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부순애물 채널

gnosis(구원)



용사는 빛으로 마를 멸하는 검을 들고 귀환했다. 마왕이 있던 땅에는 비로소 햇녘이 들고, 뼈와 피의 성은 무너져 재가되었다. 푸르른 청석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쓴 용사의 품에는 생명이 뒤척이는 핏물굳은 포대기 하나가 들려있었다. 거리에 행차한 왕과, 용사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포대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네 뿔의 마의 아이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당장 용사에게 그 아이를 죽일것을 간청했지만, 용사는 소원을 묻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곱 소년과 내가 데려온 이것이 나를 가까이서 보필하게 하소서."


용사의 청을 들은 왕은 나라 곳곳에서 영혼을 보는 신관들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일곱명의 소년 들을 모아들였다.  겸손, 자선, 친절, 인내, 절제, 근면, 그리고 순결.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과 고결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에게 퓨리타스 헵타스(성결한 일곱)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마의 아이는 그 아름다운 소년들과 함께 왕이 용사를 위해 하사한 커다란 성에서 자라게 되었다. 




"다음주에 용사님께서 돌아오신대!"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다음주면 우리도 성년이니까 멋진 선물을 가져오시겠지?"


흰 옷을 입은, 햇살처럼 붉고 부드럽게 가슬거리는 털을 가진 고양이 소년과 마찬가지로 백의를 걸친 아름다운 용모의 뱀과 토끼 소년이 재잘거렸다. 소년들의 눈에는 용사에대한 흠양과 선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빛이 어렸다. 그러다 문득, 대화가 잠시 멎었다. 소년들이 동시에 바라본 곳에는 봄의 초목처럼 아름답게 가지를 뻗은 뿔과 순결한 백색의 털이 비단처럼 윤기를 내는 흰 사슴이 있었다. 카스티타스라는 이름의 사슴 소년은, 조용히 소년들을 가로질러 커다란 거울과 용사의 선물이었던 값진 향유, 분, 치장품들이 가득한 자신의 화장대 앞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재잘거리던 소년들의 눈이 날카롭게 자신의 뒤를 찌르는지도 모르는듯, 아니면 신경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보석이 수놓인 빗으로 털을 정리하는 카스티타스에게 고양이 소년, 베냐가 다가왔다.


"카스티타스."

"왜?"

"너 소식 들었어? 용사님께서 오신다는 것 말야."


카스티타스는 고개를 살짝 돌려 베냐를 흘깃 바라보았다. 살짝 호를 긋는 입꼬리의 끝은 명백한 비웃음이다. 카스티타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베냐에게 대답했다.


"소식? 나는 직접 들었는데?"

"직접 전해들었다고?"


베냐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응. 하인들한테는 내가 말한거야. 성년제 준비를 시작하라고 전해달라 해서."

"뭐, 뭐? 하지만 네가 어떻게?"


베냐는 카스티타스가 품속에서 꺼낸 전서구의 전령을 받아들었다. 거기엔 용사의 필체로 성년에 대한 축하와, 카스티타스에 대한 애정이 담긴 메세지. 그리고 앞날에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겠다는 내용이 적혀져있었다. 편지를 든 베냐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용사는 특히 카스티타스를 어여삐여겼다. 자신의 거처에 머무는 동안, 침실에서 수발을 드는 시종으로 꼭 가장 먼저, 또 가장 오래 머무는 이름은 카스티타스였다. 수발이라는 이름아래, 용사가 소년들을 품는다는건 성의 누구라도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하인들에게 들었나보구나. 맞아. 성년제 일에 맞춰서 돌아오신대."

 

베냐는 어느새 몇 년 동안이나 용사의 품에 안긴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용사를 사랑하는 베냐가 카스티타스에게 질투심을 가지게 되는건 당연했다. 자신이 듣고싶었던 단어로 빼곡히 찬 편지를 든 베냐의 눈망울엔 어느새 눈물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베냐!"


치장실의 문을 쾅 열고 씩씩거리며 나가는 베냐의 뒤를 뱀과 토끼 소년이 허겁지겁 뒤따랐다. 카스티타스는 풋, 하고 웃더니 이내 조용해진 방 안에서 홀로 거울속 자신을 마주보았다. 용사가 온다. 다시 내일, 용사는 자신을 부를 것이다. 백색의 빛나는 융단 옷을 살짝 내려 가느다란 어깨와 쇄골아래 자리한 가슴, 그리고 분홍색의 젖꼭지. 


'성년.'


반쯤 드러난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던 흰 사슴은 내일, 자신이 성년이 된다는 사실에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진정해 베냐!"

"놔!"


화가 잔뜩 난 베냐를 따라 소년들이 도착한 곳은 용사의 거처 지하, 가장 아래에 위치한 퀴퀴한 냄새의 창고였다. 그저 오래된 등불잔에 걸린 넘실거리는 작은 불꽃이 창고의 낡은 나무 판자문을 비춰주고 있었다. 문의 안쪽, 작은 창고 안에는 호랑이, 멧돼지, 까마귀 소년이 잔뜩 웅크린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 죄의 아이를 둘러 싸고 있었다. 가장 키가 크고 다른 소년들보다 탄탄한 몸을 가진 호랑이, 코르가 잔뜩 성이난 베냐를 보며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야, 베냐! 얼굴이 볼만한데?"

"닥쳐!"


성큼성큼 창고를 가로지른 베냐가 이내 웅크린 말룸에게 거세게 발길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괴담 속 마왕처럼, 검푸른 비늘과 네개의 뿔을 가진, 그러나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왜소하고 마른, 거적대기를 입은 마의 아이, 말룸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속에서 그저 무감한 눈으로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릴 뿐이었다.


"야야. 이미 파르티오한테 몇시간동안 깔려서 얻어 맞았다고. 적당히 해."

"젠장, 젠장! 카스티타스 그 개자식!"


베냐는 무릎을 구부려 말룸의 멱살을 잡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죽은 푸른 불꽃의 눈동자를 마주한 베냐가 잔뜩 화를 내며 입을 열었다.


