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부순애물 채널

"야! 대박이야 진짜. 유튜브봤냐?"


"나도 악당할까봐. 흐흐...블러디 울프의 허벅지에 마조사정해버리고 싶다..."


'시끄러...'


레이지는 우울하게 축 처진 귀에 이어폰을 끼우고 음량을 높였다. 우중충한 빅사이즈의 후디, 슬랙스와 스니커를 질질 끌며 거리위를 걸어가는 피곤한 인상의 호리호리한 회색털의 늑대수인. 그를 둘러싼 총천연색의 도시에서는 곳곳마다 붉고 검은 타이즈를 입은 엄청난 거구의 히어로가 빌런을 완력으로 제압하고 다리사이에 끼워 굴복시키는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헤드라인엔 이런 제목들이 따라 붙었다. '블러디울프의 정체를 파헤치다!', '매력만점 알파수컷 블러디울프. 다시 도시를 지키다!', '단독입수. 그 정체는 악당? 블러디울프 충격적인 진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간 레이지는 음악에 집중하고 바닥만 보며 걷느라, 자신의 주변에 험악한 인상의 세 하이에나 수인이 킬킬대며 따라 붙는것도 모르고 있었다. 가운데 있던 가장 덩치큰 하이에나 수인이 양 옆 친구들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붕 점프해서 레이지의 뒤에 발차기를 날렸다. 레이지는 갑작스런 충격에 중심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멍한 눈길로 자신을 찬 의기양양한 표정의 하이에나들을 본 레이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딜가나 있는 한심한 부류의 수인들. 레이지는 바닥에 떨어진 이어폰을 줍고 옷을 털며 일어나 '뭐?'라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허 이 녀석봐? 대장! 내가 손볼까?"


"야! 여긴 우리영역이라고! 돈내놔! 가진거 다내놔! 대출받아서라도 가져와!"


킥을 날린 덩치 옆에서 앙앙대는, 이제 10대를 갓 벗어나 풋날티가 폴폴나는 애송이 하이애나들이 이를 드러내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귀찮아...'


레이지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하이에나들에게 내밀었다. 10달러짜리 지폐가 세 장. 녀석들이 낄낄거리며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허공에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와 함께, 하이에나들의 면상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족적이 찍혔다. 깔끔한 웨이터복을 입고 있는 건장한 덩치의 독수리 수인이 레이지의 앞에 사뿐히 착지했다.


"레이지 군은 돈을 기부받을 입장이지 남을 도와줄 상황이 아닐텐데요."


날카로운 눈빛으로 꼬깃한 지폐를 든 레이지를 돌아본 독수리는, 바 '윙'의 마스터인 라이트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너드와 위압적인 분위기의 바텐더라니, 이상한 조합에 눈치를 보던 하이에나들이 나자빠진 채로 뒤로 기다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레이지는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돈을 넣으려는데, 라이트의 손이 번개처럼 레이지에게서 지폐를 빼앗아 들었다.


"뭐, 뭐에요."


"외상값입니다. 불만있어요?"


"쳇..."


레이지는 라이트를 따라 지하에 있는 바의 입구로 들어갔다. 아직 영업개시 전이라 조용한 분위기의 바 의자에 걸터앉은 레이지는 이내 자신의 앞에 툭 하고 던지듯 놓여진 검은 브리프케이스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초인연맹에서 제하는 금액을 빼고...저의 수고비와 외상이자, 괘씸죄까지 더해서 남은 금액이...1,480달러군요. 아, 방금 30달러 받았으니까 1,450달러."


"괘씸죄는 뭡니까..."


레이지는 느릿한 동작으로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20개 가량의 수혈팩들과, 꽃장식이 된 편지봉투 하나가 있었다. 무감한 레이지의 눈동자에 편지봉투가 들어왔다. 그러자 안그래도 퀭한 얼굴에 핏기가 싹 빠져 마치 시체같이 변해버린 레이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집어든다. 거기엔 부담스러운 글씨체로 '사랑하는 나의 레이지에게♡'라고 쓰여져 있었다. 레이지가 숨조차 헐떡이며 봉투를 집어 던지려 팔을 들자, 라이트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안 읽으면 꼭 말해달라고, 모든 일을 미루고 당장찾아오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마, 말할거에요?"


레이지의 당황스런 눈동자를 본 라이트가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저 돈에 미친 독수리' 레이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열린 부리를 닫게하는덴 이거만큼 효과적인게 없죠."


