 한숨을 내쉬며 받은 티켓을 주머니에 넣었다.

항상 어린애 같다니까

삼시세끼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자신의 감시를 피해서 도리토스와 마운틴 듀를 진공청소기 마냥 흡입한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언젠가 한번 날 잡아서 건강검진을 시켜버려야겠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협박하여 어떻게든 운동시켜야겠지. 그나저나 이 티켓들은 어떻게 해야...


"뭐하세요 박사님?"

"아... 당신이군요."


멍하니 생각 중이던 자신을 건드리는 손길에 누군가 했더니 이야기의 주인공, 얀붕이였다.


"여기 커피 받아요. 카페라떼 맞으시죠?"

"아. 항상 고마워요."

"뜨거우니 조심해요. 아직 오후는 덥지만 지금은 추워서 뜨거운 것으로 준비했어요."


메르시에게 커피를 건네준 그는 후후 입김을 불어 커피를 마셨다.
그가 건네준 카페라떼, 그 위엔 하얀 나무의 라떼아트가 그려져 있었다. 항상 받는 커피지만 마시기 아까운 그림이다.
자신도 그처럼 입김을 불어 조심스래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따뜻한 카페라떼의 달콤한 향과 커피의 씁쓸함, 그리고 우유의 부드러움이 혀를 감돌았다.


"맛있네요..."

"그쵸? 이번엔 스팀 기능이 추가된 커피머신을 들여 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스팀 우유라서 더욱 부드러울거에요."


메르시는 커피에 대해 입을 여는 그를 바라 보았다.
흑발과 흑안. 그리고 움직이는 그의 입술.
입술... 입술... ...


"그래서 어때요?"

"예...?"

"이번 연구요. 요즘 신약 개발에 열두 중이시라는데. 그래도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하세요."

"아 예 그 신약 그게 그 어... 자.. 잘 되고 있어요. 예! 그래서 오늘은 일찍 퇴근할까 해요!"

"그래요? 잘 됬네요! 역시 치글러 박사님이 연구에 참가하신다면 무조건 성공이라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 마신 커피잔을 흔들었다. 항상 커피를 다 마시면 잔을 흔드는 그의 습관.
 

"아무튼 전 이제 가볼게요. 커피잔 줘요."

"아 예... 그 혹시..."


메르시는 주머니 안의 티켓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오늘 밤 일찍 쉬고 뭐 할까 했는데 잘 됬네. 절대 그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절대 아니야. 오랜만에 오페라를 볼겸 그냥 같이 볼 친구를 구하는 것이니까. 


"오늘 밤 시간 되세요? 같이 오페라 볼 친구가 필요해서요."

"어..."


아 저질렀다.
메르시는 그래도 당당했다. 그래, 나 정도 되는 아름다운 여자가 같이 밤에 오페라를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남자가 어디에 있을까. 얀붕! 저와의 데이트에 마음을 설레이세요!

메르시의 들뜬 마음은 이내 그의 말에 시무룩해졌다.


"죄송해요. 오늘 밤 약속이 있거든요. 모처럼 해주신 제안에 감사하지만 오랜 친구가 외국에서 돌아오거든요."

"아... 그렇다면 아쉽네요. 어쩔 수 없이 하나와 봐야겠네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함께 보죠. 오늘은 정말 어쩔 수 없는지라..."


그는 미안하다며 거절의 말과 함께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모처럼 맘에 든 남자와의 데이트를 해볼 계획이 보기 좋게 깨져버린 메르시는 시무룩했지만 그래도 오늘만 기회가 아니다.

다른 기회들도 많다.

그래도 메르시는 시무룩한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


주말이 지나가고 새로운 한주를 맞이한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기지로 출근하고 있었다.
이번엔 교외에 새로 생긴 POP Bar로 그와 함께 갈 계획에 그녀는 들떠 있었다.

썸타는 이와 함께 식사를 하기에 분위기가 정말 좋다는 소문에 그녀는 그의 승낙이 떨어지면 바로 예약을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문이 열리고 따뜻한 카페라떼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상상된다.
오늘도 좋은 아침이네요. 카페라떼 맞죠?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듯한 메르시의 모습은 핑크빛이 맴돌았다.

그럼 이제 그와 자연스래 대화를 이어가다 새로운 식당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가 흥미를 보이면 바로 그와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는 저번의 거절로 인해서 같이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 좋은 데이트를 하다 이내 서로 눈을 맞고...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상상은 연구실로 들어온 이로 인해 깨졌다.
더군다나 커피를 들고 온 이가 아닌 저번에 티켓을 건네준 송하나의 말에.


"와 개쩔어! 치글러 박사님!! 오지는 뉴스 들고 왔어요!! 얀붕이가... 얀붕 박사가..!!!"


*

"..."

손에 쥔 와인잔이, 항상 퇴근 후 즐겁게 마시던 그 크리스탈 와인잔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아니, 어제부터 계속 무겁다.

그녀는 텅빈 집안의 거실에 앉아 월요일의 오전을 생각했다.
송하나의 말에 메르시는 바로 연구실에서 나와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보았다.

어느 갈색 빛 피부의 여인과 함께 손을 잡고 몰려든 사람들의 질문공세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 모습을.
그런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듯한, 오른쪽 눈에 호루스 문신이 새겨진 여인.

오버워치의 박사 얀붕이와 영웅 파라가 서로 오랜 친구에서 벗어나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는 호재인 동시에 자신에게 악재인 소식.


"아쉽네... 내가 가질 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쉽네... 아쉬워..."


그래도 그녀는 그들의 미래에 건배를 해주기로 했다.
진정한 사랑을 꽃피우길 바라며 메르시는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 그래도...


그녀는 그렇게 와인을 홀짝이다 문듯 연구실에서 가져온 신약을 생각했다.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알약.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 치료용으로 제작된 치료약.

... 그래 한번에 이 슬픔을 씻겨내보자고.

그녀는 와인과 함께 약을 입에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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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시시하지 않아? 이렇게 된 이야기야.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박사는 약을 먹었지만 그 약의 불안정함을 술의 기운으로 인해 잊고 있었고 그 약으로 인해 슬픔이 증폭되지 않고..."

이렇게 사랑이 증폭되버린 것이지.

정말 뻔하고 뻔한 이야기다.
삼류 이야기도 이렇게 뻔하고 시시하게 흘러가지 않을텐데.

세상은 드라마 보다 더한 이야기라더니.


메르시는 피를 흘리며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는 흑안을 바라보았다.
체념과 분노가 같이 존재하는 그 흑안은 슬프기도 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자신의 모습을 담기도 하여 사타구니가 짜릿했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조심스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피가 굳어 딱딱한 머리지만 나중에 세뇌 작업을 걸치고 샤워 시켜주면 되겠지. 그럼 그 부드러운 흑발을 자신이 차지하게 될거야.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어 숨을 천천히 내쉬며 의자에 묶인 그의 몸을 두팔로 세게 끌어 안았다.

천천히 끌어안으며 느껴지는 그의 품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이게 사랑인 걸까. 우린 사랑인 걸까.


메르시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송하나는 나중에 쓸겡 힝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