"야, 너도 들었어? 너도 알고있냐고. 용사님이 내일 돌아오신다는거 너도 알고 있었냔 말야!"


말룸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용사는 침실로 카스티타스와 소년들 중 누군가를 부른 뒤, 마지막에는 꼭 말룸을 불렀다. 그것이 소년들의 불만을 키웠고, 곧 증오와 폭력으로 번졌다. 말룸에게 성은 안으로 가시가 난 목줄과 같았다.


"너까짓 것에게 말해주셨을리가 없지."


마왕의 씨앗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연약했던 말룸은, 소년들의 괴롭힘 속에서 나날이 쇠약해져갔다. 근래에 들어서는 마치 혼이 없는 인형같았다. 때리면 웅크리고, 굶주리고 피곤하면 숨어들었다. 소년들의 시중을 드는 하인들조차, 말룸은 더러운 마의 아이라 생각해 주방을 기웃거리면 발로 차거나 벌레넣은 죽을 끼얹는 등 거들기만 할 뿐이었다. 


"뭐야, 내일 용사님이 오신다고?"

"카르티타스 그 자식한테만 편지를 보내셨어! 그자식이 그걸로 날 비웃었다고!"

"헤헤, 맛있는걸 잔뜩 사오시려나?"


소년들 중 가장 살집이 있는 멧돼지, 파르티오가 말룸의 피가 묻은 주먹을 핥짝거리며 탐욕가득한 눈을 빛냈다. 


"바, 바쁘셨겠지. 베냐 네가 참아.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네가 뒤집어 쓸 수도 있다고!"

"그래. 베냐. 손 더러워지겠어."


베냐를 따라온 뱀 소년, 서펜스가 베냐의 어깨를 부여잡고 말렸다. 토끼와 까마귀도 베냐를 달래주었다. 호랑이, 코르만이 하하 웃으며 베냐의 속을 긁는 말을 꺼냈다.


"그래그래. 애먼데 화풀이 하지 말라고. 몇 년째 부름받지 못하는거 보면 이제 너도 인정해야 하는거 아냐?"

"뭐라고?"

"용사님은 너한테 질렸다는 거지."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의 뺨이 돌아갔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베냐를 바라보는 코르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찔리나봐? 손부터 나서는걸 보면 말야?"

"네까짓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까짓? 부름도 받지 못하는 버려진 고양이한테 그런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좀 아픈데."


소년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틈을 타, 말룸은 천천히 기어 창고를 빠져 나갔다. 얻어맞은 온 몸이 욱씬거리고, 터진 입안에서 흐르는 뜨거운 푸른 피가 느껴졌다. 잠시 고요한 지하실 계단 벽에 기대 숨을 고르던 말룸은 소년들이 주고받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성년.'


내일이면, 이 나라의 법에 따라 말룸 역시 성년의 나이가 된다. 그러나 말룸에겐 그 단어에서 어떠한 설렘이나 아쉬움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이 감옥같은 집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만이 앞섰다. 그 두려움을 곱씹다 보면, 자신을 살려준 용사에 대한 원망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탄생의 순간. 자신은 어딘가에서 떨어지고, 뜬 눈의 끝엔 피투성이가 된 용사가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기분나쁜 빛을 일렁이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만약 자신을 무너지는 마왕의 성에서 함께 갈라 죽였다면, 그 성스러운 검날로 심장을 찔러 태웠다면,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텐데.


'아파...배고파...'


언제까지고 계속될지 모르는 삶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당장 소년들에게 구타당한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동시에 말룸을 옥죄여온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던 말룸은 몇 계단 위에 갑자기 밝아지는 빛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등잔불을 든 흰 사슴, 카스티타스가 말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따라와."


말룸은 거부 할 수 없는 그 목소리에, 힘없이 늘어뜨린 꼬리를 끌며 카스티타스의 뒤를 따라갔다. 몇 발 앞선 카스티타스는 지하를 나오는 길에 하인들의 방에서 연고를 받아들고 나와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안 들어오고 뭐해?"


말룸은 화려한 융단이 깔린 카스티타스의 방 앞에서 주저했다. 혹여나 자신의 뗏구정물로 가득한 발바닥이, 날카로운 발톱이 저 부드러운 카펫을 찢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그러면 저 성결한 소년이 자신에게 화를낼까 무서웠다. 카스티타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룸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햇살이 가득히 들어오는, 좋은 향기의 방에 들어온 말룸은 외지를 방문한 이방인마냥 주변을 둘러보았다.


"앉아서 상처좀 보여줘."

"나, 나를 왜..."


말룸이 오랫동안 내지 않아 잔뜩 메이고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이 맺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카스티타스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손목이 아닌 손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흰 털과, 가느다란 소년의 아름다운 손가락이 가진 감각에 말룸은 숨을 들이쉬었다. 폐부로 햇볕과 은은한 향유의 향기가 들어왔다. 거적대기를 들춰 상처를 바라보는 녹색의 눈동자를 보는 말룸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카스티타스는 말룸을 괴롭히는 소년들과는 달랐다. 적어도, 말룸의 눈에는 그랬다.


"마왕의 자식이라면서 맨날 맞는 것도 지겹지 않아?"

"아, 아읏!"


연고를 듬뿍 찍어낸 손끝이 상처에 닿자 말룸이 몸을 떨며 신음했다. 카스티타스는 그런 말룸을 보며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굳은 피로 얼룩진 상처에 연고가 덮히고, 몸의 상처를 들춰내며 천천히, 말룸을 덮은 옷가지가 땅에 떨어진다. 앙상한, 비늘이 군데군데 떨어진 푸른빛의 몸엔 검붉은 멍과 핏자욱들이 가득하다. 


"지독하네."


자신을 바라보는 카스티타스의 시선에 말룸이 고개를 숙이며 마른 팔로 몸을 감쌌다. 


"부끄러워?"

"부끄러워."


