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화


겨울인데도 꽤 따뜻한 날씨 덕에 얇게 입은 걸 후회하지 않았다.이미 긴 옷들은 빨래를 돌리고 있어 걱정했지만 다행이었다


항상 출근 전에 들르는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올려놨다. 늘 아침은 간단히 해결하는 편이기에 딱 이정도가 알맞아


"500원입니다"


"네 감사합니ㄷ"


"여기 오렌지주스 하나까지 해서 계산할게요"


순간 여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 얀붕아?"


"어.. 얀진아 안녕"



바로 예전 동료였던 얀진이였다.



-



"그동안 어떻게 지낸거야. 갑자기 말 없이 은퇴배버려서 너무 놀랐다니까"


"아하하. 그런 일이 좀 있어가지고."


근처 벤치에 앉아 서로 근황을 주고 받았다. 얀진이는 내가 히어로로 활동했을 당시 함께 했던 동료였다. 그 때 떠난 이후로 몇 년이 흘렀지만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너 이 새끼.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그러고도 친구냐고 이 의리없는 놈아"


'퍽' 살작 내 어깨를 치는 얀진이에게 뭐라고 해명얄 수 없었다. 갑자기 사라진 게 맞았으니까 그렇지만 얀진아, 너한테 맞으면 정말 뼈 부러지거든?


"아얏. 정말 미안하다니까. 그나저나 너 요즘 대박났더라."


히어로 빌보드 차트 무려 10위, 각종 언론매체에서 주목하는 히어로 중 1인, 많은 남성들의 결혼 상대로 늘 꼽힌다.


얀진이는 능력도 강력하고 마음도 굳셌기에 언젠가 성공할거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 거만해질 법도 하지만 얀진이는 과거에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 호탕하고 털털했다. 지금 이렇게 벤치에 등을 편채 다리를 꼬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말이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


"별거 없지, 그저 윗대가리들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전체적으로 지방 돌면서 놀기도 하고."


생각보다 평범하게 살고 있구나


"너는? 어떻게 살아?"


"나도 별거 없어 그저 사무소 히어로들 챙겨주는 거 밖에는"


"그럼... 혹시 만나는 사람 있어?"



만난다라. 뭘 얘기하는 거지? 누구 거래처 미팅 같은 거려나? 얀진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무슨 중요한 미통을 묻는 걸로 해석했다


"음.. 없는데?"


내 말에 얀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쳤다



-


"이참에 이유나 좀 물어보자, 왜 그만둔거야?"


"..."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가만비 허공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친한 그녀에게라도. 난 말하기 두려웠다


"... 개인적인 사정이겠구나"


"응 미안.."


"많이. 보고 싶었고, 다들 그리워 해. 사장님도, 동료들도, 얀돌이다"



얀돌, 그 이름에 멀쩡했던 내 이마가 구겨졌고 핏줄이 솟았다. 이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도저히 얀진이 앞에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아... 얀돌이가?"


"응, 너 사라진 이유로, 얀돌이가 힘들어했어.. 너랑 가장 친했으니까"


잠시 분노가 치솟았지만 얀진이 앞에서 화를 낼 수 없기에 다시 진정됐다. 얀돌이와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그 일에 대해선 다신 꺼내가 싶지 않았는데



-


몇분 후, 저 앞에 있는 건물 전광판에 화면에서 얀순이가 보였다. 보아하니 빌런을 생포하고 있었다


"이런 ㅅㅂ년아. 언젠가 죽여버릴꺼야!!!"


늑대처럼 생기고 온몸이 드러나게 핏줄이 선명한 빌런이 얀순이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네네 알겠으니까. 그런 얘기는 판사 앞에서나 지껄이세요 이 똥강아지 새끼야"


그러나 뒤에서 빌런의 두 팔을 꽉 쥐어짜자 빌런은 괴성을 질러댔고, 강력한 얀순이의 완력을 못 이긴채 금세 깨개갱거리며 경찰차에 태워졌다



'얀순이.. 저번에 내 앞에선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지 않았나?'


