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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최근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사실, 이유는 알고 있어요. 큰 기대를 하고 있던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대요.


행동 하나 하나에 죄악감을 느끼는 것처럼, 시험 결과를 받아든 날로부터 제 눈치를 보기 시작했어요.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를 반갑게 맞이하던 그 미소도.


어깨를 주물러준다며 은근슬쩍 제 가슴과 옆구리를 살살 건들이던 능글맞음도.


고작 몇 주 되지 않았지만, 너무 그리워요.


단 하나 뿐인 내 사랑이니까. 네가 어떻든 상관 없다고. 다음이 있지 않냐고. 아무리 위로의 말을 건네봐도 돌아오는 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억지미소 뿐.


이제는 그가 망가질까봐,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두려워졌어요.



"처음 고백할 때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항상 나를 위해 웃겠다면서.. 거짓말쟁이."



최근 제 퇴근길의 취미는 그와 여태껏 보낸 추억들을 담은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기억을 떠올리는 거예요.


정말 풋풋했던 20대 초반, 아직 채 자리지 않은 머리가 유난히 까슬까슬하던 그가 먼저 데이트를 권해 왔을 때.


처음으로 함께 봤던 영화, 음. 제목도 기억해요. 비밀이지만 영화표를 코팅해서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고 있었거든요.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좋아하는 그, 짙은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나.


친구들은 커피 취향이 뒤바뀐 게 아니냐며 가끔 놀리기도 했지만 무슨 상관인가요.


손끝이 저릴 정도로 달달한 걸 어떻게 그리 잘 먹는가 싶었지만 행복한 그의 표정을 보면 그런 의문 따윈 그저 스쳐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에요.


근데.


왜 이리도 멀게 느껴지는 거죠?


당장 30분 뒤에 마주할, 내 영원한 사랑이지만.


지금은 그가 너무나도 멀어졌어요.


그리워요.


나의 머리를 어루만지던 그 큰손도.


취업 준비에 힘들어 울먹이던 나를 힘껏 안아준 그 품속도.


밤이고 낮이고 항상 저를 여자로... 아, 이건 비밀이에요.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쉬며 잠깐 SNS를 들어갔어요.


너무 한심해요. 받기만 하고 줄 수는 없는 제 처지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이렇게 기다리기만 할 뿐인 제 멍청함이.


그 때, 스쳐지나간 게시글로부터 유난히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어요.



'제목: 남자친구 골탕 먹이는 방법!!!'



응, 그래. 맞아.


그가 가장 괴로워 하고 있는 걸 알지만, 저도 충분히 참았다구요.


오히려 장난을 치고 한바탕 웃으면 시원스레 풀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멍청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는 걸요.


저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용기를 쥐어짜내 재빠르게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바람 폈다고 거짓말 친 다음에 휴대폰으로 남자친구 표정 한 번 찍어보세요. 정말 역대급 몰래카메라!'



내용을 보니, 뭔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정말 이게 효과가 있나? 싶어서 서둘러 댓글창을 봤는데. 또 이게 잘 먹힌다는둥, 오랜만에 배 잡고 웃었다는둥.


... 생각보다 한 사람이 많은가봐요.


에잇. 쇠뿔도 단김에 빼랬어요.


한 번 결심했는 걸요. 이제는 도망치기 싫어요.


저는 좀 더 정교한 거짓말을 위해 그에게 회식 때문에 조금 늦을 거라고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메세지...보내기.. 완료!"



'1' 은 사라졌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답신은 오지 않았어요.


뭐, 한 두 번 있는 일이었나요! 이제는 이런 걸로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이제,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내선순환 열차라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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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충분히 지났어요.


열차 안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다행이었어요.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해요.


나와 그의 생일, 사실 이건 비밀인데. 머지않아 결혼을 올릴 때, 결혼 날짜는 나와 그의 생일 딱 중간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 둘을 연결하는 연결점처럼 말이죠.


너무 소녀 같다며 비웃는 친구들도 있는데, 뭐 어때요.


자기들도 사랑해보라 그러죠.


그렇게 들어선 나와 그의 사랑의 보금자리.


오랜만에 그가 마중을 나왔어요. 오늘은 기분이 꽤 좋은가봐요.


식탁 위에 요리랑... 와, 제가 좋아하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도 있네요! 와인은, 술을 못하는 제가 유일하게 몇 번 홀짝일 수 있는 술이에요.


오늘은 분명, 기념비적인 날이 될 거예요.