 넝마조각이 카펫위로 떨어진다. 카스티타스는, 모두가 욕하며 두려워하는 마왕의 핏줄이 자신의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가린채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며 이유모를 호기심이 생겼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용사는 항상 카스티타스를 품었다. 최악의 마왕을 쓰러트린 가장 강한 수컷의 품. 그가 항상 속삭이던 사랑의 말. 차고, 넘쳐서 였을까. 카스티타스는 푹신한 침대로 말룸의 몸을 살짝 밀었다. 가느다란 카스티타스의 팔로도 손쉽게, 말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아, 안돼. 침대가 더러워져..."


말룸은 발버둥치며 일어나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카스티타스가 오른 무릎을 침대에 댄 채 왼 팔로 자신의 몸을 살짝 누르고 있는걸 느꼈다. 피가 묻을텐데. 딱지 부스럼이 떨어질 텐데. 나의 더러움이 남을텐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푹신함과 따뜻함, 부드러운 손길 속에서 말룸은 불안감을 느꼈다. 


"너, 키스해본 적 있어?"


카스티타스와 말룸이 눈을 마주한다. 말룸의 멍한 심해 속 어둠을 담은 눈동자에, 생기있고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가 겹친다. 아슬아슬한 간극 사이로 카스티타스의 손이 말룸의 주둥이를 쓰다듬는다. 비늘이 달린 용의 주둥이. 거슬거리면서도, 서늘하다. 군데군데는 비늘이 빠져 살이 드러나있다. 피딱지가 져있다. 우둘투둘한 감각. 산양의 것처럼 휘어진 두쌍의 뿔은 견고하다.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윈몸이 견디기엔 무겁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밀도가 있다. 


"어, 없어."

"해볼래?"

"어, 어?"

"나도 못해봤거든."


용사는 카스티타스를 품을 때에도 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성기의 삽입과 절정의 쾌락은 알면서도 혀와 혀과 맞대어져 미끌리는 감각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마치 같이 걸을까? 처럼, 무해하고 일상적인 물음. 하지만 말룸은 고개를 저었다. 


"왜?"

"나, 난 더러워. 너랑 달라."

"나는 깨끗할까?"

"넌, 깨끗해."

"그래서 더 재밌을 것 같은데?"


카스티타스는, 용사의 품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소년이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이야기는 푸른 불을 내뿜는 마왕의 이야기였다. 마왕과 검을 겨눈 이야기를 하는 용사는, 비록 가면을 써서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평소보다 더욱 열띤어조로 말했다.


'그렇지만 결국 당신이 이겼잖아요.'


그리곤 카스티타스의 말에, 쓸쓸한 어조로 '그렇지.' 라는 말과 함께 조용해지곤 했던 것이, 사슴 소년에게는 세계의 반쪽인 용사를 저렇게까지 뒤흔든 그 강인한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 것이다. 


"너도 불을 뿜을 수 있을까?"

"나는, 못 해."

"하늘을 날거나, 악마를 사역할 수 있을까?"

"나는 날개도 없고, 그런 힘도 없어."


어느새 카르티타스는 말룸의 뉘인 몸을 사이에 두고 올라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룸은 베일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쏟아져 손으로 반쯤 눈을 가린채,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빛 무리 사이에서 웃음짓고 있는 카스티타스는 마치, 장난스러운 천사, 혹은 신 같았다.


"너를 보좌할 악마들을 불러낼 수 있을까?"

"난 오래전부터 혼자야."


문득, 다리 사이에 이상한 감각에 말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에 들어온건, 자신의 음경을 만지작거리는 카스티타스의 손이었다. 


"가만히 있어."

"하, 하지마. 더, 더러워져!"

"그게 어때서?"


퓨리타스 헵타스. 성결한 일곱 소년 중 가장 아름다운 흰 사슴 카스티타스. 


"그, 그만해."


말룸은, 그런 그가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는 눈 앞의 현실이 두려웠다.


'나는 마의 아이니까.'


단순히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아한 별처럼 빛나던 카스티타스에게 남몰래 경외감을 갖고있던 말룸은, 다리사이에서 전해지는 묘한 쾌감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제발 그만!"

"싫어."


격한 몸짓에 벌어진 상처에서 푸른 피가 흩뿌려지고, 침대보에 베인다. 카스티타스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손에 쥔 말룸의 성기를 더욱 세게 움켜쥔다. 애처롭게 꿈틀거리며 희멀겋고 찐득한 액체가 맺힌 말룸의 성기에, 못지 않게 솟아난 자신의 음경을 맞닿게한다. 말룸은 카스티타스의 고동을 느꼈다. 성기의 맞닿은 핏줄을 타고 박동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그 감각에, 심장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만해...제발."

"정말 그만두길 원해?"


괴롭도록 아찔한 감각은 성기에서만 느껴지는게 아니다. 눈물이 돌만큼 온몸이 간지럽고, 온 신경은 눈에 보이는 흰 사슴에게 쏠린다. 오감이 카스티타스를 쫓는다. 어느덧 숨이 뜨겁다. 그리고 기분이 이상해 졌다. 카스티타스 역시, 말룸에 대한 호기심에 자신의 상상이 덧입혀지며 야릇한 쾌감에 살짝 취해있었다. 


"너의 진짜 모습을 보고싶어."


용사의 이야기 속의 마왕처럼 크고 강해진 말룸이, 자신을 마구잡이로 휘잡아 깔아뭉개고, 커다랗고 뜨거운, 우둘투둘한 혓바닥으로 핥아대며 성교하는 상상. 그러면서도 눈 앞에, 자신의 더러움을 질책하면서도 앙상하고 멍투성이가 된 몸으로 성기를 세우고 있는 꼴사나운 죄의 아이의 모습. 두 쪽 모두 재미있다. 전희액으로 미끌거리는 두 성기가 카스티타스의 손아귀 안에서 섞이며 비비적댔다. 


"아, 안돼."


몸을 일으킨 말룸이 카스티타스의 두 손을 잡았다. 자신의 가슴아래에서 흩어지는 말룸의 뜨거운 숨을 느끼던 카스티타스가 물었다.


"왜?"

"너는, 너는 용사님이 사랑하는 아이잖아."


체념을 담은 목소리. 그러나 흔들리는 성조에 카스티타스는 미소를 지었다.


"네가 뺏는다면?"


마치 불경한 이야기를 들은 것 마냥, 굳은 말룸의 얼굴.