더러운 자본주의를 욕하며, 레이지는 봉투를 열었다. 팬시샵에서 소녀들이나 살 법한 두껍고 예쁜편지와 사진이 들어있었다. 수컷이 썼다고는 볼 수 없는 퀄리티였다. 레이지는 심호흡하며 핑크색의 편지지를 펼쳤다.


[나의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제자 레이지에게♥

피는 잘 챙겨먹고다니는지 걱정이구나ㅜㅜ

벌써 레이지의 잘생긴 얼굴을 본지도 어언 45일하고도 12시간이 다 되어가

지부장이라는 자리가 우리를 갈라놓다니 너무 슬프구나

마음같아선 모조리 멸망시키고 레이지와 사랑의 도피를 하고싶어^^

그런데 라이트 편으로, 나의 귀여운 레이지가 아직도 사이드킥 없어 홀로 외롭게 싸우고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뭐니 ㅜㅜ

마음에 차는 수컷이 없는거니? 하긴..나같이 완벽한 수컷을 본 이상 누구에게도 눈이 차지 않는건 사실일테니..

역시 내가 복귀해서 레이지를 사이드킥으로 들여야하는걸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우리 레이지가 혼자 전선에서 극악무도한 빌런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상상을하니까..

스승님의 ♡ 에 눈물이 흐르는구나..너무너무 귀여울것같아

다음 월말결산까지 레이지가 사이드킥을 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회장의 목을 뽑아내서라도 활동을 재개할게♥

그리고 별도로, 조만간 시간을 내서 찾아갈게. 너무너무 보고싶구나.

사랑을 담아서, 체사레.


P.S. 여름휴가때 서부 해안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 레이지를 상상하며 찍어봤어♥

이걸로 한발빼줄래?]


사진에는 해안가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네모난 프레임을 꽉꽉채운 엄청난 근육질의 늑대 수인이 윙크를 한 채 고간만 어설프게 가린 끈팬티를 입고 근육을 자랑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호리호리하고 너드분위기를 풍기는 레이지와는 다르게 보디빌더, 유도, 아니 어떤 힘쓰는 운동과도 다 어울리는 거체의 핏빛털을 가진 사진 속 늑대수인은 레이지의 스승이자 대부인 체사레였다.


"지금 당장 한팩 마셔야할 것 같은데요?"


라이트의 말에 레이지는 한숨을 내쉬며 사진과 편지를 수혈팩 아래쪽에 대충 넣어놓으려다가, 미끈한 감촉의 슈트를 발견했다. 레이지가 펼쳐보니 지금 자신이 입어도 딱 맞을 것 같은 적당한 크기의, 머리에 쓰는 부분까지 고안된 붉은색 빛의 고급스런 라텍스 슈트였다. 슈트의 가슴팍엔 [제자에게 보내는 스승의 깜짝선물이야♥]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레이지의 무감한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괴팍하고 변태같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좋음'의 기저에 깔린 체사레의 음욕을 떠올리자 다시 레이지의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가볼게요."


"다음엔 변제액좀 더 들고오세요. 아니 다른 영웅들처럼 유튜브라도 하던가!"


라이트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레이지는 케이스를 든 채 바를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레이지는 만사가 귀찮은 늑대였다.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잡음. 자신이 잡음이라고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레이지는 어려서부터 강렬한 감정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싸움꾼들의 분노, 잃은자들의 슬픔 등. 그러나 가장 레이지를 힘들고 못견디게 하는 소리는 살고자 하는 이들의 애원이었다. 삶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가 내는 소리는 마치 피리의 높은 음처럼, 어떤 음계도 무너뜨리고 레이지의 귀 안쪽까지 도달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체사레를 만나기 전까지도 레이지는 힘없는 몸으로 그 소리를 없애고자 악당들에게 맞서 위협받는 시민들을 구출했다.


'다, 나 좋으려고 하는 일이었다고.'


피투성이가 된 채 어찌어찌 악당의 파괴공작에서 시민을 구출하다가, 체사레의 눈에 띄이고, 그의 제자로 강제임명되며 받은 '힘'. 그로부터 5년 뒤, 어느새 레이지는 이 구역의 히어로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제는 사람들의 아이돌로써 지역뉴스나 유튜브같은 매체에도 등장하게 되었고, 레이지는 그런 상황이 굉장히 부끄럽고 거슬렸다. 레이지에게는, 그냥 잡음을 줄이려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로운 모멸거리를 얻게 된 꼴이었다.


"하아..."


