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부순애물 채널


"씨발."


탕! 깔조네를 잘 만들던 선량한 이웃 프레드씨가 내가 쏜 산탄총의 표적이 되어 몸의 곳곳에 구멍이 난 채 쓰러지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의 온몸에서 돌출한 징그러운 자주색의 촉수들이 진액을 뿜어대며 죽음을 거부하는 발버둥을 쳐댔다. 더러운 연못에서  유영하는 연가시 같아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의 영혼만은 촉수들에게 잠식당하지 않고 깨끗히 평온해졌길 바라며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그리고 선반을 열어 통조림과 상비약같은 것들을 마구잡이로 가져온 더플백에 집어넣었다.


"팀. 괜찮아?"

"문제없어."


나는 걸쇠를 걸어잠구고, 나를 향해 다가와 안기는 붉은 여우에게 다정한 미소를 짓고 안아주었다. 뜨겁다. 보통의 체온이 아니다. 나는 가슴에 고개를 파묻은 연인, 네이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를 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총명함이 담긴 갈색 눈동자를 가진 네이선의 온 몸엔 하얀 붕대가 이곳저곳 감겨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선 기분나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프레드씨는 늦었나보네."

"좋은 곳에 가셨을거야."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시대에 레트로 되감기 운동이라도 하는것처럼 아리조나 행 지도를 챙긴다. 퀘퀘한 먼지가 쌓인 지도와 함께 십 수년전의 신문이 함께 우르르 쏟아졌다. '아리조나 국도 위 의문의 교통사고, 외계인의 소행? 시체는 어디에'라는 제목과 함께 반파된 차량의 사진이 열악한 화질로 기록된 일간지를 치우고, 지도를 펼친다. 쪽지를 열어 오클라호마, 앨버커키를 지나쳐 목적지를 펜으로 마크한다. 


'미국 횡단을 이런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지.'


세상은 망했다. 몇 달 전부터 우리가 살던 내슈빌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몸을 뚫고 튀어나온 촉수들이 세상을 점령했다. 좀비라 해야할지, 기생충이라 해야할지 모를 그것들은 침식한 사람들을 조종했다. 할 줄 아는거라곤 두둑히 나온 뱃살을 매만지며 깔조네나 뒤집던 프레드씨가 나를 향해 군침을 흘리며 눈을 까뒤집고 손톱과 이빨을 세우고 달려들게 한 것처럼, 촉수에게 잠식된 자들은 다른이들을 덮치고, 강간하고, 먹고, 이내 몸에서 솟아난 그 흉측한것을 쑤셔넣어 전염시켰다.


"도와줄까?"


박스에 이것저것 챙기던 나를 향해 네이선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그를 번쩍들어 소파에 뉘였다. 


"이제 몇 일간 뒹굴거릴 수 없으니 맘껏 즐겨두라고."

"고마워 팀."


목에 감은 팔을 놓지 않던 네이선이 입을 맞추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무 늦게되면 알지?"

"그럴 일 없다니까."


어차피 둘이 살텐데 세단이면 충분하네 마네 하며 네이선과 실랑이를 벌이던 끝에, 몇일간의 단식투쟁으로(사실 몰래몰래 먹긴했다.) 계약한 픽업트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과하다 싶을정도로 식량과 약, 잔탄을 적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 둘이 함께 찍은 대학 졸업사진이 끼워진 액자를 두었다. 벌써 12년 전이다. 


'시간 참 빠르군.'


네이선은 감염됐다. 식량을 구하러 간 마트에서 만난 감염자 때문인지, 오는길에 구하려 했던 이웃의 어린아이(감염자였다.)때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정신이 없었다. 그저 그날 밤, 벌어진 상처 근처의 살갗 아래서 꿈틀거리는 무엇을 보며 나는 신을 욕하고 증오하고 오열했다. 오히려 네이선이 날 다독였다. 


