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부순애물 채널

진마로 유태환


때는 3월. 그 힘들다는 고3. 개학한 학교에서 맞이한 첫 번째 날이었다. 선생님이 미리 짜두신 자리배치표를 본 나는, 가장 맨 뒷자리가 걸렸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가, 유태환이라는 이름을 보곤 누구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실루엣. 혼자 2차성징을 세번은 더 겪은 듯한 큰 키와 덩치에, 항상 싸움을 하고 다녀서 그런지 상처투성이인 몸. 검은자위에 새빨간 눈동자. 동굴 종유석처럼 뿔같이 난 날카로운 이빨들. 우리 학교의 일짱. 늘 피비린내가 난다는 유태환. 그 유태환이 우리반이라니. 게다가 내 옆자리라니!


"헉, 야. 너 어떡하냐?"


"모, 몰라..."


나는 벌벌 떨며 상어가 허스키 고기를 좋아하진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보통 날때부터 완력과 호전성이 강한 곰이나 사자, 호랑이들을 가볍게 누르고 우리 학교의 최강자가 된 상어수인의 이야기는 입학 후 2개월 뒤부터 서사가 되었고 지금은 전설로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꼬리를 잔뜩 내리고 벌벌 떨며 내 자리로 간 나는, 커다란 바위처럼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유태환을 봤다. 엎드린채 곤히 자고 있는 태환은 정말 고등학생이라 하기엔 너무 컸다.


"야! 나 방학끝나고 키 큰것같지 않냐?"


지금 다른 애들이 키를 재고 있는, 앞창문과 뒷창문 사이 부조처럼 튀어나온 시계가 걸린 벽면. 다른아이들은 둘이 나란히 서도 그 벽을 꽉 채우기 힘들어 보였지만, 태환은 혼자서도 채우기를 넘어 튀어나올정도로 어깨가 넓었고, 큰 키때문에 꽤나 구부려진 허벅지와 종아리는 TV에 나오는 씨름선수보다도 굵은 것 같았다. 사실 태환의 소문은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초등학생때부터 동네엔 전설처럼 떠돌곤했다. 태환의 그게 두개니, 초등학생때 거기에 털이 났대니, 수염이랑 가슴털도 중학생때부터 났다니 하는 소문들부터, 중1때 조폭보스 허리를 접었네, 완전히 접지는 않고 부메랑처럼 날려 지구 어디쯤을 날아 지금 돌아오고 있다니 하는 허무맹랑한 것들까지. 그 전설의 실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여서, 나는 잔뜩 쫄아서 혹시나 깰까, 조용히 의자를 빼고 앉았다.


'진짜 엄청 크다.'


앉아서 흘낏 본 태환은 정말 저게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팔, 가슴, 배 어디든 컸다. 왜 난다 긴다하는 곰, 호랑이, 사자들이 태환 앞에서는 꼬리를 말고 조용히 다니는지 알만했다. 



"야. 마로 이새끼 존나 불쌍하네."


"하아, 몰라. 그래도 잠만 자서 그런지 편한것 같기도 하고."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긴 좋겠더라."


점심을 먹고, 구령대에서 피크닉을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들 내가 불쌍하다는 반응이었다.


"나 작년에 유태환이랑 같은반이었잖아. 그 알지? 김치타. 걔 쌈좀한다고 유태환한테 시비걸었다가 피떡됐잖아."


"맞아. 말 그대로 피떡."


"아, 내가 걔한테 시비를 어떻게거냐?"


"이새끼 존나 겁먹어가지고 꼬리 계속 세우고 있는거 아니냐?"


웃다가 놀리다가 걱정해주다가, 다시 수업에 들어간 나는 밥은 먹고 온건지 잠만 계속 자고 있는 유태환을 봤다. 숨은 쉬는건가? 이상한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미동도 없이 잠만자는 유태환의 숨소리를 들어보려고 귀를 가까이 댔다가, 그대로 실금해버릴 뻔 했다. 그가 눈을 살짝 떠 새빨간 눈동자로 나를 본 것이다.


"뭐야."


살짝 짜증이 섞인 낮은 목소리였다.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덜덜 떨며 어떻게든 맞지 않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뇌를 거치지도 않고 말을 던졌다. 다행히 그렇게 짜증나진 않았는지, 유태환은 7교시 끝나면 깨워라. 하곤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살았다는 생각이 컸다. 