"장난이야. 네가 그럴 수 있을리 없지."


카스티타스가 몸을 일으킨다. 둘의 성기에 이어진 투명하고 끈끈한 액체가 이어져서 선을 그리다 끊어진다. 말룸은 황급히 땅에 떨어진 거적대기를 주워 다시 몸을 감쌌다.  


"약, 고마워."


말룸은 우물쭈물하다가 그림자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카스티타스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성기를 매만지며, 말룸이 누웠던 침대에 몸을 뉘였다. 침대엔 핏자국과 말룸의 몸에 벤 땟자국이 요상한 체취와 섞여 더럽혀진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진짜 그렇게 된다면 훨씬 재미있을텐데."


카스티타스는 침대보에 남은 푸른 핏자국에 성기를 비비며 교성을 흘렸다.  






"도련님들. 곧 주인님께서 들어오실겁니다."


다음 날. 성년식을 위해 몸을 치장한 일곱 소년과, 여전히 거적대기를 두른 말룸은 탁자에 앉아 있었다. 말룸의 맞은편에는 베냐가 얼굴 반쪽을 붕대로 싸맨 채 공허한 시선으로 앉아 있었다. 하인들은 향기로운 꽃잎을 빻아 섞은 물이 담긴 그릇을 소년들의 앞에 놓았다. 오직 말룸의 그릇만이 비어있었다. 말룸은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았다. 소년들은 향수를 손으로 찍어 체취가 잘 퍼질만한 부위에 발랐다. 베냐는 목덜미에 향수를 바르면서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는 호랑이 소년, 코르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욱씬거리는 얼굴 반쪽이 분노로 타오르는 듯 했다.


"뭘 봐?"


말룸은 베냐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둔중한 충격과 함께 머리에 날아든 그릇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 적당히좀 하지? 성인식에다가, 용사님까지 뵙는날인데."


코르가 베냐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베냐는 불꽃이 이는듯한 눈동자로 코르를 노려보았다.


"너..."

"왜, 덤벼보게? 얼굴 남은 반쪽도 줄좀 그어줄까?"


까마귀와 멧돼지 소년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토끼와 뱀은 안절부절하며 다른 소년들의 눈치를 살폈다. 베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금방이라도 무슨 사단이 날 것처럼 감정이 팽창할 무렵이었다. 문이 열리고, 절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둔중한 갑옷을 걸친 용사가 소년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사님!"


청석으로 조각한 가면을 쓴 거구의 용사. 그는 가면너머의 눈으로 소년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카스티타스에게 다가가 그 백색의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용사의 행동을, 시기와 질투를 숨긴 시선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소년들. 용사가 고개를 숙여 카스티타스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손을 올려 입을 가린 사슴은 키득거리며 웃는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아이들의 뒤를 걷던 용사가 베냐의 뒤에서 멈췄다.


"요, 용사님."

"얼굴은 왜 이러지?"

"제, 제가 실수로..."


용사는 붉은 고양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턱을 쥐고 천천히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룸은 베냐의 심장소리가 들릴정도로 빠르게 뛰고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용사는 천천히 베냐의 얼굴 반쪽을 뒤덮은 붕대를 풀어냈다. 말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커다란 상처가 난 베냐의 반쪽얼굴을 보지 못한건 아니었다. 


"저는 괜찮아요!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병원에 가보는게 좋겠구나."

"네? 시, 싫어요. 오늘은 성년식이 잖아요!"


마치 고장난 장난감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처럼, 베냐의 턱을 쥐고 상처를 유심히 바라보던 용사의 가면 아래에서 낮고 힘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넬!"

"예, 주인님."


집사가 용사의 부름에 문을 열고 들어와 목례했다. 


"베냐의 얼굴에 상처가 심하군."

"다툼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혼자 넘어진거라고 했잖아!"


베냐가 부끄러운지 손으로 상처를 가린채 소리를 질렀다. 용사는 그런 베냐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파티 준비는 잘 되고 있나?"

"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자네는 이요르를 시켜 마차를 준비해 수도의 병원으로 베냐를 데려가게."


집사는 고개를 숙여 응답했다. 베냐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네? 용사님! 잠시만요!"

"상처가 깊구나. 흉이 지기 전에 치료를 해야겠다."

"아니요. 아니요! 괜찮아요! 적어도 오늘은, 오늘은 참을게요! 하나도 안 아파요!"

"어서 가거라."


턱을 쥔 용사의 손을 애처로이 붙잡았지만,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는 가면 너머에서 느껴진 냉랭함에, 베냐는 숨을 헐떡이며 눈물을 흘렸다. 사형선고를 당한 죄수처럼, 베냐의 곁으로 다가온 다른 하인들이 소년을 일으킨다.


"데려가게."


베냐는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이내 하인들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서게 되었다. 고양이 소년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표정의 소년들과, 용사를 바라보았다. 베냐는 점점 용사와 멀어져갔다. 이내, 하인들에게 들쳐 메여지다 시피 한 베냐는 커다란 연회장에 맛있는 음식들과 공연을 준비하는 유명악단을 가로질렀다.


"싫어! 싫어!"

"가셔야 합니다."


 화려한 연회장이 멀어져갔다. 문을 지나, 너른 화단에는 선물을 숨겨놓는 하인들이 보였다. 베냐는 고개를 저으며 마차 안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용사의 성을 바라보았다. 마치 동화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름다운 치장으로 가득한 성이, 소년의 눈물로 일렁이는 눈동자 안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아냐, 아냐! 아냐! 싫어! 싫어!"


투레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인다. 베냐의 비명소리는 이내 현란한 솜씨로 켜기 시작한 악기에 묻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성결한 소년들의 미래를 위하여!"


연회장엔 소년들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악단의 연주와 함께 축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용사는 높은 단 위에서 붉은 술로 가득찬 유리잔을 들었다. 소년들과, 사람들도 모두 잔을 높이 들었다. 상징적으로, 소년들은 성인이 되었다. 목으로 넘어가며 코를 메우는 누룩과 과실의 향.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었지만, 소년들은 성인이 되었다.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카스티타스님!"

