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스토리에선 나레이션(?) 말투가 조금 오락가락함, 감안하면서 보셈,

* 이 스토리에선 소냐(지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오락가락함, 감안하면서 보셈.

* 중간에 캐릭터들의 호칭이 조금 바뀜



굼 = 라다

로싸 = 나탈리아

지마 = 소냐

이스티나 = 안나

레토 = 로질리아


_________





[끝없는 꿈]



아침, 난 여느 때처럼 내 방을 나서고 있었다.



어머니: 소냐,세수랑 양치질은 다 했어?


소냐: 엄마, 저도 이제 다 컸어요.




주방으로부터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녀는 지금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식탁에 앉기만 하면 따끈따끈한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은 보통 죽 한 그릇에다 빵과 소세지다.

어머니는 요즘 들어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신 건지, 아침 죽은 가장 살이 찌지 않는다는 귀리죽이다.

나는 별로 상관 없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앉아서 신문을 보고 계신다, 신문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경제, 정치, 국가, 전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 사람들은 왜 나의 위대한 업적들은 신문에 싣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 소냐, 요즘 학교에서 어떠니?



또 시작이다.

매일 이 시간이랑 저녁 시간이 되어야만 나타나는 상징적인 관심이다. 아버지는 이게 질리지도 않는 건가?

아니면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거나?



소냐: ......그저 그래요.


아버지: 너도 이제 7학년이니까, 예전처럼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면 안 된다.



왜? 난 고작 7학년밖에 안 됐는데.



아버지: 또 너 9학년 졸업하고 난 다음에 뭘 할지 계획은 있어?


소냐: ......아뇨.



9학년을 졸업하고 나면, 난 계속 공부를 할 건지, 아니면 기술 학교에서 기술을 배울 건지 결정해야 한다.

난 아버지가 날 기술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분명 그리 말할 것이다.



아버지: 그럼 넌.......


어머니: 딸한테 무슨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거예요, 일은 어쩌고요?



어머니는 아침을 들고 주방을 나서며, 아버지의 말을 끊으셨다.



아버지: ......오늘 면접이 있어.



실직하신 이후로,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셨었다. 물론, 예전에도 비슷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머니: 피에르, 당신은 일단 그 거드름을 피우는 성격부터 고쳐야 해요, 위엄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잖아요.


아버지: 알겠어요, 나도 노력하고 있어요, 안나.



어머니는 사실 아버지보다도 더 내 학업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신다. 또한 내가 졸업하고 계속 공부를 하길 원하시며, 그걸 위해 돈도 아껴두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항상 자기 때는 이렇게 9학년까지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하신다.

또한 어머니가 이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땐, 자신이 행운이라고 여겼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 또한 빠짐없이 이야기하신다.

그 경험은 어떤 귀족의 하녀가 되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한 여학교에서 학업을 모두 마쳤다—— 라는 것 덕분에 어머니는 오늘날 불경기에도 나쁘지 않은 직업을 찾을 수 있으셨다.

가끔 난 내 자신이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시는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랬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좋아, 소냐, 어서 아침 먹어, 학교 버스에 늦을라.


소냐: 알겠어요, 엄마.



난 고개를 숙여 내 아침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한 걸 발견했다.

불쌍할 정도로 적게 담긴 죽, 반 쪽짜리 빵, 이상한 형태의 소세지.



소냐: ......엄마, 이게 다 뭐에요?


어머니: 무슨 소리니, 소냐. 우리가 매일 먹던 아침 아니니?


소냐: 우리가 언제 매일 아침 이런 걸 먹었어요?!




소냐?: 잊었니?



나와 똑같이 생긴 이가 갑자기 식탁 옆에 나타났다.



소냐: 누구야 너, 왜 나랑 똑같이 생긴 거야?


소냐?: 나는 너야.



네가 나라고? 웃기시네, 내가 누군데?



소냐?: 넌 소냐야.



영문을 모르겠네.

하지만 뭔가 이상해,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났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별 반응이 없으셔.



아버지: 소냐, 뭐하니, 어서 먹어야지.



아, 알겠다. 이건 분명 악몽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지. 하, 겨우 음식 정도야, 난 악몽에서 이미 더 무서운 것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소냐?: 아니, 그 무서운 것들은 네가 단지 만화나 게임에서 얻은 망상에 불과해.

