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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모두 현실이 된다.

고양이가 길바닥에서 벌레를 잡았다는 작은 일이건, 괴물의 군세가 들이닥친다는 재난이건 모두 여과 없이 진짜로 만드는 예언가.

그 예언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예언.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빛을 내뿜고, 생명을 부정하는 괴물들을 불살라버릴 검.’

 

‘그 검을 뽑아 들고 악의에 맞서 싸우며 검게 물든 대지로 향할 용자가 나타난다.’

 

‘그 용자에 의해 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든 마왕과 그 밑에서 혼돈을 추구하는 자들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거대한 괴수의 출현, 폭설 등 온갖 큰 사건을 예언한 예언자에게 신뢰를 보내왔지만, 이 말만큼은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마왕이다.

 

나타나자마자 나라 하나를 박살 내고 예언 당시인 12년째, 봉인 당하였음에도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괴물의 군대를 보내 세계를 혼돈으로 물들이려는 그 마왕이란 말이다.

 

그런 재앙을 갑자기 나타난 놈이 달랑 칼 한 자루 들고 없애버린다고?

 

작은 파리가 거구의 남자를 쓰러트린다는 말처럼 참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

 

사람들은 그랬으면 좋겠네. 라고 말할 정도로 이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언은 마왕이 나타난 지 40년이 되는 해에 이루어졌다.

 

사람들을 불길에 이끌리는 날파리마냥 불러모으는 빛을 내뿜으며 악의적인 존재를 불태우는 성검의 주인 용사와 그 동료들.

 

마왕은 예언대로 나타난 용사와 그 동료들을 이기지 못하고 처치당하고 말았다.

 

검은 대지의 끝에 있는 악한 존재. 신조차 우롱하고 세상 모든 걸 더럽히려 하는 마왕이 죽었다.

 

이 기쁜 소식은 세상에 그 무엇보다 빠르게 전파되었다.

 

마왕이 사라지자 세계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해갔다.

 

마왕의 압도적인 힘과 그에 굴복한 괴물들에 의해 피폐해진 대지가 다시 생명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왕에 의해 뭉쳤던 나라들은 다시 흩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평화를 이어가자고 약속했다.

 

나쁜 변화도 있었다. 더는 아이들에게 밤에 나가지 않도록 들려줄 이야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찾아온 평화에 비하면 매우 하찮은 것이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짜내었다.

 

그렇게 거대한 악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희망찬 삶을 보냈다.

 

이는 이 평화를 가져온 장본인들, 마왕을 처치한 용사와 그 일행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성검을 찾아낸 자. 용사가 된 고아.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진 남자는 가족을 만들었다.

자신을 바라봐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보낼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여정의 시작 전부터, 언제나 용사의 옆을 지키던 여검사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 옆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가족의 일원이 되어, 용사가 누리는 행복의 크기를 더욱 불려준다.

 

그 누구보다 재빠른 창을 내지르던 용병은 보육원을 만들었다. 

길바닥에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지 않도록, 그 아이들이 한때 기사를 꿈꿨으나 포기하고 말아버린 자신처럼 되지 않게.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일행에게 기둥이 되어주고, 상처에 흔들리는 일행을 치료하던 사제는 유일하게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신실한 신자인 그녀는 대륙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신이 알려주는 희망을, 믿음을 전파한다.

 

그리고 특유의 지식으로 검은 대지의 여정을 밝혀주던, 온갖 마법으로 일행을 도와주던 마법사는……

 

 

 

 

 

***

 

 

 

 

 

1년 내내 손발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가 유지되는 북쪽의 산맥.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는 않았겠지만, 마치 그렇게 보이는 듯한 새하얀 땅에 발자국을 새긴다.

그러자 차가운 바람이 나를 덮쳤다. 아무래도 이 산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내가 반갑지 않은가 보다.

 

머리를 덮은 후드가 심하게 흔들리며, 차가운 냉기가 옷을 파고들어 몸을 간지럽힌다.

하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가 아닌, 등에 있는 검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에서 나오는, 가까이 있기만 해도 따뜻한, 몸만 아니라 마음 까지 달아오르게 해주는 온기.

이게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 추위보다 더한 일이 불어닥치는 세상에서 20년이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연스레 검의 본래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안에서 치밀어 오른다.

 

“……넌, 정말이지 옆에 없어도 나를 돌봐주는구나.”

