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땃쥐를 아는가? 

포식자를 만나면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은 척을 하는데 그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땃쥐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자기 의지로 멈출 수 있는 생물 중 하나다.

그리고 포유류 중에서 자신의 심장박동을 멈출 수 있는 동물로는 아프리카 땃쥐가 유일하고.


자신을 잡아먹을 포식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커다란 생명의 위협을 느낀 땃쥐들은 바로 자신의 심장박동을 멈춰, 그 자리에서 죽은 척을 한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포식자가 자신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희생양을 찾을 때까지 땃쥐는 그 자리에서 죽은 척을 한다.


그러다가 포식자가 없어지면, 다시 땃쥐는 자신의 심장박동을 풀어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는 보금자리를 향해 돌아간다.

물론, 이 방법이 언제나 먹히는 건 아니다. 


포유류 중에서 영리한 축에 속하는 아프리카 사막여우, 그리고 하이에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런 땃

쥐의 행동을 알아차린다는 학회의 연구 결과가 있다.


조그마한 풀숲에 웅크려 자신의 기척을 숨긴 뒤 천천히 죽은 척을 하고 있던 땃쥐의 사정권 앞에서 대기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효율이 낮은 설치류의 특성상 땃쥐가 숨을 멈추고 죽은 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5분에서 6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여우는 풀숲에 숨어 땃쥐의 행동을 관찰하곤 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냥 바닥 널브러져 있는 경우는 독초를 먹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중간 포식자인 여우는 독초를 먹고 죽은 땃쥐들을 먹는다면, 그건 곧 자신의 목숨 또한 잃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우는 수풀에 숨어서 잠시 저 땃쥐가 정말로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땃쥐의 죽은 척하는 시간은 최장 5분에서 6분. 여우에게 있어서 긴 시간이지만,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아프리카 초원에서 충분히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저 땃쥐가 독초를 먹고 죽지 않았다면, 따로 먹잇감을 찾을 필요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땃쥐를 먹으면 되고, 독초를 먹어서 죽었다고 생각되면 그냥 발걸음을 돌려 다른 먹잇감을 찾으면 되는 문제였다.


어차피 여우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박이었다.


그리고 땃쥐는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여우가 다른 사냥감을 찾아 걸음을 옮겼으면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심장 박동을 최대한으로 늦추고 있다.


이건 지루한 치킨 레이스였다.


다른 상위 포식자- 예를 들면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여우의 주위를 맴돌고 있으면 중간 포식자인 여우는 5~6분의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기보다는 독수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칠 게 분명했다.


땃쥐는 그것을 노리고 있다. 자신의 주위를 돌고 있는 여우가 어서 빨리 다른 포식자를 피해 도망치기를 땃쥐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땃쥐다. 나는 땃쥐다. 나는 땃쥐다.

절대로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의식을 회복한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는 땃쥐다.


나는 땃쥐다. 나는 땃쥐다. 나는 이대로 계속 기절한 척 있다가, 여우가 발걸음을 돌리면 다른 곳으로 재빠르게 도망칠 거다.

나는 땃쥐다. 나는 땃쥐다. 여우가 내 얼굴을 만지고 있다. 간지럽다, 길게 쭉 뻗은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천천히 내 앞섶을 향해 지렁이처럼 파고드는 손가락의 느낌이 전해진다. 나는 땃쥐다. 

만약 여기서 여우의 잔꾀에 넘어가면 나는 한입 식사 거리로 변해버리고 만다. 나는 땃쥐다.


내가 이렇게 죽은 척을 하면, 여우는 발걸음을 돌려 다른 먹잇감을 찾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땃...


"지금 일어나있는 거 아니까 눈 좀 떠보는 게 어떠니?"


"일어나있는 건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그런 건 그냥 만져보면 알아…. 사실은 처음에 일어났을 때, 고개를 돌려 실눈을 뜬 걸 봤다. 그래, 몸은 괜찮니?"


"누구 때문에 기절할 정도로 놀란 것 치고는 생각보단 괜찮네요."