소냐?: 예전에 넌 확실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지.

소냐?: 탱크 군단, 거대한 괴수, 아버지의 손바닥처럼 단순하고 거친 것들 말이야.



뭐라는 거야? 저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소냐: 그게 뭐 어때서? 너도 결국은 내 꿈이잖아, 안 그럼 네가 어떻게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아?


소냐?: 네 손에 있는 음식을 잘 봐.


소냐: 무슨......?!



이건 죽같은 게 아니야, 단지 약간의 쌀, 물과 잡초가 섞여 있는 혼합물이고, 어머니가 해주는 죽과는 거리가 멀어!

빵......확실히 빵이긴 하지만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무래도 보존 환경이 나쁜 곳에서 며칠은 놔둔 모양이다.

......난 왜 이 빵이 며칠은 놔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

소세지는 마치 거대한 고기에서 강제로 뜯어낸 것같아, 그리고......뭔가 비린내가, 잠깐, 이거......핏자국이야?!



소냐: ......윽.

소냐: 이건 단지 악몽일 뿐이야!


소냐?: 하지만 넌 이런 꿈을 꿔본 적이 없잖아, 게다가 이 음식들은 이렇게나 사실적인데, 마치......



나는 또 다른 내 자신이 나를 비웃고 싶어하는 느낌을 받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비웃는다는 건 타인을 괴롭혀서 누군가가 즐거움을 얻는 행위라고 하셨다.

그녀는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뭐가 어찌됐든, 나는 그녀가 더 이상 말하게 두면 안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금 엉망으로 먹더라도 지금 이런 생활이 나쁘지는 않다.

우선은 녀석의 입을 막아야 해, 난 조금 이따 학교도 가야 하는 걸!



소냐: 닥쳐!



난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 내 주먹을 이용하는 거다.



소냐?: 마치 네가 정말로 먹어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나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늦었다.



_




내 주먹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 제대로 꽂혔다.

뼈와 상대방의 얼굴이 닿는 촉감이 날 안심시켜 줬다.



학생A: 크악!!


학생B: 너, 너무 강하잖아, 열 몇 명 정도면 녀석을 해치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 한 명한테 전멸이라니......


소냐: *우르수스 욕*, 너희 같은 겁쟁이들도 남을 괴롭히고 다닌다니, 돌아가서 연습이나 더 하고 와라.


학생C: 쳇, 가자, 동장군, 두고 보자,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동장군이라는 별명은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음, 엄청 멋있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들 맨날 내가 낮잠을 잘 때 귀찮게 하는데, 혹시 내가 오후 수업은 거의 안 간다는 걸 모르는 건가?




괴롭힘을 받은 학생: 저기, 고마워, 동장군.


소냐: 응? 아직도 거기 있었구나, 도망가라고 했잖아?


괴롭힘을 받은 학생: 이번엔 너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어서.



이번엔?



괴롭힘을 받은 학생: 저기, 역시 내가 누군지 못 알아 보겠어? 난 발레리아라고 해, 전에도 너한테 알려줬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 여자 아이가 머리에 묶은 노란색 리본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어.

저번 주인가, 저번 달이었나? 아무튼 내가 도와줬던 사람이었겠지 대충.



괴롭힘을 받은 학생: 넌 예전에 내 친구들도 도와준 적이 있었어, 우리 모두 널 존경하고 있다고.



그녀 얼굴에 기쁨이 드러나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기뻐지는 것 같아, 하지만 폼은 잡아야지.



소냐: 난 단지 머릿수 믿고 다른 사람들 괴롭히고 다니는 녀석들이 꼴보기 싫어서 그래.

소냐: 너도 용기를 내, 용기가 있다면 그 녀석들도 오히려 네 용기에 놀라 도망칠 걸.


괴롭힘을 받은 학생: 응......네 말이 맞아, 나도 한번 해볼게.


소냐: 그래, 너도 가라.


괴롭힘을 받은 학생: 응, 다시 한번 고마워!



여자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 뛰어 나갔다.



소냐: 응?



교실 안에 있는 탁자와 칠판이 많이 어지러워진 것 같다, 내 착각인가, 아니면 이 교실이 원래 이랬던 건가?

됐어, 낮잠이나 자야지.

