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계급을 분쇄하면서도 그들을 기업가로 재편하여

70년대 80년대 한국처럼 활발한 산업국가로써 발돋움할 발판을 마련한 개혁정책은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였던 "유상몰수 유상분배"이다.

한국은 해방이전의 경제구조가 사실상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지주가 독점하던 '토지(부동산) 독점 자본주의' 경제가 굴러가던 사회였다.

당시 정부관료가 말하길

[6명의 지주가 대부분의 국토를 소유하고 나머지는 사찰의 토지였다.]

현대도 비슷하지 않은가?

소수의 자산가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높은 임대료를 부과하고있으며

국가는 그로인해 발생한 소수 자본가의 이익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여

이익을 창출하고있다.

이를 막겠다고 부동산 소유세를 높혀봤자

결과적으론 임대료만 비싸지는 효과를 낳았으며

비싸지는 임대료를 보고 눈돌아간 시민계급은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부동산에 집중하여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켰다.

이는 막대한 부수적 피해를 불러일으키고

곧 거품이 터져버릴 아니 이미 거품이 터졌다.

더 늦기전에 정부는 이에 개입하여야한다.

넓은 평수의 고급아파트를 지을것이 아니라

생애 주기에 맞춘 '집'을 지어야한다.

과거 농민들에게는 부동산이 곧 집이요, 나를 먹여살릴 일터였다.

뭐 아무튼

현대의 지주가 되어버린 부동산 거부들을 자본가로

자본가를 기업가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다시 부동산에 대한 유상몰수 유상분배 정책과

기업 및 자본시장에 대한 혁신적으로

가장 자본주의적이면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여야한다.

날을 정하여

"다주택및 다수의 상가건물을 보유한자는 국가에 평단가 n백만원에 매도할것.
부동산을 국가에 판매하여 발생한 자본을 기업 투자및 설립하는데에 발생하는 세금은 일정기간 감세하며

대도시가 아닌 지역의 기업 투자및 설립을 하는 경우에는 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하여 세금을 일정기간 면제한다

거부하면 벌을 준다."

식으로 국가는 부동산을 다시 확보하게 되고

이를 다시 무주택자를 우대하는 형태로 재분양한다면

부동산에 대한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뿐만아니라 '추가적인 주택공급'으로 인한 더 큰 돈을 쏟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재개발을 국가 주도로 오래된 주택을 허물고 새로운 주택을 공급할수도 있게 된다.

특히 보유하던 부동산을 국가를 통해 모조리 처분하고 도시가 아닌 농어촌으로 향할경우에는

정체되어있던 향촌사회를 다시 활발하게할 발판을 마련할수 있게되며

작은 향촌 사회가 아니라 새로이 거대한 향촌 시장을 형성하여

향촌에도 자본이 돌게 만들수있다.

심지어 소비인프라 문제도 현대에와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아침 8시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오후 1시에는 배달이 되는 시대가 아닌가?

또한 그것을 더욱 활성화 하기위해 기업은 더 많은 인구를 고용하려 할것이고

이는 자본을 더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며

정체되어버리고 희망이 없는 청년층에게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할수있게 될것이다.

지금도 일정규모 이상의 도시에서는 몇몇 물류센터를 통해서


생각이 복잡하긴 하나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동산 유산계급을 기업가 혹은 기업 투자자로 탈바꿈 하여야한다.

그를 위해 부동산에 대한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시행하여야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자본계급을 기업가로 투자자로 재편하게 되면

낙후된 농어촌 사회를 혁신적이며 복합적인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고

기존의 대도시는 그 안의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할수있게 되며

이는 일자리의 창출과 다시금 시장경제를 통한 재분배로 작동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가주도의 사실상 기능하지 않는 사회안전망 따위가 아니라

시장에 의한 진정한 의미로 사회안전망으로 가동하여 청년층에 대한 지원책이 될수있으며

궁극적으론 저출산과 인구감축에 대비책으로 작동한다.

일단 내 배가 불러야 남을 사랑하고 자식새끼를 낳는거다.

내가 배고픈데 어떻게 남을 사랑하고 자식을 낳겠는가



더 요약하면

IMF때 도태되었어야할 늙어빠진 부동산돼지새끼들을

차라리 혁신적인 기업가돼지새끼로 바꿔야한다.

결론적으론 자본가 돼지인것은 변하지 않으나

적어도 부동산은 이익을 위해 혁신이 없지만

기업은 이익을 위해서라도 혁신을 추구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