내년에 맞이할 이 날은 어떤 이벤트를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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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년."



그로부터 맞은 뺨의 아픔보다도, 그의 말 한마디가 더욱 아팠어요.


이게, 이게 아닌데.


그냥, 작은 장난이었는데.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요.


어서 말하지 않으면..



"그래 씨발년아. 병신같은 개백수 새끼 먹여 살리는 건 질렸다 이거지? 뭐, 씨발. 그 놈 좆맛이 그렇게 좋았어? 그럼 걔랑 살림 차리던가 왜 여기 와서 지랄인데!"

아니예요. 절대로 아니예요.


시험은, 시험은 떨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도 입시도 해보고 취업도 해봤어요. 그래서 그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쭉, 그를 응원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요?


딴 남자?


상상하기도 싫어요. 생각만 해도 역겨워요.


저한텐 오직 그가, 제 처음이자 끝인 걸요.


저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했지만 입 속에 퍼지는 기분 나쁜 짠맛을 억지로 흘려넘기면서 말했어요.



"아니, 민혁아. 그게..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 그래. 그거구나? 하긴 씨발 여기가 네 집이니까. 나는 얹혀 사는 새끼고. 그럼 내가 쳐나가면 되는 거잖아 씨발! 오늘 너 따먹었다는 좆같은 새끼 불러다가 걸레짝같은 보지 휘두르면서 즐겁게 살면 되겠네 씨발년아!"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곤, 외투와 지갑을 챙겨 황급히 나갔어요.


내 집이라니요. 얹혀 살다니요.


네가 없으면 의미 없어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는 걸. 근데. 왜. 도대체. 왜.


재빠른 발걸음으로 뛰쳐나간 그를 따라잡기란, 저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그저, 울부짖듯 소리치는 수 밖에 없었죠.



"거짓말! 거짓말이야 민혁아! 제발!"



들리지.


않았나봐요.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저는 주저 앉아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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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시간이나 지났을까요? 사실 얼마나 지났는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수십번, 또 수백번 되새길 뿐이에요.


그러던 와중, 익숙한 전자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어요.


설마, 설마. 마음을 졸이며 고개를 들었어요.


권민혁, 내 사랑.


그가 돌아왔어요.


아니, 지금이에요. 지금이라도 오해를 풀어야 돼요.


저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가 말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이라면, 혹시 모른다고. 그런 희망을 품곤.


"이, 있잖아. 민혁아? 들어봐. 제발 들어봐. 그게,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직 입속에서 찢어진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은 듯,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 더욱 커져 왔지만 그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그 다음, 그의 말에 비하면요.



"닥쳐 좀. 왜? 실수였다고 말하게? 그렇게 상처를 주고 사람을 장난감 취급하고. 이제 전부 없던 걸로 하자고?"

그 때, 깨달았어요.


아, 이건 오해라고 말할 게 아니구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야기야. 일단 민혁이가 화를 가라 앉힌 다음 이야기를 나눠보자. 저는 민혁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미소를 띄우며 말을 하기로 했어요.



"아냐, 아냐. 민혁아. 그러니까..."


"닥치라고 제발!"



아니예요. 정말 아니예요.


5분이면, 모든 게 해결될텐데.


아니, 제 잘못이에요. 민혁이 기분을 너무 소홀하게 생각했어요.


또 제가 멍청한 짓을 저질렀네요. 또 쓸데없이 그에게 상처를 입혀버리고 말았어요.


저는 왜 이렇게 바보같죠?


정말.


바보 같네요.



"용서해줄게."


"으... 응? 어...?"


"그러니까 용서해준다고."


"저, 정말? 민혁아 정.."


"대신에, 조건이 있어."



설마, 기회가 왔어요.


그래. 민혁이한테 용서를 빌고. 모든 걸 말하자. 그리고, 내 진심도 같이.


너만 있으면 된다고.


너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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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이는 의자에 저를 앉히고는 제 몸을 청테이프로 고정하기 시작했어요.


조금 지난 얘기지만, 민혁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여러가지를... 다양하게... 좀 조사하던 중에 이런 장르가 있었다고 봤어요.


결국 부끄러워서 실천은 못했지만요..


그래도! 이건 기회예요.


저는 조금이라도 더 확신을 갖기 위해 민혁이에게 물었어요.



"정말, 정말 이러면 용서해주는 거 맞지? 기분 풀리면 꼭 얘기하자. 진짜. 나 너한테 해야될 말이 너무 많아. 제발. 들어줘."