나는 4개의 탁자를 붙여 놓고 그 위에 누웠다.



소냐: 뭐야?



내 등 뒤에 무엇인가 작은 물건이 느껴졌다.

손을 뻗어 보니, 노란 리본인 걸 발견했다.

이 리본은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리본은 더러웠고, 한 쪽은 아예 떨어져 나갔다.



소냐: 응?!



리본의 뒷면엔 검은 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마치......

핏자국처럼.



소냐: ......케챱이겠지.



난 리본을 한 쪽에 두고, 계속 낮잠을 자기로 했다.

깊은 잠에 빠져 들기 전, 난 내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소냐?: 후에 넌 학교의 어느 교실에서 이 리본을 발견하게 되지.

소냐?: 넌 그녀가 죽었다는 걸 사실 알고 있었어.



_



교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고, 그것이 내 낮잠을 방해했다.

안경을 쓴 한 소녀가 책 한 권을 들고 그곳에 서있다, 교복을 보아하니 이 학교의 학생은 아닌 걸로 보인다.



???: 저기, 이 교실에 당신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나요?


소냐: 여긴 내가 점령한 곳이야, 다른 사람은 환영하지 않는다고.


???: 미안해요, 하지만 저와 제 친구들이 몸을 숨길 곳이 필요해서......

???: 어라, 넌......소냐?


소냐: 넌......안나?



안나는 내 예전 이웃이었다. 그녀가 이사를 간 이후론 몇 년 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 했었다. 하지만......



소냐: 다른 교실을 찾아봐.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예의 바르다. 게다가 우리 둘 관계가 그리 나빴던 건 아니어서, 내가 그녀를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없다.

하지만 첫번째 화재가 발생한 이후로, 학생들 사이의 분위기가 이전보다 꽤나 위험해졌다.

오늘만 해도 난 벌써 세 무리의 사람들을 쫓아냈다.



안나: 소냐, 이게 널 곤란하게 만들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안나, 안에 있는 건 겨우 한 명이잖아, 우리가 그녀를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니야?



아하,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아무래도 또 싸워야 할 모양이네.



안나: 그러면 우리가 그 강도들이랑 다를 게 뭐야? 안 돼.



......안나는 예전처럼 다른 이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 맞아, 저기, 라다는 요리 잘하는데, 맛있는 걸 보수로 주면 괜찮지 않을까?



이건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요 며칠 동안 계속 압축 비스킷(건빵 비슷한거)이나 통조림만 먹어서 엄청 질렸다.



소냐: 좋아, 여기에 머무는 걸 허락하겠어,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 소냐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거든.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잠깐, 소냐라니......설마 그 "동장군"이야?!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저 녀석 이름은 우리 학교 애들도 전부 안다고, 공립 고등학교에서 저 녀석 상대가 되는 사람은 없을 걸.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잠깐, 그럼 우리 이제 큰일 난 거 아니냐......



난 남이 날 이렇게 치켜 세워주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안나같은 착한 아이가 이런 걸 듣고 얼굴색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안나: 고마워, 소냐, 가능한 널 귀찮게 하지 않을게.



......쳇, 아무래도 놀라지 않은 모양이네, 재미없어.

아무튼 내 허락을 받은 후, 이스티나랑 그녀를 뒤따르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앞에 들어오는 몇몇 녀석들은 남여가 섞여 있었고, 옷이 조금 찢어져 있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으며, 딱 봐도 제대로 쉬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다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뭐야?!

곧이어 들어오는 건, 걸어 다니는 몇 벌의 교복들?!

게다가 마지막에 들어오는 사람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다.



소냐?: 걸어 다니는 교복이라니, 정말 자신을 끔찍하게 아끼는 모양이네.


소냐: 무슨 소리야?! 아니지, 넌 대체 누구야!


소냐?: 난 너야, 넌 지금 꿈을 꾸고 있고, 멍청아.


소냐: 음, 어, 아.



일리가 있다, 이렇게 괴이한 현상이라니,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아니, 근데 왜 내가 내 꿈한테 욕을 먹는 거야?!



소냐?: 확실히 머리 없이 걸어 다니는 시체보단 이런 장면이 조금 더 낫지 않나 싶네.


소냐: 무슨 소리야, 머리 없이 걸어 다니는 시체라니?