[나는 NIAID(미국전염병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브랫 존스입니다. 이 메시지를 보는 생존자가 많기를 바라며,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잠식한 이 괴물들은 바이러스나 미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생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이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무런 생각없이 돌리던 라디오 다이얼에서 잡아낸 주파수가 전한 말은 나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반쯤 미심쩍어하는 네이선을 설득해, 나는 방송에서 말한 장소인 아리조나의 연구소로 가는 목표를 세웠다. 네이선은 다른 감염자들과 달리 빠르게 자아를 잃거나 하지 않았기에, 나는 희망에 가득차게 되었다. 엉망이 되었을 상황들을 고려해 감염자 소굴이 된 동네에서 감염자들을 상대해 식량과 탄창을 쓸어담았다. 


"그럼 출발합니다."

"밸브 잠궜어?"

"감염자가 불을 질렀다고 하면 보험금 나오지 않을까?"


네이선은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졌고, 나는 기분좋게 응수하며 엑셀을 밟았다. 시가지를 지나 국도를 접어들때 까지, 나는 촉수에 휘감긴 시체와 건물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네이선은 피곤하다며 시트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돌아오는 길엔 그 불독아저씨가 하는 다이너에서 팬케이크 어때?"

"아, 좋지. 이번엔 시럽 추가해야돼."


나는 네이선이 말하는 다이너 레스토랑이 꿈틀거리는 촉수들에게 휘감겨 망가져있는 꼴을, 혹시 그가 볼세라 엑셀을 더욱 힘있게 밟으며 대답했다.




"기름좀 넣을게."


꽤나 달렸다. 멤피스에 다다라서는 잔유량이 모자라다는 경고등이 깜빡였다. 그러나 아직 아리조나까진 한참 멀었다. 도로는 조용했다. 반파된 차량과 시체들이 가끔 보였지만, 주유소는 깔끔해 보였다. 짐칸의 천을 거두고 총을 꺼냈다. 주유소와 연결된 마트 입구를 보던 나는 주유를 마치고 다가가 보았다. 마트 안은 이미 털린것 같아 보였지만, 전원이 꺼진 냉장고에 남아있는 맥주가 있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메마른 공기를 타고 늙은 경첩이 내는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기괴하게 퍼져나갔다.


'젠장, 그냥 돌아갈까?'


라고 생각했을때는 이미 발을 디딘 이후였다. 차 쪽을 한번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살금살금, 꼬리가 닿을까 곧추 세우고 냉장고에 다가가 맥주캔을 손에 쥔 나는, 귓가에 들리는 벽이 긁히는 소리에 깜짝 놀라 총구를 겨눴다. 창고로 향하는 문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문은 다행히도, 걸쇠로 잠겨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빨리 빠져나가려는데, 기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로 가는가?"

"뭐야, 당신. 생존자야?"


늙그수레한 목소리였다. 뱀이 말하는것처럼 쉭쉭거리는 공기소리도 함께 들렸다. 침착하게 문 가까이에 간 나는, 이내 너머에서 들리는 끈적한것이 철퍽대고 벽을 기는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소름을 느꼈다. 이 문 너머에는 감염자가 있다. 감염자들은 분명 끄악! 하고 키악!하는 소리밖에 내지 못할텐데 무슨 조화일까.


"열락의 길을 걷는 순례자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눈과 손에 닿는 어둠은 없음을 기억하라."

"젠장! 너 대체뭐야!"

"이미 어둠은 그대를 삼킨지 오래가 되었으니."


문이 덜컹하고 세차게 요동쳤다. 이내, 문틈 사이로 자주색의 진액이 주르륵 쏟아진다. 나는 곧장 뛰어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이내 괴성소리와 함께 나무문이 부서지고, 뒤에서 촉수들이 매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팀!"

"네이선! 시동걸어!"


나는 트럭 짐칸으로 뛰어오르며 뒤돌아 촉수를 펼치고 달려드는 괴물을 조준했다.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긴다. 목이 날아갔다. 그러나 촉수는 심장에 뿌리를 뻗어 움직인다. 머리를 날린다고 유효타가 아닌것이다. 나는 괴물이 주춤하는 틈을 타 운전석으로 몸을 날렸고, 빠르게 엑셀을 밟았다. 그러나 백미러를 통해 짐칸에 촉수가 감기는 모습을 보았다. 당황한 내가 핸들을 이리저리 뒤흔들자, 네이선이 나의 손등을 강하게 잡았다.


"당황하지마. 팀."

"젠장! 맥주 하나 때문에 이게 뭔!"