유태환은 7교시가 끝나면 덩치에 안맞게 쌩 하고 교실을 나갔다. 건너 듣기로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중국집 배달이라나. 또 거기에 대해선 얼굴을 함몰시킨 애들 병원비 대는것때문에 그렇다부터, 조직에 들어갈 상납금때문이라는 소리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붙어있었음은 당연한 걸까? 아무튼, 나는 7교시 이후의 시간만을 기다리는 가련한 작은 허스키 한마리였다. 그렇게 끔찍하던 자율학습이 기대가 될 줄이야. 유태환 덕분에 고3의 본분을 갖게 되었다고 고마워 해야하는 걸지도 몰랐다.


"씨발."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1교시 중간이 지나도록 안 오던 유태환이, 욕을 내뱉으며 뒷문을 포악스럽게 열어제끼고, 자리로 쿵쿵거리며 와 엎드린 것이다. 선생님도 무서워하는 유태환이었던 지라, 잠시 교실이 얼어붙었다가 수업이 이어졌다. 나는 코끝을 스치는 피냄새에 놀라 누운채로 평소완 달리 숨을 쌕쌕거리는 유태환을 바라보았다. 태환의 두꺼운 목덜미엔 누구와 싸운건지 발톱자국이 꽤나 길게 남아있었는데,  붉은 피가 아롱져 몇방울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그냥 두면 염증날지도 모르는데. 나는 무서워하면서도, 살짝 유태환을 걱정했다.



"연고는 없고, 포비돈밖에 없는데 어쩌지?"


"포, 포비돈이요?"


1교시가 끝나고 양호실로 온 나는 포비돈 병을 가져가서 유태환의 목덜미에 발라주는 상상을 하다가 그 커다란 주먹에 피떡이 된 채 영영 수업을 못듣는 몸을 상상하며 귀를 접고 온몸을 떨었다. 별 소득 없이 양호실을 나와 어쩌지, 어쩌지 하던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생각해냈다. 점심시간도 아니니 교문을 지키는 선생님도 없었고, 5분이면 충분히 갔다올만 하다고 생각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주머니에 마데카솔 하나를 집어넣은 나는, 학교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부리나케 달려 교실로 달려갔다. 유태환이 뭐라고 이렇게 고생을 하나 싶었다.


'뭐 그래도 흉터남는 것보단 낫잖아?'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선생님보다 먼저 교실에 들어온 나는, 송골송골 맺힌 땀을 슥 훔쳐 닦고 혀를 쭉 뺀채 열을 식혔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해준다? 7교시가 끝나고 일어날때 전해줄까?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깨어있을때 준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선택지가 아닌 듯 했다. 나는 그래서, 아주 천천히, 은밀하게, 미션임파서블의 주인공처럼 마데카솔이랑 반창고를 유태환이 학교에 오면 지갑이랑 담배를 넣어두는 책상 밑 끝에 아슬아슬하게 밀어넣었다. 



"야 유태환 존나 무서워 진짜."


옆자리로 온 같은 반 친구가, 야자시간이라 속삭이듯 나에게 말했다. 뭐가? 라고 내가 되물었다.


"아니 아까 7교시 끝나고 너 유태환 깨워준담에 화장실 갔잖아. 근데 유태환이 책상 밑에서 뭔 마데카솔? 그거 꺼내더니, 한참을 보더라? 그러다 갑자기 이거 누구냐. 하고 말하는거 있지."


나는 온몸의 피가 단전쪽으로 쭈욱 모이는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덜덜 떨었다. 뭐가 맘에 안들었던걸까? 뭐가? 나는 그냥 흉지지 말라고 넣어준 것 뿐인데. 나는 다시금 피떡이 되는 상상을 했다. 꼬리가 말리고 귀가 접혔다.


"이 새끼들은 입이 없나. 하고 일어 서서 나가는데 진짜 포스 좆되더라."


"그러고 끝이었어?"


"응."




나는 분명 착한일을 한 거지만 왠지 죄를 숨긴 범죄자가 된 기분으로 다음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등교했다. 긴장을 너무 하니까 손발이 차가웠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익숙한 진동이 느껴졌다. 유태환이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유태환을 바라보았다. 유태환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치고, 다음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안녕."


"으에아각!"


유태환은 별놈 다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나는 그의 웃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정말 살벌한 이빨들이 지그재그로 나 있는게,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평소처럼 엎드려 눈을 감았다. 나는 미칠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금 상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지도 못한 채 그냥 잠든 유태환을 볼 뿐이었다.



"너의 삶에 안녕을 고하라는 의미 아니냐?"


"마로를 보고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난 거 아닐까?"


"개소리좀 그만해.."