"코르님!"


술을 마신 소년들에게 마을의 소녀들이 선물을 안아들고 달려들었다. 소년들 중에는 그런 관심을 즐기기도, 부끄러워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카스티타스는 오로지 구석에서 천천히 어둠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말룸만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용사를 따라 연회장을 나서 파티 장식으로 꾸며진 거대한 정원으로 나선 이들은, 웃고 즐기며 정원 사이에서 하인들이 숨겨둔 선물을 찾았다. 카스티타스는 용사의 곁에서, 코르를 비롯한 소년들이 다른 동물들의 가면을 쓴 사람들과 섞여서 즐겁게 술을 마시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성년제가 마음에 들지 않니?"

"유치하네요."


용사는 카스티타스의 어깨를 감싸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연회는 계속됐지만, 소년들은 모두 용사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는 카스티타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가면을 쓴 사람들이 다른 소년들을 이끌었다. 그들의 손엔 술이 든 잔이 쥐어졌고, 눈 앞엔 풀 숲에서 찾아낸 진귀한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있는 사이, 코르는 홀로 용사와 카스티타스를 따라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물이다."


용사의 침실. 카스티타스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보석들이 금줄로 연결된 뿔에 감는 치장걸이와 다이아몬드 왕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내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엔 무슨 모험을 했는지부터 이야기 해줘요."

"원하는걸 드디어 찾아냈지."


용사는 침대에 앉아 대답했다. 카스티타스는 벽면에 걸려진 용사의 갑옷들과 성스러운 검, '마를 멸하는 검'이 담긴 검집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그런 카스티타스의 뒤로 다가온 용사가 그를 끌어안았다. 두꺼운 근육이 밀착된 등으로부터 느껴졌다. 용사는 카스티타스의 가느다란 팔을 더듬어 타고 올라 검집을 매만지는 소년의 손등을 살짝 움켜쥐듯, 매만지듯 포갰다. 다음 순간 카스티타스가 놀라 바람을 들이켰다.


"이, 이건?"


카스티타스의 손을 성검의 자루로 옮긴 용사가 천천히 검을 꺼냈다. 악을 절멸하는 빛으로 마주하는 마의 존재들의 눈을 태워버린다는 성검의 검날은, 아주 평범한 롱소드와 같았고, 그 표면엔 검은 가시넝쿨들이 휘감겨져 있었다. 성검이 빛을 잃고 평범한 검날이 되어있는 모습은 카스티타스에겐 충격이었다.


"놀랐니?"


카스티타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감싸안은 용사를 바라보았다. 청석 가면 너머로 용사는, 분명 웃고 있었다. 카스티타스의 입꼬리는 달싹이다, 이내 부드러운 호를 긋는다.


"재밌네요."


용사는 카스티타스의 옷을 벗긴다. 카스티타스는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침대로 가 용사를 유혹하는 듯한 눈으로 미소지었다. 까닥거리는 손 끝에 하얀 옷자락들이 걸려있다 떨어진다. 용사 역시 옷을 벗었다. 이내, 살과 살이 부딫히는 소리가 들렸다. 카스티타스는 자신의 몸에 포개진 용사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의 사랑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평소의 용사에게서 느끼던 고동이 아니었다.


그때, 용사의 방 문이 살짝 열렸다. 문틈새로 몸을 섞는 용사와 카스티타스를 바라보는 건 코르의 샛노란 눈동자였다. 코르는 가슴이 쿵쾅거리는걸 느끼며, 와중에 커다랗게 우뚝 선 자신의 성기를 매만졌다. 


정사가 끝나고, 카스티타스는 늘 그랬듯 방을 나와 홀을 가로질러 자신의 공간으로 향했다. 용사는 모든 소년들을 차례대로 불렀다. 그리고 성년을 축하하고, 선물을 주었다. 


"네가 기사가 되는 날을 기대하마."

호랑이에겐 보검을 주었다. 


"만가지 맛을 아는 혀를 가졌구나."

멧돼지에겐 타국의 진미를 선사했다.


"근면한 너라면 이 주머니를 더욱 무겁게 만들 수 있겠지."

토끼에겐 금화가 잔뜩 든 주머니가 주어졌다.


"모두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구나."

뱀에겐 상처를 빠르게 낫게 해준다는 요정의 날개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까마귀 소년은, 보석을 이은 은 줄과, 부리에 올리는 호화로운 장식을 받았다. 용사는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까마귀, 아포르에게 부탁을 함께 전했다.


"말룸에게 나에게 오라고 전해다오. 아마 카스티타스의 방에 있을게다."

"카스티...타스의 방에요?"


아포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알겠다고 대답하곤 용사의 방문을 나섰다. 반짝거리는 은줄에 이어진 영롱한 보석들이 흡족스러웠다. 


'금이었으면 더 멋졌겠지만!'


아포르는 카스티타스의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과연, 용사의 말대로 말룸과 카스티타스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한번도 소년들과 함께 말룸을 괴롭힌적 없는 카스티타스였던지라 아포르는 둘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며 용사의 말을 전하려 했다. 그때였다. 까마귀의 눈에 본능적으로 아름답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카스티타스의 방 탁자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금줄에 엮인 보석들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 아포르는 어느새 카스티타스와 말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무슨일이지?"

"카, 카스티타스. 저, 저건뭐야?"

"선물이야. 거추장스럽지만. 무슨일인데?"

"아, 그, 그 말룸..용사님께..가보라고..."


횡설수설하는 아포르를 지나, 카스티타스와 말룸이 방을 나왔다.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두 소년의 뒷모습을 보던 아포르는, 마치 이끌리는 것처럼 다시 문을 열어 텅빈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떨리는 손으로 부리에 걸린 은장식을 풀어내, 카스티타스의 선물 옆에 대어본다. 세공도, 장식도, 엮임도 몇수나 차이나는 수준이 느껴진다. 소재부터도, 마감까지도. 더욱 아름답다. 더욱 고결하다. 더욱, 갖고싶다. 아포르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예, 예뻐."


