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4 5 6 7 8 9 10 11 12


[안녕하세요. 제 3 전대장님. 관리국 전술 지원 AI 모네카입니다. 귀하가 착용하신 헬멧을 통해 성심성의껏 보조하겠습니다.]


검은 산양의 해골 모양을 한 헬멧을 착용하자 여성의 미색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마지막 가동 이후 175,200시간 이상이 경과하였습니다. 최신 전술 동기화를 위해 레거시 디바이스 동조를 개시합니다.]


그 직후 양한솔의 시야는 어둠에 감싸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자가 서 있었다.


"양자리의 궤적을 그리는 기사여."


말이 들려오는 쪽을 주시해도 새하얀 빛에 감싸여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던 그에게 대답이나 질문을 하려 해도 양한솔의 입은 마치 붙어버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의 세계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나는 남겨뒀다. '우리'와 싸우기 위한 힘을."


마치 낡은 비디오 테이프가 재생되는 것처럼 문맥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들려오는 말소리에는 잡음이 심했다.


"우리의 세계가 이 세계를 침략하지 않도록 막아라."


"나의 친우와, 마왕을 막아라."


"나의 힘을 받고, 나의 조언을 새겨 들어라."


"대적자의 힘은 아스라이 사라졌으나, 그에 준하는 별의 구도자의 힘을 결집시켜라."


"네가 선택한, '세계'를 지켜라."


[레거시 디바이스 '백양검─아리스 소드'. 14.28% 동조 완료. 전술 동기화를 완료하였습니다.]


저 멀리 선 인영에서 빛이 황혼처럼 번지며 양한솔을 집어 삼켰다.




-





죽음을 각오한 제미니아의 앞에서 선혈이 흩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차마 눈에 다 담아낼 수는 없었지만, 함선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일어남과 동시에 자신을 짓누르던 4종 침식체─이터가 보잘 것 없이 날아갔다.


검은 장도를 휘둘러 이터를 절명시킨 그의 나부끼는 망토의 아래에는 선명하게 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설마, 한솔이니?"


"……늦어서 미안해요. 제미니아 선배. 잠시만 쉬고 계세요."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양한솔을 보고는 제미니아는 왠지 가슴이 벅 차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4종 침식체 이터를 처리했으나, 아직 눈 앞에는 구원기사단의 성녀 루크레시아가 남아 있다. 그녀의 주위에는 아직도 수많은 이터들이 남아 있었으며, 특히 그 중심에 서 있는 루크레시아는 지금의 양한솔도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판단이 되지 않았다.


"저것이 이 '함선'을 지키라고 명령한 이유군요. '패배한 대적자'의 힘이라, 우습지만, 상당하네요."


루크레시아는 자신을 쳐다보는 검은 산양을 마주 봤다. 이터를 손쉽게 처리했지만, 자신에게는 아직 전력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방금 힘에 눈을 뜬 애송이와 직접 맞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검은 산양이 말했다.


"금방 끝낼테니까."


─그리고 빛이 발했다.



루크레시아의 주위에 있던 이터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수많은 참격의 섬광이 눈 앞에 흩뿌려졌다.


검의 궤적을 따라 빛을 발하는 은하수를 눈으로 쫓지도 못한 루크레시아의 뒤에서 다시 한 번 섬광이 발하고 하늘 높이 흙먼지가 솟았다.


[레거시 디바이스 기록 재생, 녹음된 전언을 재생합니다.]


『양자리는 선두에 선다.』



『모두를 앞서 별의 궤적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