 

따뜻해진 마음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가 입김과 함께 차가운 겨울 하늘에 흩어져 사라진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금 내디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나는 도착하였다.

얼음과도 같은 불투명한 꽃잎을 가진 얼음꽃으로 가득한 곳, 네가 잠들어있는 곳에.

 

“나 왔어 헤른.”

 

얼굴과 머리를 가리고 있는 후드를 벗는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선홍색의 긴 머리칼이 겨울바람에 흩날린다.

 

“2년 만이야.”

 

나는 그렇게 너의 무덤을 바라보며 2년 만의 재회에 기뻐했다.

 

 

 

 

***

 

 

 

 

 

“용검은 이제 돌려줄게. 20년 동안 내 멋대로 가지고 있어서 미안.”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나와 너를 만나게 해준 연결고리이자 더, 이상 그 누구도 쓰지 못할 검을 너의 무덤 앞에 놓았다.

20년 만에 용검이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저기. 헤른 나 말이야. 마왕을 죽였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다. 대답이 없더라도 해야만 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정적 속에서 나는 무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나 혼자서 한 건 아니야. 아니, 오히려 내가 죽였다고 하기도 뭐하겠지. 어디까지나 마왕을 죽였다 알려진 건 용사고,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어디까지나 주도한 건 용사. 아무리 내가 마왕의 마법을 방해하고, 없앴다 한들 나는 마왕을 죽이는 걸 도운 거지. 죽인 게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금방 들킬 거짓말을 하더라도, 너한테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어.”

 

20년 전, 너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장본인 중 하나.

큰 싸움의 부상과 용검의 부작용에도 어떻게든 유지하던 네 목숨을 끊어버린 저주의 사용자 마왕.

그 쓰레기 같은 년을 내 손으로 직접 찢어 죽여버리지 못했다는 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 탓에 너에게 어느새 거짓말을 내뱉을 정도로.

 

“나도 참 바보지? 이런 거로 생떼를 부려봤자, 달라질 건 없는데 말이야.”

 

“만약 네가 지금의 날 본다면 뭐라 이야기했을까? 역시 화내겠지? 20년 전에 너는 마왕이 바보 같은 날 해치려 할지 몰라. 마왕의 수족인 그림자를 전부 죽이려 했다고 들었으니까.”

 

칼이란 남자의 말을 순전히 믿는 내가 멍청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봐온 너는 언제나 멍청하고 이기적인 나를 위해 희생했었으니까.

 

“그런 네 기대를, 내가 아프고 힘든 싸움 같은 게 아닌, 진심으로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고 일기에까지 적은 걸 나는 전부 무시했으니까. 응. 당연히 화나겠지.”

 

손이 떨려온다. 추위 때문이 아닌, 20년이란 시간이 흐른 과거. 그 안에 네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야. 헤른. 나는 그게 안 되더라고.”

 

“네가 바라는 대로 진심으로 웃으면서 어떻게든 지내보려고 했어. 그런데 뭘 해도 안 되었어.”

 

“웃으려고 했는데 전혀 웃을 수 없어.”

 

“그렇게 좋아하는 꽃을 봤는데,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여행을 갔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붉은 눈동자에 맺히는 풍경이 흐려진다. 이윽고 얼음꽃의 꽃잎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눈물이었다.

 

“웃긴커녕, 계속해서 울었어. 우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

 

“뭘 보던 네가 떠올라.”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오른 광경을 보면, 너와 함께 이 꽃을 보고 싶다고 생각해.”

 

“사람을 만나면 너와 함께했던, 내가 잘못했던 날들이 떠올라.”

 

“여행을 가면 내 옆에 네가 없다는 것에 어떤 거로도 채워지지 않을 공허함을 느껴.”

 

“그리고 그때마다 네가 없고, 너를 죽게 한 것들은 다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라.”

 

예언에 나왔다는 용사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로 너에게 저주를 걸어 단 하나뿐인 목숨을 빼앗아 가버린 마왕.

그리고, 너를 그런 저주에 목숨을 잃을 정도로 몰아세운 나.

 

“전부 용서가 안 되었어. 둘 중 하나라도 좋으니까 죽이고 싶었어. 죽여서 너한테 조금이라도 사죄할 수 있길 바랐어.”

 

“하지만, 너는 나보고 살라고 했잖아.”