괴물의 촉수가 차 뒷좌석을 뚫고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뒷바퀴도 감겨 점차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위급한 순간, 네이선은 샷건을 들고 창문을 연 뒤 상반신을 빼내, 짐칸에 매달려있는 괴물을 조준했다. 이내 밤의 고속도로에 어울리지 않는 총격음이 들렸고, 도로에 살점덩이가 철퍽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차의 흔들림도 더이상 없었다. 나는 괴물과 함께 떨어지는 물자들을 보며 순간 브레이크를 밟았다.


"팀! 계속 가!"

"젠장! 젠장!"


눈물을 머금고 엑셀을 밟는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주차해 할부도 안끝났는데 걸레짝이 된 차를 살펴보고 괴물과 함께 떨어진 물자들을 정비한다. 그 사이에서 깨진 액자를 집어든다. 다시 운전석에 탄 나의 손에 들린 액자를 네이선이 받아든다. 그는 졸업사진을 보며 피식 하고 웃었다.


"제법 로맨틱한 구석이 있네. 이런건 왜 챙겨온거야?"

"몰라, 그냥 손이 가더라고."


칙, 하고 혈투의 보상인 맥주 한캔을 목에 가득넘긴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네이선에게 맥주캔을 건넨다. 그는 캔을 받는게 아니라 내 손목을 잡아 끈다.


"팀."

"왜그래?"

"사랑해."

"갑, 갑자기?"

"그러니까, 알지? 내가 정말 늦게되면 말야. 아까같은 그것 처럼 변해버리면, 네가 마무리해줘야해."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기댄 네이선이 목덜미에 조용히 입을 맞춘다. 나는 네이선을 안는다. 작고 여린 애인의 몸뚱이 아래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눈물이 흘렀다. 네이선은 나를 다독였다. 그가 다독일때마다, 나는 더 큰 울음을 터뜨린다. 부디, 이 길의 끝에 구원이 있기를. 한참동안 네이선을 부둥켜 안고 있던 나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네이선. 괜찮아? 약좀 먹을래?"


오클라호마를 지나, 드디어 국도를 둘러싼 환경이 사막으로 변했다. 아리조나가 가까워질수록, 네이선은 쇠약해져갔다. 종국에는 태양볕조차 뜨겁다며 천으로 만든 안대를 눈에 감고 뒷좌석에 웅크려 있었다. 나는 어둠 속으로 네이선이 사라질것 같아 자꾸만 백미러로 가여운 연인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 더욱 빠르게 차를 몰았다. 가도 가도 끝이없는 2000마일의 길은 나조차도 지치게 했다.


"헤이! 이봐!"


그러던 중, 나는 SOS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는 수컷 개가 애타게 나를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작스런 생존자의 등장에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고 있을때였다. 점차 속도를 줄이는 내 귓전에, 네이선의 날선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나쳐."

"뭐? 아니, 그런데 이런곳에 혼자 남아있으면..."

"지나쳐. 팀."

"식량은 충분해 네이선."

"제발, 부탁이야. 그냥 지나쳐."


네이선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반가워하지도 못한채로 나는 일단 차를 세웠다. 부산스럽게 자신의 이름은 루벤이며, 나와 같은 라디오를 듣고 연구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함께하던 일행들이 모두 괴물들에게 당해서 두려움에 떨며 국도를 혼자 걷다가 차소리를 듣고 신이 자기를 구하러 온줄알았다며 눈물콧물을 빼는 그를 진정시킨 나는, 그에게 나와 네이선을 소개했다.


"정말 무서웠다구요. 이 국도, 외계인이 떨어진걸로도 유명하잖아요!"

"외계인은 개뿔."

"진짜 몰라요? 그게 얼마나 센세이션이었는데! 나사에서도 밝히지 못했던 사건이라고요!"


나사가 언제부터 탐정일을 했냐며 핀잔을 주던 나는, 문득 지도를 꺼내다가 떨어진 십 수 년전의 신문에서 사막 국도 위에서 생겼던 의문의 사건과 실종된 시체 이야기가 떠올랐다. 루벤과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NIAID니까 분명 생각이 있겠죠."

"그러면 좋겠군."

