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들어간다


나는 비주얼노벨을 정말 좋아한다.

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고등학교1학년때 처음 비주얼노벨을 플레이했지만 그 전부터 나무위키 문서를 밤새 뒤지면서 '이 게임은 얼마나 명작일까'하면서 문서를 바탕으로 게임을 상상하는 짓을 많이 했다. 이상하게도 고1때까지 직접 플레이해보자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직접 하면서 나는 우선 최고 명작들부터 플레이했다. 흔히 사람들이 인생게임, 갓겜이라고 평하는 게임들. 에로스케나 vndb에 평가높고 베스트 에로게에 수상받는 게임들. 그런 게임들부터 하나씩 플레이하고 나의 인생을 이 면시(비주얼노벨)이라는 환상적인 작품들로 채우고 싶었다.


처음엔 정말 재밌었다. 마브러브, 무라마사, 스바히비 등은 정말 재밌게, 시간 가는줄 모르고 했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지고 자주 게임을 관두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 말에 발드스카이가 스팀으로 나오길 기다렸다고 풀프라이스로 샀는데 이상하게 1번째 루트도 안클리어하고(나름 20시간은 플레이했다) 내려놓은게 시작이었다.

'분명 명작이라고 사람들이 하던데...'하고 나 자신조차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몰랐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나는 실제로 인생을 면시로 채우지 못했다. 오히려 수 년이 지났음에도 면시 입문한지 반년도 안되는 사람보다 클리어 게임 수가 적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느리게 미연시들을 조금씩 조금씩 하면서 결국 완전히 손을 떼어버리게 된 경우가 있다.


바로 몇 달 전 내가 미연시의 최고라고도 불리던 '화이트 앨범2'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 게임에서 선택지가 루트 분기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부분, CC에서다.

마음에 안드는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하여 마음에 안드는 히로인들 중 한명을 선택해 보기도 싫은 야스씬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나는 CC초반에 '좆까'하면서 게임을 껏다.


나는 캐릭터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단지 그런 느낌이 들었던건가? 아니면 선택지를 통해 다양한 여자를 공략한다는 비주얼노벨의 대다수를 이루는 미연시의 컨셉 자체에 혐오를 느끼고 있던건가? 만약 그렇다면 왜?


단순 취향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는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를 너무 신격화한 상태였다. 내가 하는 비주얼노벨은 무조건 몰입되고 재밌고 감동적인 명작이어야 하는데, 현실과 안 맞으니 나는 방황했다.

나는 말그대로 패닉했다. 나는 그냥 이런 작품들이 싫은건가? 나는 이런 걸 즐길 수 없는건가? 단순 취향 문제라고 넘길 수 있는 것이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미연시를 아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년간 미연시를 하면서 클리셰 등만 잔뜩 기억해서 만약 플레이한다고 해도 지루하고 뻔할거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래도 난 하루 종일 미연시 생각을 했다. 그 시절처럼 미연시에 대하여 상상하면서. 이번에는 유자챈을 매일 보면서 중계를 통해 다른 유저들과 공감해보려고 하면서.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비주얼노벨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생긴 것이 이 인생 게임 대회.


처음에 참가자들이 애정을 담아 쓴 글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나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인생 게임이라고 부를 만한 미연시가 없었다.

위에 언급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한 게임들도 결국 명작이라고만 말했을 뿐, 인생 게임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주얼노벨을 좋아하는 내가, 인생 게임 하나 없다고?


마치 몇 년간 내가 해온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대회에 정말로 참가해보고 싶었다. 상품, 관심 그 어느 것도 필요 없었고 단지 내가 비주얼노벨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증거를 어떻게든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다가,

"인생 게임이 없으면 인생 게임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라는 병신같은 발상에 도달했다.


그것이 21일. 28일까지 시간이 넘쳐나는 상황이어서 그때까지 면시 몇 개를 클리어하고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걸 골라 그것에 대하여 쓰려고 했다. 그 중에선 내가 중간에 관둔 화앨2나 발드스카이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인생 게임 1번후보를 처음 플레이하고, 나는 그것만 플레이하다가 클리어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1번 후보는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파타 모르가나의 저택"이라는 게임이다.


사실 이 게임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당시 이렇게 생각했다.

"좀 서양적 느낌이 독특해서 거품 낀거 아닐까"


실제로 처음 플레이하기 직전에도 그 걱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지만,

시작하면서부터 끝낼때까지 그 걱정은 단 한번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직접 이 명작을 즐기길 원하기 때문에 이게 되게 좋았다느니 저게 되게 좋았다느니 찬사를 쓰는것보다는 시놉시스의 한 구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게임 중간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걸로 기억함)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의 비극이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던 거야'"


이 게임은 비극의 이야기가 상당히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스토리의 비극적인 부분을 읽고 생각해보면 참 인상깊었다.

"픽션에서 나오는 비극을 공감하면서도 나는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겠지만, 나에게, 내 인생에 비극이 일어난다면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게임을 클리어한 지금 아직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만약 파타 모르가나의 저택을 플레이한다면 이 질문을 중간 중간 생각해봐주었으면 한다.



막상 쓰려니까 말이 잘 안나온다. 게임에 대하여 너무 이야기하면 오히려 경험을 저해할까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게임은 얼마 전까지 방황하던 나의 미연시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실하게 해준 것에 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나에게 이 게임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게임을 찾는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을 했기에 나는 또 다른 인생게임을 찾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얻었다.


이 게임은 누구나 꼭 해보길 바라고 그와 별개로 나처럼 미연시, 혹은 미연시가 아니라도 게임, 영화 등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데 그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면 좋아할 줄 꿈에도 몰랐던 작품을 눈감고 한번 찍먹해보자. 그 분야에 대한 너의 열정을 다시 북돋아줄 수도 있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

쓰고 보니까 대부분이 헛소리고 게임에 대한 설명과 그림은 거의 없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