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9장 멸망에 대한 집착









비라쥬 : 어둠 속에 모습을 숨기다니, 정말 마족이 쓸법한 수단이군.



비라쥬 : 모습을 드러내라! 그렇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 : 정말? 내 모습을 보면 놀랄 텐데...



비라쥬 : 네 녀석의 나약한 정신으로 크림조랜더의 의지를 가늠하지 마라!



비라쥬 : 가엘파이스의 모 세력에서 보낸 암살자인가? 흐음, 그렇다면 네가 웨탐이라는 자를 도시로 들여보낸 자겠군.






고탑 아래층



??? : 하하, 재미있네. 처음 보이는 반응이 의심이야? 게다가 그 의심의 대상 역시 과거 너희에게 해를 끼쳤던 예레스인이 아니라 너희와 거리를 두고 있던 가엘파이스 원주민이라니.



??? : 너 자신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비라쥬 : 닥쳐라! 적인 주제에 쓸데없는 말이 많구나. 더 입을 연다면 그나마 남은 관용조차 사라질 줄 알아라!



비라쥬 : 더는 크림조랜더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고, 당장 이곳을 떠나라!



??? : 이성과 선견지명으로 이름 높은 집정관 나리께서 어째 오늘은 꽤 초조한 모습을 보여주네. 그 검 때문인가?



??? : ...옛 전우의 유산인 그 검 말이야.



비라쥬 : 뭐라고? 설마 그 검을 훔친 게 너냐?



??? : 난 그런 저급한 수단은 쓰지 않아. 그 검에 대해선 요만큼의 흥미도 없는걸.



비라쥬 : 그렇다면 어떻게 네가 그 검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 검이 내게 있다는 걸 아는 거지?



비라쥬 : 넌 대체 누구냐?



??? : 크림조랜더의 구세주 역을 맡은 비라쥬, 나는 너의 모든 행실을 아는 사람이야.






??? : 놀랐지? 네 기나긴 과거를 아는 사람 중에서 지금 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일 거 아니야.



??? : 지금이라도 그녀의 이름이 입 밖에 나올 것만 같은데.



비라쥬 : 그만! 네가 그녀일 리 없다!



??? : 너는 그녀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어. 그녀를 대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



??? : 너와 갈라선, 과거의 동료를 대할 면목이 없는 거야.




비라쥬 : 말도 안 돼! 크림조랜더 동포들을 떠난 네가 어째서 이곳에, 네가 설계했던 탑에 돌아온 거냐!



브렌다 : 물론 과거의 청사진이 실현된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지. 하지만 문득 내 바람이 너 같은 배신자 손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정말 구역질이 나더라고!



비라쥬 : 내가... 배신자라고?



비라쥬 : 크림조랜더를 저버리고, 너 자신을 저버린 채 싸우기로 한 건 너다! 배신자라는 말은 나보다는 네게 더 어울리지 않겠나, 브렌다!



브렌다 : 하하, 비라쥬!



브렌다 : 그래, 바로 그거야! 날 원망해, 그리고 과거의 무력함과 고통을 느껴봐!



브렌다 : 파사의 검 때부터 너는 그랬어. 온갖 지혜와 기술력을 갖고 있었지만,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듯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지!



브렌다 : 지금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작은 땅에 만족하며 웅크려있잖아! 이것도 너에 대한 가엘파이스 원주민들의 원한을 풀 수 없다는 것을 너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마치 그때의 예레스처럼!



비라쥬 : 힘은 세상을 뒤집고 통치하기 위해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 범했던 잘못 속에서 깨닫지 못한 거냐?



브렌다 : 그것 봐, 바로 너의 그런 나약한 사고방식 때문에, 우린 가장 소중한 동료를...



브렌다 : 이 대륙의 거대한 잘못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잃은 거라고!



비라쥬 : 잘못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브렌다 : ...네 피로 이 대륙을 올바른 궤도에 돌려놓겠어!



브렌다 : 너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고탑을 없애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과거의 잘못을 고쳐 나가겠어!



비라쥬 : 수십 년만의 재회가 목숨을 건 사투로 바뀌는 건가?



비라쥬 : 브렌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만...



브렌다 : 사욕을 위해 힘을 추구한 자여...



브렌다 : 저항하지 말고 올바른 길로 되돌아가라!






비라쥬 : 으음... 전투 방식이 많이 바뀌었군, 브렌다.



브렌다 : 그래? 굳이 비교하자면 분명히 네 쪽의 변화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브렌다 : 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그 정도까지 개조해도 날 이길 수는 없나 봐?



매튜 : 탑 안에 이상한 기운이 퍼지고 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마크렌 : 비라쥬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듯하다!



매튜 : 비라쥬 씨하고... 브렌다? 저 사람은 브렌다 씨잖아?



브렌다 : 사자使者님!?



브렌다 : 아니.... 아니야, 사자님과는 기운이 달라. 어떻게 된 일이지?



비라쥬 : 페랄인으로 보이는 소녀여, 강습형 마광검을 훔쳐가려고 한 사람이 자네인가?



리자 : 아니, 훔쳐가려 했다뇨! 그 검은 베르너 씨가 예전에 우리 아버지께 준 검이라고요! 그러니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거라고 해야죠!



비라쥬 : 그런가? 알겠네. 자네는 그 녀석의 딸이었군...



브렌다 : 이거 참, 감동적인 재회라고 해야 하나?



브렌다 : 후후, 아주 부러워 죽겠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한가하게 인사나 나누고 말이야!



비라쥬 : 우선 응전해라, 매튜!