"분명 그럴거에요! 코로나때도 그랬잖아요?"


그런 바이러스랑은 다른문제 아닌가? 싶었지만 어쨌든 루벤덕분에 나는 다시 대화도 하며 생기를 어느정도 되찾았다. 앨버커키의 주유소에서, 텅 빈 마트를 루벤이 탐색하는 동안 나는 뒷좌석의 네이선을 안아들고 물에 불린 비스켓을 죽처럼 개어 먹였다.


"티, 팀."

"네이선. 거의 다왔어. 조금만 버텨."

"아흐으..."


네이선은 괴로워 하면서도 나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렇게 한참 얼굴을 부비던 나는, 순간 그의 상처를 감은 붕대에서 번뜩이는 자주색 빛에 침을 꿀꺽 삼켰다.


"네이선?"


불안함에 그를 부른다. 


"팀..."


네이선이 쥐어짜내듯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더 늦기전에, 지금이야..."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견디면 돼 제발..."


나는 네이선을 꼭 안아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는데, 차창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루벤의 목소리에 네이선을 다시 눕히곤 차 밖으로 나갔다. 권총을 들고 주유소와 연결된 레스토랑 화장실쪽을 보고있는 루벤은 소근소근 말했다.


"화장실 안쪽은 다 촉수로 감겼어요. 빨리 나가는게 좋겠는데요?"

"마트는?"

"털렸죠 뭐."


그때였다. 총을 수납하고 다시 운전석에 타려던 찰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루벤과 내가 멈췄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와중, 더욱 선명히 들려온다.


"사랑해."


나는 만류하는 루벤을 뒤로하고 다시 총을 든 채 소리가 들린곳으로 갔다. 루벤이 말한 화장실이었다. 건물외곽엔 성장한 촉수들이 휘감기고, 액체가 꿀럭거리는 기분나쁜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지척으로 따라온 루벤이 조용히 속삭였다.


"잘못 들은 거라니까요?"

"아냐."


그러나 나의 귓가엔, 분명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HR기거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기괴하게 변해버린 화장실 내부에서 들려오는 교성이 가득한 목소리가 선명했다.


"대체 무슨소리가 들린다는거에요?"

"저게 들리지 않아?"


그러다 루벤은 화장실 안쪽을 가리키며 새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 끝엔 점액이 가득 든 풍선같은 사람만한 크기의 낭종이 격렬하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안이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목소리가 그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거의 화장실 안에 발을 들인 나를 루벤이 낚아채듯 잡아 끌다가 우리는 발이 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어."


갑작스레 느껴지는 따뜻한 고간과, 품아래 깔린 젊은 수컷의 육체 때문인지, 귓가에 들려오는 저 농익은 교성때문인지, 나는 루벤과 포개진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아, 팀.."


루벤은 그런 나를 보며 은근히 다리를 올려 허벅지로 내 옆구리를 쓸어댔다. 이상한 분위기였다.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그쪽'이에요?"

"뭐, 뭐가."

"장소가 별로긴 한데 저도 팀같은 남자는 꽤 취향이라고요."


루벤이 옷깃을 잡아 끌자, 귓가에 들리는 교성이 한층 격렬해진다. 분명 위험한 상황임에도, 무언가 커다란 힘이 나와 루벤을 음욕의 구덩이로 깊게 담구는 듯한 끈적한 기분이 들었다. 주둥이를 맞대고 서로 숨을 고르다가, 나는 문득 빳빳해진 물건 끝에서 프리컴이 흐르기 시작하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고보니 꽤 오랫동안 못했지.'


감염이 될까봐 네이선과 잠자리를 가진지도 오래됐다. 네이선. 네이선.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루벤이 내 겉옷을 헤치고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게 느껴진다. 따뜻한 상대의 육체에 흥분된다. 그때, 귓가에 교성이 잦아든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젠장! 뛰어!"


나는 루벤의 손을 잡아 일어나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내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점액질이 가득한 무언가가 벽면에 달라붙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동을 걸고 주유소를 빠져나가던 도중, 루벤이 백미러를 보며 숨을 삼키는게 들렸다.


"씨발, 저게 뭐야?"


