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영웅 얀붕이 써야 하는데 스승 제자 꼴려서 걍 싸지름. 판타지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쪽 냄새가 많이 나는 건 취향임. 존중해주셈. 다음 편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아, 그리고 스승 말투가 너무 -틀-같다고 수염 기른 노인네인 줄 알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말 하는데 스승은 나이 18 남자고 제자는 14 여자애임. 


 

 

 

 

 

 

기사, 마법사, 괴물, 용, 요정 등 신비 그 자체인 판타지 세계.

바위도 두 동강 내는 검과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자연을 지배하는 마법을 가진 자가 이름을 남긴다. 

그런 세상에서 마치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듯 검과 마법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검이나 마법 등 무언가가 없으면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이 불만인 자들. 

주어진 몸 하나만의 힘으로 검과 마법을 이기고자 한다. 

세간에선 도구를 쓰지 않는 원시인 취급을 받는 그들은 스스로를 무인이라고 불렀다.

그런 무인 중 하나. 그 이름 조화라고 하는 무예의 단 하나뿐인 전승자는 현재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

 

“……아해야. 양의 기운이 정체되어있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스승님...”

 

조화의 유일 전승자. 스승이라고 불리는 자는 자신의 긴 머리를 한 번 흐트러뜨린 뒤 한숨과 함께 눈앞의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살아남는 게 전부인 짐승들로 가득한 길거리에서 스승이란 자가 구해 냈을 때. 죽지 못해 사는 뼈다귀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거부감이 드는 붉은색 머리칼과 금빛의 동공. 그마저도 또렷한 이목구비로 이루어진 화사함이 뒤덮는다.

14살 가녀린 소녀의 몸임을 생각해도 이를 지켜야 하는 보호심이 아닌, 뒤틀린 욕망까지 유발하기 충분한 여자아이. 라나.

 

딱!

 

스승은 그런 라나의 머리에 손가락을 튕겼다.

 

“아야!”

“뭐가 아야! 라는 거냐. 이 스승이 지금 가르침을 못 받는다고 너 같은 아해에게 손지검을 했다는 거냐?”

 

손가락을 맞은 부위를 두 손으로 꽁꽁 감싸는 라나를 보며 스승은 역으로 라나를 꾸짖었다.

실제로 스승은 자기 재능을 살려 손가락을 튕길 때 라나가 아프지 않게 배려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뇨.”

 

처음부터 아픔이 아닌, 스승이 딱밤을 때렸다는 사실 자체에 신경 쓴 라나는 할 말이 없었다.

스승은 거짓말할 거면 끝까지 칠 것이지. 우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라나의 옆에 섰다.

 

“다시 자세를 잡아보거라. 아해야. 너의 틀린 점을 교정해주면서 쉽게 설명해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스승님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걸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스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두려운 걸까. 라나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쪼그라든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런 라나의 모습에 스승은 속에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뱉고 말았다.

 

“하하. 걱정하지 마라. 아해야. 지금 이곳에서 너를 가르치는 내가 누구냐?”

“스승님이요.”
“그 많은 무인이 포기한 무예, 조화의 유일 전승자이자 역대의 천재라는 뒷부분은 빼먹었구나.”

 

스승은 낯간지럽게 느껴질 법한 자찬을 늘어놓으면서도 당당하였다.

자존심이 세다는 걸 넘어 자뻑이라고 불려도 좋을 스승의 모습이 일상이 된 라나는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역대의 천재다. 그 말은 아무리 네가 배움을 두려워하고, 그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한들 이 스승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다. 천재인 내가 실패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선비가 연상되는 긴 소매의 옷을 팔랑거리며 라나의 옆을 걸었다.

그것이 그저 발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서툴지만 스승을 통해 조화를 전수 받은 라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해야. 질문을 하나 하겠다. 조화에는 두 가지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무엇이냐.”

“음과 양이요.”

“양의 기운은 뭐라고 하였지?”

“시원한 바람, 물의 흐름, 따뜻함, 아기의 울음... 그리고 또...”

“대답은 틀렸지만, 양의 기운이 깃듬직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을 전부 기억하려 하는 그 자세는 좋구나.”

 

그렇게 말하는 스승을 바라보던 라나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자신이 말했던, 그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공통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스승의 걸음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양의 기운은 생명. 어른, 아이, 개, 벌레, 괴물, 용 등 이 세계에 살아숨쉬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몸속에 있는 양의 기운과 세상에 흩어진 양의 기운을 엮어서 생명의 크기를 부풀리는 것. 그게 조화에서 양의 기운을 사용하는 법이다.”

 

“생명의 크기가 커지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지금처럼 몸짓에 기운을 실을 뿐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이빨로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살점의 겉 부분이 뜯겨나간 곳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보여주자 라나는 매우 당황했다.

 

“스, 스승님 손을...”

“스승을 걱정하는 마음씨는 갸륵하다만, 지금은 가르침을 주는 중이다. 조용히 하거라.”

 

스승은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대며 라나를 조용히 하였다.

그리고 그런 스승의 말을 지키려 하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라나는 다시금 스승의 말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어, 어라? 손에 분명 상처가.”