앞으론 얀순이를 절대 화나게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하였다



"아 맞다, 너희 사무소 소속 여자 히어로 말이야. 아주 대단하던데?"


"어? 야 얀순이 말이구나"


날 바라보며 얘기하던 얀진이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걔 요즘 떠오르는 대세잖아. 동세대 히어로들 중 업무 처리 능력 상위권, 빌런 퇴치 출중, 거기다 각종 방송에 출현해 대중적 호감도까지. 넌 어떻게 그런 애를 스카우트했어?"


나도 늘 놀라곤 한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내게 와준건지


"능력이 되게 특이하더라, 뭐더라 러브자이저였던가?"


러브자이저, 내가 들은 바로는 사랑을 할수록 신체능력, 감각 등이 통상의 몇배로 강해진다, 란다. 단순하면서 어떨 땐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심플함 그 자체


"게다가 생긴 것도 귀여워. 다음에 한 번 놀러갈 테니까 소개시켜줘라?"


"응 알겠어"


"...그건 그렇고, 넌 이제 일하러 가는 거지?"


곧 나도 출근시간이었기에 슬슬 가야했다


"그래야지, 히어로는 늘 시민들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래.. 넌 여전히 사람들을 지키며 살아온거구나



"만나서 좋았어. 그럼 난 갈ㄱ"


"에헤이, 오랜만에 절친을 만났는데 그냥 가게?"


"어? 무슨 소리야?"



너 혹시 주말에 시간돼?




-




요새 일도 많아지고 인기도 생기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예전처럼 실수도 많이 하고 돈도 못 벌던 때와는 차원이 다르도록


어쩌면 나와 사장님, 둘이 바라왔던 순간이겠지만 난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야, 내가 사랑하는 사장님을 못 보니까 계속 임무를 나가며 자연스레 사장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같이 얘기를 나누고 떠들 시간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짜증만 가득해져 갔다


"빨리 사장님 얼굴 보고 싶다. 목소리 듣고 싶어..."


하지만 그럼에도 사장님을 생각하고 곱씹을수록 내 가슴이 뛰었다. 혈액 속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하고 힘이 솟아올랐다. 내 능력 때문인지 단순한 사랑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이 일만 끝나면 당장의 스케쥴은 없기에, 위안이었다. 빨리 끝내고 주말에 사장님이랑 같이 놀아야지~



-


겨우 임무를 끝내고 빌런을 경찰차에 태웠다.

중간에 이 놈이 계속 발악을 했지만 금세 제압해 무리는 아니었다


"이런 ㅅㅂ년아. 언젠가 죽여버릴꺼야!!!"


"네네 알겠으니까. 그런 얘기는 판사 앞에서나 지껄이세요 이 똥강아지 새끼야"


빌런의 두 팔을 꽉 쥐어짜자 빌런은 괴성을 질러댔고, 금세 깨개갱거리며 경찰차에 탔다





"아이고 러버스트씨, 오늘도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범죄 발생율도 나날이 줄어가고 있네요."


같이 범인을 체포한 경찰관들이 내게 감사인사를 표했다


"아 아니에요. 여러분들 아니었다면 저도 빌런을 잡지 못했을거에요."


"캬, 요새 젊은 히어로들은 인기 많으면 다들 거만하게 굴더니만. 아가씨는 달라도 너무 달라"


"하하하, 뭘요. 아직 많이 부족한 걸요"



어색하게 웃어주고 난 뒤,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갈 준비를 하던 찰나


"저기 러버스트씨? 제일 특보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내게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기자놈들이... 감히 얀붕 사장님을 보러 가려는 데 날 막아?'



"아 그럼요 물어만 보세요!"



속으로 온갖 욕을 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네 이번에도 빌런을 멋지게 퇴치해 주셨는데요. 이번 임무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네, 이번 빌런은 짐승처럼 기민하고 빠르게 움직여 처치에 다소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그래도 운좋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빨리빨리 끝내 이 자식들아, 어서'


"그렇군요.. 이건 약간 개인적인 건데, 요새 프로 히어로인 얀돌씨와 교제 중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혹시 사실인가요?"