거기엔 더이상 사람의 거죽도 쓰지않은, 그저 촉수로만 이루어진 무언가가 땅을 더듬고있었다. 점차 멀어져 그것은 검은 어둠 속에 가려졌다.


"봤어요?"

"봤어."

"저게 대체 뭘까요?"

"글쎄. 하수구를 타고 온 문어라도 되나보지."


다행히 그것이 우리를 추적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 상처아래 감염된 독소가 퍼지는 것처럼, 지금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와 잠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어서와요. 내가 브랫 존스입니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서, 우리는 소박한 연구소 건물과 자신을 브랫존스라고 소개하는 다람쥐 수컷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연구소에 30명정도가 살고 있다는 것과, 충분한 물과 식량, 정수시스템, 그리고 이 재앙을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들으며 희망에 가득 찼다. 또다른 연구원들이 네이선을 부축해 격리실로 향했다. 나는 그 전에 네이선을 한번 꼭 안아주었다.


"버텨줘서 고마워 네이선."


네이선은 아무말도 없었다. 연구소 지하에서 브랫의 연구실에 들어간 나는 그가 배합해낸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바라보았다. 태양빛처럼 빛나는 그 사과주스같은 액체가 인류의 구원이라니, 조금 맥이 빠지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이것들은 생명체에요. 어디서 나타난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구충제'를 녀석들이 심장에 완전히 뿌리내리기전에 투여하면, 안전하게 몸에서 떼어낼 수 있죠."


브랫을 뒤로하고 풀어진 긴장감에 의자에 걸터앉은 나는 탁상에 올려진 연구일지를 멍하니 보던 중, 휘갈겨 써진 필체로 기록된 문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과 손에 닿는 어둠은 없음을 기억하라'


내가 심각하게 일지를 들고 읽고있자, 브랫이 다가와 말했다.


"아, 이건 환자를 치료하면서 기록했던거에요. 저런 말이 계속해서 들려왔다고 하더군요."


나는 일지를 더 읽어내려갔다. 


'어둠에 삼켜진 순례자가 열락의 길을 걸어 온다.'


왜인지 손이 떨렸다. 브랫이 또 무언가 말을 하려던 찰나, 문을 박차고 다른 연구원들이 급히 그를 불렀다.


"치료중인 환자들의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졌어요!"

"뭐?"


우리는 연구원들을 따라 환자들을 모아둔 병실에 들어섰다. 완치된 일부 환자들과 연구원은 구석에 몰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침대에서 발광하는 환자들을 덜덜떨며 보고있었다. 그들은 온몸을 뒤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상처가 벌어지며 자주색의 촉수들이 꿀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브랫은 벌벌떨면서 '구충제'가 든 앰플을 만지작거렸다.


"어쩌려고요?"

"나, 나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집단적으로 발작하는 모습은 처음보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그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마치, 극단의 배우처럼 멈춰선 그들은 고개를 기묘하게 비틀며 우리들이 서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들의 팔이 들리며 검지가 뻗어진다.


"순례자가 왔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말그대로 터졌다.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고, 살점이 바닥에 짓눌리며 덜컹거리는 심장에 뿌리를 내린 촉수들이 꿀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침대를 차며 얼어있는 사람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브랫이 들고있는 앰플들을 빼앗고 괴물들을 향해 투척했다. 놀랍게도 깨진 앰플병에서 튄 액체에 닿은 괴물들은 촉수에서 흉측한 입을 드러내며 비명을 질렀고, 그 부위는 마치 불탄 것처럼 연기를 내며 재가 되었다. 권총을 쏘는 연구원들과 함께 다행히 상황을 정리한 나는 숨을 돌리며 병실문을 함께 폐쇄했다.


"대체, 대체 무슨일이죠?"


환자들은 벌벌떨며 연구원들을 바라보았다. 브랫이 나를 보는게 느껴졌다. 나는 아까 들은 목소리가 머리에 메아리치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이봐요. 당신, 대체 뭡니까?"

"뭐가 뭡니까?"

"아까 그들이 당신을 일제히 가리켰잖아요."

"젠장!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걸?"


한숨을 쉬던 나는 고개를 들어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있어야 할 인원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루벤, 루벤은 어디갔죠?"

"뭐요?"