그런 제 물음에도 묵묵히 손을 움직이는 그의 옆모습. 민혁이는 뭘 해도 멋있어요.


마침, 제가 첫 눈에 반했던 모습도 이처럼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었는데.


아, 조금.


향수를 느껴요.


저는 추억을 되새기며 말했어요.



"있잖아 민혁아, 우리. 우리 처음 사귀기로 날 기억하지? 그러니까. 기뻐도 슬퍼도 웃으면서 지내.."


"닥쳐봐 제발. 마음 바뀌기 전에."



그러고선 민혁이는 갑자기 일어서, 제 입을 청테이프로 감기 시작했어요.


이러면, 오해를 풀 수 없는데.


잠깐만, 민혁아. 아주 잠깐만.



"으, 읍! 으으으, 읍."


"이제 좀 한결 낫네."



말이 나오지 않아요.


당연하죠, 입이 막혔으니까.


그나저나 민혁이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는데..


설마, 예습해두길 잘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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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에요. 이럴 리가 없어요.


그도 그럴게, 말이 안 되잖아요?


민혁이가, 제 눈 앞에서 다른 여자랑 키스를 한다니.


악몽도 이 쯤 되니까 굉장히 무섭네요.


불쾌해요.


깨고 싶어요. 어서 빨리 일어나야 돼요. 항상 민혁이보다 30분 먼저 일어난 다음, 그의 이마부터 발끝까지 새가 모이를 쪼아 먹듯이, 가벼운 프렌치 키스를 해주고. 남자다운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이 남자가 내 남자구나. 그런, 행복감에 젖어 하루를 시작해야 된단 말이에요.


천벌.


그래 이건 천벌이에요.


힘들어하는 민혁이를 두고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 못난 저를 향해 하늘이 내린 천벌이에요.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악몽으로부터.


소리.


그래, 소리를 질러봐요.


그러면 민혁이가 절 일으켜 세우면서, 무슨 일 있냐고 따뜻하게 물어봐 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소리치고, 발버둥쳐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가위란 걸까요? 처음 겪는 경험인데.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항상 저를 사랑해주던, 민혁이의 소중한 부분을 어루만지고 있는 저 여자는 악마예요.


아니, 어쩌면 천사일까요? 꿈을 통해 제게 경고를 주려는 거겠죠.


그래도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요.


어째서, 어째서 떨어지지 않는 거죠?


어째서, 어째서 깨지 않는 걸까요?


그만하면 됐잖아요.


전부, 전부 제꺼라고요.


한계에 다다랐을 때마다 앙 다무는 입술도, 당신이 그렇게 추잡하게 물고 있는 민혁이의 일부분도. 단맛이 진한 새하얀 액체도. 전부. 제껀데.


왜?



"으으으읍!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으읍!"



울고 싶어요. 제 백마 탄 왕자님은 언제 쯤 도착하는 걸까요?


그 더러운 몸뚱아리로 그딴 짓 하지마요. 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그건, 저도 알고 있다고요. 그래서 일부러 감촉이 좋은 베이지색 스타킹을 수십벌 구매하기도 했는 걸요.


아, 악마다.


악마예요. 천사는 절대 아닌 걸 확신했어요.


천사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짜진 않을 거예요. 그도 그럴게 이렇게나 악랄한 얘기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근데, 왜 악마가 점점 가까워지죠?


제 몸에서 손 좀 떼줬으면 좋겠는데요. 흉측하게 늘어진 가슴으로 눈을 배렸어요. 빨리 꿈에서 깬 뒤에... 오늘은 1시간은 민혁이를 바라봐야 좀 치유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보고도 보지 않은 척을 했어요.


민혁이가 제가 아닌 다른 여자랑 관계를 맺는다고요? 참 농담도 심하네요.


조금만 더 하면 화낼 거예요.



"흐으, 민혁이가, 앗, 너한테에..엣. 잘.. 배웠나봐? 아, 아아."




그 때, 악마가 웃었어요.




"이, 이 씨발년이...! 떨어져! 당장 떨어지라고!"


"아하앗, 내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아, 으. 으으으읏!"



정말, 열 받았어요. 머리채라도 잡고 뒤흔들 다음 제령하고 말겠어요. 악마는 퇴치인가요? 여튼. 


죽여버릴거예요.


아!


어쩌면 혹시, 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제가 민혁이와의 오해를 푸는 게 아닐까요?