소냐?: 왜냐하면 넌 나중에 그 녀석들을 전부 처리하니까.



처리한다고? 내가 왜 그 녀석들을 처리하지?



소냐?: 왜냐하면 그 녀석들이 널 습격하려고 했었으니까, 그치, 이스티나?



안나: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 녀석들이 먼저 한 짓이었으니까.


소냐?: 응. 내게 있어서 폭력은 이유만 있다면 별 어려움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거야.


안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소냐?: 난 언제나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거든.



눈앞에 펼쳐진 꿈 속의 광경은 조금 이상했다.

또 다른 나는 갑자기 내가 이름만 알고 있던 그 사람과 익숙한듯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치대로라면 그녀들은 단지 내 꿈 속의 인물들일 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걸 꿈이라고 인식한 이상,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또 다른 나를 제외하고, 장소에 있던 모든 이들이, 심지어는 그 움직이는 교복들까지 시선을 내게 집중시켰다.

그녀들은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날 둘러쌌다.



모든 사람: 너는 우리의 리더야, 넌 이곳에 남아야 해, 넌 우릴 이끌어야 해.



나는 또 다른 나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졌다.



_



소냐: 쓰읍......



나는 갑작스레 앉았다.

주위를 보니, 이곳은 여전히 교실이었다. 밤은 이미 깊었고, 다른 이들은 안에서 자고 있다. 난 문 쪽에서 잠을 청했다.

다른 한 쪽 문은 내가 교탁으로 막았다. 창문도 전부 막았고, 내 옆에 있는 이 문을 빼고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난 그녀들의 리더니까, 내가 그녀들을 지켜야 한다.



안나: 소냐, 안 자?



멀지 않은 곳에서 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나와 그녀의 동료들이 우리와 함께한지 벌써 3일이 되었다, 도중에 조금 즐겁지 못한 해프닝이 생겼다. 그래도 안나는 내 편이 되어 줬다.



소냐: 음, 악몽을 꿨구나.


안나: ......그런 일로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넌 잘못한 거 없어.



악몽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나는 분명 내가 악몽 속에서 그 녀석들을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안나는 그 일에 대해 정말 괴로워 한다.

안나는 날 새 리더로 추천하는 바람에 신뢰하고 있었던 친구들이 날 습격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그 녀석들은 모두 내게 처리 당했다.

내가 봐온 수많은 동아리들의 와해는 꼭 이런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이건 내가 동아리에 들어가기 싫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난 복잡한 인간 관계를 다루기 보단, 주먹으로 해결하는 걸 좋아했다.



소냐: 걱정하지 마.



그녀는 바스락거리면서 내 곁으로 왔다.

난 그녀가 날 위로하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라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녀가 더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난 화제를 바꿨다.



소냐: 안나, 너 예전엔 반장이었어?


안나: 아니.


소냐: 그럼 넌 어떻게 이리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녔던 거야?


안나: 사실 모두들 이끌고 있다고 하긴 조금 그래.

안나: 라다가 계속 응원해 주는 것도 있고......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소냐: 하, 확실히 넌 뭐라도 좀 해야겠네.


안나: 놀리지 마.

안나: ......사실 나도 반에서 집단 따돌림이 있는 걸 봤어,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난 조용히 피해다녔었지.


소냐: 그 녀석들을 단단히 혼내줬었어야지, 너 그렇게 대단하면서.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얌전해 보이지만, 안나의 신체 조건은 꽤 나쁘지 않다, 단지 그녀는 그걸 쓰길 원치 않는 것 뿐이다.




안나: 나도 너처럼 용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난 항상 남을 꾸짖는 용기가 부족해.



보아하니 더더욱 기운이 빠진 모양이다.

쳇, 난 남을 위로하는 법같은 건 모르는데, 어떻게 말하면 그녀의 기운을 북돋을 수 있을까?



소냐: ......저, 적어도 지금의 넌 나설 수 있잖아.



나 방금 혀가 조금 꼬인 거 아냐?!



안나: ......왜냐하면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처음부터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소냐: 안 될 것 같다니?


안나: 지금처럼 말이야.

안나: 우린 이 학교에 갇힌지 벌써 8일 째야, 모든 게 하루하루씩 나빠지고 있어.