"다행이네"


나는 눈을 떠 의자에 앉아있는 예진을 바라보았다. 여우는 땃쥐가 죽은척하고 있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책도 가지고 있었고, 텀블러에 마실 것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책의 두께가 상당한 걸 봐서 여우는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여우에게 땃쥐가 이기는 방법은 없었다. 


이불을 들어, 옷을 확인해보니 새것으로 갈아입혀 진 상태였다. 홀짝- 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텀블러에 든 뭔가를 마시고 있는 예진과 눈이 잠시 마주쳤다.


"마실래?"


"아니요"


날카로운 과도를 보고 미친 듯이 쿵쾅거리던 심장도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아까 정말로 기절했었다.

거실에서 있었던 일은 그녀를 속이기 위해서 한 메소드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나는 날카로운 과도를 보고 기절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머리 위에 흔들리는 핑크빛 레이스가 거슬린다.


아오 잡아 뜯어버리던가 해야지 이건 뭐... 공주님도 아니고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그런 일이라고 하면 분명 과도를 들고 내 앞에 천천히 다가서는 걸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 이번 회차에서 예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람은 미워하되 죄는 미워하지 말랬던가?? 아니 그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고


비록 저번, 그리고 지지난번 회차에서 나를 칼로 찔러 죽이기는 했지만, 이번 회차에서 그녀는 나에게 매우 협조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서는 타당한 어느 정도 뭐... 그래…. 치정살인이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디가?"


"거실에 갈 거예요"


"좀 쉬는 게 어떻겠니??"


"거실에 가서 쉴 겁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읽던 책을 덮고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가기 시작하는 예진,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가는 게 마치 그림자 같다.


2층에 있는 내 방에서 내려와 거실로 자리를 옮긴다. 기절하기 전에 내가 나뒹굴면서 사방팔방에 오줌을 흩뿌렸던 곳은.. 이미 걸레로 깔끔하게 닦여져 있었다.


반짝하고- 거실 바닥에서 빛이 난다.


아까 앉았던 흔들의자에 앉았다. 누가 봐도 흔들의자가 아니랄까 봐 앞뒤로 오뚝이처럼 흔들거린다.


옛날에 요양원에 봉사 갔을 때, 돌봐주던 할머니 중 한 명이 흔들의자랑 한몸이 된 것처럼 의자에서 밥 먹을 때도 의자에서 밥을 먹고, 낮잠을 자는 것도 의자에서 잠을 자고, 


세수할 때도 의자에 앉아서 세수하고, 심지어 똥, 오줌도 화장실에 안 가고 의자에 싸고는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에디슨 당신은 틀렸어.


침대가 아니라 흔들의자가 과학이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맡긴 체 집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간의 회귀로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기분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문도 궁극 키를 킨 것 같은 그런 느낌. 


딸피까지 내려간 내 정신 게이지가 다시 만 땅을 향해가고 있었다.


"뭐 보니?"


와 여기서 치감을 걸어버린다고?


"그냥 정원 보고 있는데요."


마치 점화에 걸린 것처럼 아까보다 더디게 회복되기 시작하는 내 정신력. 

뒤에서 말을 거는 예진의 목소리가 조금, 아니 상당히 거슬렸다.


하지만 뭐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번 회차에서 예진과는 커다란 마찰이 없었다.


꽃 사주고, 커피 사주고, 밥 만들어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그냥…. 뭐 평범한 부부의 일상이었다.

...근데 보통 결혼한 사람이 오줌을 지리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 치고는 예진의 반응은 너무나도 무덤덤하다.


보통 사방팔방 울부짖으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나..?


고개를 뒤로 젖혀,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예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을 꾹 닫은 체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탁- 그러자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커다란 해파리가 올려진 것 같은 그런 기분, 뭐 솔직히 나쁘지는 않다.


