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받으러 왔다. 혹은 양치해야 한다. 계단을 오른다. 매끈한 대리석 같은 회색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는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2층이다. 헬스장도 있고, 그 옆은 가로 3m 세로 1m 정도 되는 유리없는 창문이 뚫려있는 약국이다. 바깥쪽은 파란 벽면이고, 위쪽에 빨간색의 십자 모양과 흰색으로 간판 동글동글한 검정 테두리의 글씨가 쓰여있다. 안쪽으로 흰색 매끈한 타일 바닥이 보인다. 전등에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까불거리는 인상의 후덕한 약사가 있다. 약사가 싸게 약을 지어준다며 부른다. 나는 양치 중이다. 양칫물 뱉을 곳을 찾고 있다. 약국 옆에 계단 벽면 안에 세면대가 있다. 테두리는 ATM의 그것이다. 나는 양칫물을 뱉는다. 하지만 좀더 은밀한 곳에서 편하게 입을 행구기를 원한다. 또각거리며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은 약국 안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여기는 하늘색 벽면에 고양이 한마리가 지나갈법한 창문과, 불투명 유리로 된 낡은 황동색 철 테두리 문만 있다. 약사는 내가 약을 지어오려면 서류를 해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간이 미래로 간다. 계단 한칸마다 1년 단위로 바뀌어간다. 인부가 타일을 헤쳐놓는 공사를 했다가, 다시 고쳐진다. 바닥과 벽면은 화강암 타일로 되어있다. 한쪽면에 낡은 철제 우편함들이 보인다. 낡았음에도 테두리쪽 실링은 떼지 않은 채다. 나는 화장실로 향한다. 좀더 은밀한 화장실로 들어가고 싶어서, 1번 화장실과 2번 화장실을 지나치니 3번 화장실이 나온다. 딱 봐도 누군가 쓴 흔적이 없는 곳이다. 중간에 8개 정도 되는 세면대가 있고, ㄴ자로 변기칸이 붙어있다. 대략 12~16개 정도 되어보인다. 입구 쪽에는 2개 정도 되는 소변기가 있다. 불빛이 꺼져 있어 고양이가 드나들 법한 작은 창문으로 초여름 햇빛이 잔잔하게 들어온다. 작은 햇빛이지만, 물건의 색깔은 분간이 갈 정도이다. 입구 쪽에 우산이 잔뜩 있다. 갈고리같은 손잡이에 줄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진 검정색 우산, 길쭉한 손잡이 중간에 동그란게 있는 검정 우산, 갈고리 손잡이의 쨍한 주황 우산, 딸기우유 색깔의 갈고리 손잡이 핑크 우산이 눈에 띈다. 사람 머리 정도 되는 높이에 바구니 같은 두개의 물체에 넘쳐나도록 담겨있다. 잠깐 우산을 탐내다가, 문득 들킬까 불안해져서 화장실을 나와 1번 화장실로 간다. 1번 화장실에도 넘쳐나도록 꽃힌 우산꽃이가 있다. 1번 화장실로 가자,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들어온다. 그 아이들은 청소당번이다. 뒤에는 정장 차림의 선생님이 나무 손잡이의 대걸레를 들고 있다. 그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커다란 변기칸 중 하나로 들어간다. 누군가 소변을 싸놓고 물도 안내리고 갔다. 찌릉내가 사실적으로 난다. 나는 불편해져 다시 나간다. 다시 3번 화장실로 들어간다. 3번 화장실의 맨 앞 세면대에서 입을 헹군다. 혀닦이로 입 안에 있는 이물질을 계속 닦아낸다. 혀에 있는 건 닦아지지만, 입 천장에 있는 건 좀체 닦아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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