도망치듯 자신의 방에 숨어들어 거울에 금장식과 왕관을 써본 아포르는, 한참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환희에 젖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름다움을,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스티타스의 두뿔을 위해 만들어진 장식이었기에, 아포르의 부리에 감겨진 금 장식은 너무 과도했고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돌려놓기에 왕관의 보석은 너무나 영롱했다. 




"혼자 갈 수 있어."

"알아."


말룸과 카스티타스는 용사의 방으로 향하는 중정을 걷고 있었다. 멀리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카스티타스가 걸음을 멈췄다. 말룸도 덩달아 그 자리에 섰다. 


"너는 무슨 선물을 받고싶어?"

"선물?"

"그래. 성년기념 선물말야. 넌 받고싶은거 없어?"

"나는...없어."


말룸은 선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설음에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 따뜻하고 벅차는 단어는 자신에게 주어진게 아니었다. 용사는, 그저 오늘도 이전과 같이 말룸을 불러놓고, 아무런 말도 없을 것이다. 용사는 늘 그랬다. 그저 말룸을 앉혀놓고, 어떨때는 차나 과자를 조금 주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말룸도 괜히 용사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저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피해다니지 않아도 됐기에 마음만은 편했다.


"그냥, 평소와 같았으면 좋겠어."


카스티타스는 용사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말룸을 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남창."


카스티타스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인상을 잔뜩 구긴 코르가 술에 취한 채 비척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고약한 술냄새에 카스티타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혹시 불편한게 있으면 불러주세요."

"보내줘. 내가 상관없다고 했잖아. 보내달라고!"

"어휴, 그래도 소용없어요. 용사님께서 상처 다 나을때까진 돌려보내지 말라고 하셨다고요!"

"정말? 정말로 용사님이 그러셨어?"


간호사는 한숨을 쉬며 망연한 표정의 베냐를 뒤로 하고 병실문을 닫았다. 베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색색의 빛폭죽이 터지는 용사의 성이 보였다. 베냐의 귀에 문 밖에서 간호사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딱하지. 얼마나 가고싶으면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겠어."

"에휴, 예쁜 얼굴이었는데 하필 얼굴에 흉이져서."


베냐는 숨죽여 울었다. 시간을 돌려서 코르와 싸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물이 흐르며 약을 바른 상처에 스민다. 따가웠다.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거래?"

"그 덩치큰 코르랑 싸웠다고 하던데?"

"고양이와 호랑이의 싸움이면 불보듯 뻔하지."

"누가 아니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베냐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이상하게 누군가 목을 죄고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까딱도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듯 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런데, 베냐 쟤 벌써 몇년동안 용사님이 따로 부르지도 않았다면서?"

"버림받은거 아냐? 오늘이 어떤날인데."

"하긴, 누가 좋아하겠어?"


귀를 막으려 팔에 힘을 있는대로 줬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그렇잖아? 서펜트와 아텐도 착하니까 말이라도 나눠주는거지."

"심지어 이젠 못생겨지기까지 했네?"

"말룸보다도 말야."

"맞아! 말룸보다도 못하게 됐어!"

"이제 지하창고엔 베냐가 숨어 지내야겠네!"

"더럽고 음습한 지하창고!"


그리고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베냐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없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방안을 가득채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코르였다. 베냐는 핏발선눈으로 코르를 노려보았다.


"내가 미워?"


코르는 킬킬댔다. 그리곤 손톱을 세워 핥으며 베냐를 내려다보았다.


"좀 더 칼집을 만들어놨어야 용사님이 병원이 아니라 빈민굴에 내다 버렸을텐데."


어느새 코르가 있던 자리에 뱀 소년, 서펜트와 토끼 아텐이 서있었다.


"네 이상한 성격 맞춰주는것도 질렸어."

"이젠 넌 예쁘지도 않고, 그냥 흉측한 괴물이야. 다신 돌아오지 마."


그리고, 말룸이 나타났다. 베냐는 처음으로 말룸이 웃는 모습을 보았다. 소름끼치도록 올라간 입꼬리를 보자 식은땀이 흘렀다.


"버림받은 기분이 어때?"


잠시후 간호사들은 발작을 일으킨 베냐를 진정시키기 위해 병실에 모여들어 팔다리를 잡고 실랑이를 벌여야했다. 베냐는 계속해서 아무도 없는 병실 안을 바라보면서 욕과 비명을 질러댔다. 마치 그곳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울대를 세우고 비명을 지르는 소년을 보며, 모두들 베냐가 미쳤다고만 생각했다.




말룸은 테라스에서 바깥을 보는 용사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문을 닫고 가만히 서있었다. 용사가 고개를 돌렸다. 살짝 끄덕이는 고개. 앉으라는 신호였다. 말룸은 침대 옆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다. 그저 평소와 같은 시간이리라 생각하던 말룸은, 테라스에서 걸어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용사를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오래 전 일이지."


말룸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용사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 놀랐다. 자신에게 말을 건 적이 손에 꼽을정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처럼 자신을 괴롭히는건 아니었지만, 마치 있는듯 없는듯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했던 용사가, 자신에게 말을 꺼낸 것이다.


"평범하지만, 꽤나 유망했던 청년인 나는 기사단의 유망주이자 마왕토벌의 주자로 뽑혔었다."


용사가 말룸에게 들려준건 용사의 이야기였다. 


"뼈와 피의 성으로 가는 도중, 나는 스산하고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나의 영혼 속을 타고 흘러 들려오는걸 느꼈다. 그건 마왕의 목소리였어. 마왕은 나를 계속해서 불렀다. 자신에게로 오라고. 달콤한 것과, 반짝이는 보석과, 사랑을 주겠노라고."


말룸은 침을 삼켰다.


"나의 동료들은 마왕과 그 부하들에게 끔찍하게 죽고, 나는 검을 들어 그를 마주했다. 그는, 굉장히 거대했어.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지. 그 약해진 영혼을 파고든 마왕은 결국 나를 가지게 되었다."


용사는 몸을 일으켜 벽에 걸린 성검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말룸의 앞으로 와, 테이블 위에 검을 올려두었다.