레이지는 체사레의 편지 내용중 '사이드킥'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거리를 걸었다. 사이드킥. 히어로들의 조수를 뜻하는 그 단어. 레이지는 생각만해도 귀찮았다. 거리에는 다른 히어로들이 선전하는 광고들로 가득했다. 요새 히어로들은 다 저렇게 수입을 충당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레이지는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남들이 보기엔 우울한 은둔자로만 지냈다. 실제로도 그게 맞았고. 그런 레이지에게 사이드킥이란 건 조수가 아닌 혹일뿐이었다.


자신의 거처인 지저분한 원룸에 들어온 레이지는 옷가지들이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침대위로 다이빙해 얼굴을 파묻었다. 체사레에게 '힘'을 받은 뒤로 안그래도 피곤에 쩌들었던 레이지는 낮이 되면 요상히 따가워진 햇살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다. 빨래는 잘 안마르지만 눅눅하고 어두운 자신의 방만이 레이지의 평온한 안식처였다. 그렇게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던 레이지가 다시 눈을 뜬 건, 귀를 파고들듯이 들려오는 호각소리같은 잡음때문이었다. 어느새 해가 진 시간이었다. 레이지는 한숨을 쉬며 브리프케이스를 열고 체사레가 보내준 슈트를 입어보았다. 과연, 전에 억지로 입었던 슈트보다 훨씬 몸에 잘 맞는 기분이 편안했다. 레이지는 거울에 비친 핏빛 수트를 한번 보곤, 수혈팩 하나를 들고 원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아..."


팩을 뜯어 피를 마시는 레이지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온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체사레가 준 '힘'. 그것은 피를 매개로하는 초인적인 신체능력이었다. 수백년을 살아온 뱀파이어이자 악으로부터 수인들을 지켜온 체사레의 유일한, 정식 후계자인 레이지는 평소엔 170센치미터 신장의 60kg를 간신히 넘는 약골이었지만, 피를 마시면 신장 2미터에 체중 150kg에 육박하는 근육덩어리 초인으로 변모했다. 레이지는 뜨거운 몸안에서 근육들이 팽창하는 감각 속에서 점차 시야가 높아지는걸 느꼈다. 그때, 슈트 곳곳에서 지퍼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왠지 평소보다 몸에 바람이 더 들어오는게 이상했다. 얼떨떨해하며 변모한 몸으로 수트를 두리번거리던 레이지가 경악했다. 허벅지의 옆과 고간의 양옆, 그리고 젖꼭지 사이의 가슴. 이두근의 바깥쪽. 모두 지퍼가 숨겨져 있었고, 근육이 팽창하면 열리는 구조로 디자인 된 슈트였다. 지금 레이지의 모습은 위풍당당한 육체의 히어로 블러디 울프라기보단 게이바에서 고간의 지퍼 사이로 달러뭉치를 수북히 받을 것 같은 포르노 스타 같았다. 그러나, 체사레의 힘은 단순히 육체만을 바꿔주는 것이 아니었다. 멍하고 조용한 평소의 레이지였지만, 초인의 육체로 변모한 뒤에는 밑도끝도없는 자신감과 자기애, 그리고 색욕을 숨기지 않는 호색스런 성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레이지는 슈트 지퍼 끝에 걸쳐나온 젖꼭지를 커다랗게 변한 손끝으로 매만지며 혀를 빼물었다.


"헤헤, 맘에드는데?"


그리고 아우-하고 긴 울음을 토해낸 레이지는 구원을 바라는 잡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뛰쳐올랐다. 






"또 제자라는 분 사진을 보고계셨군요."


살쾡이 수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만 들여다본 채 일은 뒷전인 거대한 근육질의 핏빛늑대, 체사레를 타박했다. 체사레는 협회 직원이자 자신의 비서, 라는 이름의 감시역인 루트에게 볼멘소리로 말했다.


"제자라는 분이 아니라 레이지야. 레이지라고 레이지!"


"마땅한 활약이 없으니 기억이 안나는거 아니겠습니까? 체사레님이 그렇게 아끼시니 궁금하긴 합니다만."


체사레가 빙긋 웃고 화면속 애처롭게 울고있는 레이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레이지를 처음 만났던 날은 체사레의 천년에 달하는 긴 삶중에서 가장 향기가 짙은 기억이었다. 체사레가 기꺼이 자신의 힘을 레이지에게 나눠준 이유. 어쩌면 비극일 히어로의 삶을 살게 한 이유.


"누구보다 가장 사람을 사랑하는 아이니까."


그리고 화면을 슬라이드해 체사레가 본 것은 몰래 찍은 레이지의 이렇고 저런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완전 내취향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