진심으로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네가 남긴 말 중 웃는 것은 실패했으니 마지막은 꼭 지켜야만 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죽일 수 없던 나는 마왕을 죽이기로 했다. 

내가 직접 죽일 수 없다면 그를 죽일 수 있는 용사를 돕기로 했고, 그 결과 마왕을 죽였다.

그리고 그 개 같은 년의 수하를 가장 많이 죽인, 저주로 목숨을 잃고 만 너는 이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여기 왔다. 

 

“……오늘 이야기할 건 이거뿐만이 아니야.”

 

“마왕과 싸우면서 나 뭔가를 찾았거든.”

 

“마법이야. 그것도 이미 한 번 흘러가 버린 시간을 역행하는 마법.”

 

검은 대지의 끝에 존재하는 마왕성. 그곳에서의 마지막 전투.

거기서 용사의 성검에 베였던 마왕은 이 마법으로 수십 초라는 시간을 돌려 육체를 회복하였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실패작이야. 시간을 역행한 건 육체뿐 나머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 실패작을 개량하면? 힘만으로 밀어붙이는 그 멍청한 년이 했던 것과 달리 역행을 육체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서 역행한 시간. 거기에 존재하는 나에게 기억을 새겨넣을 수 있다면?”

 

말을 거듭해 갈수록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을 역행해서 과거의 나에게 이 기억을 새겨넣는다.

너의 죽음 이후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게 말라버린 이 세계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알아. 그렇게 하려면 나는 내가 여태껏 살아온 것보다 더욱 긴 시간을 그 마법에 몰두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끝에 마법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걸로 나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을 거 같아.”

 

“너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그거 하나만으로도 네가 없는 세계에서 나는 살고 싶을 거 같아.”

 

“그러니, 마지막으로 물을게.”

 

나는 끌어안듯이 너의 무덤에 몸을 기대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기적처럼 내가. 이 마법을 완성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것. 해주지 못하였던 것들을 다시 해줄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네 옆에 있어도 될까..?”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하지만, 그것에 나는 만족한 듯 헤른의 무덤에서 일어났다.

 

“대답은 다시 만나면 들을게.”

 

그렇게 용사의 일행, 얼음처럼 굳은 얼굴에 미소를 피운 마법사는 자취를 감췄다.

 

 

 

 

 

 

***

 

 

 

 

 

“당장 본가로 돌아와라.”

 

“돌려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외숙부 저와 싸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상대해드리죠.”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무섭다 못해 살벌하다.

그 상대가 망한 가문을 살리기 위해 매일 일에 찌들어 사는 소중한 외숙부라지만 상관없었다.

 

“외숙부는 아시잖습니까. 의뢰나 토벌 지원은 다 외숙부를 통해서 저에게 전달되니까.”

 

“저 이곳, 최전선인 요새 도시 유즈라에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그 도중에 머리에 든 게 없는, 동네 꼬마들조차 무서워하는 괴담인 마왕의 그림자들과는 두 번이나 만났고요.”

 

후퇴하는 병력을 지키기 위해 홀로 소름 끼치는 검기와 마력을 내뿜어대는 죽음의 기사와 칼을 맞대었다.

병력의 손실이 크단 이유로 갑자기 전장에 나타난 리치가 소환한 시체 골렘 부대를 상대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덕분에 저는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용검의 부작용까지 맛봤습니다. 여기 팔 안 보이세요? 갈라진 거?”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진짜.”

 

“제가 1달? 2달 쉬겠다 했어요? 일주일도 아니고 딱 4일만. 4일만 늘어져서 잠자고 싶다고요.”

 

스스로가 생각하기엔 좀 그렇다 하지만, 나는 되게 성실한 인간이다.

지금도 끔찍하다 하는 최전선에서 더욱 끔찍한 그림자를 2번이나 만나고선 4일밖에 안 쉰다는 게 그 증거다.

 

“그래도 안 돼. 돌아와.”

 

그리고, 그런 성실한 나한테 조금의 휴식도 주지 않는, 저 외숙부는 악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진짜 중요한 일이니까.”

 

“저는 지금 한 나라의 왕이 와서 일하라 해도 폐하 저는 쉬고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건데요?”

 

“왕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적어도 우리 가문에게는.”

 

그렇게 말한, 수정 구슬 너머로 들려오는 외숙부의 목소리는 골치 아프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레드 드래곤. 우리의 선조와 계약을 맺은 용의 후손들이 찾아왔어. 그리고선 용검의 사용자인 너를 불렀지.”