"루벤. 내 일행말입니다. 갈색 개. 키좀 크고!"

"무슨 소리에요 당신."


브랫의 눈에 공포가 어리는게 느껴진다.


"당신은 그 감염자와 함께 둘이서 왔잖아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신은 감염됐어요."


검사를 마친 나에게 브랫이 건넨 말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로 내 앞에 앉았다.


"그런데, 다른 감염자들과는 달라요. 이 촉수괴물은 상대의 체내에 알을 낳아서 번식하는데, 그 시기는 몇 시간에서 몇 주까지 꽤나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요?"

"당신의 체내에선 단 하나의 알만 발견됐어요. 그런데, 이게 적어도 당신 몸에 10년은 넘게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뭐라고요?"


나 역시 감염자라는 말보다, 그 시기가 더욱 나를 경악케했다. 이 대재앙이 시작된지는 이제야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았다. 십 수년전 부터 내 안에 알이 있었다는 말에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엔 정밀한 외과수술을 할 수 있는 장비가 없어 당장 치료는 불가능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당신의 체내에 있는 알은 뿌리를 뻗진 않았습니다."

"젠장,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봐요 당신."


브랫이 나를 두려움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대체 뭡니까?"

"보면 모릅니까? 왕년의 대학 풋볼 슈퍼스타 티모시."

"장난치지 말아요. 감염체의 괴성이 말로 들릴 정도면 이미..."

"아무튼 난 멀쩡하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네이선쪽이나 신경써달라고요."




그 날 밤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격리되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 나는 대학시절의 한 때를 보고 있었다. 너른 필드를 달리는 풋볼 선수였던 나의 모습과, 그런 날 멀리서 보고있는 네이선이 보였다. 그리고, 우연히 기숙사 룸메이트가 되어 서로 친해진 우리가 술에 취해 처음으로 마음을 고백하던 날이 흐르듯 지나갔다. 


"사랑해. 네이선."

"나도 사랑해."


기숙사의 쇼파에서 게걸스럽게 사랑을 나누던 젊은 두 수컷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네이선을 번쩍 들고, 입맞추고, 한없이 사랑을 주었다. 나는 점차 멀어지는 장면들에게 손을 뻗고 싶었지만 무력히 꿈에 이끌릴 뿐이었다. 그때, 마치 페이지를 뒤로 넘기는 것처럼 장면이 전환됐다. 황야의 국도였다. 나는 허공에서, 사고가 나서 반파된 차량과, 도로에 길게 이어지는 핏자국을 보았다. 그 핏자국을 이으며 기고있는, 네이선의 모습을 보았다.


"어?"


그 차는, 분명 집에서 지도를 꺼낼때 봤던 기사 속 차량이 분명했다. 십 수 년전의 사고 현장. 마치 운석에 맞은 듯 반파된 차량. 길게 늘어진 핏자국,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시체. 


"네이선!"


이 생생한, 내가 알지 못하는 장면 속에서 네이선은 도로 위에서 부르르 몸을 떨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비명을 지르는 내 눈에, 반파된 차량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게 보였다. 자주색의, 그 저주스런 점액질이 차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긴다. 그리고 네이선의 근처로 다가선 그것의 몸에서 끔찍한 촉수들이 뻗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네이선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네이선의 시체는 어색한 모양새로 몸을 일으켰다가, 이내 비척거리며 국도를 걷기 시작했다. 


"네이선?"


그리고 어둠으로 떨어진다.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을 뛰어나간다. 그 끝에, 네이선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너머로 빛이 보인다. 마치 구원과도 같은 그 따뜻함에, 나는 숨이 가빠와도 발을 재촉한다. 그러다 문득, 빛 때문에 보이는 네이선의 그림자가 나의 걸음을 멈췄다. 붉은 여우의 그림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흉측한것이 꿈틀거린다. 숨이 막힌다. 네이선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어헉!"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녹색의 야간등만 켜진 방은 조용했다. 다시 숨을 내쉬고 잠을 청하려 누우려는데, 격리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는게 보였다.


'뭐가 이리 허술해?'