"병원에 진료날짜를 알아봤으니까- 병원에 가보자. 내가 보기에는 약만 이렇게 처방받아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 전문의와 상담을 한번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의 너는.. 조금 이상한 것 같아

평소보다 말수도 많고, 행동도 많아지고, 집 밖을 막 돌아다니고, 뭔가 좀 달라졌어. 아니 달라졌다기보다는 다시 초심을 찾은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상처를 딛고 일어선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까지 먹고 있는 약의 효과가 인제야 나타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부정적으로 봐야 할지는…. 의사와 대화를 한번 나눠봐야 할것 같구나."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예진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이상한 듯 고개를 한번 갸웃거려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꼬리를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미소였다. 지금까지 예진과 같이 있으며 본적이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

지금까지 석고상처럼 굳어있던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얼마나 아름다웠냐면, 잠시 예진이 나를 두 번이나 찔러 죽였다는 사실도 망각할 만큼 예진은 아름다웠다.


이번 회차에서는 좀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인은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은가.?

뭐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회귀 3번 만에 내가 원하는 정조 역전 세계를 찾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그래 예수님이 말했지 않은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이번 회귀 때 예진은 나에게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나는 그저 저번 회귀 때와 지지난번 회귀 때의 일을 가지고 예진을 너무 밀어내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 뭐 치정 살인이면 할만하지.


정조 역전 세계의 아름이와 예진의 관계에 대해서 아직 자세하게 알아낸 건 없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나…?"


예진은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허리를 살짝 굽혀, 뒤로 젖힌 내 얼굴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포갰다.


부드러운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스파이더맨의 피터파커와 메리 제인이 된 것 같다.

길게 자란 예진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머리카락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웠고 시원한 민트향이 머리카락에서 났다.


세상에 민트향이라니. 설마 이 세계 사람들은 치약으로 머리를 감는 건가..?

콩밥 카레라이스에 민트향 샴푸라니, 정조역전 세계의 사람들은 상식이 약간 뒤틀려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서 민트 냄새를 맡으니 그렇게 민트향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원효대사와 해골 물 이야기처럼 민트라고 생각하면 민트고, 치약이라고 생각하면 치약인 법이다.


내가 민트 향보고 치약이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민트는 치약이 되는 법이고

치약을 민트라고 생각하면, 치약이 민트가 되는 법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리고 뭐 인제 와서 예진이 치약으로 머리를 감든 말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치원생이 소꿉놀이하듯 가볍게 맞닿은 예진의 입술이 멀어졌다.


발걸음을 움직여 예진이 내 앞에 섰다.

그녀도 잠옷을 갈아입었는지, 어제와는 다른 잠옷이었다. 뭐 그래 봐야 색깔만 살짝 다른게 전부였지만.


"..."


다시 한 번 왕자님 안기로 나를 들어 올리는 예진, 솔직히 나는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여자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아니 뭐 이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고, 여자가 곧 남자인 세계니까 별반 이상할게 없긴 하지만서도...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랑은 전혀 다른 이 세계의 상식에 적응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왜... 그러니? 얼굴이 빨개졌다"


남자 주제에 여자에게 왕자님 안기를 당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붉어진 모양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식의 취급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예진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를 들어 올린 예진이 내 얼굴을 보면 볼수록 내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과장이 아니었다.


마치 태양처럼, 아니면 제철소에서 볼 수 있는 붉은 쇳덩어리처럼 화상을 입을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내 열굴, 

거울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토마토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닫혀있는 방문을 열고 예진이 나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침대 머리맡에는 나와 예진의 관계가 어떤 사이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흑백의 옷을 입은 예진과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상냥하게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아무리 정조역전의 세계지만 적어도 첫 경험은 상냥한 순애로 하고 싶다.

그게 내 작은 소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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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닉 팠습니다.

그리고 다음화에 야쓰신 넣을 예정입니다.

이제 와서는 대체 어디가 얀데레고 회귀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감사히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PS.그리고 소설속의 땃쥐는 그냥 제가 막 만들어낸 창작물이에요.

진짜 존재하고 있는 땃쥐랑은 다른 생물이라고 보면 편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