점심시간 후 구령대. 친구들이 내가 처한 상황을 쓸데없게 열심히 해석해주는 동안, 나는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7교시가 금방이라는 마음뿐이었다.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교실로 들어갔다. 왠일인지 교실에 애들이 많이 없었는데, 나는 그게 유태환이 평소와 다르게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란걸 깨달았다. 왠일로 앉은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한 얼굴의 유태환. 나는 조용히 뒷문을 닫고 화장실이나 갔다올까? 라는 생각을 하고있는데, 그런 나와 유태환의 눈이 마주쳤다.


"야."


유태환이 나를 부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최대한 나는 착하고 무해한 작은 허스키 한마리야. 라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갔을때 아깐 엎드려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의 목덜미를 볼 수 있었는데, 아쉬운대로 가져온 양호실 반창고가 그것보다 더 큰 상처에 붙어있는 꽤나 우스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붙이긴 했구나. 좀 더 큰걸로 아예 사올걸,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혀를 찼다.


"어, 부, 불렀어?"


"너 담배 피냐?"


"다, 담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담배를 삥뜯으려는 거였구나. 하지만 누가봐도 수업만 듣고 선생님말을 어겨본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인 나였기에, 유태환이 나를 끌고 소각장으로 갈때는 드디어 피떡이 되는 날이 왔구나. 하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성호를 그었다.


"펴볼래?"


"아, 아니..아, 아니 필까?"


"됐다. 펴서 뭐가 좋다고."


 쓰레기가 가득한 소각장 안에서 익숙하게 담배를 피는 유태환과, 어색해서 뒷짐을 진 채 벽에 기대고 있던 나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유태환은 욕을 하지 않았고, 담배가 체취랑 섞여서 그런지 어른스런 냄새가 났다. 그리고 상어수인은 아가미에서도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꽤 많은 새로운 것을 알았다. 아마 그건 유태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한 번도 싸워본적 없다고?"


"응...내가 겁이 좀 많거든."


그렇게 점심시간 마지막 15분은 어느새 유태환과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15분의 한 주, 몇 달이 쌓이니 우리는 꽤나 친해졌다. 나는 그즈음 부터는 7교시가 끝나면 태환을 흔들어 깨우게 되었고,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7교시까지의 시간이 그리 싫지 않아졌다. 



"야. 마로. 너 괜찮아?"


"뭐가?"


"유태환이 진짜 안괴롭혀?"


"어. 뭐 그냥 이것저것 얘기나누고 말아."


그때 학교에선 내가 유태환의 전용빵셔틀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생각보다 막나가지 않는 태환을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게 좀 안타깝긴 했지만, 내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다들 나를 너무 불쌍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냥 뭐, 걔도 별반 다르진 않던데."


나는 조용히 혼잣말 하듯 말했다. 


유태환은 부모님이 안계셔서 형들이랑 살기 때문에 생활비 마련을 위해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어려서 씨름부, 투포환부, 유도부 등에서 러브콜이 많이 들어왔지만, 운동을 하려면 돈이 꽤 필요해서 포기했다고 했다.


매점에서 가장 맛있는건 나나콘이라고 했다. 다들 딱딱해서 싫어하는 그 과자를 날카로운 이빨로 우적우적 잘도 씹어먹더라.


의외로 수영은 못하는데 바다는 좋아한다고 했다. 마음이 답답하면 오토바이를 몰아서 월미도에 가 한참을 앉아있다 온다고 했다.


수염이랑 가슴털은 보기싫어서 매일 민다고 했다. 


형들 친구들이 조폭이 많아서 어려서 같이 놀다가 나도 깡패질이나 할까 생각했는데, 형 친구들 사는 꼬락서니 보니까 저건 아니다 싶어서 애진즉에 생각 접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있자니, 나는 문득 들었던 유태환의 그것이 두개라는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고 싶었지만,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어도 그에겐 여전히 위압감이 있었기에 궁금증을 속으로 삭일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즈음에서는, 소각장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점차 유태환의 웃는 얼굴도 익숙해져갔다.




"타."


여름 끝무렵의 점심시간이었다. 갑자기 점심종이 치자마자 날 데리고 나온 유태환이 오토바이에 앉더니 뒷자리에 눈짓을 했다.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엉거주춤하게 그의 뒤에 앉았는데, 새삼 유태환의 덩치가 어마어마 하다는걸 깨닫고, 갈곳 없는 내 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몰라 얼굴을 붉혔다.


"뭐해. 꽉 안잡으면 도로에서 피떡된다?"


"피, 피떡?"


