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yandere/7622593

2화: https://arca.live/b/yandere/8048186




"무슨 물이 샌다는... 허억!"

문을 열자마자 틈 사이로 총부리가 튀어나왔다.

"이... 이리나...?"

"뒤로 물러서."

이리나는 총을 내 이마에 계속 겨눈채 점점 다가왔다.

"이리나! 네가 여기서 왜..."

"입 닥쳐."

이리나는 한 번도 보지못한 싸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실리 야로슬라비치 마토예프. 간첩 혐의로 널 체포하겠다."

"뭣...! 도대체 내가 뭔 짓을 했다는거야!"

이 어이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순간 이리나는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쉬이잇. 조용히 하는게 좋을거야."

이리나는 계속 총으로 나를 위협해 의자에 앉혔다.

가방에서 포승줄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포박을 마쳤다.

"너... 설마 일한다는 곳이 KGB였냐?"

"응. 그 동안 말 못한거 미안."

"....."

"뭐... 이렇게 된 것도 결국 내 탓이지만."

"음? 지금 뭐라고..."

"무자헤딘과 내통한다는 혐의... 출처가 어딜까..."

이리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였구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왜?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껴주던 이리나가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한거지?

"아... 실망했구나 바실리. 그래서 얘기 좀 하려고 직접 여기 온건데."

"...원하는게 뭐야? 설마 실적 때문에 그러는거야?"



KGB에서 일하는 자들은 승진을 위해서는

자기 가족이나 친한 사람도 고발해버린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게 생각났다.

이리나도 결국 그들과 동화되버린건가...

"크큽... 푸하하하!!"

갑자기 이리나가 폭소를 터트렸다.

뭐야 도대체...?

"크크크... 세상에 바실리... 설마 그깟 승진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래도 소꿉친구인데... 날 너무 속물로 보는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설명 좀 해주실까?"

이리나는 진정됐는지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너 입대하고서 말이야.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 줄 알아? 나랑 한 마디 상의도 안하고 그렇게 떠나버리고 말이야."

"그건 내가 잘못한건 맞지..."

"그런데 대학에 있을때 국보위에서 사람이 찾아오더라고. '국가'를 위한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말이야."

"너 예전에 KGB는 소름끼쳐서 싫다고 했었잖아."

"내 말 기억하고 있었구나! 너무 기쁜걸!"

자신에 대한걸 기억해준다는 것 때문일까.

대화 후 처음으로 이리나의 밝아진 얼굴을 보았다.

"아무튼?"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 곳 사람들은 그 강력한 힘으로 전 인민을 자기네들 것인 마냥 주무르고 있잖아? 그래서 결심했지. 나도 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네가 갖고 싶은게 뭐였는데?"

"...너야. 바실리."

"....."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이리나가 원래 이런 아이였던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저 여자가 이리나가 아니라

무슨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넌 너무 위험한 일을 겪었어. 총에 맞고 귀국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널 하루라도 빨리 그 지옥같은 곳에서 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날 간첩으로 몰았던거야? 내 동료들도 나에게서 멀어지도록 이간질 한거고?"

"넌 지금 있는 곳을 너무 좋아했으니까... 아예 정을 뚝 떨어지게 만든 다음에 빼내려고 했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말이야."

"계속 간첩으로 몰렸으면 난 죽을 수도 있었어!"

"그건 걱정 안해도 됐었어. 어짜피 모든 서류는 내가 결재하니까 말이야. 중간에 빼내서 파기해버리면 없던 일로 되는거지."

"....."

"자, 바실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할게.응?"


"... 미친년."



퍽-!

순간 이리나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의자에 묶여있던 나는 동시에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으윽...!"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역시 쉽게 돌아갈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어."

"아무리 그래도 연인한테 미친년이라니 바실리."

이리나의 얼굴은 처음의 그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가있었다.

"나에게 실망 많이 했다는거 알아. 하지만 난 널 지키기 위해선 뭐든지 할거야. 자, 돌아가자."

"조... 좆까..."

이번엔 이리나의 발이 내 복부를 걷어찼다.

"아악!"

나를 다시 일으켜세운 이리나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잘 들어. 넌 이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바실리 야로슬라비치. 그냥 조용히 따라오면 아무 일도 없을거야. 넌 내꺼니까."

라고 말하고는 이리나는 나에게 키스를 했다.

"읍...!"

혀가 섞이면서 피의 비릿한 냄새와 끈적한 타액이 느껴졌다.

"... 푸하아!"

키스를 마친 이리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 이제 느껴져...? 내 진심이?"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잘못되버린걸까.

그 때 만약 입대지원서를 취소했었으면

이리나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 바실리... 슬퍼하지마... 돌아가면 내가 잘해ㅈ"


쿵 쿵 쿵-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렸다.



-----

피드백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