“부풀어버린 생명으로 작은 틈을 메꿔버리는 것. 피가 흐르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거다. 자. 그럼 아해야 다시금 질문하겠다.”

 

어느새 물어뜯은 상처가 다 나은 손가락의 피를 닦아낸 스승은 라나와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와 이 스승의 차이점. 짐작이 가면 뭐든 이야기해봐라. 두려워하지 말고.”

“스승님은 양의 기운을 엮을 수 있지만, 저는 못 엮는 거?”

“틀렸다. 그리고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다.”

 

딱!

 

스승은 다시금 라나의 머리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나, 아까의 말을 기억하는지 라나는 손가락을 튕긴 거에 흠칫해도 곧바로 스승에게 눈을 향하였다.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스승은 배배 꼬지 않고 곧바로 답을 들려주었다.

 

“우리 둘 다. 양의 기운을 엮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차이점이 있지. 아해. 너는 그 기운을 적절한 용도에 안내, 인도할 줄 모르고. 천재인 나는 숨 쉬듯이 그걸 한다는 거다.”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 천재인 내 가르침을 아해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하지. 그러니까 내 의견을 듣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마라. 너의 부족함을 들춰지는 것을 창피라고 여기지 말고 하나의 배움으로 자랑스러워하란 말이다.”

 

버럭하고 대답하던 라나는 이어지는 스승의 말을 듣고 나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이 대화가 최근, 라나가 가르침에 대하는 태도. 스승이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책하는 걸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임을.

 

“이제 이해했느냐? 이 스승이 너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죄송합니다...”

“싫어하지는 않는 말이다. 주제를 알았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풀 죽는 건 역시 별로구나.”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라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최근 우울해하는 라나를 위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다시 말한다. 아해야. 이 스승은 네가 무엇을 얼마나 못하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네가 내 제자로서 가르침을 갈구하는 걸 바란다.”

 

“너에겐 100번의 실패가 그 이상의 무거움이 되어 마음을 옥죌지 모르나, 이 스승에겐 그건 한낱 순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마음껏 실수해라. 자세를 틀리건, 가르침을 잘못 알아듣건, 이 내게 반항을 하건 어떤 식으로든.”

 

“그걸 전부 가볍게 받아내고 너를 가르치는 것이 스승이자 천재인 내가 할 일이니까 말이다.”

 

이어지는 스승의 말에 라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 보이지 않는 얼굴이 이제 실패했다고 스스로를 탓하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확신한 스승은 일어서면서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자, 그럼 아해야. 다시금, 양의 기운을 엮고 그것을 이용해 걸어보거라.”

“……네.”

“지금만큼은 이 스승은 귀가 안 좋다. 숙인 고개를 세우고 제대로 다시 말하거라.”

“네!”

 

그 후 스승의 도움을 받은 라나는 3번의 도전 끝에 양의 기운을 담아 걷는 것에 성공했다.

 

“거봐라. 이 스승의 말에 따르면 뭐든 되지 않느냐?”

 

보통은 하면 된다는 말을 해야겠지만, 자뻑이 센 스승은 주체를 자신으로 정하였다.

하지만, 라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영양가 없는 스승의 칭찬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반기며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

 

 

 

 

야심한 밤. 라나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스승은 집의 뒤편, 작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손에는 유리병에 담겨진, 여러 과일을 통해 만들어낸 술과 잔이 들려 있었다.

 

“하. 진짜 설마하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스승님.”

 

스승이라 불리는 그가 스승이라고 말하는 대상은 무덤이었다.

 

“내겐 너무나도 거지 같았던 교육관과 이 말투가 좋은 제자를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로 이해가 안 갔는데.”

 

느린 거북이에게는 끊임없는 지원과 믿음을. 자만하는 토끼에게는 시련과 가혹함을.

천재라며 아직도 스스로 이야기하는 스승은 자만하는 토끼였고, 그렇기에 선대 스승의 교육관이 싫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당당하게 내거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지.”

 

내가 그렇게 했는데 좋은 제자가 나오지 않기만 해봐라. 무덤에 물을 끼얹을 거다. 할아범!

과거 어린 시절에 한 그 말을 받아치며, 되면 어쩔 건데? 라고 말하는 선대 스승을 떠올리며 스승은 혀를 찼다.

 

“그래.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스승님이 이겼다고 할 수밖에 없군. 여기 내기에 진 대가로 그 개 같은 말투의 나와 매년 바치는 술입니다.”

 

스승은 두 잔에 술을 따랐다. 그 후 그중 하나를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이딴 맛없는 물이나 처먹는다고 한 것도 사죄해야겠군.”

 

2년 전부터 술을 떼지 못하는, 선대 스승과 빌어먹을 정도로 닮아버린 스승은 술을 비우고선 다시금 집으로 돌아갔다.

선대 스승과의 내기를 지게 만들어버린, 좋은 제자인 라나의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선, 그 또한 방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스승님...”

 

그리고, 스승은 눈치채지 못하였다. 술에 취했다 한들 어떤 야습도 감지하던 자신의 감을 피하고 사랑스럽다는 듯 그를 껴안는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