"나는 마왕을 사랑하게 되었고, 마왕 역시 나를 사랑했지. 그게 내 정신을 오염시켜서였던, 극명한 힘의 차이앞에 굴종된 것이었던 간에 하나, 단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는 행복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 중 가장 격렬하게, 행복했어."


그럼에도 용사의 목소리는 덤덤했고, 어딘가 공허했다.


"어느날, 이 성검을 든 또다른 용사가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찾아왔다. 마왕은 치명상을 입었지. 이건, 정말 말그대로 마를 멸하기 위해 태어난 검이었으니. 마 그자체였던 마왕은 이 검의 빛을 보기만해도 몸이 녹아내리고, 불꽃을 잃을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내가 무슨짓을 했을까?"


말룸은 떨리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나는 나이프를 들고 그 용사의 목을 찔렀다. 마왕은 그런 나를 향해 사랑한다며 되뇌였지. 그러나, 잔혹하게도 용사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 성검. 성검에서 나온 빛은 마왕에게 잠식당한 내 영혼을 해방시킴과 동시에, 성검의 의지로 물들였어.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존재가, 당장이라도 죽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혐오스럽게 변하는 느낌이 어떨것 같은가? 나는 비명을 질렀어. 그리고 성검을 들어 마왕을 갈랐지."


용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성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말룸은 검신을 둘러 싸고있는 검은 가시가 돋은 얇은 가지들을 보았다. 아무런 빛도 내뿜지않는 검날은, 말룸의 아주 오래된 기억 속, 막 태어난 자신을 향해 겨눠졌던 끔찍한 빛을 가진 그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평범했다.


"마왕은 그러나, 그런 나를 용서했다. 그는 정말로 나를 사랑했던거야. 그는 빛에 심장이 살라먹히기 전에, 나에게 그걸 도려내 건넸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깨달았지."


용사가 검을들어 천천히 어깨를 위로 올렸다. 말룸은 그가 검을 내리친다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검날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말룸이 눈을 뜨자, 바닥에 깨진채로 나뒹구는 성검이었던 것의 검날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용사가 무슨짓을 하는건지 말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황하는 말룸을 앞에 둔 용사가 천천히 가면에 손을 올렸다.


"그가 나에게 죽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했지. 당신과 나의 아이에게 그 심장을 꼭 전해달라고."


가면이 천천히, 벗겨졌다. 말룸은 마치 쇳조각으로 뒤덮인듯 기괴하게 융기된 용사의 얼굴을 보며 숨을 삼켰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괴이한 형상의 얼굴. 그 왼쪽눈이 있어야 할 곳엔 붉은 보석하나가 박혀있었다. 용사는 신음을 흘리며 그것을 뽑아내었다. 식물의 뿌리가 뜯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왈칵 피가 쏟아지고, 용사는 덜덜떨리는 손으로 말룸을 향해 손바닥을 폈다. 말룸은 헐떡이며 기괴한 형상의 붉은 다면체 보석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전에 그 한마디가 말룸의 마음에 걸렸다.


"다, 당신과 나의 아이...라면..."


헐떡대던 용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몸을 덮고있는 로브를 풀어헤쳤다. 잘 단련된 가슴 근육아래로, 복부 가운데엔 칼로 그어낸 커다란 흉터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 너는 나와 마왕의 아이다."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갓태어난 말룸은, 고개를 돌려 울음을 뱉어낸다. 시선 끝에 용사가 서 있었다. 피투성이 용사는 복부에서 피를 왈칵 쏟아내고 있었다. 탯줄이 이어져있었다. 그의 검은 기분나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말룸은 망연한 표정으로 용사를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럼, 그럼 대체 왜..."

"히, 히히히히."


용사는 킥킥거렸다. 그리곤 말룸의 손을 낚아 채 그 빛나는 붉은 다면체를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 삼키거라."

"이건?"

"마왕의 심장이다."


그러는 용사는 뚫린 왼쪽 눈구멍으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말룸은 손에 쥔 아비의 심장에서 지독할정도의 마기가 흐르는걸 느꼈다.


"자, 어서!"

"이걸, 이걸 위해서 절 데려온거에요?"

"그래."

"그럼 다른 아이들은요?"

"하하하하하하하!"


용사가 웃음을 터뜨리다가 기침을 했다. 왈칵하고 핏덩이가 그의 목에서 쏟아졌다. 용사의 몸은 오랫동안 마기와 빛의 기운이 충돌하며 내부를 망가트려 더이상 지탱시킬 힘조차 없는 지금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성결한 영혼을 가진 아이들. 그래. 그런데 과연 지금도 그럴까?"

"무슨 말이에요?"


말룸의 손에 쥐어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말룸은 킥킥 웃으며 말을 잇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용맹하던 코르는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해졌고."

"마음을 베풀줄 알던 서펜트는 너에게 친절의 한모금조차 나눠주지 않을만큼 인색해졌으며."

"친절하고 공명정대한 아포르는 금에 눈이멀어 상대를 시기해 도둑질을 했고."

"근면한 아텐은 나태해져 주변의 악행에 둔감해져 눈을 감았지."

"자신을 절제하던 파르티오는 단순한 탐미에 무너져 뒤룩뒤룩 살이 찐 탐욕의 덩어리가 되었다."

"밝고 명랑하던 베냐는 닿지 않는 사랑에 주변에 분노를 터뜨리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정결하고 고아한 영혼을 가진 카스티타스는."


말룸은 용사의 이야기를 더듣고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말룸은 그대로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었다. 용사가 비명을 지르듯 말룸에게 소리쳤다.


"나의 음경을 탐하고, 육체적인 쾌락에 젖어들어. 성교밖에 모르는 탕녀가 되었다."

"대체, 대체 왜?"

"너는 마왕이 되어 그 죄에 빠진것들을 너의 수하로 삼거라.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자 운명이다."


말룸은 헐떡였다. 항상 구타당하던 지하실의 음습한 공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네가 받았던 모멸과 멸시를 생각해라."


모두가 손가락질을 했다. 말룸은 자라나며 제대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면 욕이나 주먹이 날아들었고, 숨어든 지하 창고에도 순찰을 돌던 하인들에게 발각되어 온몸에 피멍이 들때까지 맞아야 했다. 