소냐: 이건 그 첫번째 화재 때문이야, 그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그 불길이 한 식량 창고를 태워 없애버린 후, 제 4 중학교의 귀족 학생들로 결성된 단체는 또 다른 식량 창고를 점령했으며,

사방에서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민 학생들 사이에서도 음식을 약탈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학교는 이미 곳곳에 싸움과 낙서의 흔적들로 가득했으며, 한밤 중에도 다른 곳에서 울음 소리, 비명 소리, 욕설이 들려오곤 했다.




안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또 나는 조만간 그 불이 또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


소냐: 뭐? 누군가 분명 불을 지를 거라는 거야?


안나: 아냐, 뭐라도 설명하면 좋을까......잠깐 생각해볼게.

안나: 음, 그러니까, 내 생각엔, 이 불이 상징하는 것이 조만간 나타날 지도 모른다고.


소냐: 무슨 소리인지 더 모르겠는데.


안나: 이 불이 없었더라도, 비슷한 일이 우릴 두려움에 빠뜨렸을 거라고......나는 그렇게 생각해.


소냐: 그건 이상하잖아, 불은 분명 악당들이 피운 걸꺼야, 악당들이......


안나: 악당은 언제나 존재해.


소냐: ......



난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나: 내가 책에서 봤는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惡)하대.

안나: 당시의 난 이상하게 느꼈지, 우리는 분명 문명 사회를 건설하고, 모두들 질서와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우릴 악하다고 하는 거야?

안나: 처음에 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모두가 질서를 지키도록 만들고 싶었어.

안나: 하지만 상황은 더더욱 나빠 졌고,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어.

안나: 난 질서를 세우지도 못 했고, 다른 이들을 돕지도 못 했어, 심지어 네가 없었다면 난 내 친구에게 살해 당했었겠지......

안나: 난 정말 쓸모 없는 녀석이야.



안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으아아아아, 상황이 더 나빠졌다!

됐어, 사회니 도덕이니 질서니 그런 건 전혀 모르겠어, 그래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진 알아 들었다.

그래도 말하고 싶은 건 전부 말해 내도록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소냐: 그러니까, 넌 지금 모두들 나쁜 짓을 할 것 같다는 거지, 나도 그래?


안나: ......그런 뜻이 아니야.



조금 놀란 듯한 어투다, 핫, 분명 내가 던진 질문에 막힌 거겠지.

난 싸움은 자주 하지만 약자들을 괴롭히거나 하진 않는다고!



소냐: 알겠어, 속상해 하지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안나: ......도와줄 거야?


소냐: 난 너희들의 리더인 걸, 게다가 네가 좋은 일 하겠다는데, 그렇다면 난 당연히 널 돕지.


안나: ......고마워, 소냐.


소냐: 맞다, 리더가 바뀐 이상, 동아리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지, 뭐 좋은 아이디어 있어?


안나: ......그럼 "우르수스 학생 자치단"이라고 하자.



......뭐, 모범생의 작명 센스를 기대하긴 좀 그렇겠지.

그래도 조금 착실한 이름으로 짓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소냐: 그래, 그럼 지금부터 우리 동아리 이름은 "우르수스 학생 자치단"이야. 내가 리더고, 네가 참모야.


안나: ......응.


소냐?: 안심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당시의 넌 굉장히 기뻐했지.

소냐?: 왜냐하면 넌 무언가를 지켜냈다고 생각했거든. 넌 누군가에게서 신뢰를 받고 자신이 진정한 리더가 된 느낌을 받기 시작했어, 마치 소설에 나오는 영웅처럼 말이야.



넌 누구야?



소냐?: 나는 너야, 눈 삐었냐?



그래, 녀석은 확실히 나랑 똑같이 생겼어......근데 왜 내가 나한테 야단을 들어야 하는 거야?

게다가 그녀가 하는 말들은 전부 내가 마음 속에서 생각한 것들이야, 근데 말투가 왠지 불쾌하단 말이지.



소냐?: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매번 내가 이 밤을 회상할 때면 항상 내 자신을 비웃게 되서 그래.

소냐?: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네가 잘못한 걸까?

소냐?: 난 몰라, 너에게 물어보고 싶지도 않아.


안나: ......


소냐?: 난 네가 네 자신보고 틀렸다고 말할까봐 무섭고, 또 네가 나보고 틀렸다고 말할까봐 무서워.