브렌다 : 쯧, 저 소년... 사자님과 완벽히 똑같이 생겼는걸. 분명 혼돈의 핏줄을 이어받았는데, 어째서 그 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걸까?



브렌다 : 정말 신경 쓰이네...



매튜 : 넌 진짜 브렌다 씨가 아니야! 원래 모습을 드러내라!






브렌다 : 하하, 알았다! 너, 랑그릿사의 후예구나. 하지만 성검을 갖고 있지 않네! 가여워라, 그래서야 무슨 힘이라도 낼 수 있겠어!?



매튜 : 빛의 후예로서의 신념만 있다면, 평범한 무기로도 사악한 음모 따윈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어!



매튜 : 뭐야, 검에서... 빛이?



비라쥬 : 과연... 베르너, 너는 저 소년을... 란디우스의 후예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을 인정한 거냐?



비라쥬 : 그 검을 들어라, 소년!



브렌다? : 무슨!? 저 검의 다른 일부분이... 공명하고 있어?



비라쥬 : 역시 넌 브렌다가 아니었군.



브렌다? : 흥, 처음부터 눈치챘으면서 시치미를 떼는 거야? 정말 훌륭한 연기였어, 집정관 나리.



브렌다? : 너, 거기 사자님과 똑같이 생긴 소년! 넌 그저 루시리스에게 이용당한 꼭두각시일 뿐이야!



브렌다? : 너희 모두 여기서 묻어주마! 하압!






브렌다? : 아무리 저 검을 든 자가 다시 나타났다고 하지만, 결말마저 똑같다니!



매튜 : 멈춰! 어째서 브렌다 씨의 모습을 흉내 낸 거지!



매튜 : 넌 대체 누구냐!?



브렌다? : 훗, 너희는 그저 필연적인 운명에서 도망치고 있을 뿐이야.






아멜다 : 탑 안에 무슨 이상한 소리가 울리던데! 괜찮아, 매튜!?



그레니어 : 상당히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데, 또 누가 습격이라도 한 거야?



비라쥬 : 저 녀석이 사용한 힘은 일전의 그 검은 갑옷을 입은 소년과 마찬가지로 마족이 쓰는 혼돈의 힘이었다.



매튜 : 웨탐의 동료라도 되는 걸까?



마크렌 : 아마 벨제리아에서 불러온 원군이겠지.



비라쥬 : 웨탐? 그러고 보니 그가 들고 있던 검은 페이리아와 함께 우리 달의 민족에게 기나긴 고통의 세월을 안겨준 검이었지...



비라쥬 : 마크렌 자네뿐만 아니라 브렌다, 그리고 파사의 검까지 연이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군.



마크렌 : 우리도 제법 오래 살았잖아, 떨칠 수 없는 곤란한 일도 적지 않겠지.



마크렌 : 지금처럼 계속 숨어있는 걸로 우리가 과거에 범한 잘못을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닐 거 아냐?



비라쥬 : 후후... 마크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정말 어색하군그래.



비라쥬 : 예전에 그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하는 건 베르너나 마리가 맡은 역할이었는데...



마크렌 : 비라쥬,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너도 우리에게 모든 것에 대해 말해줘야 해. 너와 브렌다, 그리고 마리와 베르너에게...



마크렌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비라쥬 : ...정말 이 대륙에 숨겨진 암면에 발을 내딛고 싶은가? 나는 무고한 자네들까지 이 절망적인 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마크렌 : 뭘 그리 망설이는 거야, 비라쥬!



마크렌 : 과거의 너는 굉장히 신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소심한 녀석은 절대 아니었어!



비라쥬 : 어쩔 수 없군. 이 모든 것 또한 베르너의 선택이겠지.



비라쥬 : 내 거처로 가세나. 그곳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겠네.



마크렌 : 이제야 입을 열 생각이 들었구나, 비라쥬.



비라쥬 : 하지만 난 아직 모르겠네. 이 선택이 이후 우리를 어떤 결과로 인도하게 될지 말이야...






성간함 도시의 거리



??? : 콜록, 콜록... 그 검... 날 상처입힐 수도 있던 건가?



??? : 그 눈 부신 빛은... 그 짜증 나는 랑그릿사를 떠올리게 하더니만!



웨탐 : 아마 그 검이 과거 너를 쓰러뜨리지 못한 원망과 슬픔을 품고 있기 때문일 거다.



??? : 사자님! 드디어 오셨군요!



??? : 이곳에서 진절머리나게 속이던 제 비참한 운명도 드디어 곧 끝나려나 봅니다!



웨탐 : 혼돈을 신봉하는 자여, 네 파수는 곧 끝날 것이다. 또 다른 내가 그의 사명을 다하고, 그가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웨탐 : 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주인께서 품으신 '모든 혼돈을 잇는' 대망을 실현할 수 있을 거다.



??? : 그게 바로 우리 혼돈의 백성이 바라는 미래입니다...



웨탐 : 그것을 위해선 네가 들고 있는 '열쇠' 반쪽이 필요하다.



웨탐 : 지난 전투에서 남겨놓은 다른 검은 또 다른 내가 들고 있는 '마광 칼날'과 서로 호응하지.



??? : 예, 사자님.



웨탐 : 흠, 이 흐릿한 색은 내 의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웨탐 : 상관없다, 이후 네게 합당한 새로운 주인을 찾아줄 테니. 그전까지 내가 너의 빛을 갈무리할 수 있을 테니 얌전히 이야기의 다음 장을 기다리도록 해라.



웨탐 : 절대 조급해하지 마라, 또 다른 나...