"그들이 밉지 않나? 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잖아?"

"왜, 왜..."

"되돌려주고싶지? 복수하고싶지? 사지를 뜯어서 입안에 넣고싶잖나?"


용사는 웃음을 멈추고 말룸을 바라보았다.


"진정으로 복수를 갈망하는 너의 영혼만이 마왕을 강림시킬 수 있다."

"복수..."


말룸은 다면체를 바라보았다. 기괴한 붉은 빛 속에서 말룸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다. 낮고 어두운, 어둠의 왕의 목소리. 그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룸에게 모든것을 찢을 손톱과, 불꽃이 타오르는 심장과 눈, 죽인것들의 뼈로 쌓아올린 성을 약속한다. 고통을 받는자가 아닌, 주는 자로 거듭나게 해주겠다며 속삭인다.


'아니.'


그러나 용사는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나는 그냥, 쉬고싶어.'


어려서부터 모멸과 핍박을 받아온 말룸의 영혼은 피폐했고, 육체와 정신의 고통 속에서 피를 이은 마는 싹을 틔우지 못했다. 피폐한 말룸의 마음. 그곳에선 아무것도 자라날 수 없었다. 지쳐있었다. 원망은 휘발된지 오래였다. 말룸은 그저 영원한 어둠과 안식을 원했다. 


"그게 어때서?"


문득 말룸의 머릿속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모습이 검은 기억 속에서 선연히 빛이나듯 떠오른다. 말룸의 눈에 순간 푸른 불꽃이 번쩍했다. 만약, 손에 무언가를 쥘 수 있다면. 욕심을 낼 수 있다면.


'카스티타스.'


왜, 그 흰 사슴의 이름이 생각난 것일까.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 소년. 아름다운 몸과 신록을 닮은 눈동자. 문득 그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이불에 뉘인 감촉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나체의 카스티타스가 생각났다. 말룸은 몸을 일으켰다.


"삼키지 않고 어딜가는거냐."


말룸은 잠시 멈췄지만 뒤돌아 보지 않고 그대로 문을 열고 나섰다. 용사는 다급히 따라 나가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래를 보니 자신의 얼굴처럼, 기괴한 쇠파편들로 잠식된 다리가 땅에 뿌리를 내린 뒤였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편들이 몸을 빠르게 타고 잠식하기 시작한다. 용사는 파편으로 뒤덮인 쇠 동상이 되기 전까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내며 울부짖었다. 




"카스티타스."


말룸은 바쁘게 성 안을 돌아다녔다. 그의 방에도, 준비실에도 카스티타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중, 말룸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카스티타스를 찾아서 뭘 어쩌겠다는거지?'


답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말룸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끝나가는 연회. 사람들은 취한채로 성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룸은 취한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때론 발길질을 당하며 머리를 향해 날아다는 술병을 피해야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말룸의 발이 향한 곳은 언제나 소년들을 피해 숨어들었던 지하창고로 연결되는 계단이었다. 손에 쥔 다면체에서 이상한 고동이 느껴졌다.


'기분 나빠.'


말룸은 복도의 저편으로 다면체를 던졌다. 그것은 기묘한 붉은 궤적을 남기며 어둠속으로 굴러 사라져갔다. 말룸은 천천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곧 어둠속으로 그의 뒷모습이 먹히듯 사라졌다.


"에헤? 이건 뭐야?"


잔뜩 취한 멧돼지, 파르티오가 복도에서 붉고 기묘한 다면체를 줏어 들었다. 어쩐지 모르게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채, 사탕이라 생각한 파르티오는 그것을 입에 넣고 삼켰다. 




"예쁨을 받는 기분은 어떤거야? 나도 좀 알려달라고."


코르는 방문을 거세게 닫으며 카스티타스를 침대로 던지듯 밀쳤다. 살짝 풀어 헤쳐진 카스티타스의 로브 사이로 보이는 나체에 코르는 치밀어오르는 술기운과 함께 음욕을 느꼈다.


"매달려야 되는 사람이 바뀐거 아냐?"

"건방진 소리 하지마."


코르가 으르렁거리며 카스티타스의 멱살을 쥐고 그대로 깔아뭉갰다. 카스티타스는 코르의 하반신에서 뻗어나온 뜨거운 양물의 감각에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잔뜩 상기된 코르는 거친숨을 내쉬며 카스티타스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이것도 꽤 재밌네?"


카스티타스는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몸을 거세게 주물러대는 코르의 손길이 우스우면서도, 의외로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 용사와의 정사를 막 마쳐 액이 흐르는 항문이 뻑적지근한 느낌과 함께 묘한 쾌감을 전한다. 맹포한 기세로 허리에 감겨드는 두팔에 번쩍 들린 카스티타스는 문득 이렇게 자신에게 굶주린 상대가, 말룸이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늙은 아저씨보단 내쪽이랑 하는게 더 좋지않아?"

"글쎄? 일단 이쪽은 괜찮은 것 같은데."


카스티타스는 코르의 우뚝 선 남근을 움켜쥐었다. 그르릉 거리는 그의 성기는 이미 전희액이 마구 흘러나와 겉옷을 비치게 만들정도였다. 꽤나 두껍고, 크다. 이제 성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드세게 고동치는 핏줄이 느껴지는 성기다. 


"남창주제에 가리기라도 하나? 넌 그냥 뒤만 쑤셔주면 좋아하는거 아니냐고."

"말로만 할거야?"


사슴의 다리가 유연하게 뻗어 코르의 어깨 위에 발목을 걸친다. 젖어있는 음문 주변의 털을 보며 코르는 입맛을 다셨다. 카스티타스의 눈동자에 색욕의 불꽃이 가득했다. 


"더, 재밌게 해줘."

"넌 진짜 창녀구나."

"그래서, 그게 나빠?"


카스티타스는 코르의 목덜미를 잡아 끌며 입을 맞췄다. 두 혀가 섞이기 시작했고, 코르는 그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참을 키스한 그들이 고개를 떼었다. 코르는 카스티타스의 진녹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게 나의 유일한 구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