안나: ......




갑자기 난 내 발 밑이 까마득한 심연으로 바뀐 걸 봤다.

그리하여 난 추락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와중에, 난 어렴풋이 어떤 버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 안나, 잘 생각해봐, 소냐 혼자선 우리 모두를 지키지 못해!

???: 우린 그녀들에게 붙을 수 밖에 없어.


안나: 소냐는 귀족들을 싫어해, 비카.


???: 넌 우리 모두의 안전을 걸겠다는 거야?!


안나: 난......



그리고 난 어둠에 삼켜지기 시작했다.



_




난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정문으로 가면 그녀들에게 들키기에, 이렇게 갈 수 밖에 없다.

난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한다, 내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난 안나를 이해한다, 비카의 말도 일리는 있다. 난 그런 귀족 조무래기들을 혼자서 상대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정면 대결을 했을 때의 얘기다.

지금은 밤이고, 그녀들은 분명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이 틈에 그 녀석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다.

그래, 전부 처리하는 건 조금 너무한 것 같으니, 녀석들의 리더를 붙잡으면 되겠지.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적어도 그 우두머리를 처리해야......



학생A: 부탁이야, 날 놔줘!


학생B: 살려줘!!


학생C: 네 녀석들이 숨긴 식량을 내놔!


학생A: 우리......우린 정말 남은 식량이 없다고!


학생B: 사, 살려줘!




......녀석들을 구하는 건 관두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사실 난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저런 일들은 요 며칠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난 몇 사람들을 이미 구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교실에 몸을 피하고 있는 학생들이 안나 네가 데려온 학생들보다 수가 많다.

그래서 안나는 비카의 제안을 고려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안나는 내가 귀족들을 싫어한다는 핑계를 댔었지만, 사실은 안나야말로 가장 귀족들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첫번째 식량 창고가 없어진 이후로, 남은 다른 하나의 창고가 귀족 조무래기들에게 점령 당했다.

다른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약탈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녀가 가장 보기 싫었던 광경이기도 하다.



소냐: 안나는 그런 귀족들과 함께하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난 안나를 설득할 방법이 없으니, 아예 안나가 걱정하는 이유를 뿌리부터 없애버리면 되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 갔다. 울부짖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소냐: 어라? 내 기억으론 저 나무 어제까진 멀쩡했었을텐데, 어떤 할일 없는 놈이 나무를 벤 거지, 어......?!



갑자기 난 무언가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고개를 숙여보니, 쓰러진 표지판이 있었다, 거기에 쓰여진 글씨는 낙서로 뒤덮혀 알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소냐: 칫.



우리가 이곳에 갇힌지 10일이 채 지나지 않아, 학교의 풍경은 마치 몇 년이 지난 것 마냥 황량했다.

이곳저곳 파인 벽들, 알 수 없는 낙서들, 쓰레기, 핏자국까지......

솔직히 말해서, 난 이런 게 굉장히 싫다, 이런 나날들이 언제쯤이면 끝날 지 모르겠다.

난 머리를 흔들고, 다시 앞으로 나아 갔다, 귀족 조무래기들의 기지, 마지막 식량 창고는 바로 이 앞에 있는 창고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내가 서있는 것을 봤다.



소냐: 넌 누구야?


소냐?: 나는 너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소냐?: 곧이어, 넌 이 창고로 들어갈 거야.

소냐?: 넌 곧바로 그들의 우두머리를 찾고 싶어 했지만, 넌 잠입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지.

소냐?: 넌 그들을 놀래켰고, 곧바로 귀족 학생들에게 포위되었어.

소냐?: 넌 강해, 소냐. 넌 그들의 포위망을 거의 돌파했었지.

소냐?: 하지만.

소냐?: 넌 맨날 그렇게 덤벙댄다니까, 넌 촛불대를 엎었고 그 다음......

소냐?: 콰앙——



또 다른 나는 갑자기 사라지고, 내 눈앞은 새빨간 것들로 가득 했다.


_


소냐: 내가 두번째 화재를 일으켰다.

소냐: 두번째 화재는 귀족 조무래기들의 거점을 산산조각냈고, 학교에 있었던 마지막 식량 창고도 그렇게 사라졌다.

