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최악의 마법이라 일컬어지는 최면 마법.


 그런 최면 마법을 조상 대대로 사용해 온 가문의 차남으로 전생해 버린 주인공.


 일찍이 마왕을 토벌해 낸 11인의 영웅. 그 후세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선망받는 다른 10개의 가문과는 달리.


 인간의 정신에 침범하는 그들 가문의 마법은 영웅 가문과의 연줄에 목을 매는 귀족 사회에서조차도 은연중에 경원시 되기 일쑤였음.


 전생을 해도 왜 하필 이딴 곳이야 시발 거리면서 잠시 전생에 대한 기억을 되집어보는 주인공.


 그러다 장남이 작중 초반에 메인 히로인을 세뇌하려 했다가 남주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던 엑스트라라는 걸 기억해 내고, 이곳이 자신이 예전에 읽은 소설 속 세상이라는 걸 깨닫게 됨.


 이런저런 질 나쁜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장남의 모습을 떠올리곤 자신은 차남이라서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주인공. 


 하지만 몇 년 정도 지나고 나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낌.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장남은 틈만 나면 악행을 일삼고, 제 취향의 여성만 보면 최면을 통해 자신의 소유물로 삼으려 드는 인간 말종 쓰레기였음.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이 본 장남은 천성이 선하고 언제나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호인이였음.


 천하의 쓰레기라도 가족에게만은 살가운 건가?


 그런 의구심을 품으며 살아오기를 얼마간. 별안간 사건이 터짐.


 어느 날 갑자기 장남이 불치의 병에 걸려 요절해 버리고 만 것.


 그리고 이번 생애 처음 겪은 혈육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여태껏 장남에게만 관심을 쏟던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채로 주인공을 호출함.


 그리고 임종을 코앞에 두고 있음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장함이 어른거리는 표정을 한 아버지로부터 주인공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게 됨.


 인류사 최악의 마법을 조상 대대로 사용하는 최악의 가문.

 

 하지만 그 실상은 그런 오명을 솔선해서 뒤집어쓰며, 어둠 속에서 세상의 위협이 될 만한 존재들을 뿌리 뽑는 그늘 속의 영웅이었던 것.


 그들이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최면 마법의 대가 때문.


 자신들을 향한 혐오와 증오.


 그런 부의 감정이야말로 타인의 정신을 장악하는 최면 마법의 원동력이었고, 때문에 주인공의 가문은 고의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며 동시에 세상의 균형을 음지에서 지켜왔던 것임.


 한평생 자신을 희생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그러한 사실을 함구한 채, 저주받으며 죽어간 선조들.


 그러한 그들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은 주인공은 싫다면 거절해도 괜찮다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죽은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의 역할을 대신하기로 마음먹음.


 다행스럽게도 형의 유서에는 앞으로 그가 저지를 악행의 청사진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음.


 수도 길거리의 천민들의 마약을 퍼뜨리고 있는 이들의 족적을 따라가고 근절한 뒤, 그 오명은 자신이 뒤집어쓴다.


 수도에서 수인을 노예로 부리는 노예 상인들을 일망타진한 뒤, 그 공적은 다른 이에게 떠넘긴다.


 수도에서 타종족과 교류를 망치고 전쟁을 벌이려는 세력을 무찌른 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피해를 자신이 감수한다.


 소설 속에서 본 악행에 전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은 혀를 내두르려 감탄함.


 더군다나 역대 가문 인재 중 가장 총명했던 장남은, 이번 대에서 자신의 가문의 업을 완전히 끊어낼 생각마저도 하고 있었음.


 가문의 굴레를 이번 대에서 끊고, 후대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상당한 미남이었던 형이 한평생 여자를 멀리했던 것도 그런 각오의 표명이었던 것.


 그 뒤로 수년 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주인공은 초대장을 받고 형 대신 아카데미에 입학함.


 그리고 그곳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많은 이들에게 멸시받으며, 끝내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고서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하게 됨.


 썩어도 영웅 가문의 후예인지라, 극형을 받는 건 상당히 고됐지만.


 왕국 전복을 꾀하는 이교도의 악행을 뒤집어쓴 덕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갔음.


 모든 것을 끝마친 주인공의 몸은 그야말로 넝마.


 한쪽 눈은 불화살로부터 히로인을 지키려다가 화염에 짓이겨져 버렸고.


 엘프 왕녀의 저주를 대신 받아, 평생 말도 못 하는 벙어리가 되어버림. 


 구했던 수인에게 다리의 힘줄이 잘려 나가 버린지라, 지팡이 없이는 몇 걸음 걷지도 못 함.


 그럼에도 주인공은 만족스러웠음.


 이것으로 가문의 업. 형의 유지. 자신의 각오. 평생에 걸친 모든 것에 마침표를 찍어낸 거니까.


 히로인들의 기억도 전부 최면 마법으로 철저하게 지워놓아서 후환도 걱정 없었음. 


 그래서 기왕 모든 걸 내려놓은 김에, 여태껏 가문을 위해 악행을 자행해 온 선조들의 넋을 달래는 위문 여행을 결심하게 됨.


 추방 당할 때 가문의 모든 재산이 압수당하고, 마법도 몰수당했지만, 악당 노릇하며 몰래 꿍쳐둔 돈도 있겠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이참에 개인의 행복을 한 번 누려보기로 함. 

  

 그렇게 예전에 자신의 형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행을 베풀고 타인과 더불어 살며,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를 약 1년.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발생함.


 전국 각지에 난데없이 주인공을 찾는 수배령이 떨어지게 된 것.  


 극형을 받고 추방될 당시.

 

 두 번 다시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 걸까.


 도저히 좋은 미래가 떠오르지 않았던 주인공은 도주를 결심함.


 사실 주인공은 몰랐단 것임.


 자신을 향한 혐오와 증오가 최면 마법의 효력을 강하게 만들듯, 자신을 향한 호의와 사랑이 최면 마법의 효력을 도리어 약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걸.


 떠돌이 생활을 하며, 별 생각없이 남들을 돕고 살던 게 되려 발목을 잡게 된고 만 것임.


 그렇게 주인공이 자신을 뒤쫓는 움직임에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무렵.


 넝마가 된 커튼. 잔뜩 금이 간 벽.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침구류.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방 안에서 멍하니 주저앉은 누군가가 처연한 말을 읊조림.



"어, 어디···· 어디야····. 어디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