나는 사색이 되어 유태환을 와락 안았다. 어찌나 덩치가 큰지 아름드리 나무를 껴안은 것 같이 손끼리 닿지가 않았다. 숨을 쉬자 교복 밑에서 유태환 특유의 어른스러운 체취가 진하게 올라왔다. 한쪽 귀를 그의 등에 대고 있으니,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아서 내린 곳은 유태환이 일하고 있다는 중국집이었다. 늙은 고양이 수인인 사장님은 담배를 피면서 양파를 손질하고 있었다.


"사장님. 친구것도 좀 만들어줘요."


"왠일이냐? 친구를 다 데려오고."


"탕수육도 주면 좋고요."


"얼씨구?"


거의 나와 이야기 하는거 말고는 남들과 대화하는걸 처음보는 것이었기에 꽤 능청스럽게 사장님과 대화하는 유태환의 신선한 모습을 본 나는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계란을 올린 맛깔나보이는 볶음밥이 나왔고, 짜장소스와 탕수육이 차례로 식탁에 올라왔다. 어려서부터 유태환네 형제가 대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사장님 없었으면 자기 형제들은 굶어 죽었을거라며 웃는 태환의 모습을 본 나는, 담배를 꼬냐문채 여전히 양파를 손질하는 사장님을 보며 마치 태환의 아버지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또 여름이 지나고, 수능이 가까워질 무렵까지 나는 유태환과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제는 7교시가 지난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9월이 지나 날이 선선해지고, 수능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느낀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가 나에게 물었다.


"유태환 오늘은 왜 안오는지 모르니 바로야?"


"어, 네. 전화해볼까요?"


그때쯤에서는 나는 유태환과 번호도 교환한 상태였고, 가끔 메시지도 주고받곤 했다. 그러나 몇번을 통화해봐도 받지 않는다. 몇교시가 지나도록 비어있는 옆자리는 꽤나 헛헛했다. 무슨일이 생겼나? 배달아르바이트 하다가 다치기라도 했나? 여러 생각을 하던 나에게 전화가 온 건 야자가 끝나고 가방을 챙길때 쯤이었다. 


"야. 너 무슨일이야? 학교를 왜빠졌어?"


"아, 모르겠고. 너 중국집으로 좀 올 수 있냐."


가끔 오토바이만 타고 가던길을 어둠속에 혼자 걷자니 꽤나 길게 느껴졌다. 중국집 앞의 플라스틱 의자에 유태환이 하늘을 보며 앉아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안에 불은 꺼져있었지만, 가게 안의 의자며 테이블이 난장판이 된 걸 보니 뭔가 큰일이 있었던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 코를 찌른 그때보다 더 비릿한 피냄새. 그제서야 유태환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군데군데 할퀴어진, 피투성이가 된 유태환의 모습.


"야, 무, 무슨일이야?"


"형들이랑 편먹고 형 친구들이랑 치고박았어. 아저씨 가게에서 돈뜯어갈려고 하길래."


그러면서 피식웃는 유태환이 품속을 뒤적이더니 무언갈 꺼내 나를 보여준다. 거기엔, 반쯤 남아 쪼글해진 마데카솔 연고가 있었다. 


"네가 직접 발라줘. 또 말없이 책상 밑에 두고 가지 말고."


"어, 아, 알고있었어?"


유태환이 알고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잠들어있어도 옆에서 나는 냄새가 똑같이 나는데 모를까."


"나 냄새나?"


유태환은 대답대신 피식 웃으며 억지로 들려주듯 내 손에 연고를 건네고, 한숨을 내쉬며 피가묻은 교복셔츠를 벗었다. 가로등 조명아래서 비친 유태환의 커다란 근육질 가슴과, 맨날 중국요리를 먹어서 그런지 불룩한 배. 그리고 상처에 피가 맺힌, 역도선수처럼 솟은 어깨가 드러났다. 나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다.


유태환의 몸은, 말 그대로 어른의 몸 같았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나의 배만 나온 몸과는 달랐다. 위험한 체취가 났다.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거렸고, 검지에 연고를 짜냈지만 왜인지 몸이 덜덜떨려 선뜻 상처에 손을 뻗지 못했다. 


"너 그렇게 떨다가 상처 찌르면 나 화낸다."


"피, 피때문에 손 떨리는걸 어떡해."


내가 그러고 있자 유태환은 한숨을 쉬더니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았고, 나를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 앉혔다. 얼굴이 붉어졌다.


"떨지 말고 잘 발라봐."