소냐: 모든 건 돌이킬 수 없었다, 이 불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선 무분별하고 혼란스러운 싸움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_



학생A: 제 4 중학교의 귀족들이 전부 없어졌다! 어서 뺏어!


학생B: 저기 그 귀족들이 있는 걸 봤어! 지금 이 기회에 전부 죽여 버리자!


학생C: 꺼져, 난 3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다고, 방해하지 마!


학생B: 뭐라고?!


학생C: 나가 죽으라고!


_


소냐: 온 학교가 불이 나기 전보다 더 혼란스러워졌고, 더는 안전한 장소가 없었다.

소냐: 일부 자치단의 구성원들은 실종됐고, 비카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_



학생A: 나가 죽어!


학생B: 이건 내 꺼야!


학생C: 아, 윽, 살......


_


소냐: 어느 날, 언제 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리유니온은 갑자기 떠났다.

소냐: 하지만 애초부터 리유니온은 우릴 이곳에 가둬둔 걸 제외하면 우리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소냐: 그리고 학생들은 마치 그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혼란을 계속했다.

소냐: 마치 혼란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_



로잘린드: 야, 학교를 지키고 있던 리유니온들 다 가버린 모양이야!


안나: 응......


로잘린드: 우리 이제 나갈 수 있어, 근데 안나 넌 별로 기뻐보이지 않네.


나탈리아: 지금은 리유니온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탈리아: 첫번째 화재가 시작됐을 때부터, 그 녀석들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_


소냐: 하지만 우린 아직 혼란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질 않았다. 둘째날, 재앙이 내려왔다.

소냐: 재앙은 모든 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소냐: 그때가 되어서야, 모든 이들은 떠나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소냐: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진정 깨닫게 되었다. 학교 바깥은 학교 안보다 더 지옥같다는 것을.





나탈리아: 설마, 설마 이건 재앙......


안나: 대체 무슨 일이......


라다: 우와아아아아앙, 무서워! 너무 무서워어!


로잘린드: 안나,이 기회에 어서 빠져 나가야 해!


안나: 하지만......하지만 어디로?


_


소냐: 이후 우리는 오리지늄이 퍼지지 않은 도시 곳곳으로 도망쳤다. 난민들을 피해가며, 리유니온들을 피해가면서 말이다.

소냐: 마지막에 우리는 로도스의 소대에 의해 구출되어, 로도스에 오게 되었다.


_



가드 오퍼레이터: 누구냐?!


소냐: ......


가드 오퍼레이터: 학생?!

가드 오퍼레이터: 무기를 들고 있잖아!


소냐: ......나가 죽어.


가드 오퍼레이터: 잠깐, 우리는 난민들을 구하러 온 거야!


소냐: ......뭐?


가드 오퍼레이터: 무서워하지 마, 우린 로도스라는 조직에서 왔다, 너희들은 이제 안전해.



_


소냐: 난 살아 남았다, 우리들은 살아 남았다.

소냐: 하지만 난 안나의 걱정을 없애주긴 커녕 그녀의 바람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_



안나: 소냐, 화재가 없었다면 학생들은 지금 이 모습이 되진 않았을 거야.


소냐: 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안나: 소냐, 난 널 탓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앞으론 뭘 할 때 나랑 우선 상의를 해보고......


소냐: 난 단지 널 안심시키려고 한 것 뿐인데......



_


이스티나: 지마, 난 여전히 널 믿고 싶어.


지마: 난 너랑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걸.


_


소냐?: 너에겐 죄가 있어.


소냐: 아니야.

_


: 넌 죽어야만 해.


소냐: 그 정도로 심한 짓을 저지르진 않았어.

_


로싸: 네가 날 놔준 건 죄책감 때문이었어.


소냐: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_


로잘린드: 뭘 그리 진지해, 넌 단지 실수했던 것 뿐이잖아!


소냐: 난 이 일을 그냥 잊어버릴 순 없어!

_


안나: 난 네가 미워.


소냐: 난......


_


소냐: 으아아아아아아악!!!!





지마: ......아아아아아아아악!



지마: 윽......

지마: 으......!

지마: 또 이런 꿈을 꾸다니.

지마: 안나, 나는......

지마: 난......




갈색 머릿결의 소녀가 세면대를 짚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오늘 밤은 달빛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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