살짝 투덜거리며 문을 향해 다가서던 나는 문고리를 잡고있는 손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거기엔 갈색 짐승의 오른팔이, 몸을 잃은채 문고리만잡고 대롱거리고 있었다. 아까와는 정반대의 음산한분위기가 감도는 연구실 지하엔, 스산한 바람이 피냄새를 잔뜩 머금고 유령처럼 떠돌았다. 나는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야간등이 밝히는 복도 벽면과 바닥엔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천천히 브랫의 연구실로 향하려던 나는, 다른 환자들이 머무른 병실의 창가에 피로 써진 문구를 보고 경악했다.


'열락이 도래했다.'


마치 정신나간 이교도들의 문구같은 그것들을 뒤로하고 나의 걸음은 빨라졌다. 연구실로 가는 바닥에서 나는 권총 하나를 주웠다. 총격까지 있었던 모양인지 안전장치가 풀려있었다. 그리고 브랫의 연구실 안에서 내가 마주한 건 네이선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애인. 네이선은 이전의 그 건강한 표정으로,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브랫의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이선?"

"아, 팀. 어서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브랫의 머리를 집어던지고 나를 향해 활짝 팔을 벌리는 그를 보며 나는 총구를 겨눴다. 정적을 깬건, 슈벤의 목소리였다.


"다시 만나니까 반갑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연구실로 들어서는 갈색 개 수컷을 바라보았다.


"화장실 바깥에서 하마터면 다 끝날뻔 했잖아?"


그리곤 슈벤의 피부가죽이 녹듯이 떨어지고, 촉수로 이루어진 군집이 꿈틀거리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네이선은 킥킥 웃으며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온다.


"언제부터? 언제부터야?"

"다 알려줬잖아. 더 설명이 필요해 팀?"

"난, 오 나는, 나는 정말로 네가 괜찮, 괜찮은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어. 모든건 처음 그대로야."

"넌 네이선이 아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내 턱에 가져다댔다. 앞으로 목도할 지옥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나는 적어도 팀으로 죽고싶다.


탕!


그리고, 나는 고통과 함께 총알로 터져나가는 살점들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것처럼 허공에 멈춰있는 것과, 폭소하고 있는 네이선을 보았다. 나의 튀어나온 안구가, 뇌가, 피와 진액들은 보라색의 점액뿌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의 머리를 관통한 구멍에서 피와함께 나온 그것은, 마치 되감기는 필름처럼 다시 한 곳으로 조각들을 맞춰가며 돌아온다. 끔찍한 고통 뒤에 멋대로 봉합된 머리를 움켜쥔 나는 총을 떨어트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 재미없는 방법으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익숙하지만 이젠 소름끼치는 손길이 나의 주둥이를 부드럽게 감싸쥐어 올린다. 나는 공포스런 자줏빛이 어른거리는 나의 사랑이었던 것의 육체를 바라본다. 아니, 어쩌면 저것이 그의 본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끝없이 절망한다.


"무서워 하지마 팀."


그가 나의 손등을 감싸 쥐어 올린다. 날카로운 손톱이 나의 손등을 베었다. 나는 피가 흐르는 대신 그 사이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촉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망연한 나와 입을 맞춘다. 혀가 섞인다. 그와 나의 혀가 분열하듯 갈라져 다발이 된다. 이내 그것은 하나로 엉기고 흐름이 된다. 피부가 찢어진다. 아프지 않다. 그저 섞여들어가는 기분이다. 온 몸에서 터져나온 촉수들이 엉기고 엉긴다. 그리고 서로의 생명을 주고 받는다.


"나는 아주 먼 곳에서부터 당신을 보고 있었어."

"그리고 당신이, 나를 위해 어떤 결심을 하는지 보고싶었어."

"이제 나는 당신을 나의 반려로 받아들일거야."


나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이미 손도 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구물대는 암흑속의 무언가가 되어, 쾌락과 공포가 뒤섞인 비명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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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야설써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크툴루 아포칼립스같은 무언가가 나왔는데 퇴근시간도 다가와서 더쓰긴 싫은데 엉성하긴한데 그래도 뭔데 만이천자나 되는데 하면서 고추긁으면서 썻다


아포칼립스 능력을 가진 외계인 여고생이 지구의 풋볼슈퍼스타 늑대수인오빠에게 반해서 덕질하러왔다가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