 

“……뭐라고요?”

 

아까까지의 불평불만이 의문으로 뒤덮여 싹 사라진 나는 외숙부에게 되물었다.

 

“아니, 그 잘난 도마뱀…….”

 

“말조심해라. 지금 본가에 계셔.”

 

“……레드 드래곤님들이 왜 갑자기 저희 가문에 찾아온 겁니까. 분명, 저희는 이번 기간에 갚아야 할 이자는 다 갚지 않았습니까.”

 

“듣자 하니, 그림자들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급하게 도망치다가 우리 본가의 좌표로 공간 이동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자들. 방금까지 그 이름을 입에 담던 나인만큼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알았다.

 

“그러고 보니, 3주 전부터 죽음의 기사가 보이지 않았죠. 병사들의 정신 상태도 꽤 안정적이었고.”

 

“네 말대로 그분들을 습격한 건 죽음의 기사와 서큐버스 여왕이라는 거 같구나.”

 

“역시 용은 용이네요. 그 미친놈들이랑 맞서 싸우고도 살아남다니.”

 

“그렇게 말하는 너도 그림자들이랑 2번을 마주치고도 살아남았으면서.”

 

“저는 한 놈씩이랑만 싸운 거고요. 두 놈 이상이면 저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잘 몰라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그림자들과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그런 놈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 뭉쳐서 왔는데 싸워야 한다니.

웬만하면 도망을 선택하지 않는 나조차도 꼬리 말고 튀는 게 옳다고 생각할 정도다.

 

“……근데, 그런 그림자에게 습격을 당하셨다는 분들이 저를 왜 찾는 겁니까.”

 

“호위다. 그분들이 대단하긴 해도 부상을 심하게 얻은 몸. 요양이 필요할 테니 그때까진 지켜…… 잠시만,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십니다.”

 

“외숙부?”

 

갑자기 수정과 거리를 두었는지, 작아진 외숙부의 목소리.

그와 함께 작은 소란이 수정을 통해 들려오더니.

 

“찾았다.”

 

외숙부의 것과는 완전 딴판인, 가녀린 목소리로 이루어진 한 마디가 울린다.

동시에 옆이 갑자기 심각하게 뒤틀리는, 기이한 감각을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그쪽에 고개를 돌렸고, 이내 당황을 금치 못하였다.

 

나 혼자만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할 병실. 그곳에 언제부터인지 서 있는 누군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을 보는 듯한, 진한 붉은색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아름답다.

활짝 핀 꽃을 연상시키는 소녀의 외모는 남성의 본능을 자극해 이끌리게 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저 여자가 내가 있는 곳을 허락도 않고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방금 전 느꼈던 그 기이한 감각. 그것이 리치가 시체 골렘을 불러올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공간 이동 마법의 전조 현상이라는 것이다.

 

어느새 용검의 손잡이를 꽉 부여잡은 나는 눈앞의 여자에게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조금의 적의, 살기를 내보이는 순간 일말의 자비도 없이 베어버리고 태울 것이다.

그렇게 여자의 조그마한 입이 벌리고, 발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검을 쥔 손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아무런 낌새도 무엇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내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어... 어?”

 

“드디어... 드디어... 만났어...”

 

용검의 주인, 갑작스럽게 자신의 품에 안기는 여자에 당황한 헤른은 아무것도 몰랐다.

눈앞의 여자가 자신이 그 무엇보다 좋아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도와주고 싶었던 용이란 것을.

그 용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셀 수도 없는 긴 시간을 넘어왔다는 걸.

 

‘이게 뭐야...’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해피엔딩으로 끝. 많이 늦어서 미안. 

처음으로 소설 얀챈에서 완결내봤네. 원래는 좀 여러가지로 자세하게 쓰고 싶었는데, 뇌절로 결국 이렇게 되버렸네. 그래도 결과는 되게 만족스럽다. 

외전 같은 건 쓸까 말까 생각중이긴 함. 남주가 성검 NTR하는 등 생각해놓은 게 몇 개 있어가지고 꼴리면 쓸 듯. 

원래는 이전 편만 올렸는데 그냥 한 꺼번에 다 올려놓음.

언제나 구린 필력으로 쓴 글 봐줘서 고마워. 그럼 나도 이제 사료 먹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