순간 내 썩은 얼굴이 티비로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죄송하지만 그런 질문은 실례라고 생각해서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앗 저기 잠시만요. 러버스트씨!"


날 인터뷰하는 놈들을 뒤로 한 채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상당히 기분을 잡쳤다. 그래도 얀붕 사장님 볼 생각에 들떠있었건만


그 똥통 새끼를 본 건 아마 한달 전, 히어로 양성 학교에 특별 교사로 갔을 때였다. 히어로를 양성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곳에서 난 빌런 퇴치 부분 관련 교사로 일일 강습에 나섰다.


그리고 그때, 같이 일일교사로 온 그 자식도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나한테 와서 몇살인지, 전번은 뭔지,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지 자꾸 물어보는 통에 이미 개무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얀똥인지 얀돌덩인지가 얀붕 사장님과 함께 일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그 ㅅㅂ놈이 얀붕 사장님을 험담했다. 사실 그 녀석은 엄처의리없는 놈이라 자기 실적만 챙기기를 바빴다고, 늘 클럽에 가서 술 퍼먹고 여자랑 놀기만 했다고. 그러니까 그런 놈 말고 자기가 운영하는 사무소에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번 와보라니까? 아가씨 얼굴도 몸매도 죽이는데, 어떻게 나론 안 되겠어?"


"...야 이 얀똥인지 얀돌대가린지 하는 놈아"


순간 뚝 소리와 함께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뭐,뭐야 갑자기 왜 이래?!"


정신을 차려보니 한 손으로 그 놈 목을 잡은 채 벽에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한테 찝적거리는 건 상관없는데 말이야. 감히 그 걸레 빤 입으로 사랑하는 우리 사장님을 욕해? 네가 우리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 너 같이 입 싸고 여자 밝히는 놈한테 평가절하 당하실 분이 아니라고"



평소 능력을 사용할 때 나오는 핑크빛이 아닌 검은색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나조차도.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사장님을 개무시하는 이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거였다


"큭..."


"그러니까 당장 그 아가리 다물고 꺼져. 여기서 뒤지기 싫으면"



이렇게 잘 참교육하고 넘긴 줄 알았지만, 어느샌가 언론과 인터넷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놈과 내가 사귀고 있다고


정말 말도 안되는 개소리였지만 증거로 올라오는 짜집기된 사진을 사람들을 점점 믿고 있었고, 이내 사람들이 점점 기점 사실로 만들고 있었다.


치졸한 새끼, 그런식으로 하면 누가 넘어올 줄 알고? 바보 같은 놈들이 진짜로 믿어 욕하든 말든 상관없다. 우리 사장님과 함께라면 상관없으니까



사무소로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내게 인사를 건네는 직원들에게 간단히 맞인사를 하고 사장님의 방으로 갔다

 

"어 얀순아 고생 많았어. 너 오늘 되게 멋있더라"


"헤헤. 사장님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어요. 사장님이 절 응원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힘이 펄펄 솟더라고요"


"정말? 그렇게 말해주니 되게 기쁘네. 얀순이는 정말 착하구나"


어쩜 이리 다정하실까. 이런 남자는 절대 아무한테도 줄 수 없다. 정말 사랑스러우시다


"그.. 사장님, 혹시 주말에 저랑 영화보실래요?"


"아 어쩌지. 나 주말에 약속이 있어서"



역시 사장님은 흔쾌히 수락하셨다. 즐거운 주말이었다. 영화 데이트를 잡고 친밀도를 높인 다음에 무드있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그리고 미리 봐둔 공원을 함께 걸은 후 불꽃놀이를 구경한뒤 틈으 타 고백을 한다. 사장님이 받아주면 그 뒤로는 양가 부모님을 만나 허락을 받은 뒤 식을 올린다. 집은 전세로 한 뒤 자식은 한.


잠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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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 쓰레기네, 조강지처를 냅두고 딴 여자를 만나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