그도 그럴게, 이런 꿈이면 저도 끙끙거리면서 자고 있을 텐데. 민혁이가 그렇게나 괴로워하는 저를 놔둘리가 없잖아요.


저는 젖 먹던 힘을 쥐어짜내, 말했어요.



"민혁아 제발. 내가 잘못했어. 정말이야. 일단. 일단 그러니까. 제발. 얘기 좀 들어줘."



꿈 속의 민혁이라도, 결국은 내 사랑 권민혁이에요.


그래도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니 조금은... 그래요! 무시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샘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사랑은 샘물보다 더 위대하니까요!


그 때였어요.



"싸, 하앗, 싸라고."


"하, 하, 뭐? 이대로요?"


"아흐! 피임약... 먹었으니..까아앗. 싸도, 된다고오..."



아니. 절대로 안 돼요. 무슨 말인가요 이 악마는? 제정신인가요? 그건 꿈에서라도 절대 안 돼요.


정말 미안해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제 미래의 아들들과 딸들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되죠?


이런 건, 모욕이라고요.


그 때.


악마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와서 제게 말했어요.



"사실, 피임약 안 먹었어. 븅신년아."



저는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어요.


이 악마는, 죽어도 싸요.


죽일 거야.


씨발년.



"이..이 씨발년아! 네가, 네가 도대체 뭔데! 안 돼. 안 돼. 민혁아 안 돼. 제발! 좆같은 년! 찢어 죽일 거야. 찢어 죽여버릴 거야!"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어요. 아까 찢어진 상처가 더 벌어져 피가 다시 나오기 시작하는데, 꿈 속이라 그런 걸까요?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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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보다 더 아팠던 건.



"좆까. 씨발년아."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던 차가운 그 목소리가.


제 심장을 산산조각 내는 것만 같았어요.


꿈이라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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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햇빛이 제 눈을 간지럽혔어요.



"으, 으응? 음... 뭐지. 뭐지?"



의자로부터 일어선 저는 곰곰히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어요.


분명 어제, 나쁜 장난을 기획했다가. 악몽을 꿔선...


그래요, 그 악마!


저는 주위로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혹시나 숨어 있을 악마를 찾았어요.


다행히 주변으로부터 어떤 인기척도 나지 않았어요.


어? 그럼. 민혁이는?


민혁이가.


민혁이가 안 보여요.


비상사태예요.


혹시라도 악마한테!


아니, 아니예요.

어제 그건 꿈이었잖아요.


잠깐 편의점에, 간 게 아닐까요?


오늘은 제가 아침을 차리는 날인데, 깜빡하고 말았으니 별 수 없죠.


점심은, 그래. 민혁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해줘야겠어요.


저는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을 민혁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때, 제 발에 걸리는 얇은 스타킹이.


검정색, 스타킹.


저는 검정색 스타킹을, 입지 않는데요.


두려움에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가며 일단 줏어 상태를 확인해요.


군데군데 찢어져 있고, 뭔지 모를 액체가 말라비틀어진 흔적이 보이는데.


아.


아직 악몽 속이구나.


아마 지하철에서 깜빡 잠들고 말았나봐요.


안 그러면 이런 역겨운 물건,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돼요.


어쩌죠?


그러고 보니, 옛날에 민혁이와 함께 본 영화가 딱 그런 내용이었어요.


꿈 속의 세계를 헤매는 내용이었는데 분명.


강한 충격을 받으면 꿈에서 깬다 했죠.


아 마침, 저기 있네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고자 싱크대로 달려가, 물 속에 담궈져 있는 식칼을 잡았어요.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돌아갈게."



이 때 저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요?


하나 확실한 건, 슬퍼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도 그럴게, 민혁이를 볼 수 있는데.


아. 아!


아프지, 않아요.


역시 꿈이 맞았어요.


근데, 왜?


세상이 빨갛죠?


아, 저기 민혁이가 오네요.


늦어버린 제가 걱정이 돼서 마중을 나왔나봐요.


너무 기뻐요.


아 근데, 갑자기 들러붙으면 민혁이한테 폐가 될까요?


그래요. 지금은 그게 좋겠어요.


가볍게.


아주 가볍게.


새가 모이를 쪼아 먹듯이.


프렌치 키스를.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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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재밌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항상 자기 전에 얀데레에 관한 망상을 여러가지 하는데

어제 밤에 자기 전에 떠올린 게 썩 괜찮아서 소설로 써봤어요

많이 부족하지만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한 뻘글이나 옆자리 괴물양 3화로 다시 찾아 뵐게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