가까워진 만큼, 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냄새가 더욱 진하다. 피냄새, 체취도. 그리고 상처에 연고가 발리자 움찔하는 모습까지도, 가까이에서 보인다.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검은자위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무섭지 않다. 이상했다. 유태환의 허벅지 위에 앉혀진 채 연고를 발라주는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좋았다. 소각장에서의 익숙함과, 그보다 더 은밀한 무언가가 섞여있었다.


밤바람이 불었고, 나는 조심조심 연고를 다 발랐다. 그는 따가운지 인상을 좀 찌푸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연고의 뚜껑을 닫은 나는, 여전히 허벅지에 앉아있었다. 그도 굳이 셔츠를 다시 잠그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냥 그랬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다가갔고, 유태환도 다가왔다. 우리 둘의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랬다.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고나서 나를 몇번 쓰다듬었다. 


시간은 그리고, 무심히도 지나갔다. 유태환은 가끔 학교를 빠졌다. 그런 날에는 시간이 이상하게도 가질 않았다. 어떤 날에는 나를 데리고 중국집에 가기도 했고, 점심시간 15분전엔 소각장에서 여전히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이제 꽤나 실없는 농담도 던지게 되었고, 나도 어느새 나나콘을 와작와작 씹어먹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씹고나서 입안에 남는 고소함이 일품이었다. 이전엔 몰랐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능이 끝났고, 해가 바뀌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성인이 되었다. 2월에 어느 추운, 졸업식 날. 친구들은 꽤나 멋지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으로 학교에 왔다. 나는 유태환을 찾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녀석의 모습이 없었다. 곧 있으면 졸업식이 시작될텐데. 나는 전화기를 들어 통화목록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너 졸업식 안와?"


"뭔 졸업식이야. 배달중이야. 끊어."


"진짜로 안오게?"


"그렇다니까."


나는 조금 섭섭했다.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고, 또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쓸데없는데라고 생각한 유태환은 아마 교복 차림으로 왔겠지만. 학창시절의 끝을 기념하는 자리에 사진 하나는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너랑 같이 사진찍고싶었는데."


대답이 없었다. 그저 바람을 가르는 소리뿐이었다. 피식 웃는 소리가 났다.


"일단 끊어봐."


그리고 졸업식이 시작됐다. 난 들뜬 친구들과 끝나고 술먹으러 가니 마니 하며 마지막 고등학생으로써의 날을 어떻게 보낼지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강단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는 귓전 밖이었다. 그렇게, 식이 끝났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나는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졸업을 축하했다. 


그때였다.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왁자지껄한 운동장을 가르며 나에게 들려왔다. 익숙했기 때문일까.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교문 앞에 커다란 상어 하나가 오토바이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게 보였다.


"야, 유태환 아니냐?"


"마지막까지 진마로 괴롭히러 온거 아냐?"


나는 발을 옮겼다. 친구들이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잠깐 들렸고, 수많은 인파를 헤쳤다. 그 끝에 유태환이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교복차림인 그를 보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유태환은 이놈 보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앞으로 뺀다. 거기엔, 빨간 장미가 수북한 꽃다발이 있었다. 나는 그 유태환의 눈동자같은, 붉은빛의 장미들을 보며 말문이 막힌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유태환은 쑥쓰러운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졸업 축하한다."


그 말에, 내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나는 유태환을 보며 말했다.


"너도 졸업 축하해."




유태환의 등에 기댄채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의 잔영들을 봤다. 도심에서, 인천항의 정경이 보이다가, 이내 오토바이가 멈췄다. 코끝에 바닷바람이 쌀쌀히 스치고 지나간다. 바이킹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시끄러운 디스코 DJ의 웃음소리. 월미도였다. 나는 꽃다발을 든 채 유태환의 뒤를 따라 바다 옆에 쳐진 펜스로 걸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갈매기가 날고 있었고, 앞에서는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유태환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의 한 순간처럼, 유태환이 입을 뗐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낮은, 먼 배의 고둥같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나도 그래."


나는 대답하며 안겼고, 차가운 바닷바람과, 장미향과, 그의 체취가 섞인 오묘한 향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얼굴을 부비자,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한참을 있었을까.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수군대고, 지나갔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건 유태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20살이 된지는 2개월이나 지났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내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너무 쌀쌀해져서 교복만 입은 유태환과 정장 겉엔 아무것도 입지 않았던 나는 이빨을 오득오득 떨면서 돌아와야 했다. 헤어지는 길목 앞에서, 추위에 떨던 내가 그제서야 그토록 궁금해하던 그걸 물었다.


"그런데 너 진짜 두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